부의 기원/ 전통 경제학: 균형의 세계

  • 1982년 8월 멕시코의 채무불이행을 시작으로 그 후 수년간 광범위한 채무 불이행, 화폐의 평가 절하, 몇몇 나라에서의 경제적 붕괴가 발생했으나 수많은 경제학 전문가들은 그런 위기에 대해 어떠한 새롭고 유용한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위기 동안 경제학자들이 내놨다는 제안들은 완전히 잘못된 것들이었다.
  • 과학 저술가 미첼 월드롭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금융시장에 관한 한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이 요정들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고 리드는 결론을 내리고… 경제학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

  • 1996년 존 캐시디는 <뉴요커>지에 ‘경제학의 몰락’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썼다. 캐시디는 경제학이 데이터에 의해서 검증되지 않은, 그리고 비현실적인 가정들에 둘러싸인 고도로 이상적인 이론의 상아탑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경제학이 거대한 학술적 게임이 돼버렸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이 자신들의 수학적 재능이나 자랑하면서 서로 각자 논문을 쓰고 있짐나 그 이론들이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 그러나 기존 경제 이론에 대한 불만족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가 완전히 쓸모없다거나 영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비판가들은 거의 없다…(중략)… G7 국가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을 다루기 위한 금리 조정, 경기 사이클을 완화시키기 위한 경기 팽창이나 경기 둔화 등을 방지하기 위한 금융과 재정 정책, 경쟁 촉진, 시장 시스템의 사각지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 시장 실패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품의 안전성, 환경, 노동 관련 규제 등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들 아이디어들은 전부 지난 1세기 동안 열심히 연구해 왔던 경제학자들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 지금의 이슈는 경제학이 ‘하나의 과학으로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전통 경제학인가?

  •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넬슨과 펜실베니아 대학의 시드니 윈터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전통 경제학에 대한 정의를 내림. 전통 경제학은 학부와 대학원 중간 정도 수준의 교과서에서 명료하게 기술돼 있는 개념과 이론들의 집합이다. 여기에는 또 저널 같은 곳에서 동료들이 검토하거나 평가하는 이른바 ‘피어 리뷰(peer-review)’ 조사에서 당연하게 요구하거나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여기는 그런 개념과 이론을 포함한다.

핀 만들기와 보이지 않는 손

  • 애덤 스미스는 인류 역사상 첫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아마도 첫 경제학자의 영광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폰(Xenophon)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경제학(economics)이라는 용어는 크세노폰의 저서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의 제목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의 영향력은 우리 논의의 출발점이 될만큼 크다. 스미스는 1723년에 태어나 1790년까지 살았는데 이 기간은 역사가들이 말하는 고전파 경제 이론 시대(1680~1830)에 해당한다.
  • 스미스는 1759년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출간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스코틀랜드 계몽주의파의 핵심인물이 되었다.
  •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공작의 개인 교사를 맡아 함께 프랑스를 여행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스미스는 대륙에서 논쟁이 되고 있던 여러가지 경제적 아이디어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당시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의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정부가 경제에 대한 간섭을 제한하고 대신 시장에 대부분을 맡기라는 과격한 아이디어를 가진 부류의 학자들이었다. 스미스는 공작을 떠난 후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6년 동안 <국부론>의 원고를 써 나갔다. 이 책은 1776년 출간 되었는데 곧바로 대작으로 인정 받았다.
  • 역사적으로 경제학자들이 씨름을 해왔던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부는 어떻게 창출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 부가 어떻게 배분되는가 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 두가지를 다 다루었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한 그의 답은 간단하면서도 설득력 있었는데, 경제적 가치는 사람들이 자연 환경으로부터 원료를 가져다가 노동력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으로 변환시킬 때 창출된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예를 들어 도공이 땅에서 점토를 가져다가 사발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 스미스의 가장 큰 통찰력은 바로 부의 창출 비밀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한 점이다. 도공이 한 시간 안에 보다 많은 사발들을 만들어 낼 수록 더 부유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보다 높은 생산성의 비밀은 노동의 분업과 이로 인해 가능한 전문화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스미스는 그 유명한 핀 공장을 예로 든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10명의 근로자는 하루에 단지 20개의 핀만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이들이 전문화와 협력을 통해 분업화 하면 하루 4만 8천개, 1인당 4,800개의 핀을 생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구 증가로 가용한 노동량이 증가하면 사회의 부는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1인 기준으로 부를 증대시키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전문화가 필요하다.
  • 바로 이 논리는 스미스를 경제학의 두 번째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즉, 무엇이 한 사회에서 부와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가? 핀 생산업자들, 농부들, 어부들, 목공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갖고 나와 거래를 할 경우 이 상품들이 배분되는 방법은 누가 결정하는가? 핀 몇 개가 과연 1부셸의 밀과 같은 것일까? 도덕철학자이기도 한 스미스에게 이 문제는 단순히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는가’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개인, 또 사회 전체적으로 공정하고 적정한 자원 배분은 어떤 것인가? 이 문제도 당연히 따라 나오게 돼있었다.
  • 스미스는 개인들의 입장에서 자원을 배분하는 가장 공정한 메커니즘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최고의 판단가라는 얘기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 최상의 자원 배분은 자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사회가 달성 가능한 부를 감소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다. 스미스의 이런 견해는 당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설파했던 프랜시스 허치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 이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관한 스미스의 견해는 당시로 보면 과격했다. 다시 말해 경쟁적인 시장이야말로 사회의 자원을 배분하는 데 가장 도덕적으로 공정한 메커니즘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내버려 두면 그들은 이기심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기대하는 저녁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들의 자비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에서 나온다.” 더구나 이윤 동기와 경쟁의 결합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개인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자본이 얼마이든 간에 가장 유리한 일자리를 구하려고 계속 노력한다.” 스미스는 개인들이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 이 사회를 전반적으로 윤택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 “상인들은 그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 행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신이 애초 뜻하지 않았던 목적(사회적 이익)을 촉진하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을 촉진시키는 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사회적 이익을 촉진하려고 하는 경우보다 더 효과적이다.”
  • 이 사회에 효과적인 자원 배분이라는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경쟁적인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다. 스미스는 어떻게 해서 가격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에서 만나도록 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다. 수요를 충족 시키기에 공급이 너무 적다면 가격은 올라가게 되고, 그 경우 생산자는 생산을 늘리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게 된다. 반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다면 가격은 떨어지게 되고, 그 경우 생산자는 공급을 줄이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증가시킨다. 이렇게 해서 어떤 지점에 이르면 시장은 상호 반대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그런 가격에 도달한다. 즉,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고 시장은 깨끗이 정리된다. 이렇게 개인들의 이기심과 경쟁적인 시장에 맡겨 두면 이 두가지가 결합해 경제를 자연스럽게 균형점에 이르게 한다는게 스미스의 주장이다.

건강한 균형

  • 경제가 자연스럽게 수렴되면서 균형점을 갖는다는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통 경제학의 핵심 개념으로 남아 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경제에 서로 상충하는 힘 또는 긴장이 있음을 의미한다. 17세기 아일랜드의 금융가 리샤르 캉티용에게 경제의 핵심적인 긴장 관계는 인구와 가용한 토지 사이에서 비롯됐다. 캉티용은 과잉 인구와 기아라는 야만적인 메커니즘이 임금과 가격을 스스로 조정되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균형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 18세기 프랑스의 지식인 프랑수아 케네에게 핵심적인 긴장은 농업, 제조업 그리고 토지를 소유한 상류 귀족 사회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케네는 그 유명한 ‘경제표 (Tableau Economique) –본질적으로 경제의 흐름도를 나타낸 것– 를 가지고 경제를 균형 상태로 만들 가격과 생산 수준을 계산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스미스에게 경제의 핵심적인 긴장은 소비자와 생산자 간에 비롯되는 것으로 달성되어야 할 균형은 바로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다. 스미스는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달성하는데 시장의 역할을 설명해 냈지만 이기적인 공급자들의 공급량과 이기적인 소비자들의 수요량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그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 이에 관한 아이디어들은 스미스와 같은 고전파에 속하는 동시대 지식인인 자크 튀르고와 제러미 벤담에 이르러 비로소 나온다.
  • 자크 튀르고는 루이 15세 정부의 각료로 자유방임주의, 즉 정부는 시장의 작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철학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튀르고가 각료로서 맡은 임무는 식량 부족 문제를 다루는 일이었다. 1767년에 튀르고는 농부가 조그만 땅에다 단지 씨를 뿌리기만 하면 그가 거둘 수 있는 수확량은 매우 적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약 농부가 씨 뿌리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땅을 갈면, 훨씬 많은 수확을 얻을 것이다. 만약 그가 두 번 땅을 갈면 단지 두 배가 아니라 세 배나 되는 많은 수확량을 거두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농부가 땅을 열심히 가꾸면 가꿀수록 그가 얻게 되는 수확량도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부터 농부가 투입한 추가적인 노력의 단위에 비해 그가 거두게 되는 수익은 점점 적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관찰에 기초해서 튀르고는 ‘수확 체감의 법칙 (law of diminishing returns)’이라고 알려진 것을 명료하게 설명해 냈다.
  • 수확 체감의 법칙은 경제가 균형을 달성하도록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가격이 주어지면 생산자는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을 때까지, 다시 말해 산출물 한 단위를 더 늘리는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입보다 커질 때까지 투입을 계속 늘려 생산을 확대할 것이다. 따라서 농부는 시장에서 요구하는 딱 그정도에 맞추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만큼만 일할 것이다. 만약 농작물의 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그는 주어진 토지에서 더 열심히 일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덜 재배할 것이다. 만약 생산에 따른 수익이 어떤 수준에서도 감소하지 않는다면 농부는 산출을 계속해서 무한대로 늘리고 싶어하는 그런 웃기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 튀르고의 법칙은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서 우선 공급과 생산자 비용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개념을 제공했다.
  • 거의 같은 시기에 제레미 벤담은 수요 측면에서 튀르고와 비슷한 중요한 업적을 만들고 있었다. 벤담은 이기심의 추구는 즐거움과 고통이라는 계산법을 토대로 한 합리적인 활동이라는 논리를 폈다. 벤담은 개인의 즐거움과 고통을 측정하기 위하여 ‘효용 (utility)’이라는 하나의 양적 지표를 생각해 냈다. 그는 경제적 선택이란 어떤 행동이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 할 것인지에 대한 개인들의 계산 결과라고 주장했다. 만일 당신이 사과 보다 바나나를 더 좋아한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바나나를 선택하는 것이 효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 벤담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18세기 후반 지식인 사회와 정치계에 큰 영향을 미쳐 강력한 지지자들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효용주의’이다. 당시 효용주의자들의 신조는 사회는 집단적 효용, 즉 행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조직화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 그로부터 50년 후 독일 경제학자 헤르만 하인리히 고센은 벤담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튀르고 법칙의 반대쪽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튀르고가 생산을 증대시켜도 이익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듯이, 고센은 소비를 증대해도 효용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당신이 배가 고파서 도넛을 산다면 그 소비는 당신에게 큰 효용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도넛을 산다면 이 또한 만족감을 주기는 하겠지만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처음보다는 작을 것이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도넛을 산다면 이로 인해 증가하는 만족감은 상당히 작아질 것이며 만일 배가 너무 불러 위에 고통이라도 느낀다면 효용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 마치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생산을 늘리고 떨어지면 생산을 줄이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더 먹을 가치가 없다며 소비를 중단하는 바로 그 수준도 가격에 따라 더 높아지거나 더 낮아진다. 따라서 수요는 가격이 오르면 떨어지고, 그 반대면 올라간다. 한계 수익 체감이 농부로 하여금 무한대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만들 듯, 한계 효용 체감은 소비자들이 무한대의 도넛을 소비할 수 없게 만든다.
  • 생산에서의 한계 수익 체감과 소비에서의 한계 효용 체감을 결합하게 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가격이라는 균형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 가격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소비 수준을 더 낮추고 생산자들은 생산 수준을 더 높일 것이며, 가격이 떨어지면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과학을 향한 꿈

  • 고전파 경제학의 연구에 뒤이어 등장한 것이 이른바 한계주의자 시대다.(1830~1930) 이 시기의 핵심 인물은 레옹 발라다. 대단한 과학 숭배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미분학을 경제학에 응용할 경우 ‘천문학적인 힘에 관한 과학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힘에 관한 과학’을 만들 수 있을거라 믿었고, 이에 영감을 얻은 발라는 이 비전을 달성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다.1870년 로잔 아카데미 교수로 임명된 발라는 1872년 <순수 경제학 요론>을 완성했다.
  • 그동안 경제학은 수학적 영역이 아니었다. 초기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을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로 생각했다. 그리고 고전파 시대의 수학이란 대게 몇 개의 수적인 사례나 약간의 대수학 정도였을 뿐, 그보다 더 복잡하지 않았다. 발라와 그의 동료 한계주의자들은 이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그들은 위대한 과학적 진보의 시대에 살았다. 17세기 뉴턴에 이어 라이프니츠, 라그랑주, 오일러, 해밀턴 등 일련의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미분 방정식을 이용한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여 놀라울 정도로 넓은 영역에 걸쳐 자연현상들을 설명해 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인류를 좌절케 했던 문제들 –행성의 이동에서부터 바이올린 줄의 진동에 이르기까지– 이 갑작스레 풀려 버렸다. 이런 성공은 과학자들에게 어떤 자연 현상도 방정식으로 설명해 낼 수 있다는 무한한 낙관론을 갖게 했다. 발라와 그의 동료들은 미분 방정식이 우주의 행성과 원자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똑같은 수학적 기법을 응용할 경우 경제에서도 인간 심리의 움직임을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특히 발라는 경제 시스템의 균형점과 자연에서의 균형점(balancing point)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수학을 경제학에 도입한 발라의 의도는 경제 시스템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발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의 균형은 상징적으로 물리적 균형 시스템에서의 힘의 균형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에는 오로지 하나의 가격, 하나의 균형점이 있고 그 균형점에서 거래 당사자들은 모두 만족할 것이며 그 결과 시장은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발라는 물리학에서 균형이라는 개념을 경제학으로 수입해 오늘날 교과서 와 저널에서 취급하는 전통 경제학의 수학적 기초를 놓았다. 이는 바로 이 책의 내용 중 ‘방정식으로 표현된 균형의 조건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2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역사적인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일부 비판가들은 물리학에서 균형을 차용한 것이 경제학에 지금까지도 미치는 중대한 과학적 실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균형 모델을 구축할 때 발라는 경제의 반인 생산을 한쪽에 놔두고 소비자들 사이에 거래에 집중했다. 그는 모델에서 다양한 제품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했다. 문제는 어떻게 가격이 설정되고 어떻게 제품들이 관련된 개인들에게 배분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발라의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 사람들로 가득 찬 큰 방을 상상해 보라. 각자는 이용 가능한 모든 제품들 중에서 임의로 뽑은 샘플을 받는다. 예컨대 누군가는 5개의 바나나, 1대의 세탁기, 2켤레의 신발 등을 받고 다른 누군가는 1벌의 청바지, 2개의 우산, 1대의 전화 등을 받을 수 있다. 각자 이런 제품들에 대해 저마다 효용 구조를 갖고 있다. 제품에 대한 초기 할당을 임의적이라 할 참석자들이 자신이 처음 할당 받은 제품에 행복해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래서 그들은 거래를 원하게 된다. 발라는 거래에 대한 이런 욕망을 시스템이 균형에 있지 않는 하나의 시그널로 간주했다. 이는 이 그룹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상품의 다른 배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만족하는 그런 상품의 배분을 찾아내고 사람들이 처음 상태에서 보다 만족스러운 상태로 옮겨 갈 수 있도록 거래를 위한 가격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렇게 이동한 새로운 상태는 균형에 놓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어진 가용한 상품과 가격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한 만족하면 그 누구도 더는 거래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거래가 보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수학적으로 보다 단순해지도록 하기 위하여 발라는 이 그룹의 거래를 중개하기 위한 경매인이 있는 상황을 상상했다. 그는 상품 중 하나는 화폐 형태로 사용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경매인은 각 제품에 대해 가격을 부르고 입찰을 받아 적는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면 가격을 올릴 것이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을 낮출 것이다. 경매인은 경제에 있는 모든 상품들에 대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까지 이렇게 해나가게 된다. 그 결과 모든 가격이 정해지면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거래를 할 것이고, 자신들이 받을 가치를 최대화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래를 통해 참석자 그룹은 임의의, 불균형 상태인 처음보다 더 행복한 균형 상태로 이동할 것이다. 발라는 이를 가리켜 일반 균형이라고 불렀다. 발라는 경매 과정을 탐색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타톤망이라고 불렀다. 경매인이 서로 다른 제품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가격들을 시험해 보면서 일반 균형점을 모색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발라의 아이디어 자체도 새로운 것이지만 정말 혁명적인 것은 그가 물리학에서 차용한 복잡한 수학의 활용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효용을 가지며 또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서 효용을 최대화할 것이라는 발라의 가정을 수용한다면 수학의 정밀성을 활용해 사람들이 어떻게 거래를 할 것인지와 경제에서 설정될 상대 가격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과 같은 경매인의 존재, 그리고 어떻게 개인들의 효용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등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발라는 이런 이슈들은 미래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경제에서 처음으로 가격과 같은 문제에 관하여 수학적으로 정확하고 과학적인 예측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하면 이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은 적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발라가 수학적인 예측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상충 관계를 적극적으로 설정한 것은 다음 세기에 걸쳐 경제학자들의 한 패턴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중력과 같은 수준의 예측 가능성

  • 당시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겠다는 영감을 가지고 물리학을 파고든 경제학자는 발라뿐이 아니었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철도에 매료되어 철도 경제학의 수학적 모델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경험을 통해 경제학이 하나의 수리과학이 될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윌리엄 톰슨과 피터 거스리 테이트의 <자연철학 강의>의 열렬한 독자 중 한 사람이었던 제번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중력과 매우 흡사한 하나의 힘으로 보았다. 제번스는 벤담의 효용 개념과 고센의 한계 효용 체감 이론을 소비에 적용했고 1871년 <정치경제학 이론>에서 물리학의 장이론(field theory)으로부터 유래된 방정식을 사용해 철학적 개념에서 나온 벤담과 고센의 아이디어들을 수학적 모델로 바꾸어 놓았다. 요약하자면 제번스는 인간의 행동을 중력처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제번스의 개념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중력과 같은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복과 효용을 극대화 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힘인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유한한 자원을 가진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제약 조건이 된다. 따라서 유한한 자원이라는 제약 조건 하에서 우리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조합을 찾아내는 요령이 필요하다. 여기서 와인과 치즈라는 두 가지 상품으로 구성된 경제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치즈보다 와인을 선호하지만 어떤 수준을 넘어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면 이제 와인은 충분하니 치즈를 먹고 싶어할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는 와인보다 치즈를 좋아하지만 어떤 수준에 이르게 되면 치즈보다 와인을 마시는 것이 행복하다. 이제 여기서 와인과 치즈의 양이 유한하고 각자가 임의의 양으로 와인과 치즈를 할당 받았다고 할 때 이 임의의 양이 각자의 효용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조합일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각자는 와인과 치즈의 전체 양이 주어진 사황에서 가능한 한 가장 큰 만족을 제공하는 그런 와인과 치즈의 양을 보유할 때까지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다.
  • 이렇게 경제적 선택을 제약 조건 하의 최적화, 다시 말해 여러 제약 조건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화 문제로 표현한 것도 제번스의 업적이다. 즉, 가용한 양이 주어지면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줄 그런 상품들의 조합을 계산해 낼 것이라는 얘기다. 제번스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개인들 간 효용의 차이는 거래를 위한 일종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제번스는 자신의 저서 <경제학의 이론>에서 “우리의 과학(경제학)에서 가치의 개념은 기계학에서의 에너지 개념과 같다”고 말했다.

팡글로시안(Panglossian) 경제

  •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을 균형 상태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했고, 발라는 이런 균형 상태는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하나의 균형점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제번스는 사람마다 효용이 다르고 자원이 유한한 세계에서 각자 자신의 행복을 최대화 하려고 불가피하게 스스로 거래에 나서면서 시장은 균형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사실 더 멀리까지 나갔다. 그는 인간 이기심이 시장을 균형으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 빌프레도 파레토는 발라와 제번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 사람으로 그들보다 당시 물리학에 대해 훨씬 더 정통했다. 파레토는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파레토 최적 (pareto optimum)’으로 경제학의 세계에서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경제학자들은 내내 경제적 시장이 사회적 후생을 정말 최대화하는지, 만일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파레토는 독창적인 논리적 주장을 펴면서 이런 문제를 극복해 냈다. 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래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윈-윈 거래로서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 이득을 보는 경우이다. 이 경우 후생은 증가한다. 두 번째, 한쪽은 이득을 보고,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지 않는 거래로 이 경우에도 후생은 증가한다. 세 번째 누구도 이득을 보는 이가 없는 가운데 특정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경우다. 이 경우 후생은 감소한다. 네 번째 어떤 이는 이익을 보고 어떤 이는 손해를 보는 거래다.
  • 효용을 직접적으로 측정하지는 못하지만 효용의 순 증가 내지 순 감소 등 그 영향이 어떠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파레토는 거래에 동의하는 두 명의 사람이 있을 경우, 또 그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그들은 윈윈 또는 최소한 한쪽이 이득을 보더라도 다른 한쪽은 손해를 안 보는 거래에만 관여할 것이고, 그 결과 참여자들의 전체 후생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거래는 후에 ‘파레토 우위 (pareto superior)’ 거래로 불리게 되었다.
  • 파레토는 자유 시장에서 모든 파레토 우위 거래가 소진될 때까지 사람들은 거래를 계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더 이상 거래를 했다가 누군가가 손해를 보게 되면 그 지점에서 거래는 멈출 것이고 시장은 하나의 균형점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다. 나중에 경제학자들은 이 균형점을 ‘파레토 최적’이라고 불렀다. 파레토 최적은 어느 누군가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는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는 그런 균형점을 가리킨다. 파레토 최적은 반드시 전체 그룹의 가치를 최대화하는 그런 균형점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 사람들에게 손해를 주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 그룹의 총 효용을 증대시킬 수 있는 거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용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 사람들의 후생을 줄이는 거래를 가용할 독재자도 없다면 파레토 최적은 우리가 자유 시장 경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한계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시장 경제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가용한 자원이 주어졌을 가능한 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상태에 이를 때까지 자유롭게 거래를 한다. 이런 거래를 통해 경제는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정지 지점인 균형에 이르게 된다. 이 균형점은 공급이 수요와 일치하고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되며 사회적 후생이 파레토 최적인 그런 상태다. 볼테르의 <캉디드>에 나오는 팡글로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가능한 세상 중 이처럼 최선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최선이다.” 한계주의자의 업적에서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스스로에게 맡겨 두면 공이 그릇 밑바닥으로 굴러갈 수 밖에 없듯이 자유 시장 경제가 어떻게 팡글로시안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수학적 이론을 경제학이 드디어 갖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한계주의자들은 경제학을 진정한 수리과학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신고전파적 종합

  • 20세기 들어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신전은 한계주의자들이 닦아 놓은 토대 위에서 더욱 굳건해졌다. 세기의 전환 시점에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제번스의 고립된 단일 시장 모델(부분 균형)과 서로 연결된 시장을 대상으로 한 발라의 모델(일반 균형)을 연결시켰다. 마셜은 또 공급과 수요 곡선을 그래프로 처음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후 경제학에 입문하는 모든 학생들은 이 성가신 그래프와 씨름하게 되었다. 1930년대 맨체스터 대학의 존 힉스는 발라, 마셜, 파레토의 연구를 자신의 저서 <가치와 자본>에서 하나의 통합된 이론으로 묶었다.
  • 유럽이 20세기 중반 전쟁에 휩싸이면서 혁신의 축은 대서양을 건너가게 된다. 미국인들과 히틀러의 유럽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의 세대가 오늘날 ‘신고전파적 종합(Neoclassical Synthesis)’이라고 불리는 현대 경제 이론의 핵심을 만들어 낸다. 그 시대의 가장 저명한 두 명의 인물은 폴 새뮤얼슨과 케네스 애로다.
  • 새뮤얼슨은 <경제 분석의 기초>를 26세 때 완성했다. 새뮤얼슨은 힉스의 종합 이론을 채택하고 여기에 자신의 독자적인 창의력을 추가함으로써 현란한 수학적 이론을 완성했다. 이는 바로 시장의 작동에 관한 표준 모델이 되었다. 새뮤얼슨이 만들어 낸 핵심적 돌파구 중 하나는 벤담 이래로 경제학자들을 괴롭혀 왔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 사실 효용은 경제 이론의 핵심이 되었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고, 관찰할 수 없으며, 측정할 수 없는 양적 개념이었다. 파레토와 힉스는 ‘효용(util)’이 킬로그램kg나 와트watt처럼 고정된 측정 단위라는 아이디어는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효용은 단지 상대적인 의미, 예컨대 ‘나에게 사과는 오렌지에 비해 효용이 두 배다’는 식의 의미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그러나 그 상대적인 효용조차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새뮤얼슨이 내놓은 답은 사람의 머리속을 들여다보며 효용을 직접 측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선호를 드러낸다고 새뮤얼슨은 생각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 행동이 논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는 가정뿐이라고 했다. 예컨대 당신이 사과와 오렌지 중에서 사과를 선택했다면, 그 다음에 사과와 바나나 오렌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렌지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찰이 비록 ‘사과는 오렌지보다 효용이 두 배다’는 식의 얘기는 못 해주지만, 그 사람이 ‘사과를 오렌지보다 선호한다’고는 분명히 알려 준다. 이에 따라 새뮤얼슨은 사람들의 선호에 순서를 매기는 기본적이고 논리적인 규칙들을 가지고 기존의 효용 이론을 대체시켰다. 이 규칙들은 전통 경제학에서 소비자 행태 이론의 기초이자 동시에 사람들이 경제적 선택을 할 는 합리적이로 구장하는 개념의 중추가 되었다.
  • 케네스 애로는 어릴 때부터 최고의 수학적 실력을 보여 준 사람이다. 1954년 프랑스 경제학자 제라르 드브뵈와 함께 증명한 정리가 유명한데, 일반 균형에 대한 발라의 개념과 파레토의 최적성 개념을 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일반 균형에 대한 신고전파 이론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정리를 통해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시장들은 경제 전체적으로 파레토 최적인 가격 체계 위에서 함께 자동적으로 조정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는 시장에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도 마찬가지임을 증명했다. 이런 자동 조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시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들은 다른 제품들의 대체재 역할을 할 능력 –예컨대 커피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홍차를 대신 마신다– 을 갖고 있고 또한 다른 제품들이 이 제품의 보완재로서 함께 소비되는 경향 –예컨대 사솔린 가격이 오르면 대형차의 수요는 감소한다– 도 보인다. 애로와 드브뢰는 가격은 경제 전반에 걸쳐 공급과 수요에 관해 신호를 보내는, 마치 신경 체계와 같이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기적인 인간은 그런 가격 신호에 반응하게 되고, 이것이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최적인 균형점으로 유도해 간다는 얘기다.
  • 애로와 드브뢰의 일반 균형 이론의 가장 놀라운 업적은 이렇게 강력한 결과들이 몇 가지의 공리를 토대로 나왔다는 점일 것이다. 이중 몇 가지 가정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예컨대 당신이 마이너스 노동, 마이너스 소비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일부 가정들은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예컨대 두 사람의 정리는 모든 사람은 존재하는 모든 제품을 최소한 어느 정도씩은 갖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또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선물 시장이 존재한다는 가정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의사 결정 대안들을 따질 때 지극히 합리적이며, 미래에 일어날 모든 상황에 대한 확률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1954년 두 사람의 정리가 발표 됐을 때 경제학자들은 큰 돌파구가 마련됐다며 매우 환호했다. 냉전이 극에 달했을 때 이 정리는 정치적 영역에서는 시장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수학적 증명으로 해석됐다.
  • 1960년대에 이르면 개별 소비자와 생산자에 대한 몇 갖 공리적 가정에서 출발해 시장과 경제에 대한 포괄적인 결론들을 이끌어 낸 거의 완전한 이론이 출현한다. 경제학자들은 개인들과 시장에 대한 그런 상향식 이론을 가리켜 미시 경제학 (microeconomics)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 기간 동안 거시 경제학 (macroeconomics)에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 되었다. 1960~1970년대 밀턴 프리드먼, 로버트 루카스와 같은 이른바 시카고 경제학자들은 신고전파 미시 경제학의 기법들을 거시 경제학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소비자들이라든지 최적 균형과 같은 개념들이 전통적인 거시 경제 이론에서도 핵심 부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분배에서 성장으로

  •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큰 문제, 즉 부는 어떻게 창출되며 그 부는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해 쭉 관심을 가져왔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시대에서 새뮤얼슨과 애로의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실 첫 번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에 의해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 발라, 제번스, 파레토의 모델들은 경제는 이미 존재하고 생산자는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이들 모델들이 다룬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주려면 경제에 존재하는 유한한 부를 어떻게 배분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유한한 자원의 배분에 초점을 맞춘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물리학에서 수입한 균형 방정식의 경우 배분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는 이상적이었지만 이를 성장에 적용하는 것은 그보다 어려웠기 때무이다. 균형은 그 정의상 정지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성장은 변화와 역동주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 균형과 성장 사이의 모순을 인식한 중요한 인물은 요제프 슘페터였다. 슘페터는 부의 배분에 관해 신고전파 동시대인들의 균형 개념에 대해 동조적이었지만 성장의 문제를 답하는데도 이것이 딱 맞는 이론적 틀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슘페터는 경제 성장은 단순히 이미 생산되고 있는 제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관찰해 냈다. 즉, 혁신의 역할이 있다는 얘기다. 슘페터는 생산량의 증가는 물론이고 SKUs(상품 분류 단위)의 증가를 설명하고 싶어했다.
  • 신고전파는 혁신을 외부적인 또는 외생적인 요소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만 기후처럼 경제 연구의 경계에서 벗어나 있는 임의의 변수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슘페터는 혁신을 경제의 내부적이고 내생적인 그리고 경제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로 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슘페터는 성장이 일어나려면 “달성될 수도 있는 모든 균형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이 시스템 내에”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슘페터에게 그런 에너지의 원천은 기업가였다. 슘페터에 따르면 기술 진보는 일련의 돌발적인 발견들로 일어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들을 상업화하려다 보면 자금 수요에서부터 견고한 관습과 고정관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벽에 부딪힌다. 때문에 댐 안의 물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돌발적인 발견들은 계속 쌓이게 된다. 슘페터의 이론에서 기업가는 댐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혁신의 홍수를 터뜨리고 이를 시장으로 쏟아 보낸다. 이렇게 성장은 지속적인 흐름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슘페터의 유명한 표현처럼 ‘질풍처럼 밀려오는 창조적 파괴’ 형태로 경제에 다가온다. 슘페터에 따르면 부의 원천은 개별 기업가들의 영웅적인 노력에 있다. 그러니까 슘페터식 부의 창조는 리처드 아크라이트, 헨리 포드, 토머스 에디슨,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악조건과 싸워 기술을 마침내 성공적인 상업화로 연결 시킬 때 일어났다.
  • 슘페터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역사의 이론’이다. 그리고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슘페터의 풍부한 아이디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그런 이론을 단지 기술적으로만 표현했을 뿐 엄밀한 수학적 형태로 바꾸지 못했다. 이는 슘페터의 아이디어가 수학적인 신고전파의 분석 틀과 융합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결국 이런 결점은 슘페터의 영향력을 제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런 수학적 결여로 인해 로버트 솔로가 나타날 까지 40년 동안 성장 이론은 마치 지적 부진 같은 것으로 취급되고 말았다.
  • 솔로는 신고전파 이론의 예측 가능성 다시 말해 그릇 안에 있는 공의 사례와 같은 그런 예측성과 성장 문제를 융합하려고 했다. 솔로는 1956년 자신의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경제를 일종의 ‘동적인 균형’에 있는 것 그의 용어로 말하자면 ‘균형 성장’으로 바라봄으로써 성장과 균형을 조화시켰다. 솔로는 경제가 성장을 하더라도 균형 상태에서 평형을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자신의 모델에서 두 가지 중요한 변수를 외생 변수로 놓았다. 인구 성장률과 기술 변화율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성장률을 이끈다. 비유를 하자면 이 두 가지는 고공에서 철선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페달을 밟는 에너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솔로는 저축률과 자본 총량 등과 같은 다른 요소들은 인구 성장과 기술 변화에 반응하여 자동적으로 이에 균형을 맞추어 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마치 서커스 배우가 균형을 잡기 위해 장대를 이동하듯이 말이다. 솔로의 모델에서 균형을 잡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역할을 바로 노동과 자본 시장이 떠맡고 있다. 이들 두 시장은 경제가 성장할 때에도 모든 것이 파레토 최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도록 작동한다.
  • 솔로 모델은 인구 증가가 국가 전체의 부를 증대시킬지 모르지만 생산성이 증가해야만 1인당 기준으로 그 국가가 더 부유해질 수 있다는 애덤 스미스의 통찰력과 일치한다. 즉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그 나라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본이 얼마나 생산적이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솔로에 따르면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은 기술이다. 기술 향상이 자본을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것이 다시 높은 저축률로 이어져 보다 많은 자본 투자를 하게 하는 그런 선순환을 통해 부유해진다. 기술 성장이 없다면 자본은 단지 인구에 비례해서 증가할 뿐이고 1인당 부는 똑같을 것이다. 오늘날 지식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기 오래전인 1956년 솔로는 이미 지식 경제를 발견했던 것이다.
  • 솔로의 연구는 성장이라는 주제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솔로의 기본 모델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한 일련의 연구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스탠퍼드 대학의 경제학자 폴 로머가 이끄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은 솔로 모델에서 실질적으로 성장을 이끄는 기술이 외생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슘페터와 마찬가지로 로머는 성장을 위한 에너지는 경제에서 내생적인 변수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0년에 발표된 로머의 한 논문은 오늘날 잘 알려진 ‘내생적 성장 이론’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 로머는 성장을 위한 에너지의 원천을 영웅적인 기업가가 아니라 기술 그 자체의 특성에서 찾았다. 기술은 누적적이고 가속화되닌 속성을 갖고 있다고 로머는 주장했다.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의 지식 기반은 더욱 확대되고 다음에 올 발견으로 얻게 될 수익도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지식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수확 체증 현상’을 말한다. 로머는 자신의 모델에서 이른바 양의 되먹임 고리(positive feedback loop)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기술 투자의 수확 체증은 그전보다 성장의 페달이 훨씬 더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

전통 경제학의 유산

  • 20세기 말쯤 신고전파 패러다임은 완전히 전통 경제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합리적이고 최적화하려는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자원이 한정된 경제 세계에서 선택을 하고, 이런 선택들은 수확 체감에 의해 제한을 받는 그런 개념들이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이기심과 제약 조건은 경제를 파레토 최적에 해당하는 균형으로 이끌게 된다. 경제적 분석의 방법론으로는 수학적 증명이 지배적이었다. 즉, 일련의 가정에서 출발해 논리적으로 결론들을 도출했다.
  • 결론적으로 20세기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작동을 묘사할 수 있는 엄격하고 잘 정의된 수학적 모델들을 창출하겠다는 야심을 실현했다. 미시와 거시적 관점들을 신고전파 패러다임 아래 완벽히 통합하겠다는 꿈이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일관된 하나의 분석 틀과 가정으로 개인들의 의사 결정에서부터 국가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룰 수 있게 되었다.
  • 전통 패러다임은 의심의 여지없이 공공 정책, 기업, 그리고 금융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의 큰 영향에도 부룩하고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경제학자 워너 힐덴브랜드는 일반 균형이론을 ‘고딕 대성당’에 비유한 적이 있다. 여기서 발라와 그 동시대인들은 ‘설계자’이고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뛰어난 건축가’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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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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