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기원/ 창발성: 패턴들의 퍼즐

  • 1315년경 영국 경제는 나쁜 기후로 인한 2번의 연이은 흉작으로 바닥 없는 추락으로 빠져 들었다. 농부들은 물론 귀족과 왕실에서조차 음식을 구하기 어려웠을 정도였고, 영국 경제의 붕괴는 바로 대륙으로 퍼져나가 프랑스 파리에서 네덜란드 남서부까지 침체가 확산되었다.
  • 불경기(depression), 경기 후퇴(recession), 물가 상승(inflation) 등은 근대에 나타난 현상들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이 시작된 이래 반복 되어 왔다. 경제학에서도 똑같이 오래된 패턴들이 있는데, 1인당 부의 장기적인 성장, 부의 분배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패턴들이 그렇게 오래 됐다는 것은 경제의 작동에 깊은 뿌리를 둔 원인들, 즉 특정 시대의 기술, 정부 정책, 사업 행태 등과는 독립적인 그런 원인들의 결과임을 보여 주는 것이 분명하다.
  • 생산, 실업률, 인플레이션 등 경제 관련 시계열 데이터들의 그래프를 보면 데이터들이 곳곳에서 파동을 친다. 이런 요란한 파동에도 불구하고 그 데이터에는 패턴들이 있다.
  • 위 그래프를 보면 몇 가지 패턴을 읽을 수 있는데, 첫째, 장기적 성장 추세를 읽을 수 있다. –이 그래프는 로그를 취한 것으로 실제로는 기하급수적 곡선이다.– 그 다음 이런 장기적 성장 추세 위에는 세 가지의 낙타혹 또는 파고가 층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몇백 년간씩 지속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보다 짧은 등락의 사이클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들은 단지 몇 년간 이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이 그래프의 데이터는 그렇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니다.
  • 다른 시계열 자료들도 이와 비슷하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임의적인 것도 아닌 특성을 갖는다. 예컨대 미국 경기 사이클의 업앤다운(Up and Down)은 명백히 진동하는 패턴을 보여 주지만 그 진동의 빈도는 짧게는 18개월에서 길게는 9년에 걸쳐 있고, 진폭을 보면 완만한 침체들에서부터 깊은 침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은 불규칙적인 역사적 패턴을 이용하여 미래 경제의 행태를 예측하는데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경제학이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는 질문은 두 가지다. 경제 데이터의 패턴들은 왜 그렇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닌 특성을 갖는가? 또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패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뿌리 깊은 구조적 특성은 무엇인가?
  • 전통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이 질문에 답을 하려 노력 해왔다. 전통 경제학은 bottom-up 관점의 미시 경제학과 top-down 관점의 거시 경제학으로 구분 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미시와 거시 경제학이 별도로 분리 되지 않는게 이상적이라는데 동의한다. 미시적 행태에서 출발해 위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하고 거시 패턴으로 출발했으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이론 안에서 두 가지 접근법을 끊어짐 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아직 그런 열망을 달성하지 못했다.

경기 사이클은 꼬물거리는 젤리인가?

  • 신고전파 균형 모델은 저절로 춤을 추거나 파동을 치거나 진동하는 일이 없다. 그 모델은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질 때만 활기를 찾게 된다. 이렇게 균형 모델은 전파 과정을 따라 움직인다. 하나의 충격을 모델에 가하면 모델은 충격을 전달하며 하나의 산출 패턴을 생산한다. 이 모델에 대한 예로써 접시 위에 젤리 더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젤리 더미를 숟가락으로 두드리면 긴 진동이 젤리 전체로 전달되면서 다른 쪽으로도 전해져 젤리가 파동을 치거나 흔들린다. 이렇게 두드리는 것은 외생적 투입이고, 다른 쪽에서 파동 치는 것은 산출 패턴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통 경제학 문헌에서 이렇게 움직이는 모델들은 실제 경기 사이클 모델로 알려져 있다. 이 모델들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핀 키들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코타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다.
  • 그러나 전통적인 젤리 모델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전통 이론은 보통 외생적 투입을 임의적인 것 –최소한 예측이 가능한 패턴을 갖지 않은 것– 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젤리에 대한 투입이 정말 임의적인 것이면 그 산출 또한 임의적일 것이다. 신호는 전파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될 수 있지만 그 산출은 그래도 임의적일 것이다. 이제 숟가락으로 두드리는 투입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젤리의 파동을 그래프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산출 파동은 정확히 숟가락으로 두드린 투입과 시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즉, 두드리는 것이 젤리 전체로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진동이 더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번 두드리면 3-4개의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파동이 처음 두드린 것과는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여전히 임의적이다. 젤리 혼자서는 임의적이고 무질서한 투입을 취하거나 복잡한 질서를 추가할 수 없다. 젤리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이다. 두드리기를 멈추면 젤리는 안정을 되찾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젤리가 진실로 질서 있는 파동을 만들어 낼 유일한 방법은 두드리기라는 투입도 질서 있게 이루어지는 경우다. 만일 SOS를 위한 모스 코드를 젤리에 집어 넣으면 산출 파동은 더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SOS 신호의 구조를 담게 될 것이다.
  • 따라서 실제 경기 사이클에 대한 미시 경제학의 접근은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임의의 데이터를 집어 넣으면 그 산출물은 실제 세계와 별로 비슷하지 않다. 또는 어떤 구조를 갖는 데이터를 집어 넣은 뒤 모델에 어떤 효과를 추가함으로써 산출물이 그렇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닌 실제 데이터의 특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해당 사이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그 설명을 외부 요인들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이제 신케인지언

  • 경제학의 다른 측면, 거시 경제학이 해왔던 일 쪽으로 가보면 이와는 다른 접근법을 볼 수 있다. 거시 경제학자들은 반드시 데이터로 시작해 이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거시 경제학 이론의 역사를 통틀어 그렇게 규칙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닌 특성을 가진 경제를 거시 경제학자들이 신뢰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통적인 미시 경제학의 정통성에서 물러서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시 경제학자들은 좀 다른 방향에서 자신들의 철길을 놓아야 했다.
  • 합리적 균형이라는 집단 또는 조직으로부터의 일탈과 관련하여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전기는 존 케인스가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썼을 때였다. 1930년대 동안 케인스는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불균형 사건 중 하나인 대공황을 목격했다.
  • 신고전파 미시 경제학 이론은 균형을 이룬 경제는 완전 고용의 경제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경제가 그 조건에서 어떻게 이탈할 수 있는지, 또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아야 했다. 케인스가 발전시킨 이야기, 즉 일반 이론은 이에 대한 하나의 동태적인 스토리였다.
  • 어떤 이유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섰다고 생각해 보자. 예컨대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자연재해 또는 전쟁 등으로 말이다. 소비자들과 사업가들은 보다 보수적으로 변하고, 덜 쓰고, 현금에 보다 집착하기 시작한다. 특정 시점에 경제에 있는 현금의 양은 고정적이기 때문에 이런 행태들이 나타나면 유통되는 현금은 줄어 든다. 이는 농부, 제조업자, 상점 주인 그리고 다른 생산자들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스스로 소비도 줄이고 투자도 줄인다. 그 결과 또 누군가의 소득이 줄어든다. 결국 소비와 투자의 급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이는 또 다시 불안감으로 이어져 소비는 더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면 급감하는 소비와 투자, 상승하는 실업률 그리고 소비자들과 사업가들 사이에 점증하는 불간감이라는 안 좋은 방향으로의 악순환이 가속화 된다.
  • 화폐 공급의 이런 위축은 종국적으로 자정 능력을 갖는다고 균형 경제학은 말한다. 즉, 물가와 임금은 화폐 유통량의 감소를 반영해 떨어지고 결국 모든 것은 정상적인 완전 고용 균형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대공황 때 물가와 임금은 분명히 떨어졌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은 소비를 그전보다 훨씬 덜했고 –디플레이션 환경에서 돈은 미래에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그 결과 상황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확산되어 갔다. 케인스는 이런 동태성으로 인해 경제가 아주 오랜 기간 균형에서 벗어난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를 완전 고용으로 되돌리려면 정부가 화폐를 경제 시스템에 투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의 투입으로 소비 하락을 막고, 실업률 상승으로 멈추게 하면 신뢰가 다시 회복돼 악순환 사이클을 선순환 사이클로 역전 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 전후 수년간 서양 정부들은 케인스의 이런 아이디어를 널리 채택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수십 년 동안의 경제 사이클을 보면서 케인스의 아이디어는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 이 논쟁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정점에 달했는데, 당시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가 주창했던 정부 지출과 같은 것으로는 장기 성장에 이르는 게 아니라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의 이 주장은 1970년대 고인플레이션, 저성장 기간 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프리드먼의 시카고 대학 동료 로버트 루카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케인스 이야기의 동태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경제가 나쁜 쪽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며, 이에 따라 자신들의 행태를 스스로 조정해 경제를 다시 완전 고용 균형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합리적인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은 개입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이미 간파하여 정부의 조치를 예상하고 그 정책의 효과를 무력화 시키는 쪽으로 행동한다. 그리 되면 결국 정부 개입은 불경기를 막는데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루카스의 이론은 수학적으로 근사했고 그는 이 연구로 199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더 강력한 이런 합리성 버전은 수많은 전통 경제학자들의 고지식함을 맘껏 이용한 것이다.
  • 루카스의 연구에 이어 UC 버클리 대학 교수이자 2001년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는 허버트 사이먼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런 주장을 내놨다.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토마토를 사면서 정부의 미래 재정 적자를 추정하려고 노력한다는게 실제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데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소비해야 하는데,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얘기다. 애커로프는 귀납적인 합리성 모델(inductively rational model)을 정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을 보여 주었다. 즉, 소비자와 생산자가 완전 합리성에서 약간 모자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정확히는 사람들이 결정을 어떻게 내리든 상관 없이– 케인스가 말한 동태성이 작동되고, 그 결과 경제가 침체로 빠져 드는 데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애커로프는 또한 시간 지체가 경제의 동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가격과 임금의 고착성과 즉각적인 조정을 할 수 없는데서 오는 시간 지체에 주목했다. 그의 모델은 또 정부가 시장에 유동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악순환에 반작용을 가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애커로프의 연구는 에드먼드 펠프스, 올리비에 블랜차드, 그레고리 맨큐와 같은 인물들의 연구와 합쳐져서 오늘날 ‘신케인지언 경제학’의 영역으로 발전했다. 신케인지언 경제학이 경제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좀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정부와 월스크리트 등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자율과 재정 적자 같은 요소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 21세기 초에 전통 경제학은 우리가 경제에서 보는 진동 패턴들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경쟁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미시 경제학에 기초한 ‘실제 경기 사이클 이론’은 합리적 균형 모델 관점에 의지하며 경제를 외부 충격을 단지 전파하는 것으로 본다. 이 이론 하에서 경제적 진동의 핵심 원인들은 외부적인 정치 사건, 기술 변화, 그리고 기타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경기 사이클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 외생적 요인들상의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역사 내내 왜 그렇게 끈질기게 반복되는지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 주지 못한다.
  • 거시 경제학에 토대를 둔 신케인스주의는 전통적 정통성에서 뒤로 물러나 완전하지 않은 합리성 동태성, 그리고 시간 지체 등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측면에서 신케인스주의는 복잡계 경제학을 향해 한 발짝 나간 것이다. 그러나 신케인스주의는 균형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되었다. 그 결과 이론의 실증적 성공은 지금까지 제한적이었다.

모아 놓으면 다르다

  •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 행위자들의 미시적 상호 작용이 어떻게 거시적 구조와 패턴을 유발하는지 논의한 적이 있다. 예컨대 슈거스케이프에서 매우 단순한 행위자들조차 그 상호 작용이 경제 성장과 소득 불평등 같은 패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복잡계 경제학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업적은 행위자 네트워크, 진화의 이론에서 시작해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거시적 패턴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론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어떠할지 그 희미한 빛이라도 볼 수 있게 됐다.
  • 그 이론은 거시 경제학적 패턴을 ‘창발적(emergent)’ 현상들, 다른 행위자나 환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생겨난 시스템의 전체적 특성들로 본다. 복잡계 경제학 역시 경기 사이클, 성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경제적 패턴들을 시스템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내생적으로 일어나는 창발적 현상들로 본다. 복잡 적응 시스템들은 많은 형태의 시스템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테마적인 창발적 패턴들을 갖고 있다. 이 패턴드을 분석하면 그런 시스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그런 테마적인 세 가지 패턴, 진동, 단속 균형, 거듭제곱의 법칙 등을 살펴볼 것이다.

진동: 맥주 세계의 호황과 불황

  • 앞 뒤로 움직이는 시계추, 기타 줄의 떨림, 심장 박동 등은 모두 진동 시스템의 사례다. 경제는 경제 전반의 경기 사이클, 산업 차원의 상품 사이클, 그리고 보다 장기에 걸친 파동 변황에 따라 진동한다.
  • 진동은 복잡 적응 시스템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예컨대 생물의 생태계에서 개체 수는 진동의 패턴을 따른다. 20세기 초반 우크라이나 화학자 알프레드 로트카와 이탈리아 수학자 비토 볼테라는 생태계에서 약탈자와 먹잇감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발생하는 진동을 묘사하기 위해 유명한 모델을 만들었다. 예컨대 여우와 토끼의 개체 수를 생각해 보자. 토끼의 개체 수가 증가하면 여우는 보다 많은 토끼를 잡아 먹을 수 있으므로 여우의 개체 수는 증가하고 그러면 잡아 먹히는 토끼가 많아지므로 토끼의 개체 수는 다시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토끼의 개체 수가 감소하면 먹잇감이 줄어드므로 결국 여우의 개체는 줄어들고 이에 따라 토끼의 개체 수는 다시 늘어난다. 여우와 토끼의 개체 수 진동은 이렇게 일어난다. 이런 동태적 시스템은 결코 정지하지 않고 무한히 진동한다. 로트카와 볼테라 모델에서 진동을 초래하는 외생적인(exogenous) 충격은 없다. 부침(ups and downs)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에서 나온다.
  • 그렇다면 경제 시스템의 구조에서 어떻게 내생적인 진동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경제 시스템을 내생적으로 진동하게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1950년대 MIT의 제이 포레스터는 ‘맥주 유통 게임’으로 불리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과 동태적인 구조를 결합할 경우 이것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통하여 간단한 경제 시스템에서 진동을 만들어 내는지를 증명했다.
  • 먼저 네 명의 지원자들에게 상품의 제조와 유통을 시물레이션 게임을 시킨다. 네 명의 학생들은 각각 양조 업자, 유통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의 역할을 맡는다. 제조업자, 유통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로 구성된 공급 체인은 물론 많은 산업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구조이다. 이 게임에서 맥주 소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없다. 소비자 수요는 소매업자 옆에 엎어 놓은 카드 더미 형태로 제공된다.
  • 이 게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각 참가자는 맥주 상자들을 재고로 갖고 있다. –이는 게임 점수판에 칩으로 표시된다.– 매회 초기에 소매업자가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으면 –예컨대 4상자– 옆의 카드 더미에서 카드를 꺼내어 뒤집은 뒤 도매업자에게 주문을 넘긴다. 도매업자는 소매업자로부터 온 주문을 보고 유통업자에게 넘긴다. 유통업자는 이 주문을 양조업자에게 제출한다. 각자는 일단 주문을 받으면 맥주 상자를 실어 보냄으로써 주문을 충족한다. 양조업자는 유통업자에게 실어 보내고, 유통업자는 도매업자, 그리고 도매업자는 소매업자에게 각각 실어 보낸 후 소매업자는 맥주를 고객에게 판다. 주문 흐름은 고객에서 양조업자로 공급체인을 따라가지만, 맥주 흐름은 그 반대다. 주문이 제출되고 맥주가 공급되면 그 다음 회의 게임이 시작된다.
  • 한편 참가자들은 보유한 재고에 대해 상자당 0.5달러를 지불한다. –맥주를 쌓아서 보관하는 비용– 그리고 맥주의 재고가 바닥나는 경우에는 상자당 1달러를 내야 한다 –화난 고객과 판매 손실을 감안– 따라서 참가자들은 재고가 바닥나는 일 없이 주문을 충족 시키기에 충분한 재고를 보유하려고 한다. 비용의 비대칭성 때문에 –추가적인 재고 비용보다 부족 비용이 더 크다– 플레이어들은 약간의 추가적 재고를 가지려는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게임의 승자는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말은 쉽게 들리지만 몇 번의 곡절 또는 변화가 일어난다. 실제 생활에서처럼 맥주를 주문하는 시점과 주문된 맥주를 받는 시점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다. 예컨대 맥주를 생산해서 트럭에 실어 보내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문을 내는 시점과 그것이 처리되는 시점 간에도 조그만 시간 지체가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주문을 받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신용을 체크하는 등의 일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문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떤 상호 작용도 참가자들 간에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양조업자는 고객 수요가 소매업자 쪽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모른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유통업자들이 보내온 주문이다.
  • 이런 시간 지체들은 상황을 좀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령 당신이 유통업자인데 도매업자로부터 큰 주문을 받는다고 하자. 우선 당신이 보유한 재고에 갑작스러운 감소가 일어난다. 그러면 당신은 그 재고를 채워넣기 위하여 제조업자에 큰 주문을 낸다. 그러나 맥주를 받으려면 몇 회가 걸릴 것이고, 그 사이 또 큰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다음에도 높은 수요가 이어질 것을 예상해 아예 주문을 더 크게 내야 할까? 그러나 일시적인 하락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자칫 2회 뒤에는 당신의 재고가 맥주로 넘칠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들의 행동과 행동에 대한 반응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는 경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 이 게임은 정확히 균형에서 출발한다. 각 참가자들은 4상자의 맥주를 주문받고 정확히 그만큼을 실어보낸다. 수송 파이프라인 또한 꽉 찬 채로 출발, 각 참가자는 게임 1회에서 정확히 4상자의 맥주를 접수한다. 따라서 공급 체인 전체에 걸쳐 재고 수준은 그대로다. 그 이후부터 참가자들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 얼마나 주문할지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참가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소비자 덱에 쌓여 있는 첫 카드들은 4개를 유지한다. 참가자들에 따라서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 회피적이냐에 따라 4개보다 좀 더, 혹은 좀 덜 주문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회에 이르러 소비자 수요가 4개에서 8개로 갑자기 늘어난다. 참가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소비자 수요 수준은 앞으로 남은 게임 동안 8개로 유지될 것이다. 한 번에 주문이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주문의 증가는 공급 체인을 따라 예상치 못한 변화로 이어진다. 전통 경제학에 따르면 수요 측면에서 외생적인 추격이 발생하면 참가자들은 몇 번의 조정 후에 새로운 균형으로 옮겨 가게 돼 있다. 일단 균형에 도달하면 모든 참가자들은 8개를 주문하고 그 결과 각자의 재고도 그대로 유지된다.
  • 그러나 실제 사람들과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주문의 갑작스러운 점프로 재고 수준이 떨어지자 초과 주문을 하는 등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초과 주문의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전달되는 과정에서 확대된다. 수요가 4개에서 8개로 늘어나는 것에 놀란 소매업자는 재고를 다시 채워 넣을 필요를 느낄 것이고, 따라서 12개를 주문한다. 소매업자의 주문이 12개로 늘어나는 것을 본 도매업자는 16개를 주문한다. 그런 식으로 파장이 이어진다. 이런 넘치는 행동 외에도 참가자들은 주문과 실제 수령 상의 시간 지체를 적절히 고려하지 못한다. 그 결과 소매업자는 지난 회에 12개를 주문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재고는 계속 바닥이다 그는 12개를 더 주문한다. 이런 식의 불가피한 결과가 초래되면서 결국 많은 양의 맥주가 공급 체인을 따라 다시 흘러들어가기 싲가하고 각 참가자들은 재고의 늪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 이런 과잉 반응 사이클은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일부 참가자들은 주무을 줄이기 시작하고 심지어 일부는 아예 주문ㅇ르 하지 않기도 한다. 과잉 주문과 과소 주문의 진동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이에 따라 가상의 맥주 사업도 매우 값비싼 부침의 사이클을 겪는다.
  • MIT 교수 존 스터먼과 그 동료들은 세계 여러 곳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맥주 게임을 수백 번이나 했는데, 여기에는 MBA 학생부터 사업가들, 임의로 선정된 사람들, 전문적인 재고 관리자들, 고도로 합리적인 경제학자 등이 포함되었다. 결과는 언제나 같았는데, 거친(wild) 진동의 파장 보였다. 전통 경제학 이론은 참가자들이 완전하게 합리적일 경우 거친 진동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게임은 한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말끔하게 이동한다는 의미다. 실험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이론적으로 합리적인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실제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는 비용은 평균적으로 완전 합리적인 비용의 10배에 달한다.
  • 어떤 종류의 행태로 인해 그렇게 단순한 실험에서 거친 진동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인가? 스터먼은 참가자들이 활용한 의사 결정 규칙을 통계적으로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이 규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단 닻을 내리고, 그 다음 조절한다”는 행태에 기반을 둔 것이다. 참가자들은 재고 수준을 살피고, 시간 지체의 효과를 고려해 자신의 미래 수요를 연역적으로 계산하기 보다는 단순히 주문과 재고 수준에 대한 과거의 패턴을 보고 귀납적으로 추론해 정상적으로 보이는 하나의 패턴에 닻을 내린다 –시선을 고정한다는 의미다– ‘IF, THEN’ 규칙이 논리적으로 그들을 정상적인 패턴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므로 어떤 참가자는 4상자의 맥주를 정상적인 주문 패턴으로 보고 상황이 달라지면 이를 중심으로 조절하려고 한다. 예컨대 “재고가 떨어지고 있다. 더 주문해!” 이런 식으로 의사 결정을 내린다. 시간 지체가 있는 환경에서는 일단 닻을 내리고 조절한다는 규칙이 개인들을 과잉 반응하도록 만들고 그 결과 사이클 행태라는 ‘창발적 패턴’이 발생한다.
  • 맥주 게임은 젤리와 같은 전파 과정이 아니다. 물론 이 게임에도 하나의 회생적인 충격을 받는다. 즉, 주문이 4개에서 8개로 증가하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번의 두들김을 받은 젤리와 달리, 맥주 게임에서는 진동이 시작되면 시스템이 결코 균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맥주 게임에서 진동의 궁극적인 원천은 외부적인 충격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 이것은 단지 시스템을 불할하게 한다는 것 뿐임– 참가자들의 행태와 시스템의 반응(feedback)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외생적인 동력을 전파하는게 아니라 내생적으로 동력을 창출한다.
  •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개별 행태상의 예측불허 변화들이 모이면 거시적 차원에서는 크고, 창발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앞의 사례는 “일단 닻을 내리고 나서 조절한다” 는 규칙이 어떻게 진동을 발생시키는지 보여 준다. 그렇다면 거시 경제의 회전은 훨씬 복잡한 차원의 맥주 게임과 같은 것이 만들어 낸 결과인지 물을 것이다. 경제는 결국 공급 체인, 재고, 시간 지체들로 가득 차 있다. 거시 경제의 실제 진동의 원인은 가지 각색이지만 맥주 게임이 주는 교훈은 사이클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서 활용하는 귀납적 규칙들이 경제 시스템의 동태적 구조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 경제가 거대한 맥주 게임과 같은 것이라면 이것이 던지는 한 가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금리 인하, 재정 지출 증가와 같은 표준적인 해법들은 사이클의 근원을 다룬다기 보다는 단지 그 증상을 다룬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기 사이클을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지만 –실은 주기적인 경기 위축기가 오면 비효율적인 자원의 사용을 씻어 내고 혁신을 부추기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사이클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우리가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 사이클의 효과를 감소 시키고자 한다면 경제 시스템 자체의 구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실 경제의 동태적 구조는 명시적인 정부의 개입이 없다고 하더라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맥주 게임의 사이클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간 지체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가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1960년대 시작된 정보 기술 혁명은 이 두 가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경기 사이클 변동성은 1959년 이후 계속 줄어 왔으며, 특히 1980년대 들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빠르고 값싼 컴퓨터의 광범위한 확산과 정확히 일치한다. 컴퓨터 덕분에 기업들은 신속한 주문 처리, 저스트인타임(just-in-time), 재고 관행 채택, 생산자와 부품 등 공급 체인 간 전자적 연결이 가능해졌다. 줄어든 사이클 변동성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다른 요인들에 비해 기술 및 산업 관행의 변화로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맥주 게임이 변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속 균형: 핵심 기술이 있는가?

  •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뒤 한 세기 동안 생물학자들은 진화는 위엄이 있고 선형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평단한 종의 형성과 소멸의 패턴을 보인다고 가정했다. 그 뒤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굴드와 나일스 엘드리지는 1972년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기존의 이런 관념을 뒤집었다. 그들은 화석 기록은 진화가 평탄한 경로를 결코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히려 진화는 오랜 기간 동안의 정체 상태와 더불어 폭발적인 혁신과 대량 소멸 기간들이 곳곳에 가미된 그런 과정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5억 5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에 터진 진화 혁명 때 다세포 생물의 지구 지배가 일어났다. 오늘날 지구에 있는 주요 종족들의 대부분이 이 당시 탄생했다. 그 후 약 2억 4,500만 년 전, 후기 이첩기 동안 굴드가 말하는 ‘조상의 대소멸’이 일어났다. 지구 위 해양 종족들의 96%가 사라졌다. 굴드는 이와 같이 고요와 폭풍이 교차하는 패턴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속 균형(단선적, 불연속적 균형)’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기술적으로 그렇게 정확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진화는 수학적 의미에서 균형 상황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굴드가 이 용어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정적 혹은 정체의 기간들에 변화의 기간들이 가미된다는 그런 의미였다고 스스로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이 고착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 단속 균형의 패턴은 생물학적 진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눈사태에서부터 주식 시장의 폭락에 이르는 다른 복잡 시스템에서도 나타난다. 복잡계 연구자들은 1980년대부터 이런 패턴들과 그 기원들을 쭉 연구해 오고 있다. 이 연구의 결론 중 하나는 이런 행태를 가져오는데 가장 중요한 기여자는 바로 시스템에서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네트워크 구조라는 점이다. 산타페 연구소의 던컨 와츠와 마크 뉴먼은 많은 형태의 네트워크들이 매우 밀도 있는 연결과 매우 듬성듬성한 연결을 서로 혼합해 놓은 구조를 향해 자기조직화 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인도 과학연구소의 산제이 제인과 네루 센터의 산디프 크리슈나는 생물 생태계에서 단속 균형이 출현한 밑바탕에는 그런 네트워크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 제인과 크리슈나는 컴퓨터 창조물들의 진화 생태계에 관한 가상 실험을 고안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에서 임의로 어떤 종들을 제거할 경우 대개는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러나 이따금 어떤 종들의 경우는 이를 제거하면 일련의 연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대량 소멸로 이어졌다. 이런 종들은 먹이사슬과 생태적 지위의 경쟁 측면에서 다른 종들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종들을 ‘핵심 종’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아메바 같은 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종은 다양한 곤충들과 여과 섭식(filter feeding) 연충의 먹이 원천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다양한 새들과 포유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새들과 포유동물들은 여러 식물의 종들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먹이사슬 밑바탕에 있는 아메바 개체 수에 갑작스러운 감소가 발생하면 그 파장은 생태계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
  • 생태계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인과 크리슈나는 단속 균형에는 세 가지의 뚜렷한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임의의 국면 (random phase)이다. 네트워크가 퍼져 나가지만 특정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임의의 여러 변화들이 일어나지만 이 단계에서는 큰 효과를 수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국면은 균형의 기간이다. 그 뒤 어떤 혁신이 일어나면서 네트워크는 성장 국면으로 바뀐다. 국면 전환을 가져오는 이런 혁신은 양의 되먹임 고리를 통해 다른 혁신들을 촉진 시킨다. 혁신이 추가적인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 생태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먹이와 생태 지위 네트워크에 질서가 형성된다. 이런 성장 국면은 계속 이어지는게 아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성장 국면이 완화되면서 조직화된 국면이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변화들이 통합되고 네트워크는 고도로 구조화된다. 그리고 핵심 종들은 상호 작용 네트워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마치 항공기의 비행 경로를 그린 지도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도시처럼 말이다. 네트워크는 조직화된 국면에서 한동한 계속해서 끓기만 한다.(균형의 또 다른 기간이다.) 그러나 그 뒤 어떤 혁신이나 돌연한 변화가 핵심 종들에 타격을 가하는 일이 발생한다. 핵심 종에 영향을 주는 변화는 전체 조직 구조로 퍼져 나가고 네트워크는 멸종의 파고 속에서 무너진다. 이런 과정이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임의의 국면이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성장 국면이 오는 식으로 반복된다.
  • 많은 관찰자들은 기술 혁신은 정적과 폭풍이라는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중에는 카를 맑스와 요제프 슘페터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기술 혁신은 제한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1957년 GE는 석영 할로겐 램프를 발명했다. 이 기술은 1980년대 이르러 가격이 매우 싸졌고, 그 결과 할로겐 전구는 대중적인 소비 제품이 되었다. 할로겐 전구는 표준 백열광 전구에 비해 하나의 중요한 발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사회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처음에는 선행 기술에 대해 점진적인 발전에 불과했지만 커다란 영향을 몰고 온 것들도 있다. 1901년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영국 콘월에서 대서양 건너편 캐나타의 뉴펀들랜드로 전파를 이용해 세 번의 모스 코드 신호를 보냈다. 마르코니의 발명은 유선 전신에 비해 보다 싸고 편리한 대안 정도의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발명은 인상적인게 아니었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의 인용에 따르면 앵글로 아메리칸 케이블 회사는 이 신기술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부했다. “무선 전신 기술의 가능성은 상업적으로 너무 멀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낙관한다.” 라디오는 그것만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뒤 TV, 마이크로파 통신, 레이더, 이동 전화, 무선 인터넷의 발명을 유도했다. 마르코니의 발명은 대중문화, 오락, 정치, 군사 전략에 이르기까지 눈사태 같은 변화를 불러왔다.
  • 지난 수년에 걸쳐 기술 개발을 하나의 진화 과정으로 보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왔다. 이 연구에서 제기된 두 가지 중요한 관찰은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단속 균형과 관련이 있다. 첫째, 어떤 기술도 독립적으로 개발되지 않는다. 모든 기술은 다른 기술들과의 관계에 의존한다. 예컨대 이동 전화의 발명은 라디오 기술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기술과 코딩 기술 등 다른 많은 분야를 활용했다. 이러한 상호 관계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안니라 경제적인 것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그 주변에서 같이 성장한 경제적 연계망에는 철강에서부터 석유, 호텔, 패스트푸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산업들이 포함돼 있다.
  • 둘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킴 클라크가 지적했듯이 기술은 본질적으로 모듈적이다. 예컨대 자동차는 엔진, 변속기, 차체 등으로 만들어 졌다. 이런 모듈들이 조립돼 만들어진게 이른바 아키텍처(architecture)다. 모듈의 혁신은 새로운 아키텍쳐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마이크로 칩으로 PC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후속적으로, 연관되는 혁신들을 촉진하는 등 큰 파급 효과를 갖는 경우는 아키텍처 혁신이다.
  • 우리는 제인과 크리슈나 모델에서 단속 균형 패턴을 가져오는 중요한 특징 두 가지를 알았다. 상호 작용을 하는 네트워크와 개별 노드의 촉매 효과다. 11장에서 기술 연계망이 어떻게 연쇄적 변화와 연관되면서 단속 균형이라는 창발적 패턴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어떤 특정 기술들은 이 연계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살펴볼 것이다.

거듭제곱 법칙: 지진과 주식 시장

  • 참고) 용어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을 다른 곳에서는 멱함수 법칙이라고도 한다.
  • 참고) 랜덤 워크란 한 지점에서 출발한 사람이 일직선 위를 1회에 일정한 거리 a만큼 멋대로 움직일 때 n회 걸음을 옮긴 후 출발점으로부터의 거리 r와 r+dr 사이에 있을 확률을 구하는 문제. 난보(亂步) ·취보(醉步)라고도 한다.
  • 위 그림은 예일 대학의 수학자 베노이트 만델브로트의 연구에서 따온 것이다. 하나는 1959년부터 1996년까지 IBM의 주식 가격에 로그를 취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랜덤워크 데이터이다 –이 랜덤워크는 그 안에 하나의 성장 추세를 갖고 있다.– 이 그래프는 매우 비슷해 보여서 구분을 해 놓지 않으면 어느 것이 IBM 주식이고 어느 것이 랜덤워크인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랜덤워크는 100년에 걸쳐 금융이론의 핵심이 되어 왔다.
  • 그러나 절대적인 가격 수준이 아닌 특정한 날에 주식 가격이 얼마나 올라가고 내려갔는지를 표현한 위 그림에 의하면 두 그래프는 매우 다르게 보인다.
  • IBM 주식 그래프에는 뾰족한 곳들이 군데군데 있는데, 다시 말해 가격이 크게 움직인 기간과 작게 움직인 기간들이 시간에 따라 집적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 아래의 랜덤워크 그래프는 가격이 크게 움직인 기간과 작게 움직인 기간들이 사간에 따라 임의적으로 혼재한 양상으로 모호해 보인다. 이렇게 보면 IBM 데이터는 모호한 랜덤워크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몇 연구자들은 주식 가격이 랜덤워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 군데군데 집적 모양의 IBM 패턴은 가격의 변동성이 시간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속균형이 보여주는 폭풍-고요-폭풍이라는 형태의 연속과 유사하다. 랜덤워크 그래프에서는 가격의 움직임이 다른 것에 비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없지만 IBM 데이터는 다른 것에 비해 높이 치솟은 것들도 있고 푹 꺼진 것들도 있다. 무엇이 이렇게 극적인 가격 움직임을 초래하는 것인가?
  • 전통적 경제학에서는 새로운 뉴스가 시장에 전달될 때 주식 가격이 변동한다고 말한다. 전통 이론의 예측 중 하나는 가격의 큰 움직임은 예상치 못한 빅뉴스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커틀러, 제임스 포터바, 래리 서머스는 1989년 한 연구에서 이런 예측을 검정해 봤다. 그는 1941년부터 1987년까지 가장 변동이 컸던 미국 주식 시장 움직임을 살펴보고 그 당시의 신문을 쭉 훑어 시장의 큰 움직임과 일치하는 뉴스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러나 실제로 주식 시장의 대폭락 시점 앞뒤로 그렇게 특이한 뉴스들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7년 S&P 500 지수가 20% 폭락한 것에 대한 ‘뉴욕 타임스’의 설명은 “달러 가치 하락과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 였으나 이것은 매번 제기되던 이슈이지 새로 불거진 이슈는 아니었다. 1946년 9월 3일 또 다른 폭락이 있었던 날, 신문의 기사 제목은 “가격이 급락할 근본 이유가 없다” 였다.
  • 커틀러와 그의 동료들은 뒤집어서 살펴보기도 했다. 즉, 해당 기간 동안 큰 뉴스들을 조사해서 그 당시 주식 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았다. 예컨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을 때 주식시장은 단지 4.4% 떨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평화적으로 해결 됐을 때 시장은 단지 2.2% 올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왜 그렇게 큰 뉴스가 시장의 변동성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관찰에서 얻을 수 있다. 주식 가격 움직임은 랜덤워크를 많이 닮은 게 아니라 이와는 다른 현상, 즉 지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 1950년대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 출신 지리물리학자들인 베노 구텐베르크와 찰스 리히터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도서관에서 지진을 다룬 연구들을 죄다 찾아보았다. 이들은 얼마나 많은 지진들이 여러 가지 강도별로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예컨대 규모 2의 지진은 규모 4의 지진보다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더 큰가와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지진 자료들을 각 구간별로 나누어보았다. 예컨대 규모 2.0~2.5, 2.5~3.0 등으로 나누고 분포 곡선을 그려 보았더니 슈거스케이프의 소득 자료 그래프와 비슷하게 나왔다.
  • 가장 잘 알려진 분포는 종형(bell curve)이다. 이는 ‘정상 분포’, ‘가우스 분포’ 등으로 불린다. 만약 우리가 어떤 모집단에서 여자의 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 분포를 그려보면 종 모양의 곡선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의 키는 150-180cm 사이에 존재하며 키가 과도하게 크거나 작은 여자들은 매우 적다는 얘기다.
  • 위 그림은 구텐베르크와 리히터가 그린 그래프에 로그를 취해 표현한 것이다. 이 그래프는 지진이 클 수록 그 빈도 수는 적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진 에너지가 2배가 될 경우 그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1/4로 떨어진다. 그 결과 그래프는 오른쪽으로 가면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물리학자들은 이런 관계를 거듭제곱의 법칙 (power law)라고 부른다. 분포가 지수 또는 거듭제곱을 갖는 방정식으로 표현된다는 이유에서다.
  • 거듭제곱의 법칙은 여러 광범위한 현상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생물들의 소멸 사건들의 규모, 태양 표면의 폭발 강도, 규모별 도시 순위, 교통 혼잡, 면사의 가격, 전쟁에서의 사망자 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섹스 파트너의 분포 등이 그렇다. 거듭제곱 법칙은 진동과 단속 균형과 더불어 복잡 적응 시스템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 지진이 처음으로 발견된 거듭제곱 법칙은 아니다. 사실 거듭제곱 법칙의 첫 발견은 경제학에서였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빌프레도 파레토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이 거듭제곱 법칙인지 몰랐다. 소득이 1% 증가할 때 그에 해당되는 가구 수의 감소 폭은 1.5%였는데, 양 축에 로그-로그를 취하면 직선이 나온다.
  • 거듭제곱 법칙은 1960년대 경제학에서 다시 살짝 나타났다. 베노이트 만델브로트가 시카고 상품 거래 시장에서 면사 가격의 변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다. 만델브로 만델브로트는 데이터를 그래프로 그렸을 때 면사 가격 변동이 IBM 주식 가격처럼, 전통 이론이 예측하는 것보다훨씬 더 큰 움직임들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게다가 그는 이 가격 변동에는 어떤 자연적인 시간 척도가 없는 것 같다는 점도 발견했다. 그래프의 한 부분, 가령 한 시간 구간을 잘라 하루 길이로 늘렸더니, 어느 그래프가 시간별 데이터이고 어느 것이 1일 데이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금, 밀 등 다른 상품 데이터들도 조사했는데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 바로 거듭제곱 법칙이었다. 만델브로트의 발견을 경제학자들은 무시했는데, 어떤 이들은 그가 수학자였기 때문에, 또 다른 이들은 그의 연구 결과가 전통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 파레토와 만델브로트가 했던 발견의 놀라운 특성은 1980년,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조명 받았다. 경제를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 보는 아이디어들이 나오면서 거듭제곱 법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촉발되던 때였다. 물리학자들은 자연 시스템에서 거듭제곱 법칙을 분석해 본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경제물리학자(econophysicist)들이 주식 시장 데이터들 쳐다보기 시작했다.
  • 그들 중 보스턴 대학의 진 스탠리는 흥미로운 계산 결과를 내놨다.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이 주장하는 대로 랜덤워크를 따른다면 1987년 블랙 먼데이 대폭락이 일어날 확률은 10-148% 였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플랑크(plank) 길이가 10-33cm 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얼마나 작은 값인지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임의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다가 그런 대폭락을 겪는 경우는 엄청나게 일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가우시안 분포나 랜덤워크는 표준 편차 5보다 더 큰 변동을 거의 겪지 않는다. 그러나 주식 시장 대폭락과 같은 데이터를 보면 표준 편차 5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큰 편차를 갖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스탠리와 그의 동료들은 모든 주식 거래를 대상으로 1994년부터 1995년까지 5분마다 표본 추출을 했다. 대상은 미국에서 가장 큰 1천 개 기업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4천만 개나 되는 대량의 데이터를 컴퓨터를 통해 고속으로 처리하기 싲가했다. 주식 가격의 변동은 분포의 꼬리 부분에서 거듭제곱을 따른다는 게 분명했다.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이들은 1962년에서 1996년까지 35년간에 걸쳐 6천 개의 미국 주식들을 대상으로 3천만 개의 1일 데이터를 조사했다. 이런 기록들 역시 거듭제곱 법칙을 보여주었다. 전통 경제학자는 스탠리가 조사했던 데이터들은 단기간인 5분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비가우스적(non-Gaussian) 모습이 나왔을 뿐 좀 더 긴 기간을 대상으로 하면 가우스적으로 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스탠리는 5분에서 6,240분 –16일을 넘어서면 어떤 강한 결론을 내는 데 충분한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 에 이르는 기간을 세 번 –길이 순으로– 변화시켜 보았다. 기간이 길면 좀 더 가우스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듭제곱 법칙을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 이런 연구 결과는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변동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시장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를 경우 검은 월요일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0-5에 가까워진다. 이는 언제인지 몰라도 100년에 한 번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 놀랍게도 다른 경제적 데이터에서도 거듭제곱 법칙은 분명히 나타났다. 로버트 액스텔은 1997년 미국 센서스 데이터를 사용하여 1명 이상을 고용한 550만개 기업을 분석했는데, 종업원 수로 측정한 기업드르이 규모 또한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 다는 점을 발견했다. 스탠리와 연구 팀은 국가의 GDP 성장은 물론이고 기업의 매출 성장도 마찬가지로 그 규모가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주식 시장은 왜 변동성이 큰가?

  •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변동성이 큰 이유는 무엇인가? 초기 산타페 연구소에서 경제학 미팅에 참석했던 물리학자인 도인 파머와 그의 연구 협력 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믿고 있다. 요점은 주식 거래소에서 우리는 두 가지 형태의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시장가 주문 –시세대로의 매매 주문 또는 성립가 주문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다. 거래자가 이용 가능한 가장 좋은 가격에 주식 X를 바로 매수하거나 매도하라고 말하는 주문이다. 또 하나는 제한 주문이다. 거래자는 가격이 100달러 떨어지면 주식 X를 매수하라고 하고, 반대로 가격이 100달러 오르면 주식 X를 매도하라고 말한다. 이 경우 100달러는 거래자가 거래를 준비하는 제한선이다. 시장의 모든 주식에 대해 제한 주문을 기록한 제한 주문 장부가 있다.
  • 제한 주문 장부는 아직 충족되지 못한 주문들을 위한 일종의 재고 장치와 같은 것이다. 거래자가 주식 X에 대해 100달러에 매수 제한 주문을 내고 현재 가격이 110달러라면 이 주문은 가격이 100달러로 떨어져 매수 주문이 이루어지거나 주문이 취소될 때까지 이 원장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제한 주문 장부를 보면 무엇이 최선의 매수 제안이고, 또 최선의 매도 제안인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최선의 매수 제안은 100달러이고, 최선의 매도 제안은 102달러일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를 ‘매수 호가-매도 호가 범위(bid-ask spread)’라고 한다.
  • 이제는 새로운 시장가 주문이 제한 주문 장부에서 일치하는 것이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모든 거래소가 공유하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바로 가격 우선과 시간 우선이다. 앞서 시장가 주문은 지금 바로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가격에서 내는 매수 또는 매도 주문이다. 가격 우선은 주문 장부에서 최선의 가격에서 시작해 맺을 수 있는 주문은 다 체결하고 그 다음 최선의 가격 수준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시간 우선은 주문 장부에 똑같은 가격에 두 개의 제한 주문이 있을 경우, 먼저 낸 주문이 우선적으로 맺어진다는 의미다.
  • 이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하자. 당신은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 X를 1,000주에 사달라는 시장가 주문을 내고 당신의 주문을 거래소로 송부한다. 현재 주문 장부에서 최선의 매도 제안은 102달러에 나온 제한 주문이고 그 가격에 가능한 주식 수는 200주다. 이 시스템은 우선 그 가격에 200주를 확보하고 아직 800주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그 다음 최선의 가격을 찾아 나선다. 그 결과 105달러에 300주 매도 주문을 발견하고 이 주식을 매입한다. 그러나 아직 500주가 남아있다. 다시 주문 장부를 조사해 그 다음 최선 가격을 조사해 본 결과 107달러에 200주 제한 매도 주문, 그리고 역시 같은 가격에 600주 제한 매도 주문을 찾아낸다. 그런데 200주 매도 주문이 주문 예약 장부에 더 오래 기록돼 있었다고 가정하면 시간 우선을 적용해 우선 이 주문부터 먼저 받아들인다. 그리고 두 번째 주문에서 300주를 더해 500주를 채운다. 당신의 주문은 이제 다 채워졌으며 평균 105.4달러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현재의 주문 장부에 상황에서는 이것이 1,000주를 매수할 수 있는 최선의 가격이다. 1,000주 거래가 끝남에 따라 이제는 107달러에 이용 가능한 300주가 남아 있는 최선의 매도 호가다. 당신이 낸 1,000주 시장가 매수 주문의 영향으로 매도 가격은 102달러에서 107달러로 올라갔다. 파머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즉, 제한 주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지는 눈처럼 주문 장부에 뿌려지면서 가격 수준별로 쌓인다. 그런 다음 시장가 주문 –또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 차이 범위 내에 있는 제한 주문– 이 나오면 주문서에 있는 제한 주문들이 나가게 되고 이로 인해 쌓여 있는 재고의 가격이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 파머와 그의 팀은 주문 완성 과정과 제한 주문 장부의 구조가 어떻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들은 주문 장부에 대한 완전한 열람과 함께 거래별 데이터를 보여 주는 런던 거래소로 가서 가장 많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6개 주식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연구자들은 약 4천만 건 이상을 분석했는데, 여기에는 주문 발주와 취소도 포함됐다. 파머와 그의 팀은 큰 가격 변동의 원인은 주문서 자체의 구조라는 점을 발견했다. 주문서에 쌓인 주문들 간의 가격 수준 차이가 클 때 큰 변동이 일어났다.
  • 이에 대한 보기로 이들은 글로벌 제약 회사 아스트라제네카 주식의 거래 순간을 관찰했다. 그들이 연구했던 특정 시점의 아스트라제네카의 제한 주문서에는 31.84달러의 소량의 매도 주문과 그다음에는 이와 큰 차이가 나는 32.3달러의 제한 매도 주문이 있다. 그 후 한 건의 소량의 시장가 매수 주문이 들어왔고, 매도 호가는 한 번의 거래로 31.84달러에서 32.3달러로 올랐다. 46펜스가 올라간 1.4% 증가였다. 이 한 번의 거래, 그것도 2만 8천 달러 정도인 작은 거래로 주식 가격은 23펜스 올랐다. 이로 인해 아스트라제네카의 전체 시장 가치는 3억 7,400만 파운드가 올랐다. 그러나 그날 신문에 특이한 뉴스는 없었다. 이렇게 큰 시장 가치의 변화는 단지 주문 장부에 쌓여 있던 주문 패턴의 인위적 구조에 따른 결과다.
  • 추가적인 분석에서 파머와 그의 연구 팀은 이런 일들이 꽤 흔하며, 제한 주문서는 일반적으로 덩어리처럼 뭉쳐 있으면서 동시에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밝혀냈다. 규모가 크고, 유동적인 주식의 경우조차 제한 주문은 30개 정도의 가격 수준에 몰려 있고 나머지 가격 범위에는 대부분 비어 있어 격차가 발생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제한 주문은 최선의 매수, 매도 가격 주위에 몰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른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팀은 주문들이 주문 장부 전체에 걸쳐 퍼져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현재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 수준에서 매도 주문을 고집할 수도 있다. 가격이 결국 상승할 것이라는 희망에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주문 패턴이 고르지 못하고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 전문 거래자들은 큰 주식이라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유동성이 작고, 들어온 주문들의 패턴도 그렇게 고르지 못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큰 거래를 시간에 따라 조금씩 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한 번에 큰 거래가 일어나면 가격이 너무 크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머와 그 동료들의 연구가 나오기까지 이런 고르지 못한 주문 패턴이 주식 변동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들은 주문 예약의 수학적 모델을 만들고 임의의 거래를 할 때 –다시 말해 아무런 실제 뉴스가 없을 때– 예약 주문의 구조는 그 자체로 중요한 변동성의 원인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작고 거래량이 적은 주식들의 경우 크고 유동성이 큰 주식들보다 변동성이 더 크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 후속적인 연구에서 파머와 그의 동료 마이크 스자볼크스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제한 주문 장부에 있는 주문 발주 패턴을 자세히 조사해 봤다. 그들이 집중적으로 본 변수는 현재 최선인 매수-매도 범위와 새로운 제한 주문과의 거리 패턴이었다. 예컨대 현재 최선의 매수-매도 가격 범위가 100달러에서 102달러라면 매도 제한 주문이 101달러, 102달러, 103달러 등의 가격에 이를 가능성은 얼마인가? 또 매수 제한 주문이 101달러, 100달러, 99달러에 이를 가능성은 얼마인가? 연구팀은 주문들이 매우 규칙적인 패턴을 따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패턴은 매수-매도 호가 범위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학생 분포’의 모양새 –마녀가 쓰고 있는 끝이 뾰족한 모자– 다. 파머와 스자볼크스는 주문 패턴의 규칙성은 주문을 발주하는 거래자들의 행태에도 어느 정도 규칙성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거래는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사건들로 파생된다는 전통 이론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파머와 스자볼크스는 이 연구 결과를 제한 주문 장부에 대한 그 전의 연구와 결합했을 때 자신들이 연구했던 주식들이 나타낸 이른바 거듭제곱 법칙에 의한 변동성을 거의 비슷한 정도로 재생할 수 있었다.
  • 그런 연구 결과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이 주식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아스트라제네카가 투자자들이 놀랄 그런 결과들을 발표하면 그 주식은 반응할 것이 분명하다. 제한 주문 장부는 많은 경우 기억의 한 형태로서 또는 그 안에 내재돼 있는 주문 패턴은 해당 주문들이 발주될 당시의 뉴스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뉴스의 창고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주식 가격 변동 중에는 현재의 뉴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대신 새로운 주문과 그 주문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장부의 특정한 주문 패턴이 상호 작용하면서 나오는 일종의 인공 산물인 경우들도 많다는 것을 이 연구 결과는 보여 주고 있다.
  • 일부 전통 경제학자들은 이런 가격 변동은 무시해도 되는 하나의 단기적 잡음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지 모른다. 이에 대한 파머의 대답은 두 가지다. 우선 제한 주문의 영향은 결코 단기간에 끝나 버리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파머와 그의 연구 팀은 또 같은 변동성 분포가 훨씬 더 긴 시간 척도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다음으로 그것은 임의적인 잡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격 변동의 거듭제곱 법칙은 앞서 샆펴 보았던 맥주 게임에서의 진동이 해당 시스템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과 같이 시스템 그 자체의 구조에서 파생된다는 얘기다. 파머의 연구 결과는 개별 주식에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 많은 측면에서 맥주 게임과 파머 연구 팀 모델이 던지는 시사점들이 같다. 경기 사이클과 주식 가격 변동 등 복잡한 창발적 현상들은 세 가지 근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시스템 참가자들의 행태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제 인간들의 행태를 보면 규칙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맥주 게임 참가자들이 보여 준 ‘일단 닻을 내린 다음 조절하는 규칙’일 수도 있고, 주식 주문에서 ‘학생 분포’를 보여주는 그런 규칙성일 수도 있다. 둘째, 시스템의 제도적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맥주 게임에서 제조업자와 소매업자들 간의 공급 체인 구조는 참가자들의 행태와 결합해 진동을 일으키는 그런 역동성을 만들어 냈다. 주식 시장의 경우에는 제한 주문 시스템의 구조가 거래자들의 행태와 결합, 거듭제곱 법칙이라는 변동성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시스템에 대한 외생적 투입 요소들이다. 맥주 게임에서는 고객 주문 한 번만에 뜀박질할 경우였고, 주식 시장에서는 뉴스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외생적인 충격이 시스템의 역동성에 불을 붙이고 촉발에 기여한다는 것은 물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외생적 충격이 하나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불행히도 전통 경제학에는 이른바 균형이라는 굴레 때문에 이 요소에 너무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 바람에 앞의 두 가지 근원이 희생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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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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