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기원/ 비판적 고찰: 혼란과 쿠바의 자동차

  • 역사적으로 과학은 우주를 가능한 한 가장 작은 조각으로 쪼개는, 위에서 밑으로의 요소 환원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여 은하수 수준에서 시작해 원자핵을 이루는 아원자 입자들로 이동하면서 궁극적인 법칙을 탐구해 왔다.
  • 그러나 산타페 연구소 과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러한 접근법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많은 어려운 문제들은 그 성질상 복잡계 또는 복잡 시스템들로서 집단적이고 창발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으므로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생명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진전이 있으려면 생물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컴퓨터 과학자 그리고 다른 여러 과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 연구소들은 상호 간 높은 장벽으로 나뉘어 있어 그런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1984년 복잡 시스템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추구하기 위해 비영리 연구기관으로 산타페 연구소가 만들어졌다.
  • 1987년 경제학에 관한 학제적인 워크숍이 시작 되었다.

거장들의 충돌

  •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10명의 경제학자들과 물리학자, 생물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이 포함된 10명의 학자들이 경제학 워크숍을 진행했다.
  • 양쪽은 각각 해당 분야의 현재 동향을 설명한 다음 10일 동안 경제적 행태, 기술 혁신, 경기 사이클, 그리고 자본 시장의 작동 등에 관한 논쟁을 펼쳤다. 경제학자들은 물리과학자들의 아이디어와 기법에 흥분했지만 과학자들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순진하고 약간은 거만하기조차 하다고 생각했다.
  • 한편 과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수학적 기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동시에 경제 문제의 어려움에 진정으로 놀라워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정말 충격을 준 것은 경제학이 또 다른 시대로 후퇴한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이 미팅에 참가한 한 사람은 나중에 그날 미팅에서 경제학을 접하고 보니 미국의 무역 봉쇄로 50년 넘게 서방 세계로부터 고립되었던 쿠바를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고 논평했다.
  • 경제학에서의 수학은 하나의 돌풍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단순화시킨 가정들을 자신들의 모델에 사용하는 방법에 또 한 번 놀랐다. 갈릴레이 시대 이후부터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분석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완벽한 구, 이상적인 기체와 같은 단순화를 활용해 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러한 가정들이 현실을 단순화 시키지만 그것이 현실 세계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할 정도로 신중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또 이 가정들이 자신들의 이론에서 도출된 결론에 중요한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검정한다.
  •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과학자들이 보기에 극단적으로 가정을 활용하거나 가정에 너무 의존했다.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 중 하나는 경제학잗르의 완전 합리성 가정이다. 이 주제와 관련한 오랜 논쟁의 역사를 잘 알고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과 명백히 배치되는 이런 모델의 사용에 물리학자들은 단호히 반대했다.
  •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충격을 받았다. 가정에 대한 테스트는 현실과 부합하느냐가 아니라 이 가정이 이 분야의 공통적인 흐름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경제학자들 당신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는가?”라는 질문에 궁지에 몰린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가정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가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런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자 물리학자들이 곧 바로 응수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당신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 발라는 균형이라는 개념을 물리학에서 수입함으로써 경제학에서 수학적 정확성과 과학적 예측성이라는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한 높은 대가, 다시 말해 현실주의의 희생이라는 비용을 지불했다. 균형을 위한 수학 때문에 바랄와 그 뒤 경제학자들은 고도로 제한적인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론 경제학이 현실 세계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다.

비현실적인 가정들

  • 경제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가정의 사용을 놓고 맞붙은 것은 산타페 연구소 미팅이 처음은 아니었다. 1901년 레옹 발라는 앙리 푸앵카레에게 자신의 저서 <순수 경제학 요론> 복사본을 보내 그의 의견을 물었다. 푸앵카레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천적으로 나는 수학을 경제학에 응용하는 것에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한 말입니다.” 추가로 이어지는 편지에서 이 수학자는 발라가 여러 가정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발라 이론이 수많은 임의의 함수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푸앵카레는 발라의 방정식에서 도출된 결론이 수학적으로 정확하지만 “만약 임의의 함수들이 그 결과로 다시 나타난다면” 이 이론의 결론은 “완전히 흥미 없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푸앵카레는 경제 주체들의 무한한 예지력에 대한 발라의 가정을 특히 우려했다. “당신은 인간을 무한히 이기적이고 무한히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첫 번째 가정은 그런대로 인정될 수도 있지만 두 번째는 좀 보류가 필요할 것 같다.”
  • 그 사이 경제학자들과 당시 선도적 과학자들 간에 꽤 많은 의견 교환이 있었다. 조제프 버트랑, 헤르만 로랑, J 윌라드 깁스, 비토 볼테라 등이 그런 과학자였다. 이들 모두 푸앵카레와 의견이 같았다. 다시 말해 경제학이 보다 수학적이고 엄격해 지려는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방정식을 풀릴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을 던져 버리는 것은 가야 할 길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런 비판들을 무시했으며 신고전파 경제학을 구축하는 프로그램은 빠른 속도로 계속 되었다. 그 후 경제학의 가정을 둘러싼 논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바닥에서 계속 끓고 있었다.
  • 그러던 중 1953년 밀턴 프리드먼은 이 논쟁을 다시 촉발시켰다. 그가 <실증 경제학의 방법론>이라는 에세이를 출간했을 때였다. 이 에세이의 주장은 경제 이론에서의 비현실적인 가정은 그 이론이 예측을 정확히 하는 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예컨대 경제가 마치 사람들이 완전히 합리적인 것처럼 움직이면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결과만 옳으면 가정은 더 이상 정당화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이 에세이는 널리 읽혔고 즉각 논란이 되었다. 몇 년 후 허버트 사이먼은 이에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과학적 이론의 목적은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하는데 있다. 예측은 이 설명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대한 테스트다. 그러나 테스트를 하려면 궁극적으로 도출된 결론만이 아니라 설명 전체적인 논리 구조를 따져 봐야 한다고 사이먼은 지적했다.
  • 이론에서의 가정의 적절한 역할은 무엇인가? 갈릴레이와 뉴턴이 완전한 진공과 이상적인 구의 존재를 가정하면 큰 문제가 없는데, 발라가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과 신과 같은 경매자의 존재를 가정하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가정의 사용과 관련한 두 가지 황금 규칙이 있는데, 과학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에 동의한다. 첫째, 가정은 모델의 목적에 적절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모델이 그러한 목적을 위해 제시하는 답에 대해 이 가정들이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
  • 각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형태와 수준의 이상화를 필요로 한다. 우주론자들은 은하수 수준에서 세계를 볼 것이고 화학자들은 원자 수준에서 보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큰 단위의 지도든 세밀한 지도든 서로 간에는 물론이고 그 바탕이 되는 현실의 관찰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주론자와 화학자의 모델이 서로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모델들이 서로 모순적이어선 안 되며, 어느 모델이든 경험적, 실험적 증거들과 일치해야 한다. 지도를 작성할 때 지도를 그리기 쉽게 할 목적으로 도로와 강을 마음대로 옮겨선 안 된다.

너무도 단순한 세계, 굉장히 영리한 인간

  • 전통 경제학의 모든 가정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비현실적인 가정은 인간 행동에 관한 모델이다. 종종 완전한 ‘합리성’을 가리키는 이 모델은 두 가지의 기본적인 가정 위에 세워졌다. 첫 번째 가정은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간혹 진실로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단순화를 위해 사람들은 무엇이건 자신의 경제적 이기심에 따라 일반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두 번째 가정은 사람들은 그 이기심을 대단히 복잡하고 계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일상적인 의사 결정을 할 때 물가 상승률, 미래 정부 지출에 대한 추정치, 무역 적자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한다고 경제학자들은 거의 표준적으로 가정해 버린다. 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통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실제 세계 보다 훨씬 단순한 이론 세계에 슈퍼 인간 로봇들이 살고 있다고 가정해 왔다.
  • 그 외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경제학의 다른 전형적인 가정들을 보면 이런 것들도 있다.
    • 일체의 거래 비용이 없다.(수수료, 세금, 법적 제한, 기타 다른 비용 혹은 물건을 사고 파는데 장벽이 전혀 없다.)
    • 모든 제품은 가격만을 기준으로 팔리는 순수한 상품이다.(브랜드, 제품 품질상의 차이가 없다.)
    • 기업들은 언제나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
    • 소비자들은 모든 가능한 사건에 대비해 보험을 구매할 수 있다.
    • 경제적 의사 결정자들은 단순히 가격을 통해, 대개 경매 메커니즘을 통해 서로 상호 작용한다.
  • 캘리포니아 대학의 거시 경제학자 악셀 레이온후프트는 이렇게 논평했다. “현실 세계는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정말 단순한 사람들’로 표현되는 것이 보다 정확할 텐데도 전통 경제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 너무나 머리 좋은 사람들’로 모델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 허버트 사이먼, 대니얼 카너먼, 아모스 트버스키와 같은 행동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할 때 지적이지만 전통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그림과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지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복잡한 논리적 계사네는 사실 꽤 서툴지만 패턴을 재빨리 인식하거나 모호한 정보를 해석하고 학습하는 데는 매우 능하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또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잘못하기도 하고, 편견 때문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적당한 만족 (satisficing,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거나 작은 성과에 만족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즉, ‘절대적인 최선’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결과를 찾는다는 얘기다. 정보가 그 획득에 비용이 들고, 불완전하며,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우리의 뇌가 ‘완전한 최적’ 보다는 ‘충분히 좋은’ 것을 빨리 고르는 의사 결정 쪽에 맞추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 최근 들어 주류 경제학자들도 전통 경제학 가정들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많은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의 연구가 그러한데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연구 결과들을 동시에 수렴해 정말 현실 세계에서 현실적인 사람들을 전제로 한 모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균형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한두 개의 가정을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균형 수학의 한계는 여전할 수 밖에 없다. 진실로 현실적인 모델을 원한다면 전통 경제학의 이론적 틀로부터 보다 과감한 단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

  • 전통 경제학이 균형을 위해 지불한 또 다른 대가는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이다. 대부분의 전통 경제 모델은 실제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는 하나의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순간적으로 이동하며, 균형 간의 이행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고 간단히 가정해 버린다. 만약 어떤 모델이 시간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단기와 장기이거나 단순히 상상 속의 지수 시간, 예를 들어 게임 이론 모델에서의 라운드, 거시 경제학 모델에서의 세대 등과 같은 것들이기 십상이다.
  • 100년 전 알프레드 마셜이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경제학에 대한 불만 중 하나도 명시적인 시간 척도에 대한 고려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동적인 측면을 전통 이론에 도입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 행동에 관한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동적인 측면과 현실 세계의 시간 척도를 전통 경제학의 균형 개념과 결합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외생 변수로 돌려라

  • 경제란 고도로 동태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생산이 늘어나고 줄어들 때마다,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사람들의 취향과 기술이 변할 때마다, 기타 여러 변수들에 따라 경제 상황은 항상 바뀐다. 이런 역동적인 측면들을 어떻게 본질적으로 정태적인 균형이라는 그림 속에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 만약 공이 들어 있는 그릇을 흔들거나 기울여 공이 그릇의 균형점으로 향하는 것을 방해하면 어떻게 될까? 충격이 가해지면 처음에는 공이 균형점 밖으로 벗어나 그릇 안에서 구럴가게 될 것이다. 그릇의 한쪽 면을 기울게 하고 제약 조건을 바꾸면 그 공은 달라진 형상의 그릇 안에서 새로운 균형점에 안착할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모델에 외생적인 충격을 도입할 때 하는 일이다.
  • 모든 모델은 한계나 제약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모델에 너무 많이 집어 넣게 되면 모델의 규모가 커지거나 너무 복잡해져 효용성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구 증가는 명백히 경제 시스템에 영향을 주지만 출생과 사망의 모델을 경제 모델 안에 집어 넣기가 곤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단순화를 위해 하나의 외생적 투입 요소로서 인구 전망표를 만들고는 끝내 버린다.
  • 모델 경계 밖 변수들은 외생 변수라 하고, 모델의 경계 안에 있는 변수들을 내생 변수라고 한다. 전형적인 외생 변수로는 소비자 취향 변화, 기술 혁신, 정부의 새로운 조치, 기후 등이다. 이런 변화는 생산자 비용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소비자 선호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변화는 시스템의 제약 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균형점의 위치에도 영향을 준다. 경제가 이렇게 외생 변수의 충격을 받으면 균형은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경제의 역동성이라는 것은 균형의 과정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의 충격이 가해지면 새로운 균형이 생기고 또 다른 충격이 가해지면 또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경제는 하나의 임시적 균형에서 또 다른 임시적 균형으로 이동해 간다.
  • 이렇게 접근하는 방식은 경제학자들에게 하나의 피난용 비상구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학자들은 이런 접근 방식을 이용해 가장 어려우면서도 종종 가장 흥미로운 궁금증들을 경제학의 경계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예컨대 기술 변화를 돌발적인 외부의 힘으로 취급하면 기술 변화와 경제 변화 간의 상호 작용에 관한 근본적인 이론은 필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경기 사이클도 외부의 힘, 예컨대 소비자 신뢰의 변화라든지 뉴스에 따른 주식 시장의 추락 등과 같은 신비스러운 바깥의 힘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다.
  • 생물학에도 이와 비슷한게 있는데, 대규모 멸종 사건들을 그에 비례할만한 큰 외부의 힘, 소행성의 충돌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일부 증거들이 이 가정을 뒷받침 했지만 다른 연구들이 이 가정을 유보한 채 장기간 화석 기록들을 조사해 본 결과 소행성 이론이 백악기 말의 대규모 소멸 사건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줄지 몰라도 화석 기록상 명백히 나타난 열 번의 다른 대형 충돌 사건들은 –일부는 소행성 사건 때보다 규모가 더 큰–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보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런 소멸 사건들이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진화 자체의 내부적인 역동성에 의해 초래됐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는 그 특성상 작고 재미없는 사건들이 때때로 산사태와 같은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 내생적인 요소들이 정말 중요한 경제적 행태를 몰고 오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적인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 못하면 시장 붕괴나 침체를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 전통 경제학에서는 어디엔가 모델의 경계선을 그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설명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전통 경제학이 균형이라는 엄중한 굴레에 묶이는 한 모델들은 가장 흥미롭고 근본적인 의문들을 외생이라는 이름의 담 밖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뚜껑을 덮어라

  • 양의 되먹임은 갈수록 속도가 붙고 증폭하는 자기 강화적인 사이클이다. 음의 되먹임은 그 반대로 속도가 떨어지고 점점 꺾이는 자기 규제적인 사이클이다.
  •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점점 줄어드는 음의 되먹임이 경제적 과정을 지배한다. 생산과 소비의 한계 체감의 법칙이다. 생산 라인에서 스무 번째 근로자는 열 번째 근로자보다 덜 생산적이며, 다섯 번째 도넛은 처음 도넛 보다 맛이 덜하다. 이것은 이 세상이 수많은 자동차들과 도넛들로 가득 채워지는 경우를 막아 준다.
  • 현실 세계는 분명히 수확 체감을 보여 주기는 한다. 그러나 산타페 연구소의 경제학자인 브라이언 아서가 주장했듯이 현실 세계는 양의 되먹임, 즉 수확 체증도 보여준다. 보다 많은 10대들이 최신 유행의 스니커즈를 신을 수록 그 신발의 효용은 더 커진다. 보다 많은 정보가 웹에서 이용 가능해지면 그 웹의 유용성은 더욱 커진다.
  • 전통 경제학 이론은 장기 개념을 들고 나와 이 기간 내에 모든 수확 체증이 스스로 소멸되면서 경제는 안전하게 균형으로 갈 수 있다고 구장한다. 그러나 이 장기라는게 끝내 끝나지 않으면 어찌 되는가? 한 패션이 사라지기 전에 다른 패션이 올라오기 시작한다면? 투자가들이 여전히 심지어 버블 붕괴를 목도한 이후에도 잣니들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면 또 어떻게 될까? 경제와 같은 시스템에는 항상 활기를 북돋울 양의 되먹임을 불러오는 새로운 원천들이 있다.
  • 현실 세계에 장기란 없다. 존 케인스는 이런 표현을 했다. “이 장기라는 것은 현재의 일들을 자칫 오도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 장기로 가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경제학자들은 지금 폭풍우 치는 계절에 폭풍이 지나간 뒤 한참 시간이 흐르면 바다가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는 정도를 말할 수 있는 너무도 쉽고, 쓸모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 복잡하고 역동적인 세계 경제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균형이라는 박스 안에 집어 넣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증거 없는 전제들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전제들이 모델의 결과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런 가정들이 없다면 ‘그릇 속의 공’과 같은 모델은 사라질 것이다. 경제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정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성 테스트

  • 경제학자들이 아닌 많은 사람들은 경제학의 과학적 신뢰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 성장, 이자율 인플레이션 같은 것들에 대한 예측에서 보여 준 너무도 나쁜 성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과학에 대한 보증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설명하는, 다시 말해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 주는 그런 능력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생물학자는 단백질의 굴곡을 설명할 수 있지만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물리학자는 요동치는 유체의 정확한 움직임을 섦여할 수는 있지만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 과학은 연속적인 학습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설명들의 주장은 검정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시간 흐름에 따라 증거들이 축적된다. 1930년대 카를 포퍼가 말했듯이 어떤 이론이 옳다는 결정판 같은 증명은 없다. 그러나 어떤 이론이 데이터와 맞지 않다거나 한 이론이 다른 이론에 비해 데이터와 더 잘 맞아 떨어진다거나 또 어떤 이론이 데이터와 모순된다는 것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등의 얘기는 할 수 있다. 이렇게 과학은 다양한 설명을 제안하고 검정이 가능한 방법으로 엄격히 표현하며 검정에서 떨어진 이론은 제거당하고 이를 통과한 이론은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 존경 받는 미시 경제학자 알랑 키르망은 이렇게 말했다. “경제학에서 지난 100년에 걸쳐 구축되어 온 우아한 이론적 구조들이 실은 잘못된 초점, 균형이라는 오도되고 오래갈 수 없는 그런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은 다음 10년에 걸쳐 밝혀질 것이다…(중략)…총량적인 차원 외에 구체적으로 경제 이론과 실증적 데이터를 비교하는데 대해 병적인 반감을 갖는 것을 보면 경제학의 현상에 대한 설명이란 것도 검정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충족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 키르망이 지적하듯이 전통 이론이 데이터와 모순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많은 이론들이 적절한 검증을 받은 적이 없다. ‘계량 경제학(Econometrics)’이라고 불리는 경제학의 한 영역은 데이터 분석을 다룬다. 그러나 이론적 모델을 검증한다기보다는 공공 정책 또는 다른 응용적 목적을 위하여 변수들 간의 통계적인 관계를 밝히는데 많은 계량 경제학적 연구들이 집중한다. 불행히도 통계적 상관관계는 현상들에 대한 인과적 상관관계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종종 이론을 테스트해 볼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한 데이터가 없고 이용 가능한 데이터들이 있다고 해도 잡음이 끼어 있는 수준이거나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 경우가 빈번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분야에서 전통 이론은 엄격한 테스트를 경험했다. 우선 하나는 금융 이론이다. 금융 시장에서 매분 나오는 데이터의 이용 가능성과 엄청난 계산 능력은 전통 이론에 대해 전례 없는 수준의 검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통 경제학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데이터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전통 이론들이 제시했던 기초적 예측들을 반박하는 일련의 연구들이 계속 쏟아지게 되었다.
  • 다른 하나는 실험 경제학 (experiment economics)이다. 경제 전반에 걸쳐 실험을 행하는 것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실험을 위해 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는 없으니– 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소규모로 경제에 관한 실험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쇼핑, 기타 인위적으로 만든 모든 종류의 상황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인간 행동의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한다. 그 결과 풍부한 연구들이 나왔는데, 결론적으로 데이터와의 만남은 전통 경제학의 많은 핵심적 아이디어에 달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 당연한 결과지만 전통 경제학을 검증한 많은 연구들은 고도로 기술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경제학의 핵심적인 예측들이 과학적인 ‘현실성 테스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

공급과 수요, 법칙인가?

  • 전통 경제학의 가장 오래된 원칙 중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이 법칙의 기본적인 예측은 공급과 수요라는 서로 상반된 힘이 시장을 가격과 수량 측면에서 균형으로 몰고 가고, 그 결과 시장은 깨끗이 정리된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1차 근사적 차원에서 보면 이 이론은 꽤 잘 작동한다. 그러나 보다 세밀한 수준으로 들어가면 현실 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같아지는 상황에 결코 있지 않으며 시장은 거의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시장들은 균형보다는 불균형이란 가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 대부분의 시장을 보면 재고, 주문 잔고, 여유 생산 능력 그리고 이런 불균형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중개자들이 존재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자동차 딜러는 천천히 팔리는 차들로 가득 찬 주차장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소비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인기 차종에 대해서는 주문 잔고를 갖고 있다. 당신 지역의 슈퍼마켓은 가게 뒷문으로 수송되는 식료품의 공급과 가게 앞문으로 빠져나가는 수요 사이의 불균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가게의 재고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 변호사와 회계사와 같은 서비스 업종도 자신들의 가용 능력을 100% 활용하지 않는다. 즉 수요의 변동에 대비해 활용 가능한 어느 정도의 자유로운 여분의 용량을 별도로 남겨 둔다는 얘기다. 이론적인 이상과 가장 가까운 시장으로 볼 수 있는 금융 시장 조차 불가피하게 공급과 수요 간 불균형을 다루기 위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뉴욕 증권 거래소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고 나스닥에는 시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모두 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균형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은 결국 법칙이 아니다.
  • 일부 전통 경제학자들은 재고와 여유 생산 능력의 존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서 일종의 잡음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테지만 재고와 생산 능력의 역동성은 가격 변동과 경기 사이클고 같은 현상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일물일가 법칙

  • 전통 미시 경제학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법치은 일물일가의 법칙이다. 말하자면 수송 비용과 거래 장벽이 없다면 동일한 제품들은 모든 시장에서 같은 가격에 팔려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뉴욕의 금값은 런던과 같아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가격에 어떤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한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수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관세, 세금, 수송비 등– 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그 차액을 노리는 거래를 할 것이고 이렇게 차액을 노리는 매매인들로 인해 두 시장의 가격은 다시 균형에 이르게 된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처럼 일물일가의 법칙도 1차 근사적 차원에서는 종종 먹혀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물일가 법칙은 거시 경제학 수준에서는 물론이고 보다 미시적인 개별 제품과 서비스 수준에서도 자주 틀리는 정말이지 하나의 근사에 불과하다. 이 이론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한 예가 유럽 연합의 유로 화폐이다. 일물일가 법칙에 따르면 대규모의 무역 장벽 축소, 보다 증가한 인적 이동, 화폐 거래 비용의 감소, 보다 큰 가격 투명성으로 EU 전역에 걸쳐 그전보다 훨씬 큰 가격상의 술며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유럽 연합의 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유로가 도입된 이후 가격 차이는 더 벌어졌다. EU의 내수 시장 담당국에서 경제 분석을 책임지고 있는 프란시스코 카발레로-산츠는 가격 수렴의 실패를 경제 이론에서 가정하기 좋아하는 만큼 소비자들이 합리적이지 않은 탓으로 돌렸다.
  • 실제로 가격 수렴을 둘러싸고 과학적으로 제기되는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차액 거래를 하려는 유인과 변화하는 다양한 장벽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는가이다. 그러나 균형이라는 이론적 틀이 요구하는 수학적 조건들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이런 복잡성을 떼어버리고 일물일가 법칙이라는 예측력이 의문스러운 이런 ‘법칙’만 남겨 둔 것이다. 하지만 이론이 보다 유용성을 가지려면 현실 세계에서 가격의 복잡성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오래 걸리는 균형

  • 아마도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예측은 전체 경제 어디에선가 균형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가 균형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균형에 머무르는 시간은 또 얼마일까? 1970년대 예일 대학 경제학자 허버트 스카프는 균형에 이르는 시간은 경제에 있는 제품과 서비스 수의 4제곱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계식의 바탕에 있는 직관은 간단하다. 제품 수, 서비스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모든 시장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모든 가격과 양이 조절되는데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 현대 경제의 상품 수가 재고 유지단위 기준으로 1010 정도라하고 모든 의사 결정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 컴퓨터의 속도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고 스카프의 연구 결과를 사용하면 경제가 외부적 충격을 받은 후 균형에 도달하기까지는 4.5 x 1018년이 걸린다. 기술 변화, 정치적 불확실성, 기후, 소비자 취향의 변화와 같은 요소들로부터 충격이 매초 경제에 가해진다고 생각해 보자. 이 우주의 나이가 약 120억년 밖에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나는 셈이다.

비랜덤워크

  • 전통 금융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측 중 하나는 주식 시장이 랜덤 워크 (random walk, 무작위 산책)를 따른다는 이론이다. 랜덤워크란 가격의 움직임에는 어떠한 패턴도 없으며 과거의 가격을 보더라도 미래의 가격과 관련한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얼핏 보면 주식 가격은 마치 랜덤워크를 매우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좋은 데이터, 보다 강력한 도구를 활용한 최근의 분석들은 가격이 랜덤워크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주식이 더 이상 랜덤워크가 아니라는 것은 시장이 크게 움직일 때, 다시 말해 시장이 균형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통계적으로 가장 분명하다.
  • 전통 경제 이론의 예측들이 대개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여러 경제 이론들이 근사적으로 보면 맞는 것처럼 보인다. 프리드먼의 대항마로서 허버트 사이먼은 이렇게 말했다. “경제학이 고도로 복잡한 수학적 법칙들의 구성체로 발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법칙들은 실증적인 현상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그것도 대개 정성적인 관계만을 보여줄 뿐이다.”
  • 전통 경제학은 취약한 가정의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으며, 따라서 여기서 나온 결론도 똑같이 취약하다. 전통 경제학의 문제를 추적하다 보면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발라가 균형이라는 개념을 물리학에서 차용하면서 취했던 가정들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발라는 경제를 근본적으로 잘못 분류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잘못된 은유

  •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데 뛰어나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 대해 이해를 하거나 논리를 펼 때 은유를 활용한다. 무엇이 닮았다거나 특별히 다른 어떤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 재빠르게, 그것도 몇 마디만으로 복잡한 현상의 핵심을 파악하는게 가능하다.
  • 과학도 은유를 활용한다. 창조성을 자극하거나 복잡한 아이디어를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작고 진동하는 끈고리에 비유한 것은 끈 이론(string theory)을 개발하는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던져 앞서간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끈의 고리’라는 표현은 은유적으로 끈 이론의 핵심적 아이디어를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예컨대 11차원의 칼라비-야우(calabi-yau) 공간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러나 은유라는 것이 과학을 자극하거나 소통하는데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과학 자체는 은유 이상의 것을 토대로 한다. 과학 이론은 단순히 특별한 무엇이 다른 것과 닮았다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 발라가 푸앵소의 물리학 교과서를 읽고 나서 물리 시스템에서 균형을 이루는 힘에 관한 개념과 경제 시스템에서 균형을 이루는 힘에 관한 개념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은유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유사성을 보고 그는 균형 분석을 위한 수학적 도구들을 경제 시스템에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자극을 받았다. 그로부터 100년 뒤 산타페에서 열린 과학자, 경제학자 연석 미팅에서 테이블 위에 올라간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경제학의 균형 개념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학과 경제 시스템 간 피상적인 유사성에 기초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경제 시스템은 정말 말 그대로 균형 시스템인가? 그렇다면 균형 시스템들의 보편적인 특성들을 과연 공유하고 이는가? 달리 말하면 전통 경제학에서 균형이라는 이론적 틀은 단지 하나의 은유에 불과한가? 아니면 과학인가?
  • 발라 시대 물리학자들에게는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간단한 균형 시스템과 그렇지 않은 다른 시스템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다른 시스템 중 일부분은 수학적으로 풀 수 있지만 대부분은 풀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경제라는 현상을 분류할 수 있는 다른 대안적인 길들이 많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발라가 경제학에 수학적 엄격함과 예측성을 부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면 그가 균형 분석이라는 잘 다져진 길을 걸어간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설익은 물리학

  • 불행히도 발라가 경제학을 과학으로 바꾸겠다는 사명을 가졌을 당시의 과학은 과학 발전 과정상 좀 특이한 시기로 중요한 개념들이 아직 나오지 않은 때였다. 모든 과학은 진행 중에 있었다. 그 당시 한계주의자들이 알았던 물리학도 지금 우리가 물리 교과서에서 보는 고전적인 열역학이 아니었다. 한계주의자들이 차용했던 당시 물리학에는 열역학 제 1법칙은 포함돼 있었지만 제 2법칙은 빠져 있었던 것이다.
  •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알려진 열역한 제 1법칙은 19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개발되었기 때문에 발라, 제번스, 그리고 다른 경제학자들이 읽었던 교과서에 분명히 설명되어 있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 줄은 자연은 에너지에 극도로 인색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에너지는 창출되지도, 파괴되지도 않고 단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될 뿐이라는 것이다. 제 1법칙의 특성 중 하나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 있는 총에너지가 고정되면 그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균형에 이르도록 보장된다는 것이다.
  • 노트르담 대학의 필립 미로스키가 기적했듯이 발라가 균형을 물리학에서 차용한 결과의 하나는 전통 모델에 고정 또는 보존된 양을 위한 수학적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전통 경제학은 흔히 가치를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환되는 고정된 양으로 묘사한다. 예컨대 자원이 상품으로 바뀌고 그 상품이 돈으로 교환되며, 돈이 다시 상품으로 바뀌고 그 상품이 소비되고 효용을 창출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새로운 부는 창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는 유한한 자원에서 시작하여 이것이 생산자들에게 배분되고 생산자들은 다시 유한한 상품들을 소비자들에게 배분한다. 고정된 부를 강조하다 보니 이게 원인이 되어 영국 경제학자 라이오넬 로빈스는 1935년 경제학에 대해 그 유명한 “희소성의 과학”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 발라와 제번스에게 은유적으로 영감을 주었던 열역학 제 1법칙의 유산은 오늘날 전통 경제학에 그대로 살아 있다.
  • 그러나 제 1법칙은 열역학 얘기의 단지 반에 불과하다. 제 2법칙은 엔트로피, 즉 한 시스템에서 무질서나 임의성의 한 척도인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제 2법칙의 전체로서 우주는 불가피하게 질서의 상태에서 무질서의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우주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완벽히 한결 같은 온도를 갖는 임의의 아무 특색도 없는 미아스마(miasma)다. 우주에 있는 모든 질서, 구조 및 패턴은 시간이 가면 결국 고장 나거나 쇠퇴하고 또 흩어져 버린다. 엔트로피는 시간에 화살을 준 것이다. 엔트로피, 그리고 질서에서 무질서로의 불가피한 흐름이 없다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별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엔트로피가 발견되면서 물리학이 우주를 보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 발라, 제번스 그리고 전통 경제학을 구축한 여러 다른 학자들의 이론적 틀에는 불행하게도 자연에 관한 이 최고의 법칙이 빠져있다. 제 2법칙은 오랜 잉태 끝에 나왔다. 1824년에서 1865년에 걸쳐 사디 카르노, 루돌프 클라우시우스 그리고 윌리엄 톰슨 등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를 통해 발전됐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19세기 말에야 완전히 인정 받았고, 이것이 던지는 많은 시사점들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열려라 참깨

  • 열역학의 제 1법칙과 제 2법칙에 대해 이해하면 또 다른 개념으로 옮겨 갈 수 있는데, 이 역시 발라나 제번스 시대에는 없었다. 바로 닫힌 계와 열린 계 개념이 그것이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시스템이고 모든 시스템 중 가장 큰 시스템 안에서 수많은 작은 시스템들을 정의 할 수 있다.
  • 닫힌 계는 어떤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 작용이나 소통이 없는 시스템이다. 닫힌 계에서는 어떤 에너지, 물질 또는 정보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다. 우주가 하나의 닫힌 계다. 우주 밖이라는 것 자체가 없으며 우주의 경계를 넘어서 우주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닫힌 계에서 총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하면서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질서가 무질서로 바뀌어 가면서 궁극적으로 시스템이 정지하는 것에 따른 것이다.
  • 열린 계는 에너지와 물질이 들어가고 나오는 시스템이다. 열린 계는 에너지와 물질을 활용, 일시적으로 엔트로피와 싸우면서 한동안 질서, 구조, 그리고 패턴을 창조한다. 지구는 하나의 열린 계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는 생명을 가능하게 하며, 질서와 복잡성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생물권 창조로 이어진다. 엔트로피는 어디로 가버린게 아니다. 지구 상의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고장이 나거나 쇠퇴하고 모든 유기체들은 궁극적으로 죽는다. 그러나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항상 새로운 질서의 창조에 동력을 제공한다. 열린 계에서는 에너지의 힘에 의한 새로운 질서 창조와 엔트로피에 의한 질서 파괴 사이의 끝 없는 싸움이 있다.
  • 자연의 계산법은 매우 엄격해서 열린 계에서 질서가 만들어질 때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질서가 창출되면 다른 어딘가에서 질서가 파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순 효과는 엔트로피의 증가, 다시 말해서 질서의 감소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이 지구 상의 새로운 질서 창출에 동력원을 제공함에 따라 모든 생명과 활동이 열을 만들어 내고 이는 다시 대기로 방출된다. 열은 그것이 끝나는 곳마다 여러 가지 예측하기 어려운 영향을 미치며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지구는 에너지를 수입하고 대신 엔트로피는 수출한다.
  • 닫힌 계는 항상 예측 가능한 마지막 상태를 보여 준다. 물론 도중에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최대의 엔트로피라는 균형을 향해 나간다.
  • 열린 계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때때로 안정적이고 균형잡힌 상태에 있는가 하면 균형과는 거리가 먼, 매우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태의 패턴, 예컨대 기하급수적 성장, 급격한 붕괴, 또는 진동 같은 패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열린 계가 자유로운 에너지를 가지는 한, 최종적인 상태 또는 그런 상태에 도달할지의 여부를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복잡 적응 시스템들은 열린 계의 한 하위 범주다.

경제를 잘못 분류하다

  • 열린 계에 대한 상세한 이해는 20세기 동안에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다 1960년대, 1970년대에 걸쳐 러시아 태생의 화학자 일리아 프리고긴의 연구로 가속화됐다. 그 당시 전통 모델은 경제는 열역학적으로 닫힌 계라는 묵시적 가정 하에 만들어졌다. 경제 이론으로서는 불행이지만 제 2법칙을 몰랐다는 것은 한계주의자들과 그들의 계승자들이 근본적으로 경제를 잘못 분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는 닫힌 균형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불균형 시스템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잡 적응 시스템이다.
  • 경제가 닫힌 균형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들의 특성들은 질서, 복잡성, 구조 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거나 흔들리는 쪽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모든 움직임, 예컨대 시끄러움, 조직 그리고 활동은 닫힌 균형 시스템의 산물일 수 없다. 10 SKUs 수준의 호모 하빌리스 경제에서 1010 SKUs 수준의 현대 세계 경제에 이르는 동안 경제적 복잡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석기 시대에서 지금까지 경제적 활동의 증가는 대규모로 엔트로피와 싸운 하나의 긴 역사였다. 그것은 오로지 개방된 불균형 시스템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 경제는 단순히 은유적으로만 열린 계와 비슷한게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열린 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에 속하는 한 시스템이다. 누가 경제에 공급될 에너지를 끊어 버리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저항자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경제는 정말 균형으로 이동할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한 나라가 콩고에서처럼 전쟁으로 박살이 났을 때나 북한에서처럼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고립될 때 이런 상황을 본다. 엔트로피가 이기기 시작하면서 경제는 쇠퇴를 피할 수 없고 결국 비참과 기아의 균형으로 향한다. 반면 성장하는 활기 있는 경제는 정의상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
  • 전통 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신고전파 모델은 잘못된 은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 점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좋은 의도로 19세기 후반 경제학자들은 물리학에서 일단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는데, 불행하게도 이 잘못된 분류가 큰 굴레로 작용하여 경제학자들은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경제학의 실증적인 성공도 그만큼 제약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발라의 대성당을 넘어서

  • 산타페 미팅이 10일간의 일정으로 끝났을 때 강도 높은 논쟁과 때때로 일어난 자존심 충돌에도 불구하고 이 미팅은 서로에 대한 극도의 존경으로 끝이 났다. 경제학자들은 전통 경제학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의심 중 일부가 보다 확실해졌다는 것을 알았고 경제학이 지금까지 안고 왔던 오랜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에 눈을 떴다.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은 그 특성에 있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자연세계의 그 어떤 것 못지 않게 환상적이며, 복잡하며, 도전적인 그런 한 현상인 경제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 미팅에서 형성된 많은 네트워크와 상호 협력은 그 후에도 지속됐고 산타페 연구소는 경제학에 대한 학제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에 브라이언 아서와 존 홀란드가 주도했고 시티코프가 지원했다.
  • 언덕에서 구르는 눈송이처럼 진전이 빨랐다. 산타페 연구소는 하나의 핵심 동력 역할을 하며 지난 수년 동안 금융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젣르을 다룬 워크숍과 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이슈들을 연구하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 저자는 과학이 되고자 하는 경제학의 열망이나 수학의 사용을 비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저자가 제기한 이슈는 수학 그 자체의 사용이 아니라 경제학이 올바른 수학을 사용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전통 경제학은 지적인 미를 보유하고 있다. 뛰어난 학자들이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한 세대가 아이디어를 만들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교체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경제학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야 말로 ‘발라의 대성당’을 만든 사람들이 남긴 유산을 가장 빛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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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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