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기원/ 큰 그림: 설탕과 향료

  • 빅뱅이 없는 현대 천문학이나 진화 개념이 없는 생물학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어디서 오는가?” 이 질문에 답 할 수 없다면 경제학이 언젠가 과학으로서 정말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원천에 관한 질문은 전통 경제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통 경제학은 경제적 파이가 우선 어떻게 여기서 생겨났느냐보다는 경제적 파이가 어떻게 배분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전통적인 성장이론조차 묵시적으로 “경제를 가정한다”로 시작한다.

가상의 설탕 섬

  • 조슈아 엡스타인과 로버트 액스텔은 1995년 사람들이 맨 처음 출발선에서부터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 살펴보기 위한 실험을 실시해 보기로 결정했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인실리코 (in silico; 컴퓨터 모의 실험 또는 가상 실험을 뜻하는 생명 정보학 용어로 가상 실험에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뜻한다.)로 경제적 생명체를 유발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 전통적인 미시 경제학 모델은 소비자, 생산자, 기술,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거시 경제학 모델 역시 화폐, 노동 시장, 자본 시장, 정부, 그리고 중앙은행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초기 즉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서 단지 기본적인 몇 가지 능력을 가진 사람들, 자연 자원이 조금 있는 환경만으로 구성된 모델을 갖고 싶었다.그들은 경제 활동의 체인을 출발시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발견하고 싶었다. 경제 시스템이 경제적 질서를 증가 시키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엡스타인과 액스텔의 모델을 그려 보기 위해 어떤 외진 섬 위에 좌초된 일단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상상해 본다. 이 컴퓨터 섬은 가로세로 40개씩 격자 눈금이 그려진 정사각형이고 이 섬에는 단 하나의 자원인 설탕이 있다. 그리고 격자의 각 칸에는 서로 다른 양의 설탕이 쌓여있다. 각 설탕 더미의 높이는 가장 높은 4에서 0(설탕이 전혀 없는 경우)의 범위에 있다. 설탕 더미들이 취하고 있는 모양새를 그려 보면 두 개의 산 같은 설탕 더미가 있는데 하나는 북동쪽 구석에, 다른 하나는 남서쪽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의 높이는 각각 3과 4이다. 두 개의 산 사이에는 설탕이 조금 밖에 없거나 거의 없는 일종의 황무지가 있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 가상의 설탕 섬을 ‘슈거스케이프 (Sugarscape)’라고 명명했다.
  • 물론 슈거스케이프의 경관은 실제 섬을 아주 단순화한 것이지만 현실 세계의 섬이 갖고 있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첫 째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개념이다. 즉, 당신은 그 위에서 동서남북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다. 둘째는 설탕이라는 에너지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땅이 차별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산, 계곡, 비옥한 땅과 황무지 등을 갖고 있다.

  • 마찬가지로 슈거스케이프에 있는 난파된 가상의 사람들도 매우 단순화한 것이지만 실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주요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 가상의 사람들 각자는, 즉 행위자는 슈거스케이프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코드를 통해 정보를 고속 처리한 다음 의사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하나의 독립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가장 기본적인 컴퓨터 시물레이션에서 슈거스케이프의 각 행위자는 오로지 세 가지를 할 수 있다. 설탕을 찾고, 움직이며, 설탕을 먹는다. 그게 전부다. 음식을 찾기 위해 각 행위자는 설탕을 찾아다닐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고, 그 다음으로 에너지원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각 행위자는 또한 설탕을 소화할 수 있는 물질 대사 작요이라는 기능을 갖는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 단순한 환경에서 단순한 행위자들이 경제와 같은 특별한 것을 과연 창조해 낼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이들은 각 행위자들이 매회 게임마다 따라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들을 다음과 같이 주었다.
    • 행위자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시각이 허용하는 한 앞을 바라본다.(행위자들은 대각선으로 볼 수 없다.)
    • 행위자는 시각의 범위 내에서 어떤 비점유 지역이 가장 많은 설탕을 가지고 있는지를 결정한다.
    • 행위자는 해당 칸으로 이동해서 설탕을 먹는다.
    • 행위자가 먹은 설탕의 양은 크레디트로 잡히지만 물질대사에 의해 소비된 설탕의 양은 그만큼 차감된다. 행위자가 소비한 설탕보다 더 많은 설탕을 먹으면 그 양만큼은 저축 계좌에 쌓아 놓는다. 이 저축을 체지방으로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이 저축은 다음 라운드로 그대로 이월된다. 만약 소비하는 양보다 덜 먹게 되면 저축 계좌를 완전히 비우게 될 것이다. 즉, 체지방이 빠지게 될 것이다
    • 행위자가 저축 계좌에 쌓아 놓은 설탕이 0 이하 수준으로 내려가면 이 행위자는 굶어 죽은 것으로 간주돼 이 게임에서 제거된다. 그렇지 않으면 미리 결정돼 있는 최대 수명만큼 살 수 있다.
  • 이런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각 행위자들은 시각과 물질대사를 위한 일종의 유전적 소질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각 행위자는 앞에 위치하고 있는 칸들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는지, 매회 얼마나 많은 설탕들을 소비하는지 설명해 주는 컴퓨터 코드, 일종의 DNA가 부여되어 있다. 매우 좋은 시각을 가진 행위자는 그 앞에 높여 있는 여섯 개까지의 칸들을 볼 수 있고, 반면 시각이 나쁜 행위자는 단지 바로 앞에 놓인 한 개의 칸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느린 물질대사를 하는 행위자는 매회 살아남기 위해서 단지 1단위 설탕을 필요로 하는 반면, 빠른 물질대사를 하는 행위자는 4단위를 필요로 한다. 각 행위자의 시각과 물질대사 기능이 어느 수준인지는 임의로 즉, 무작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각 행위자는 또한 임의로 최대 수명을 부여받는다. 최대 수명이 다하면 죽음의 신이 와서 이들을 게임판에서 제거한다. 마지막으로 행위자들이 설텅을 먹어 치움에 따라 설탕은 곡물처럼 다시 자라한다. 그 성장 속도는 주어진 기간당 1단위씩이다. 만약 4단위 설탕 더미가 다 먹어서 없어지면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오는데 시간적으로 4기간이 걸리게 된다.
  • 게임은 슈거스케이프에 임의로 분포된 250 행위자로 시작된다. 어떤 행위자는 우연히 설탕이 풍부한 산에 위치해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은 설탕이라는 부 속에 태어난 셈이다. 반면 운이 나빠 황무지 같은 열악한 곳에서 태어난 행위자도 있을 것이다. 먼저, 게임이 시작되면 행위자들이 설탕을 찾아 이리저리 달려가고 또 나쁜 지역에서 출발한 많은 행위자들이 굶어 죽으면서 약간 혼란스러운 양상이 펼쳐진다. 그러나 곧 빠르게 질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상하고 있겠지만 행위자들이 설탕이 풍부한 두 개의 산을 발견하게 되면 이들은 그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지리적인 운명이 거의 바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개의 설탕 산이라는 비옥한 지역으로 나누어진 섬의 구조가 행위자들을 두 그룹으로 분리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 슈거스케이프의 특정 지역에 초점을 맞추면 또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행위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방목자들이다. 오랫동안 설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더라도 행위자들은 매우 간단한 규칙만으로 그 환경에서 최대의 가치를 빨아들인다. 설탕 더미가 다시 자라나 최대 용량에 이르자마자 곧바로 방목하는 행위자의 손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조직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곧바로 볼 수 있게 된다. 행위자들은 스스로 두 개의 집중된 부족으로 재빠르게 조직화 된다.

풍요로운 사람은 더 풍요로워지고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슈거스케이프 행위자들에 대한 다양한 통계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이들이 추적했던 변수 중 하나는 행위자의 부다. 행위자들이 특정 시점에 얼마나 많은 설탕을 자신의 저축 계좌로 가지고 있는지를 추적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각 기간마다 가장 부유한 행위자와 가장 가난한 행위자 간 저축 계좌로 측정한 거리를 10개의 구간, 예컨대 0~10, 11~20, 21~30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 분류했다. 그런 다음 얼마나 많은 행위자들이 각 해당 구간에 속하는지를 계산해 숫자로 표시했다. 예컨대 0~10 구간에는 2명, 11~20 구간에는 6명 등으로 기록하는 식이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부의 분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지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 시물레이션 초기에 슈거스케이프는 꽤 평등한 사회였다. 부의 분포를 보면 아주 부유한 몇몇 행위자와 또 아주 가난한 몇몇 행위자를 빼면 중간층이 넓은 순탄한 종 모양의 곡선으로 돼 있다. 게다가 가장 부유한 행위자와 가장 가난한 행위자 간의 거리도 상대적으로 좁다.
  •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븐포는 크게 바뀐다. 행위자들이 두 개의 설탕 산에 집결함에 따라 평균적인 부는 상승했지만 부의 분포도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형태로 변화한다. 예컨대 몇몇 초부자 행위자들이 출현하고 상위 계층의 꼬리는 길어지며중간 계층은 점저머 줄어들고, 하위 가난한 행위자 층이 크게 늘어나는 모양새다. 초기 가장 부유한 행위자가 단지 30단위의 설탕 밖에 안 가졌지만 마지막으로 가면 270단위로 늘어나고 있다.

  • ‘파레토 최적’이라는 개념 개발 외에 파레토는 사회적 부의 분포에도 매우 관심이 많았다. 1895년 수많은 나라에서 수집한 소득 데이터를 후에 ‘파레토 분포 (Pareto Distribution)’로 알려지게 된 한 분포 곡선을 적용해 봤다. 종 모양의 겅규 분포가 아니라 파레토 곡선은 부의 하단 끝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중간층은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몇몇 초부자들이 상단위 위치한 그런 곡선이다. 이런 파레토 분포에서 나온 것이 소위 ’80-20 규칙’이다. 즉, 전체 부의 80% 정도를 20%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걸쳐 경제학자들은 소득과 부는 파레토 분포를 따르는 경향이 있으며 이 결과는 국가와 시기에 관계없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간단한 슈거스케이프 모델이 보여 준 부의 분포는 바로 현실 세계의 파레토 분포와 같은 종류인 것이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슈거스케이프라는 통제된 세계에서 다양한 가설들을 검증하기는 매우 쉽다. 첫째, 이것은 본성인가? 다시 말해 각 참가자들의 유전적 형질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가? 이는 “대단한 시각과 느린 물질대사 기능을 가진 행위자들이 결국 모든 부를 다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대답은 “아니오”다. 유전적 형질은 균등한 임의의 분포로 나누어졌다. 부가 만약 슈거스케이프의 유전적 형질과 상관관계가 있다면 부의 분포 또한 매우 균등해야 한다. 즉 부유한 사람, 중간층, 가난한 사람들이 대략 같아야 한다.
  •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본성이 아니명 양육 때문인가? 다시 말해, 행위자들의 태어난 환경이 원인인가? 달리 표현하면 이런 질문이다. 설탕이 쌓여 있는 산꼭대기에서 태어난 행위자들은 모든 부를 다 가지고, 황무지에 태어나는 나쁜 운을 가진 행위자들은 모두 가난하게 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도 “아니요”다. 유전적 형질과 마찬가지로 행위자의 출생지 역시 완벽하게 임의적으로 주어졌다. 따라서 이것이 정말 각 행위자들의 궁극적인 경제적 위치를 결정하는 원인이라면 그 분포 또한 매우 균등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임의적인 초기 상태에서 어떻게 불균등한 부의 분포에 이르게 되었는가?
  • 그 대답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다. 편중된 분포는 시스템의 창발적 특성이다. 거시적인 행태는 행위자들의 집단적인 미시적 행태들로부터 출현한다. 물리적 환경, 유전적 형질, 자신들이 태어난 곳, 따라야 할 규칙들, 서로 간 또는 환경과의 상호 작용, 그리고 행운 등이 결합돼 편중된 분포라는 창발적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 이제부터 이렇게 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유전적 형질로는 중간정도이고, 중산층 부에 해당하는 동네에서 태어난 행위자 1과 행위자 2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태어날 때 이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확률은 동일하다. 그러나 행위자 1은 삶에서 첫 번째 발걸음을 어디로 향할지와 관련하여 각 방향을 둘러본 뒤 다른 행위자들이 동, 서, 남에 이미 꽉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북에서 향하면서 그 길을 따라 설탕을 먹어 간다. 우연히도 그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한 설탕 산의 핵심 지역으로 향하게 된다. 그것도 다른 행위자들이 별로 없는 그런 곳에 도착한다. 그는 여기서 최대한 많은 설탕을 마음껏 즐기면서 저축 계좌도 많이 쌓는 등 다른 행위자들이 이 지역을 발견하고 움직이기 싲가할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초기의 황금기간으로 인해 행위자 1의 부는 평균을 훨씬 넘는 수준이 된다. 설탕 산 위에 올라간 첫 번째 행위자로서 그곳에 머물면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낸다.
  • 반면 행위자 2는 그렇게 운이 좋은 게 아니었다. 그의 첫 발검은은 남쪽 황무지를 향했다. 그가 뭔가 잘못됐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 다른 행위자들은 이미 설탕이 풍부한 북쪽 지역에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방향을 돌려 비옥한 쪽으로 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저축 계좌는 점점 감소, 부는 평균 이하 수준으로 계속 떨어진다. 그가 좀 더 비옥한 영역 쪽으로 방향을 돌렸을 때 그 지역은 이미 거의 만원이다. 그래서 아직 누군가에 의해서 점유되지 않은 땅을 발견할 수 있는 기간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 행위자 2는 생존은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면서 똑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행위자 1에 비해 그 부가 훨씬 뒤처직 된다. 비록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처음의 조그만 우연적 행위가 게임의 흐름 과정에서 확대되면서 두 행위자 간에 매우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이 결과는 경제학자들이 ‘수평적 불평등 (horizontal inequality)’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전통 경제 이론에서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전통 경제학의 균형 세계에서는 똑같은 능력, 똑같은 선호도, 태어날 때 똑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똑같은 수준의 부를 가지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임의로 분포된 잡음이나 오류 때문일 따름이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라는 불균형 세계에서 수평적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다. 행위자 1과 2의 결과 차이는 단지 시스템의 임의성 차이 때문이 아니다. 임의성이 물론 행위자들이 서로 다른 길로 향하는데 하나의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게임의 역동성이 이를 크게 확대시킴으로써 단지 우연한 기회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너무도 크게 치우친 결과를 낳는 것이다.
  • 슈거스케이프라는 이 단순한 모델에서조차 가난과 불평등을 이끄는 인과 관계가 결코 간단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가난과 불평등은 매우 복잡한 요소들의 혼합된 결과다. 그러나 이 모델이 한 가지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 있다. 1차원적인 관점, 다시 말해 가난은 이들을 착취하는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좌파적 진단, 그리고 당신이 가난하다면 당신은 멍청하거나 게으르거나 아니면 이 둘 다라고 생각하는 우파적 진단은 모두 잘못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새와 꿀벌처럼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슈거스케이프 모델에 요소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실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이른바 섹스다. 경제학자들은 최소한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가 19세기 초 인구에 대한 유명한 논문을 썼단 당시부터 섹스의 효과를 알고 있었다.다행히도 슈거스케이프와 같은 컴퓨터 모델을 통해 인구 성장과 진화의 효과를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다양한 조건과 가정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는게 가능하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각 행위자에게 나이와 성별을 표시하는 표를 부여하기로 했다. 행위자가 임신이 가능한 나이에 이르고 그 행위자가 최소한 설탕 저축 계좌를 갖고 있다면 번식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매회 이 가임 행위자는 동서남북으로 한 칸 범위에 있는 이웃들을 탐색한다. 그래서 반대 성을 가진 다른 가임 행위자를 발견하면 바로 출산한다. 그 결과 나온 아기 행위자의 DNA는 엄마로부터 반, 아빠로부터 반을 임의로 부여받는다. 따라서 이 아기의 시각과 물질대사 기능은 양쪽 부모의 그것들이 혼합된 결과다. 또 이 아기 행위자는 양쪽 부모로부터 부를 상속받는데, 아버지의 반, 어머니의 반을 더 한 것이다. 아기 행위자는 엄마, 아빠와 인접한 빈 칸에서 태어난다. 따라서 부모가 풍부한 혹은 열악한 설탕 근처에 사느냐에 따라 그 아기 역시 그곳에서 인생을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고도로 단순화된 이 설계는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의미한다. 전체 행위자들 중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행위자들은 후손을 가질 가능성이 작고, 반면 가장 적응을 잘하는 행위자들의 자손은 어느 정도 의미있는 생물학적, 환경적 이점을 가지고 인생을 출발하게 된다는 점이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이 섹스가 가미된 슈거스케이프 모형의 시작 버튼을 누르자 행위자들은 부를 수확하는 행위자 주변으로 분주하게 모여들었고 가임 행위자들은 재빨리 상대방을 발견, 로맨스가 결실을 맺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서 어린 행위자들의 소리들도 들려왔다. 그러면서 다음의 세 가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첫째, 거의 적응을 하지 못한 행위자들은 그냥 죽어 사라진 반면, 가장 적응을 잘한 행위자들은 점점 더 많은 후손을 가지게 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각과 물질대사 효율성의 평균치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평균치가 상승함에 다라 부 역시 상승했다.
  • 둘째, 출생과 사망이라는 이 새로운 역동성이 추가되면서 인구 변화가 일어났다. 섹스가 도입되기 전에는 인구가 항상 일정했고 대략적으로 환경이 허용하는 용량과 균형 수준을 이루었다. 그러나 섹스와 함께 풍요로움과 궁핍이라는 사이클이 일어났다. 잘 적응한 행위자들은 저축 계좌를 늘리고 다수의 후손들을 갖게 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환경적인 수용 용량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행위자들은 설탕 비축 분을 가지고 과잉 방목하기 시작하면서 기근을 불러왔다. 이 기근은 인구 감소를 초래했다. 그 결과 환경은 재생되었고 사이클은 또다시 반복됐다.
  • 셋째, 부유한 행위자와 가난한 행위자 간 격차가 훨씬 더 벌어졌다. 우리는 앞서 섹스가 고려 안 된 단순화된 모델에서조차 부가 한쪽으로 부가 한쪽으로 편중된 분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세대를 넘어가는 부의 상속은 물론이고 유전적 형질의 계승이 가능하자 부유한 사람은 더욱 부유하게,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되는 흐름이 가속화 됐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다

  • 지금까지 슈거스케이프의 행위자들은 순수한 수렵, 채집민이었다. 여기에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설탕 외에 향료라는 두 번째 상품을 도입했다. 게임판 위의 각 칸은 이제 얼마나 많은 설탕이 있는지를 표시하는 가치는 물론이고 얼마나 많은 향료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다. 설탕과 마찬가지로 향료 또한 두 산에 집중돼 있다. 설탕이 북동과 남서쪽에 위치한 반면 향료는 남동과 북서쪽에 있다. 이 모델에서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행위자들의 물질대사 기능과 관련하여 조금 변경을 하는데, 각 행위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설탕 뿐 아니라 향료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어떤 행위자들은 설탕을 많이 필요로 하는 반면 향료는 조금만 필요로 하고, 다른 행위자들은 설탕 보다는 향료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것은 DNA로 사전에 결정된다. 전통 경제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런 수요의 차이는 행위자들의 선호(preference)와 같은 것이다.
  • 마지막으로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행위자들이 서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전통 경제학 모델에서처럼 시장이나 경매인에 대한 가정은 없었다. 대신 개인들 간의 물물 교환이 허용됐다. 행위자들이 슈거스케이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행위자들을 만난다. 매회 각 행위자들은 동서남북으로 있는 각 한 칸을 보면서 그 주변에 있는 행위자들이 거래를 원하는지 물을 것이다. 만약 어떤 행위자가 향료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설탕을 필요로 하고, 다른 행위자가 그 반대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면 두 행위자는 거래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향상시킬 수 있다. 행위자들이 거래에 합의하면 그들은 조그마한 협상시롤 들어가 가격에 합의할 때까지 상대방에게 제안을 한다. 슈거스케이프에는 화폐가 없다. 따라서 가격은 향료에 대한 설탕의 상대적 가치 또는 설탕에 대한 향료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한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이 스위치를 누르자 행위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더니 곧 활발한 비즈니스가 시작됐다. 거래의 패턴은 많은 측면에서 전통 경제학이 예측했던 것과 매우 비슷했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행위자들이 거래를 할 수 있는 모델과 스스로 설탕과 향료를 찾아나서는 일만 하는 모델을 비교해 보았더니,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슈거스케이프 사회를 더 부유하게 한다는 점을 알았다. 거래를 통한 부의 증가는 애덤 스미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예측 중 하나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가지고 이런 부의 증가를 설명한다. 한 쌍의 이웃 행위자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한 행위자는 설탕을 가지고 있지만 향료 부족으로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황이고 다른 한 행위자는 그 반대 상황이다. 만약 거래가 금지되면 둘 다 죽는다. 물론 거래가 허용되면 둘 다 산다. 이렇게 거래는 슈거스케이프 환경이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므로 모든 행위자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또 거래 네트워크의 발전을 추적했다. 누가 누구와 거래를 하는지 추적해 본 결과 지역별로 거래 네트워크 상의 집적 효과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지역에 있는 행위자들과 더 빈번하게 거래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거래의 이익은 자기 강화적이기 때문에 거래가 거래를 낳는다. 집중된 거래 네트워크를 가진 집적지(cluster)들이 출현했다. 마치 지역별 시장 타운(market town)처럼 말이다.
  • 향료라는 두 번째 상품의 도입은 행위자들의 움직임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었다. 행위자들은 더 이상 두 개의 설탕 산 위에 부족을 형성하며 모여 살 수 없게 됐다. 이들도 밖으로 나가 향료와 거래 파트너를 찾아야 했다. 지역과 인구의 역동성이 결합되면서 복잡한 거래 경로가 생겼다. 행위자들이 설탕과 향료가 집중된 산들을 오가면서 고대 실크로드와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게임 때마다 각 행위자들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행위자들이 일련의 가격 범위에서 기꺼이 매도하거나 매입하는 설탕 또는 향료가 어느 정도인지 측정한다. 모든 행위자들을 통틀어 이 수치들을 합산하면 각 상품별로 공급, 수요 곡선이 만들어 진다. 그 결과가 거의 교과서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수요 곡선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공급 곡선이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이 자신들의 모델에서 공급과 수요에 관해 그 무엇도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 오히려 이 공급과 수요 곡선들은 행위자들의 단순한 상호작용에서 나온 순전히 밑바닥에서부터 형성된 현상으로 나타났다.

균형의 실종

  • 전통 경제학의 여러 가지 핵심적인 예측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들이 현실에 대한 1차적 근사로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논의해 보았다. 결론은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보니 현실과 달리 맞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는 슈거스케이프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슈거스케이프가 경제적으로 순간적으로 근사한 X자 형태의 공급, 수요 곡선을 만들어 냈지만 거래가 이루어진 실제의 가격과 수량은 결코 이론적으로 예측된 균형점이 아니었다. 가격은 균형점 근처에서 움직였고, 어떤 조건하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수렴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균형에서 벗어난 가격의 변동 폭은 모델을 아무리 길게 돌려 보아도 의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전통 경제학자들은 균형 주변의 오차 때문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이 모델에서 노이즈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 초기 조건은 임의로 주어졌지만 일단 모델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컴퓨터가 계속해서 대량의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해 나가기 때문에 모든 행태는 완전하게 확정적이다. 따라서 오히려 정확히 해석하자면 슈거스케이프에서 가격은 어떤 끌어당기는 것, 즉 인력체(attractor) 주변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실제로 균형에 안착하는 일은 결코 없다. 따라서 슈거스케이프에서 공급과 수요의 법칙은 실제 세계에서처럼 단지 하나의 개략적인 근사적 표현에 불과하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또 시스템이 균형으로 향하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거래가 일어난다는 점도 발견했다. 균형 가격에 대한 전통적인 예측에 따르면 자연스레 도출되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급과 수요가 균형으로 이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거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는 상품 시장, 금융 시장 모두에서 거래량이 이론에서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똑같은 의문이 슈거스케이프에서도 반복되는데, 전통 이론에서 예측된 것보다 가격 변동성이나 거래량이 더 크다. 전통 모델에서 전체 인구는 균형에 이르기 우해 필요한 최소한의 거래를 하는 것으로 간단히 가정한다. 슈거스케이프에서 전체 행위자들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은 없다. 행위자들은 물리적 거리에 의해 분리되어 있고 따라서 움직이는데 시간을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이웃에 있는 행위자들과 거래를 할 뿐 전체적인 균형을 찾아 나서는 일은 없다. 따라서 거래의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경우는 행위자들이 이러저리 움직이면서 우연히 다른 행위자를 만날 때다. 그 결과 거래량도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 전통 경제학의 또 다른 핵심적인 예측은 일물일가 법칙이다. 주어진 시장에서 상품은 균형 가격에서만 거래된다는 애기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에서 특정 시점에 가격 변동의 폭이 넓다. 어떤 곳에서는 당신이 바가지를 쓸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는 런던 캐첩 시장에서처럼 이득을 노려 볼 만한 가격 차이도 있다. 모든 일이 단 한 번에 일어나는 균형 모델과 달리 슈거스케이프에서는 시간에 따라 일들이 전개되고 있고 또 거래 상대방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세계 어느 지역에 싼 물건들이 있다면 행위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찾아가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는 경제학자가 길거리에서 20달러짜리 지폐를 발견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차액을 노리는 행위자가 어느 싼 물건에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또 다른 행위자가 어디에선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러나 역동성이란 행위자들이 경제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변화를 결코 쫓아갈 수 없다는 그런 의미다. 이 때문에 가격은 이론에서 생각하듯 결코 완전하게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
  • 전통 경제학의 또 다른 기본적인 교리는 파레토 최적이다. 즉, 시장은 언제나 완벽한 자원 배분에 이른다는 얘기다. 따라서 누군가의 상황을 더 학화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자원 배분은 더 이상 없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 시장은 파레토 최적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작동한다. 모든 사람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지만 앚기 성사되지 못한 그런 거래가 항상 있다. 이 역시 행위자들의 거래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약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서쪽 구석에 있는 행위자 A 는 북동쪽 구석에 있는 행위자 B가 큰 거래 파트너일 수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더구나 설사 이를 알았다고 해도 그들이 서로 만나기 위해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다 그때쯤에는 가격이 또 변해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전통 경제학자들은 즉각 이거야말로 시장이 치료해 줄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이 있으면 매수자와 매도자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묶어서 거래 당사자들의 보다 효율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우리는 모든 행위자들을 매일 정오에 한 지점에 불러 모아 발라 모델에서처럼 설탕과 향료를 경매에 넘김으로써 슈거스케이프의 경제적 효율성을 쉽게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 경제학은 현실 세계가 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나 이런 ‘발라 경매 (Walrasian Auctions)’가 일어나고 있다고 간단히 가정해 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금융 시장이나 이베이 밖에서 실제로 경매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경매가 딱 알맞은 가격을 찾아내는 것은 좋지만 거래를 처리하는 데는 느리다. 현실 세계에서 대부분의 거래는 슈거스케이프와 더 닮았다. 거래가 두 당사자 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당신과 당신 지역의 식료품점 또는 IBM과 포드간의 쌍무적 거래다. 쌍무적 거래에서는 가격의 범위가 보다 넓긴 하지만 훨씬 효율적이다. 솔직히 당신이 우유 하나를 사고 싶을 때마다 동네 슈퍼마켓 경매장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한다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이겠는가? 현실 세계에서 쌍무적 거래는 슈거스케이프에서처럼 거래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분산시킨다. 따라서 글로벌 균형 같은 것에 도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통 경제학에서 거래는 경매 시장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한 유일한 이유는 그런 가정이 있어야만 수학적으로 균형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 슈거스케이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사회 전체를 모두 부유하게 만들지만 빈부 격차를 더욱 확대 시키는 효과도 있다. 가장 기초적인 모델에서조차 게임의 역동성으로 인해 작지만 의미 있는 빈부 격차가 발생했다. 그런 모델에 능력과 부가 상속될 수 있도록 섹스와 가족이라는 변수를 도입하자 그 격차는 더욱 커졌다. 여기에 거래가 도입되자 모두가 더 부유하게 되었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에 따르면 부의 편중된 분포 정도가 현실 세계 경제의 모습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계층 구조의 진화

  • 슈거스케이프 경제는 개인들의 집합체였을 뿐 경영자나 노동자, 또는 공급자, 중간 거래자, 소매업자 등과 같은 계층은 없다. 이는 행위자들 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것이 매우 짧은데다 대칭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층은 현실 세계 경제에서는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행위자들의 행태에 한 가지 더 추가적인 변화를 주었는데 이런 수정은 안정적인 거래 관계의 창출과 계층의 발전을 가져왔다. 즉,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 슈거스케이프에서 차용자가 될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가지기 위해서다. 슈거스케이프에 있는 모든 행위자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행위자들은 너무 가난해서 자손들을 먹여 살릴 수 없을 정도다. 반면 설탕과 향료가 남아도는데 소비할 데가 없는 행위자들도 있다. 그래서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다음과 같은 규칙을 도입했다. 어떤 행위자가 너무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거나 자손들에 대한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아돌 정도로 저축 계좌가 많다면 그 행위자는 대여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자식을 가지기에는 저축 계좌가 불충분하지만 설탕과 향료에 대한 소득이 지속 가능하다면 이 행위자는 차용자가 될 수 있다. 단순화를 위해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자율과 대출 기간을 고정했고 채무 불이행에 대한 기본적인 조치도 만들었다. 따라서 신용은 좋지만 아이들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원을 더 필요한 행위자라면 빌려줄 자원을 가진 이웃들로부터 자유롭게 빌릴 수 있다.
  • 엡스타인과 액스텔을 놀라게 한 것은 이를 통해 단순히 상당한 차용과 대여 활동이 일어났다는 점이 아니라 복잡하고 계층적인 자본 시장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차용자와 대여자의 관계를 추적해 보았다. 여기서 어떤 행위자들은 차용자이면서 동시에 대여자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사실상 중간 거래자들이다. 슈거스케이프에서 은행이 나타난 것이다. 이 가상 실험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정말로 부유한 어떤 행위자들은 도매상 역할을 떠맡아 중간 거래자들에게 빌려 주고 그러면 중간 거래자들은 최종적인 차용자들에게 대출을 해주었다. 어떤 가상 실험에서는 계층 구조가 5단계로 늘었다. 이 가상 실험을 통해 단지 은행이 출현한 것 뿐만 아니라 제도권 투자자들, 투자 은행(IB), 상업 은행, 그리고 소매 은행들도 출현했다.
  • 슈거스케이프에서 출현한 다른 여러 가지 창발적인 패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신용 네트워크의 진화 역시 모델에서 톱-다운(Top-Down)식으로 부여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런 대규모 거시적 패턴들은 국지적으로 각종 미시적 가정들이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을 함으로써 밑에서 분출된 것들이다.

인 실리코 경제

  • 과학자들은 두 가지 이론을 비교할 때 ‘대응 원리’를 따른다. 이에 의하면 하나의 새로운 이론은 옛날 이론의 성공을 재생해야 하고, 실패를 설명해야 하며, 또 옛날 이론이 제시 못한 통찰력을 제시해야 한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슈거스케이프 그 자체로 모든 경제이론을 대변한다거나 자신들의 모델이 부의 기원과 원천에 대한 질문에 완전한 답을 제시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는 대응 원리에 따라 우리에게 흥미로운 새로운 방향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모델은 전통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요소들 중 많은 것들을 재생해 보였다. 공급과 수요 법칙은 현실 세계에서 그런 것처럼 비슷하게 작동했고, 거래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런 결과를 실제로 보여 주지 않는 모델을 믿기는 어려운 일이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전통 모델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가정들의 구속을 전혀 받지 않는 모델을 통해 이런 고전적인 결과들을 보여 주었다.
  • 이보다 훨씬 흥미로운 것은 슈거스케이프가 전통 경제학에서 발견된 주요한 예외적인 현상들도 일부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일물일가 법칙의 위반, 수평적 불평등의 존재,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더 큰 가격 변동성과 거래량 등이 그것이다. 이는 엡스타인과 액스텔이 취한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전통 경제학과 다르기 때문이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슈거스케이프가 균형 시스템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슈거스케이프에서 행위자들과 환경 등의 기본적인 구조를 주고 행위자들이 스스로 발전하면서 어디로 갈지 살펴보고 결정하도록 했다. 슈거스케이프는 균형 상태로 가지 않고 부족, 시장, 거래 경로, 자본 시장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해 복잡한 질서, 구조, 다양성 등을 자발적으로 발전 시켰다. 이들 중 사전에 기획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 몯느 것들은 엡스타인과 액스텔이 시스템에 부여한 단순한 출발 규칙에서 시작해 밑에서부터 형성돼 출현했다.

복잡계 경제학의 정의

  • 슈거스케이프는 저자가 경제학에 대한 진실로 새로운 접근이라고 믿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하나의 예증을 제시해 주고 있다. 슈거스케이프와 같은 모델들은 빠른 컴퓨터 덕분에 최근 개발된 것이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장기간에 걸쳐 풍부한 지적 역사 위에 구축된 것이다. 그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게임 이론과 세포 자동자 이론을 만든 폰 노이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같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멤버들, 허버트 사이먼 대니얼 카너먼 등 행동주의 경제학자들, 더글러스 노스와 같은 제도학파 학자들, 리처드 넬슨, 시드니 윈터 등 진화 경제학자들, 로버트 액설로드, 토머스 셸링 등 정치 과학자들, 존 홀란드, 크리스토퍼 랭턴 등 컴퓨터 과학자 등이 있다.
  • 이 연구자들과 다른 여러 연구자들의 업적이 합쳐지면서 어떻게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지 살펴 볼 것이다. 연구들이 갖는 여러 가지 측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자들은 수많은 용어를 사용하는데 –예컨대 계산경제학, 행위자 기반 모델링, 사회적 역동성, 진화경제학, 행동주의 게임 이론, 산타페학파, 상호작용 경제학 등– 이들 중 어느 한 가지만 채택하면 사물을 너무 좁게 볼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모두를 통괄할 수 있는 포괄적 용어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복잡계 경제학’이다. 복잡계 경제학은 단일의 통합된 이론이가리보다는 아직도 개발 중인 하나의 연구 프로그램 성격이 더 크다. 따라서 이 용어의 우산 밑에는 아직도 규명되어야 할 분야들이 많이 존재한다.
  • 복잡계 경제학적 접근의 중요한 한측면은 이들 다섯가지 영역이 수학적 정리만으로는 분석될 수 없다는 점이다. 복잡계 경제학은 광범위한 접근법들을 활용한다. 물론 정리, 균형 분석, 게임 이론, 그리고 기타 다른 전통 경제학적 접근 등도 여전히 그중 하나의 방법론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복잡계 연구자들은 새로운 계산 능력의 발전이 이루어지면 이를 자신들의 연구에 그대로 적용한다. 이에 더하여 복잡계 연구자들은 경제를 하나의 개방된, 역동적인 시스템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물리학, 생물학, 그리고 여러 다른 분야들로부터 수학적, 통계학적 기법들을 빌려 왔다. 마지막으로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실험 경제학과 경제적 데이터 분석의 발전을 십분 활용, 자신들의 이론에 대한 일단의 경험적 증거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복잡계 경제학과 전통 경제학의 구분: 5대 빅 아이디어

구분 복잡계 경제학 전통 경제학
역동성 균형과는 거리가 먼 개방적, 동태적, 비선형적 시스템 폐쇄적, 정태적, 선형적 균형 시스템
행위자 개별적인 모델링, 귀납적 경험 법칙, 불완전 정보, 착오와 편견의 제약, 시간에 따른 학습과 적응 집단적 모델링, 복잡하고 연역적인 계산에 의한 의사 결정, 완전한 정보, 착오와 편견 배제, 학습과 적응 필요성 없음(행위자는 이미 완벽)
네트워크 개별 행위자 간 상호 작용의 명시적 모델링, 시간에 따른 관계 네트워크의 변화 행위자들은 경매 등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상호 작용
창발성 거시와 미시 간 구분 없음. 거시 패턴은 미시적 행태와 상호 작용의 창발적 결과 미시와 거시 경제학은 별도의 분야로 존재
진화 차별화, 선택, 그리고 확산이라는 진화 과정이 시스템의 혁신을 가져다주고 질서와 복잡성의 증대를 가져옴 내생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창출하거나 질서 및 복잡성의 증대를 가져오는 메커니즘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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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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