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기원/ 정치와 정책: 좌우 대결의 종말

  • 경제 사상은 항상 정치와 연계되어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이론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정치 지형도 변하여 왔다.
    • 애덤 스미스의 아이디어 덕분에 19세기 자유 무역은 빠르게 확산 되었고 카를 맑스의 이론은 20세기 지각 변동의 동인이 되었다.
    • 신고전학파 이론은 서구 정통 자본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고, 케인스 학파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정통 이론에 수정을 가하였다.
    • 2차 대전 이후 서구 경제에서 국가의 개입이 점점 늘어나 1970년대 말 절정에 달했는데, 이러한 추세는 1980년대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같은 경제학자의 영향을 받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등장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 그러나 경제학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회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고 봐야 한다.
    • 맑스의 <공산주의 선언>은 1848년이었고,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것은 1917년 이었다.
    • 케인스가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은 1930년대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제 영향을 미친 것은 2차 대전 이후였다.
  • 정치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복잡계 경제학에 대해 가지는 질문은 아마도 “어느 편에 속하는가?”일 것이다. 다시 말해 “복잡계 경제학은 우냐? 좌냐?” 하는 물음이다.
    • 복잡계 경제학은 시장에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는 우파라 볼 것이고, 시장이 전통 경제학이 주장하는 만큼 효율적이지 않다는 논리 때문에 좌파에 속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복잡계 경제학은 좌도 우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정치 구조를 무력화 할 수 있는 이론적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퇴물이 된 구조

  • 정치를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기준으로 구분해 온 지 200년이 넘었으니 매우 끈질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좌-우 개념은 1789년 혁명 와중에 만들어진 프랑스 국회의 의석 배치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 3계급인 혁명 세력은 왼쪽에, 제 1계급인 보수 세력은 오른쪽에 앉았다.
  • 경제적 관점에서 좌우 이분법은 100년 뒤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론에 의해 구체화 되었으며 이때부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 20세기 초에 이르러 좌파는 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주창하였다. 따라서 공산 경제 체제의 경우 모든 경제적 자산을 국유화하였고, 사회민주주의 체제에서도 부분적 국유화와 강력한 정부 규제 제도를 도입, 시행하였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파 체제의 경우 자유 시장 경제의 온상이 되었다.
    • 이러한 용어의 구체적 의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여 왔지만 둘 간의 기본적인 차이는 20세기 중엽에서 말에 이르는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 즉, 국가 대 시장, 사회적 진보주의 대 사회적 보수주의, 그리고 다수의 요구 대 개인의 권리 등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에는 변화가 없었다.
  •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존스홉킨스 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좌-우 간의 논쟁은 이미 끝나고 ‘역사의 종말’이 다가온다고 예측하였다. 이 기간 동안 몇몇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좌-우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 1996년 미국 민주당 리더십 위원회는 ‘신진보 선언’을 발표하였고, 1998년 런던 경제대학의 학장인 앤서니 기든스는 <제 3의 길>이라는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로 인해 그들은 미국의 ‘신민주당’, 영국의 ‘신노동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 그들 주장의 핵심은 자본주의의 부를 창출하는 제도적 강점과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인본주의적 목적을 결합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수단을 사회주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자는 것이다.
    • 이는 클린턴 행정부와 블레어 정부가 그들의 경제적 이념을 현실 정치에서 실행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클린턴은 미국의 복지 제도를 개혁하였고, 블레어는 영국 국가보건청 운영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 친절한 얼굴의 자본주의라는 아이디어는 우파에게도 상당히 설득력을 얻었는데, 조지 부시의 첫 선거 공약이었던 ‘온정적 보수주의’ 역시 그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 그러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블레어와 부시의 정책 설명 생략)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좌우의 간격은 좁혀졌을지 몰라도 해소는 되지 않았다.
  • 1990년 창안된 ‘제 3의 길’은 새로운 경제 이론이 아니라 실용적인 정치적 아이디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좌-우 양측 모두 극단적 혹은 순수한 이념의 현실 적용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뼈저린 학습을 한 것이다.
    • 국가가 만들어 준다던 유토피아는 악몽 같은 경험에 지나지 않았고, 시장 경제 체제가 약속한 낙원은 기능 장애증에 걸린 사회에 불과하였다.
    • 이와 같이 한 세기 동안 소련의 노동수용소, 그리고 대공황 등을 경험한 후에야 정부도, 시장도 우리 사회에서 각기 역할이 따로 있다는 실용적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중도적 합의는 지적 공백을 초래하고 말았다. 20세기 말 맑스와 스미스로 대표되는 두 이념이 모두 틀렸다는 인식이 일기 시작하였으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 체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 선각자들의 바람과 달리 제 3의 길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보다는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이러한 지적 공백을 메울 잠재력을 가진 이론적 대안이 바로 복잡계 경제학이다.
    • 경제학에 대한 복잡계적 접근은 이것저것 섞어 놓은 중도가 아니다. 그것은 시장 실패를 인정하는 신고전 경제학도 아니요, 시장적 요소를 가미한 사회주의도 아닌 전혀 새로운 이념이다. 여기서 핵심 이슈는 좌-우 대결이 아니라 어떻게 최상으로 진화하느냐이다.

인간 본성과 강한 상호주의

  • 좌-우 대결의 철학적, 역사적 내용을 심층적으로 보면 인간 본성의 2가지 모순된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 좌는 인간을 원초적으로 이타적이라 보고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본성이 아닌 계급 사회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은 정의로운 사회를 통해 개조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장 루소에서 시작되어 맑스로 계승되었다.
    • 우는 인간이란 원래 이기적이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 본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이를 수용하는 정부 체제가 가장 효과적이라 주장한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말했듯 “정부 체제를 고안하는데… 모든 사람은 악당이라서 그 행동이 사적 이득을 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고 간주하여야 한다.”
    • 그러나 우파는 만약 사람들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사익을 추구함녀 사회 전체의 이익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런 철학은 흄에서 존 로크 그리고 토머스 홉스로 이어지며 발전하였다.
  • 애덤 스미스의 시각은 이들과 다르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어떻게 이기심이 시장의 역할을 통해 사회적 편익에 기여하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그러나 <도덕감정론>에서 그는 “사람이 아무리 이기주의적이라 할지라도 남의 재산에 관심을 갖게 하는 본성에도 분명히 원칙은 있다”라고 하였다.
    • 다시 말해 스미스는 인간 행태에 대해 좀 더 중도적 시각을 가졌으며 인간 본성에 이기적인 면과 이타적인 면이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 허버트 긴티스와 그의 동료들은 최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좌-우의 역사적 시각은 너무 단순하다고 비판하였다.
    •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은 수 세기에 걸친 철학적 논쟁거리였는데, 1980년대 이후 이것은 하나의 과학적인 문제로 부상하였다. 여러 실증 연구와 실험, 인류학의 현장 연구 그리고 게임 이론을 통한 분석에 의하면 스미스의 주장이 기본적으로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타적이거나 이기적이지 않다. 연구자들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란 ‘조건부 협력자’이자 ‘이타적인 응징자’라고 할 수 있다.
    • 긴티스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인간의 행태를 ‘강한 상호주의’라고 하며, “타인과 협력하고자 하는 성향과 협력의 규범을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응징하려는 성향”이라고 정의하였다.
  • 이것은 ‘최후통첩 게임’과 ‘죄수의 딜레마’에 나타난 인간의 행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황금률을 따르고자 하지만 거기에 약간의 변칙을 가한다.
    • 남이 자기에게 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남에게 하라는 것 –조건부 협력– 도 만약 남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비용을 치르더라도 응징하겠다는 의미다. –이타적 응징
  • 사람은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없는지, 누구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며 누가 자기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를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고도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 한 번 속이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놈이 바보다.
  • 그러나 강한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인간의 행태는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는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뿐 아니라 오지의 수렵, 채집 부족 사회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이러한 인간 행태가 어느 정도 유전적인 것인지, 어느 정도 문화적인 산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유전적인 것이라는 3가지 증거가 있다.
    • 첫째, 강한 상호주의 행태는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어떤 사회에서도 상호주의 행태를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상호주의는 순전히 문화적인 산물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 둘째, 다른 영장류에서도 비슷한 행태가 관찰되었다.
    • 셋째, 이러한 행태와 관련된 생물학적 증거도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은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느끼게 하고 협력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 강한 상호주의가 보편적 현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본성을 촉발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사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것은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요 부분은 흥미로운데, 마치 유전자가 내재는 되어 있지만 환경 조건에 따라 발현이 되거나 안 되거나 하여 최종 형태가 결정되는 것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 강한 상호주의에 대한 진화론적 논리는 간단하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세계에서 조건부 협력자가 순전히 이타적 혹은 이기적 전략을 따르는 사람보다 좋은 성과를 낸다.
    • 크리스티안 린드르겐의 ‘죄수의 딜레마’ 모델에서 어느 한 전략이 절대적 우위를 나타내지는 못하였으나 이기는 전략이 조건부 협력자 전략의 변형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마찬가지로 세계 여기저기서 실행한 최후통첩 게임 실험 결과들을 보면 전통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이기주의에 가장 가깝게 행동하는 종족은 페루 우림에 사는 마치구엥가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 마치구엥가 족의 문화적 규범은 다른 사회처럼 강한 상호주의를 강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마치엥가 문화는 이기주의, 상호 불신 낮은 협동 정신 등이 특징이다. 그들 사회의 조직은 가족 단위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실험 대상 중 가장 가난한 사회였다.
  • 전통 경제학자는 강한 상호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이기주의에 불과하다고 할 지 모른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사회에서는 협력이 유리하다.
  • 그러나 강한 상호주의와 전통 경제학의 이기주의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 첫째, 전통 경제학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경제적 상호작용 과정엔 관심이 없다. 다만 결과적으로 개인의 이익이 극대화되었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실험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의 정당성도 매우 중시한다.
    • 둘째, 최후통첩 게임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되더라도 부당한 행동을 응징한다. 다시 말해, 정말로 속았다고 생각되면 사람들은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이기주의적 합리성과 다른 점이다.
  • 강한 상호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파급 효과는 확실치 않지만 인간 행태의 기본적인 가정을 바꾸면 많은 것이 바뀐다.
  • 예컨대 복지국가를 위한 공공 지원 제도를 보자.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이르는 기간 동안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미국 정부의 사업들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 1990년대에 이르면서 그러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크게 떨어졌다.
    • 이러한 지지 하락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좌파는 인종 차별주의에서, 우파는 사람들이 지원의 효과성이 낮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 여러 조사 및 실험 결과와 전문 그룹의 토론 등을 통해 크리스티나 퐁, 볼스 그리고 긴티스는 국민의 태도 변화는 앞서 본 이유가 아니라 바로 강한 상호주의 때문이라는 의미있는 증거를 찾았다.
    • 처음 지원 사업이 도입되었을 때, 그러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일은 하고 싶지만 운이 없거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사회 규범이었다.
    • 그러나 최근 국민들의 인식이 국가 지원의 수혜자들은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사회의 선의를 오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행태는 상호주의의 규범에 맞지 않으므로 지원은 철회되어야 하고 응징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퐁, 볼스, 긴티스는 사회 정책은 ‘상호주의의 가치를 위배하지 않아야 하며 상호주의의 가치를 오히려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예컨대, 상호주의의 가치와 맞는 정책으로서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직능 훈련, 빈곤층에게 저축을 촉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 낙후 지역에서의 기업 활동 지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 기회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 또한 강한 상호주의의 규범은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도록 한다. 이러한 차별을 고려한 지원 정책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 예컨대, 고용 보험금 제도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매우 높다. 이 경우 사람들은 고용 기간 동안 보험금을 불입하고 경제 상황이 안 좋거나 운이 나빠 해고되는 경우 지원금을 받기 때문이다.
    • 마찬가지로 사회 보장 제도도 지난 70여 년간 범정파적 지지를 받아 왔는데, 이 또한 상호주의의 원칙에 바탕을 둔 정책 때문이다. 사람은 늙게 되어 있고 젊어서 불입한 만큼 노후에 지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원칙에 어긋나는 정책은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혜택을 주게 되고 결국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 상호주의적 요건이 없는 지원 정책의 예로서 약물 중독자를 위한 교육, 재활 프로그램 등이 있다. 약물 중독의 경우 자기 스스로의 행위에 의한 결과 이므로 상호주의라는 요건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경우 수혜자들이 일을 해야 한다든지와 같은 조건이 붙으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 강한 상호주의 원칙은 왜 미국과 영국의 신좌파들이 진보주의적 정책에 개인의 책임성을 반영하려고 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 인간은 루소가 말하듯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타적 피조물도 아니고, 흄이 말하듯 가슴도 없는 이기적인 피조물도 아니다. 결국 인간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인 스미스의 견해가 옳은 것이다.
  • 복잡계 경제학이 강한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모든 죄악의 근원은 사회라는 루소의 견해를 벗어나 개인의 책임성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은 사악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사회 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흄의 견해에서 벗어나 인간 본성의 너그러운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복잡계 경제학에 의하면 개개인의 행동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결국 개개인의 행동이 통합되고 그것이 제도적 구조와 연계되어 한 시스템의 창발적 행태를 결정하는 것이다.

좌파의 유토피아와 자유 시장에 대한 환상

  • 3부에서 보았듯이 인류는 모르는 사람들 간의 대규모 경제 협력을 위해 2가지 메커니즘을 개발하였다. 즉, 시장과 계층 구조이다. 이 메커니즘 속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실행 수단과 방법이 포함되어 있으나 결국은 모두 이 둘로 나누어질 수 있다.
    • 수평적인 조직으로 알려진 집단 농장이나 협동조합 같은 경우도 계층 조직적 권력 구조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
    • 복잡계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의 차이점은 경제적 적합도를 판단하는 것이 ‘시장이냐 계층구조냐’이다.
  • 자본주의 경제, 사회주의 경제를 막론하고 사업 계획의 차별화, 선택, 확산은 계층 구조의 틀 속에서 일어난다.
    •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민간 기업에서 일어나는데, 알프레드 챈들러는 ‘보이는 손’이 작용한 것이라 하였다.
    • 이에 반해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직접, 간접으로 국가가 통제하는 조직 속에서 일어난다.
  • 자본주의 경제에서 진화의 과정은 결국 시장이라는 거름 장치를 거치게 되어있고, 이 과정에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사업 계획의 선택과 확산을 최종 결정한다. 사회주의 경제에는 이러한 시장이라는 거름 장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업 계획의 선택과 확산 같은 진화 과정에서의 결정은 정부라는 계층 구조 속에서 일어난다.

좌파에 대한 비판

  • 복잡계 경제학의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은 명료하다. 즉, 경제란 너무 복잡해서 중앙 계획 당국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는 3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중 두 가지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주장한 것이다.
  • 그 첫째는 하이에크가 말한 ‘지식의 조정 문제’이다.
    •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식은 사회 전반에 산재해 있다. 그러한 지식은 사람들의 취향에 대한 정보, 비용, 기술 등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다.
    •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 없다면 이러한 정보를 모은다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전 국민을 대상으로 1010 SKUs에 달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취향을 조사한다면, 조사가 끝나는 순간 조사의 내용은 아무 쓸모 없는 과거의 데이터가 되고 말 것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이는 비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 두 번째 문제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하이에크는 이를 사회주의의 ‘결정적 자만심’이라고 하였다. 만약 완벽한 합리성의 가정이 신고전학파 이론의 결정적인 흠이라면 이 또한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 영국의 경제학자 디킨슨은 1933년 논문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에 다른 점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시장 균형을 도출하기 위한 발라의 방정식도 사회주의 경제 계획 당국이 풀어 시장과 같은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하이에크는 이에 대해 우리가 그러한 결과를 찾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는 모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를 처리할 능력은 없다고 반격했다.
    • 앞에서 논의한 대로 하이에크는 인간의 연역적 합리성도 경제와 같은 비선형적이고 동태적인 시스템에서 사안을 이해하고, 예측하며, 계획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 기본적으로 환벽한 합리성이라는 가정은 신고전학파 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이론에서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 하이에크의 주장이다.
  • 세 번째 비판은 하이에크의 두 가지 비판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우리가 앞서 논의한 바 있다.
    • 우리가 완벽한 합리성을 버리고 연역적 추론에 의존한다면 추론의 성공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며, 무엇이 좋은 사업 계획이며 무엇이 나쁜 사업 계획인지 피드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피드백을 할 시장 메커니즘이 없다면 우리는 하이에크의 ‘지식의 조정 문제’에 빠지고 만다.
    • 사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없다면, 국가라는 계층 구조가 마음대로 생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앞서 본 대로 통치자의 계층 구조는 통치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순수한 계획 경제에서의 적합도 함수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권력의 이익을 반영하게 된다.
  • 따라서 복잡계 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장은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역할과 함께 사업 계획의 선택을 위한 적합도 함수를 제공함으로써 권력의 계층 구조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계획된 유토피아라는 깔끔한 비전은 복잡 적응 시스템인 번잡한 현실 세계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우파에 대한 비판

  • 다른 한편의 이념 체계에 대한 복잡계 이론의 비판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에 관한 우익의 환상에 대한 비판이다. 논점은 2가지다.
  • 첫째, 복잡계 경제학은 시장이 유용하고 필요하지만 완벽하게 효율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 앞서 본대로, 교과서에서 말하는 시장과 가장 가깝다는 금융 시장도 실제 이론적인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시장이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는 일부 우파의 가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다.
    • 공정하게 말하자면 대개의 전통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시장 실패에 대한 연구도 많다.
    • 그러나 복잡계 경제학은 시장 실패를 떠나 전통 경제학의 비현실적 가정을 근거로 한 여러 가지 시장 해법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 (영국이 정부가 감시하던 독점적인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경쟁 체제로 바꾸고 오히려 불만이 늘어난 예 생략)
    •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의 전력 시장 자유화와 영국 철도 산업 민영화의 실패 예 생략)
    • 그렇다고 시장 경쟁이 나쁘고 독점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복잡계 경제학은 경제의 진화에서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간단한 전통 경제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우파는 모든 사회 문제를 시장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다.
  • 두 번째 비판은 우파가 가지고 있는 반정부적 입장은 복잡계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순진한’ 측면이 있다.
    • 신고전학파 이론은 전부의 간섭이 없는 원초적인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경제를 만들어 놓는다. 이러한 이상적인 상태에서 바로 파레토의 최적 상태가 형성되며 사회의 부가 극대화 되는 것이다.
    • 여기에 세금이니 규제가 개입되면 경제는 이상적 상태에서 멀어지고 사회적 부의 창출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세금은 억제하고 정부 지출도 최소화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 이와 같이 우파는 시장이 기능을 하기 위해 기본적인 규제는 필요하지만 세금과 같은 규제는 시장을 왜곡시키고 가격 신호를 오도하며 경제를 이상적인 상태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 1986년 중소기업 관련 백악관 회의에서 로널드 레이건은 “정부의 경제관은 몇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즉, 경제가 움직이면 세금을 거두어라, 경제가 계속 움직이면 규제하라, 그리고 경제가 정지하면 보조금을 주라”고 한 바 있다.
    • 그러나 반정부적 시장론자들은 경제가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경제적 진화 시스템은 수없이 많은 사회적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적 기술은 대개 정부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진화는 협력과 경쟁의 균형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균형을 이루는데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계약법, 소비자 보호법, 근로자 안전법, 증권법과 같은 사회적 기술은 모두 협력과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인 반면, 반독점 규제는 건강한 수준의 시장 경쟁을 유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 정부의 영향력이 약한 개발도상국에 가보면 정부의 개입이 없을 때 국민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 알 수 있다. 정부가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경제는 협력도 경쟁도 약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만다.
    • 물론 정부의 개입이 모두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바보 같은 낭비적 규제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문제가 될 뿐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우파적 주장은 경제 시스템의 진화적 효과를 떠받치는 정부 제도의 역할을 훼손하는 것이다.

정부는 적합도 함수를 설정한다

  • 복잡계 경제학은 기업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과 같이 정부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 신고전학파의 영향을 받은 우파의 입장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파레토 최적이 도덕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해결이며, 그러한 파레토 최적을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메커니즘은 시장이므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정부의 역할은 시장 효율을 확보하는 것이다.
    • 따라서 시장에 개입하는 어떠한 정부의 행위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시장 효율의 손실을 기준으로 비용 편익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떄문에 우파 사람들은 시장 효율을 이유로 환경 규제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 이에 비해 복잡계 이론의 시각은 정부의 개입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본다. 한 가지는 사업 계획의 차별화, 선택 그리고 확산과 관련된 정부 행위는 경제적 진화 과정에 대한 개입으로서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에서 본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예 생략)
  • 반대로 경제적 ‘적합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개입은 달리 평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앞서 본대로 진화 시스템에서 효율의 의미는 제한적이다. 복잡계 이론의 시각에서 본다면 정부 규제는 기업 경쟁 환경의 일부분이다. 시장 메커니즘이 사업 계획을 차별화하고 선택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해준다면 경제적 진화 과정은 정부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혁신하고 적응해 나갈 것이다.
    • 예컨대 유권자들이 자기들이 선출한 의원에게 환경 보호가 사회적 과제라고 말한다면 정부는 환경 친화적 사업 계획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유리하도록 경제적 적합도 함수를 설정할 것이다. 이 경우 정부는 사업 계획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사업 계획이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는 적합도 환경을 조성한다.
  • 그러나 정부를 적합도 함수의 설정자로 보야아 한다는 아이디어는 하이에크가 지적한 여러 이유를 고려할 때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 정부가 적합도 함수를 설정함에 따른 영향, 그리고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등을 우리의 능력으로 예측할 수 있을지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 이는 정부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꺼이 그런 역할에 대한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 받고, 경우에 따라 역할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복잡계 경제학은 좌우의 이념적 입장 뿐 아니라 이 둘 간 논쟁의 대상인 거대한 제도, 즉 국가와 시장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있다.
    • 국가의 경제적 역할은 시장의 진화를 촉진하고, 협력과 경쟁 간의 효과적 균형을 이루게 하며, 사회의 요구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제적 적합도 함수를 설정하도록 하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 강력한 상호주의 규범에 따라 국가는 모든 국민이 경제적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러한 시스템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기초적인 지원을 해줄 책무가 있다.
    • 시장의 경제적 역할은 사업 계획을 발굴하고 차별화 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소비자 수요, 기술, 그리고 국가가 설정한 적합도 함수를 고려하여 사업 계획을 선정하며 선정된 계획이 확산되도록 자원을 배분 하는 것이다.
    • 따라서 국가와 시장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문제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국가와 시장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 이다.
    • (뒤에 설명 생략)
  • (위의 정부는 적합도 함수 설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은 개인적으로 정부는 인프라 –실제 하는 도로나 항만과 같은 것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지원 정책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포함– 를 구성하는데만 힘을 써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과도 일치한다. 다만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2가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 (‘정치적인’ 것의 문제. 사회적 인프라라고는 해도 분명 더 이득을 얻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정부는 선택해서 인프라를 확충해야 하고 선택된 인프라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므로 인프라 선정 자체에 정치적인 개입이 있을 수 있다. 로비를 하는 기업들 혹은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바로 그러한 것들 중 하나. 때문에 과연 정부가 적합도 함수 설정의 역할만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현실이 그렇게 아름답게 될 지는 의문)
    • (‘경제적인’ 것의 문제. 어디까지를 정부가 적합도 함수를 설정하는 사업이라 볼 것인가? 예컨대 나는 개인적으로 교육, 의료는 국가가 관리해야 하지 않나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시내 버스 같이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하고 이미 많은 보조금이 지급되는 사업들은 공공 인프라로 봐야 하지 않나 싶지만 다른 누군가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생각이 다른 것의 진짜 문제는 경제적 비용인데, 그 많은 사업을 정부가 다 인프라로 보고 집행을 하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들고 이는 다시 어마어마한 세금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프라로 돌아오는 높은 세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모를까 저 엄청난 사업을 집행하기 위한 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 때문에 모든 사업을 집행하지 못하고 민간에게 넘길 수 밖에 없다. 더불어 그 어마어마한 사업들을 정부가 일임하는게 과연 효율적인가 싶기도 하다.)

문화가 중요하다

  • 세계 은행에 의하면 2002년 기준 가장 가난한 나라는 콩고로 1인당 소득은 100달러 수준이다. 이는 브레드퍼드 드롱이 추정한 약 1만 5천년 전 수렵, 채집민 부족의 소득인 92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동시에 가장 부유한 나라는 룩셈부르크로서 1인당 소득은 3만 9,470달러였다.
    • 경제사학자 데이비드 란데스가 말한대로 “세계는 대략 세 부류의 나라로 나누어진다. 즉, 체중을 줄이기 위해 많은 돈을 쓰는 나라, 살기 위해 먹는 나라, 그리고 다음 끼니가 어디에서 올지도 모르는 나라이다.”
  • 이러한 격차의 원인은 좌-우에 따라 다르게 설명된다. 좌파는 식민주의, 인종주의, 자본가 수탈, 그리고 부자 나라들의 빈약한 지원 등이 주된 원인이라 하고, 우파는 나쁜 정부, 부패, 자유 시장의 부재, 외국 원조에 대한 의존 등 때문이라고 한다.
  • 1999년 하버드 대학의 로렌스 해리슨과 그의 동료 새뮤얼 헌팅턴은 ‘문화적 가치와 인류 발전’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 심포지엄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도처에서 수행된, 경제 발전에 있어서 문화의 역할에 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 이 회의에는 다양한 학자들과 연구자, 평론가, 국제 지원 기구의 대표들도 참석하였는데, 그 회의의 성과로서 토론의 결론을 요약한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 16장에서 문화를 개인들이 준수하는 미시적 규칙들의 결과로 나타나는 창발적 현상이라 정의하였고, 조직의 경제적 성과에 있어서 문화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논의한 바 있다. 하버드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문화는 국가 경제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국가 경제의 경우 수천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주어진 행동 규범 혹은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 문화와 거시 경제 성과 간의 관계를 처음 관찰한 사람은 20세기 초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이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 경제적 성과에 대한 문화적 설명은 2가지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 첫째는 정치적인 합당성의 문제였다. 란데스가 말한대로 “문화는… 학자들에게 겁을 준다. 문화는 인종과 유산이라는 유황과 같은 향과 변치 않는 자태를 지니고 있다.”
    • 두 번째 이유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높은 벽이었다. 완벽한 합리성의 세계에서 문화가 설 자리는 매우 좁고, 있다 하더라도 그 문화적 규칙은 이기적인 최적화의 전략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람들이 그 규칙을 활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다행히도 정치적 합당성 문제는 많이 해소되었다. 과학적으로도 의미있고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적 토론이 가능해졌다. 이제 상대주의적 함정에서 벗어나 어떠한 문화적 규범이 경제 발전을 더 촉진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나 동시에 경제를 성공으로 이끄는 문화적 공식이 하나 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 중에 일본과 같은 문화도 있고 노르웨이와 같은 문화도 있는 것처럼 경제적 성공을 위한 완벽한 공식은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은 행동경제학의 부상으로 신고전학파 이론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경제라는 마구간에 문화적 말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 여기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어떤 규범은 경제 발전을 받쳐 주고, 또 어떤 규범은 그렇지 못한가? 연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아르헨티나의 마리아노 그론도나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이 문화적 규칙의 3가지 유형을 제시한 바 있다.
    • 문화적 규칙은 16장에서 본 조직 규칙의 경우와 같이 대략 3가지의 범주로 나누어지는 유사성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닌데, 왜냐면 조직적 규범이든 사회적 규범이든 그것이 부의 창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진화의 과정을 촉진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첫째 범주는 개인의 행동과 관련된 규범이다.
    • 여기에는 노동 윤리, 개인의 책임성, 그리고 자신이 인생의 주역이며 신이나 통치자의 듯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신념 등과 관련된 규범이 포함된다. 운명주의는 개인의 동기를 훼손한다.
    •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면 내세뿐 아니라 금세에도 보상이 있다고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끝으로 낙천주의와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현실주의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문화를 가져야 한다.
  • 둘째 범주는 협력과 관련된 것이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협력하면 보상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부의 파이가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회는 협력을 유도하기 어려우며 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도가 낮은 경향이 있다.
    • 강력한 상호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보았듯이 우리 문화가 관용과 공정성을 중히 여기는 규범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위도식하거나 남을 속이는 일을 응징하는 규범도 있어야 한다.
  • 셋째 범주는 혁신과 관련된 규범을 포함한다.
    • 연역적 부분이 강할수록 연역적 추론은 더욱 효과적이게 된다. 따라서 현상을 종교적이나 마술적으로 설명하는 문화보다 합리적,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문화가 훨씬 더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정통만을 고집하는 것은 혁신을 억제하는 것이므로 문환느 이론이나 실험에 대해 참을 성을 가져야 한다.
    • 끝으로 과도한 평등주의는 위험 부담에 대한 동기를 감퇴시키므로 경쟁을 촉진하고 성과를 높이 사는 그런 문화가 되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위의 세 범주 모두와 관련된 중요한 규범이 있는데, 즉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시각이다.
    • 오늘을 위해 사는 문화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낮은 노동 윤리, 협력의 결핍, 낮은 혁신 투자 등. 내일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일을 열심히 하고 왜 협력과 혁신에 투자해야 하는가?
    • 이와 반대로 내일을 위해 투자하는 윤리르 가진 문화에서는 노동을 중히 여기고, 세대 간 저축률이 높으며, 장기적인 이득을 위해 단기적인 쾌락쯤은 희생할 줄 알 뿐 아니라 서로 협력하기를 즐겨 한다.
  • 조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고, 협력하며, 혁신하는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복잡한 사업 계획의 발굴, 실행 및 진화가 쉽게 일어난다. 이와 같이 앞서 본 문화적 규범 중 무엇이든 결핍되면 경제적 진화가 낮어지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형태의 규범을 실행하는데 왕도란 없다.
    • (이하 설명 생략)
  • 이러한 단서를 전제로 할 때, 개별 사회의 문화를 분석하고 그 사회 규범의 경제적 효과를 평가하는 일을 할 수 있다. 하버드 대학 학술 회의에 참석하였던 아프리카의 기업인 다니엘 에퉁가망겔은 아프리카 문화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가치, 태도, 그리고 제도가 있다.”고 하였다.
    • 그는 이 공통된 규범의 대부분이 문화적 유형상 경제적으로 불리한 것들이라고 주장하면서 특히 2가지 예를 들었다.
    • 즉, 개인 통치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과 미래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중시하는 시간에 대한 시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동태적 인식 없이는 계획도, 통찰도, 시나리오도, 사회 발전을 위한 정책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 이러한 규범의 영향은 사회 구성원 전체로 볼 때 단순히 추가적이거나 선형적이라고 할 수 없다. 개별 주체들이 문화적 규범을 따르는 가운데 상호작용하면서 복잡한 동태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 만약 많은 사람들이 이 세계가 제로섬 게임이라고 믿는 편이라면 사람들의 목적은 자신 몫의 파이를 차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 위해 복잡한 협력을 새로이 추구하기보다는 지금 있는 부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더 쓸 것이다.
    • 이런 사회에서는 절도, 부정 부패가 창궐할 것이며 부도덕, 불법에 대한 사람의 태도도 달라진다.
  • 이제 경제적 파이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사회가 비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혼재해 있다고 하자.
    • 시간이 지나면서 비제로섬 게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해 부를 창출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제로섬 게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만들어 낸 부에 대한 자기들의 몫을 공격적인 방법으로 요구할 것이다.
    • 이러한 갈등은 협력으로부터의 편익을 감소시키고, 비제로섬의 견해를 가진 사람들조차 협력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결국 제로섬론자가 되고 말 것이다.
  • 협동심이 낮은 사회에서는 비제로섬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도 제로섬론자들에게 밀려 결국 모두 제로섬론자가 되고 말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동태적 현상을 모형화 하면서 일종의 티핑 포인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 즉, 사회에서 협력자와 비협력자의 구성비가 어떤 한계치를 넘어서면 그 사회에서 대규모 협력 행위를 유지하기 매우 어려워지고 결국 빈곤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지적은 엉뚱한 역사적 사건이 한 사회를 비협력의 길로 이끌고 결국 빈곤의 함정으로 몰아가는 반면, 같은 협력적 성향을 가진 사회라 할지라도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그 사회를 부의 길로 연결시켜 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협력자와 배반자 간의 상호작용은 사회의 규범과 신뢰성의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
  • 문화는 불변의 힘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같이 공진화한다. 문화는 역사의 산물이며 역사는 문화의 산물이다.
  • 많은 연구에서 나타나듯 문화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차이가 난다. 1996년 여러 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조사에서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을만 하다고 보는가? 아니면 사람들을 대할 때 지극히 조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다양하였는데, 노르웨이는 국민의 65%, 스웨덴은 60%가 상호 신뢰한다고 대답하여 신뢰도가 매우 높은 나라였던 반면, 페루는 5%, 브라질은 3%만이 상호 신뢰한다고 대답하여 신뢰도가 매우 낮은 나라였다.
  • 신뢰와 경제적 성과 간에는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다. 아래 <그림 18-1>

  • 높은 신뢰는 경제적 협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경제적 번영으로 연결되어 결국 신뢰를 제고시키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반면 낮은 신뢰는 협력이 낮아지고 이는 빈곤으로 연결되며 또다시 신뢰를 잠식하는 악순환을 이룬다.
  • 그러나 이 인과 관계가 완벽한 것은 아닌데, 왜냐면 신뢰라는 것이 협력의 수준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과 인도는 미국에 비해 신뢰도가 높은 나라이다.
    • 미국인들이 신뢰도가 낮음에도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강한 사회적 기술, 특히 전통적으로 법치주의 중시 사상 때문이다.
    • 또 다른 설명은 미국이 과거의 사회적 자본을 먹고 산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 다시 재건되지 않으면 신뢰는 계속 잠식될 것이다.
    • (근데 그림을 보면 미국이 중국과 인도보다 낮을 뿐 전체적으로 보면 평균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위에도 나오지만 신뢰는 협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기 때문에 –바로 위에 나온 법치주의도 그 협력의 한 요소겠지– 미국이 번영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사회적 신뢰도에 가족 가치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생략. 가족 가치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도 있고,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도 있다. 아직 확정적인 연구 내용이 없는 듯)
  • 사회 발전 정책에 대한 문화의 의미는 아직 연구 단계에 있지만 발전이라는 방정식에 있어서 문화가 필요조건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 세계은행 경제 분석가인 윌리엄 이스털리는 1950~1959년 사이에 선진 세계가 1조 달러 이상의 경제 원조를 개발도상국에 제공하였으나 수혜국의 대부분은 아직도 빈곤을 벗어자니 모사였다고 지적하였다. 오히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1960년대 독립 이후 퇴보하였다고 한다.
    • 극심한 빈곤을 없애기 위한 원조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한 빈곤의 원인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화적 요소가 유일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빈곤의 문화적 근원을 고려하지 않는 원조 프로그램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중점을 두고 있는 교육이 과연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지 궁금하다. 교육을 통해 문화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사회적 자본과 대붕괴

  • 2000년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이라는 책에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용어를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 자본에 대한 경제학자 및 정책 입안자들 간의 관심과 토론을 촉발 시켰다.
    •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간의 유대-사회적 네트워크, 그리고 그로부터 초래되는 상호주의와 신뢰의 규범”이라고 규정한다.
  • 복잡계 경제학의 용어로는 문화적 규범이 개별 주체들의 미시적 행동 규칙을 제공한다면 사회적 자본은 협력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개별 주체들이 만들어 낸 창발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모든 협력 활동이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시장에서 거래하는 익명의 협력은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 사회적 자본을 가진 네트워크의 특성은 그 속의 사람들이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자본은 접촉의 스포츠와 같다.
    • 사회적 자본을 가진 네트워크의 전형적인 예로서 주민 모임, 자선 단체, 종교 단체, 스포츠 팀, 사교 클럽, 시민 단체 등이 있다. 회사와 직장 역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의 원천이다.
  •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이 매우 친근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저 좋기만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조직 범죄 테러리스트 단체도 그 조직원 간에 아주 높은 신뢰를 갖고 있으며, 효과적인 네트워크와 아주 강력한 행동을 갖고 있다.
  • 1970년대 이후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과 경제적 성과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이 연구의 한 부분으로서 그는 부유한 북부 이탈리아와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 간의 경제적 성과의 차이에 대해서 심층분석하였다.
    •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분위기 설명 생략)
  • 퍼트넘은 이탈리아 지역 간에 존재하는 차이의 근원을 대규모 협력을 실행할 수 없는 낮은 신뢰성에서 찾는다. 퍼트넘은 신뢰성의 차이는 중세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두 지역 간의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역사가 이 두 지역에 상이한 사회적 자본을 물려 주었다는 것이다.
    • 남부는 전통적으로 교회 중심의 군주주의적 계층 구조를 가진 폐쇄적 사회였던 반면 북부는 비교적 평등주의적 지역 공동체로 개방 무역 등을 통해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 퍼트넘이 말한대로 역사는 경로 의존적이어서 북부의 지역 공화국들은 그러한 역사적 기반을 바탕으로 수세기에 걸쳐 사회적 자본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반면 남부 군주주의 공화국들은 사회적 자본 형성을 위한 선순환의 고리를 확립할 수 없었다.
  • <나 홀로 볼링>에서 퍼트넘은 미국의 사회적 자본 상황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반세기나 된 펜실베니아의 ‘브리지 클럽’이 없어지고, 버지니아에서 한 세기 동안 활동하던 ‘유색인종 발전을 위한 전국협회’가 붕괴되었으며, 해외 참전 군인 협회가 해체되고, 자선 단체 연맹 등이 전국적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 이러한 변화는 통계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한데,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1966년 40%에서 2003년 20%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기업에 대한 신뢰도 55%에서 16%로 떨어졌으며, 종교에 대한 신뢰는 23%로 거의 반이나 줄어들었다.
    • 더욱 놀라운 것은 개인 간의 신뢰가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믿을만 하다는 말에 찬동하는 미국인은 1958년 50% 이상에서 2003년에는 30%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 이러한 신뢰 저하는 신뢰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유쾌하다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앞서 보았듯 사회적 신뢰와 거시 경제적 성과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 퍼트넘의 연구 결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연구 결과로 보완된다. 후쿠야마의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 자본의 감소를 나타내는 몇 개의 지표가 1960년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즉, 1963~1993년 사이에 강력 범죄율이 7배나 늘었으며, 그와 비슷한 수준의 이혼율 증가, 미혼모 증가 등이 나타났다.
    • 후쿠야마는 1960~2000년 사이의 기간을 대붕괴라고 명명하였으며, 사회적 자본의 붕괴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일어난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하였다.
  • 후쿠야마와 퍼트넘은 그 원인은 복합적이며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두 사람 다 많은 요인들은 양날의 칼 같아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는가 하면, 그 사회에서 나타난 효과는 부정적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 그 예로 후쿠야마와 퍼트넘은 이 기간 동안 일어난 가족 구조의 급격한 변화, 특히 이혼율의 증가 그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들었다. 이혼이 쉬워졌다는 것은 많은 불행한 결혼을 자유롭게 했지만, 어린아이들과 그들의 사회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일자리 개방은 여성으로 하여금 개인적인 잠재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은 역사적으로 한 사회의 사회적 망을 창출하는데 남자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다.
    • 퍼트넘의 연구에 의하면 같은 연령, 같은 사회 경제적 계층의 여성들도 노동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자원 봉사를 50% 줄이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25% 줄이며, 클럽이나 교회 출석도 25% 줄이고 여가를 즐기는 것도 10%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 퍼트넘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시적 차원의 변화가 거시적 차원의 영향을 초래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또 다른 중요 원인은 사회의 물리적 배치도, 특히 도시 외곽의 확장이다. 이것은 신뢰와 네트워크의 구축에 여러 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 첫째, 이웃간의 거리가 멀어져 서로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줄었다.
    • 둘째, 사람들은 집 주변을 산책하기 보다 운전을 함에 따라 이웃을 만나는 것보다 차 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또한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라 직장에서 교류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 또 다른 요인으로 아주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매스미디어의 격리 효과이다.
    • 여가 생활은 댄스홀, 연주회, 선술집, 브리지 클럽, 볼링장에서 하던 단체 놀이에서 개인 놀이로 급격히 바뀌었다. 라디오, TV, 스테리오, 비디오 게임, 홈시어터, 인터넷의 확산으로 많은 시간을 집에서 혼자 혹은 가족끼리만 보낸다는 것이다.
  • 그런 미디어 자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미디어 산업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일반 대중을 겨냥한 콘텐츠에 집중하게 되고, 따라서 인간 정서의 가장 낮은 공통 분모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에 치중한다.
    • 지난 40년 이상 우리 사회는 드라마 뿐 아니라 뉴스에서의 살인과 폭력에 식상해 있다. 인간은 언제나 섹스와 폭력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간단한 리모트 컨트롤이나 컴퓨터 마우스를 갖고 볼 수 있게 된 것은 인간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이다.
    • (이하 설명 생략)
  • 이러한 대붕괴의 원인들이 갖는 구조적 비가역적 특성을 고려할 때 –즉, 이제 아무도 여성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할 수 없고, 사람들은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질문일 수 밖에 없다.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가를 위한 의제’를 주창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안했다.
    • 사회적 활동에 대한 개인의 실천
    • 차세대 신뢰 규범과 사회적 자본 구축을 위한 학교 프로그램 개발
    • 직장을 가족 친화적으로 개혁
    • 공공 교통수단 개선 및 도시 계획법 개정
    • 시민의 선거 참여와 정치 참여 확대 노력
  • 퍼트넘은 미국의 사회적 자본을 재건하기 위한 다차원적 노력은 매우 힘든 도저닝며 미국의 정치 제도가 그런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 후쿠야마는 이보다는 좀 더 낙관적이다. 그는 이것이 처음의 붕괴도 아닐뿐더러 인간이 처한 마지막 대붕괴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 진화론적 관점을 빌려서 그는 인간 사회 시스템은 적응에 매우 강하다고 말한다. 과거 사회적 자본의 붕괴 과정에서 수십 년에 이르는 사회적 자본의 붕괴를 경험하였으며, 이는 사회적 자본의 재규범화 과정과 재건으로 이어져왔다고 한다.
    • 그 예로 후쿠야마는 19세기 농업 경제로부터 산업 경제로의 변화로 인해 초래된 대붕괴와 함께 일어난 범죄율의 증가, 폭력, 알코올 중독, 혼외 출산 등의 문제들을 들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에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새로운 사회 질서와 규범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 (개인적으로도 여기에 동의를 하는데, 큰 흐름 상에서 지금은 내리막의 모습이지만, 이러한 현상에 적응되면 그에 맞게 사람들은 다시 오르막을 걸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인간을 만나지 않거나 섹스를 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온라인 커뮤니티의 집단 활동이나,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도 이러한 적응 사례 중의 하나라 생각.)
  • 사회적 자본과 신뢰를 둘러싼 이슈는 경제학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며 사실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러한 이슈들은 변화무쌍한 복잡 적응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 사회적 자본은 전통 경제학이라는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는다. 왜냐면 전통 경제학 이론은 합리적인 개인의 이기적인 선택과 관련된 것이고, 모든 개인은 자신을 위해 최적의 선택을 하는 한 그러한 선택이 사회적으로도 최적이기 때문이다.
  • 복잡계 경제학은 이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개인의 선의에 의한 선택도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 (그 예 생략)
  • 나는 후쿠야마의 진화론적 견해에 찬동하며 적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믿지만, 진화 이론이 더 나은 사회 질서와 부를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왕도를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진화 시스템은 붕괴될 수도 있고, 막다른 골목에 닿을 수도 있으며, 빈곤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퍼트넘의 의견을 같이 한다.

불평동, 사회적 이동성, 그리고 빈곤의 문화

  •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가 존재한 이후부터 줄곧 있어 왔다. 수학자인 아델 아불-마그드는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의 부의 분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고고학 자료를 분석하였다.
    • 기원전 1370~1340년 사이에 정착민들의 주택 면적을 부의 대리 변수로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그는 당시 부의 분배가 현대 사회와 비슷한 파레토 분포를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옳은가?

  • 불평등은 끝없이 확산되어 왔지만 “과연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옳은가?”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정치 평론가인 매트 밀러는 <2% 해결> 이라는 저서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좌-우파 간의 차이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우파는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자유가 있으며 시장은 경쟁적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는 도덕적으로 건전한 것이라 말한다.
    • 좌파는 시장은 사회적 산물로서 인간이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 기술이라 주장한다. 시장 경제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면, 시장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해 사회 구성원인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밀러가 말했듯이 “시장의 결과가 도덕적으로 옳다고 추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이러한 양극단은 강한 상호주의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 말하자면 한 사람이 부자가 되거나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그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면 사람들은 자기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파의 주장
    • 그러나 그것이 운 혹은 한 개인의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소에 의한 것이라면 그러한 결과를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좌파의 주장
  • ‘이기주의 대 이타주의’ 라는 문제와 같이 이러한 견해는 오랜 기간 단순한 의견 차이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가 쌓인 덕분에 이제 이 주제에 대한 많은 학문적 증거들이 쌓이게 되었다.
    • 산타페 연구소의 새뮤얼 볼스와 매사추세츠 대학의 허버트 긴티스, 그리고 타우슨 대학의 멜리사 그로브스는 최근 이러한 연구 결과를 조사하여 좌-우 모두 완벽하게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 이동성의 결핍

  • 우파의 주장이 맞으려면 높은 사회적 이동성이 보장 되어야 한다. 끈질긴 근성, 결단력, 근면을 통해 이 세계의 ‘난관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가난으로부터 일어나 부자가 될 수 있었다.
    • 이런 이야기들은 실제, 특히 미국에는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전반적인 사회적 이동성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지 않다.
  • 아메리칸 대학의 톰 허츠가 6,273 가족을 32년(1968~2000)간 관찰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 이동성이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부자인 계층에서는 특히 낮았다고 한다. 아래 그림 <표 18-1>
    • 만약 부모가 상위 소득 10%에 속해 있었다면 그들의 자녀가 최상위 소득 계층에 속할 확률은 29.5%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그와 같은 자녀가 상류층, 즉 상위 30%에 소득 계층에 속할 확률은 59.1%이며, 소득 최하위 계층으로 추락할 확률은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 반대로 소득 최하 10% 계층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최하위 계층에 머물게 될 확률은 31.5%였으며 하위 30% 계층에 머물 확률이 67%, 자수성가할 확률은 1.3%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끝으로 중산층 부모를 둔 아이들은 중산층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이와 같은 경제적 이동성의 부재는 흑인의 경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백인의 17%가 최하위 계층으로 태어난 반면 흑인은 42%가 최하위 소득 계층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자녀의 성년 소득 부모의 소득 수준
최고 중간(5십분위) 최저
최고 29.6 7.3 1.3
상위 3개 십분위 59.1 23.0 9.3
중위 4개 십분위 34.3 48.0 28.3
하위 3개 십분위 6.6 29.1 62.4
최저 1.5 7.3 31.5
  • 이걸 보면 좌파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불공평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며 가난한 자와 소수 계층에게는 경제적 성취를 막는 장애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다”라고 할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은 너무 이른 판단이다. 이동성이 없는 이유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며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 첫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준 돈의 영향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 이 요소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소득 간 상관관계의 약 12%를 설명하였다. 따라서 나머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자녀들이 실제로 벌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둘째, 본성 대 양육에 관한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소득이 많은 부모들은 고소득의 유전자를 자기 자녀들에게 물려준다. 쌍둥이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부모와 자녀의 소득 간 관계의 12%는 유전자에 의해 설명되며, 28%는 환경에 의해 설명된다고 한다.
    • 다른 연구에 의하면 소득 상관관계의 5%만이 IQ에 의해 설명되는데, 이는 유전자에 의해 설명되는 12% 중 타고난 지능 외에 다른 유전적 특성, 예컨대 성격 등의 요소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 다른 연구는 교육, 인종 등 환경적 요소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난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난한 학교에 보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부모와 자녀의 빈곤에는 인종 차별이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 놀랍게도 교육은 부모 자녀 간 소득 상관관계의 10%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다른 환경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그리고 다른 인구학적 요소들을 통제했을 때 인종은 7%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나 흑백 간의 소득 격차에는 다른 요소들이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결국 우리는 미스터리를 하나 갖게 되었다. 부모와 자녀의 소득 간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으며, 사실상 부는 대물림되고 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 즉 현금과 유전자는 그러한 상관관계의 아주 적은 부분만 설명할 뿐이며, 학교의 질이나 인종 차별 같은 환경적인 요소도 나머지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러한 요소들이 전체 상관관계의 30% 밖에 설명하지 못하므로 우리가 부모로부터 받는 것 중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방정식에서 빠진 부분이 바로 문화적으로 형성된 행동과 사회적 자본이라 믿고 있다.

빈곤의 문화

  • <사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라는 논문에서 연구진들은 부모와 자식의 행동에 있어서 상관관계를 연구하였다.
    • 연구진은 행동을 친사회적 행동 –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다니고 학교 클럽에 참가하는 등– 과 불량 행동 –약물 사용, 15세 이전 성 경험, 싸움 등– 으로 나누었다.
    • 연구팀은 또한 자존심, 울적함, 부끄러움과 같은 경제적 영향이 있는 개인적 특성도 분석하였다.
  • 논문의 제목이 암시하듯 연구진은 부모와 자식 간 행동과 개인적 특성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 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가고 클럽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착한 아이를 가질 확률이 높고, 약물 복용자들은 불량한 자녀를 가질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재미있는 것은 부모의 사회 경제적 위치가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부유한 불량 부모들은 가난한 불량 부모와 마찬가지로 불량 자녀를 가질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5가지 차원에서 측정된 육아 방식 –개입, 감시, 자율, 정서적 안정감, 인지적 자극– 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자녀를 기르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가 보여 주는 행동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 따라서 내가 말하는 대로 하고, 내가 행하는 대로 하지 말라는 부모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
  • 연구진은 부모의 행동이 자식의 행동에 아주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부모의 행동은 자녀의 미래 소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물론 부모의 행동은 어떤 유전적인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약물 중독, 우울증 등은 유전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앞의 쌍둥이 연구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체로 유전적 요소들은 장래 소득을 예측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행동의 또 다른 원천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전해 주는 문화적인 규범과 가치관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물려받은 문화가 개인의 경제적인 성과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 이는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만일 문화적 행동에 대한 미시적 규칙이 조직이나 사회의 경제적 성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그러한 요소들이 개인의 경제적 성과에도 똑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 문화를 부모나 혹은 동료 네트워크, 그리고 사회 공동체로부터 물려받는다고 하는 사리은 사회적 이동성의 결핍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 상위 소득 계층의 사람이 개인의 성취, 협력, 그리고 혁신을 장려하는 규범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규범은 그들의 자손들에게 유전되고, 그런 자손들은 그러한 규범을 경제적 성공을 성취하는데 사용할 뿐 아니라 다시 그들의 자손에게 물려줄 것이다.
    • 마찬가지로 저소득 계층의 사람들은 세대에 걸친 반사회적, 반경제적 행동을 영속시키는 문화적 규범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대니얼 모이니한 상원 의원은 미국에 경제적 약자가 존재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빈곤의 문화’를 들었다.
  • 이러한 논리를 연장한다면 반사회적 문화 규범이 빈약한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로 연결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기능적 문화 속에서 자란 개인들은 그들의 친구, 이웃, 동료들로부터 수혜를 적게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그러한 경우에는 협력을 위한 기회도 적을 것이고 지식의 교류도 적을 것이며, 위험을 분담할 기회도 적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닮고자 하는 역할 모델도 적을 것이고, 젊은이에게 투자하고자 하는 멘토도 적을 것이다. 그러한 문화에서는 그나마 있는 빈약한 사회적 자본도 갱이나 마약 거래 네트워크와 같은 건전하지 못한 조직에서 발견될 수 있다.
  • 친사회적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은 전혀 반대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풍부한 사회적 네트워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 거기서는 역할 모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투자하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일자리르 찾아주기 우해 자기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성공은 축하받고 어려우면 도움 받을 것이다.
  • (여기까지의 논의를 보자면 교육으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개인의 능력 향상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해야겠지만– 친사회적인 문화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롤스의 논리와 정책

  • 이제 우리는 좌-우파의 스펙트럼에서 어디쯤 위치하는가? 좌-우파 모두 맞는 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말도 있다. (그에 대한 설명 생략)
  • 밀러는 이러한 이슈에 대한 좌파 및 우파적 논리를 이제 버리록 철학자 존 롤스의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우리가 만약 출생 복권에서 무엇을 뽑았는지 서로 알지 못했다면 우리는 어떤 체제를 원할 것인가?” 다시 말해 우리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부유한 투자 은행 집안에서 태어날 것인지, 브롱크스의 마약 중독자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날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시스템을 디자인한다고 해보자.
  • 이러한 ‘사고 실험’에 대한 답으로서 기회의 균등과 사회 안정망을 결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밀러는 주장한다.
    • 우리는 가능한 한 브롱크스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은행가의 집안에 태어날 운을 가졌다고 처벌해서도 안 된다. 초점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게 도와주는 것이지, 부자들을 응징해서는 안 된다.
    • 브롱크스에 있는 학교가 은행가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처럼 질적으로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인종주의와 같은 불공정한 장벽이 제거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약자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 가난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그들의 엄마들을 위한 약물 재활 프로그램이 필요할 수도 있고 식품, 주거, 보건 등의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 이와 마찬가지로 은행가의 아이들도 그 집안이 불운으로 망하더라도 최소한의 경제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밤에 더욱 편안하게 잠잘 수 있을 것이다.
  • 밀러는 롤스의 논리는 4가지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 전환하였다.
    • 첫째, 사람들이 민간 건강 보험에 들 수 있도록 세제 지원을 해줌으로써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
    • 둘째, 교사 노조와 성과 보상 제도에 합의하는 대신, 교사의 급여를 획기적으로 인상함으로써 공교육, 특히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질을 제고 시켜야 한다.
    • 셋째, 교육 예산 지출과 재산세를 분리시키고 전반적인 교육 투자를 늘리는 대신 바우처 시스템을 통한 교육의 경쟁을 허용한다는데 진보와 보수가 대합의를 이룸으로써 교육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 넷째, 연방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해 ‘최저 생활 임금’을 보장하여야 한다.
    • 밀러는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데 GDP의 2%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 밀러가 말하는 롤스의 도덕적 논리는 공정성에 대한 우리의 강한 상호주의 원칙에도 부합된다. 근면과 도덕적 청렴성은 이러한 제안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겠지만 나태함은 보상받지 못할 것이며, 불운한 자는 관대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 밀러의 제안은 강한 상호주의 특성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며 정치인들도 이를 주시할 것이다.

문화를 바꾸고 공통의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 밀러의 제안은 틀림없이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장애 요소를 제거하고 그들을 보호해 주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깊은 빈곤과 불평등의 문화적 기반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 문화와 빈곤이라는 주제는 풀기 어려운 난제다. 특히 그것이 인종과 같은 민감한 이슈를 다룰 때는 더욱 그러하다.
    • 민주당 출신의 진보적 인사로 인정받는 모이니한 상원 의원은 1960년대 빈곤의 문화에 대해 토론하였다고 하여 좌파로부터 인종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 빈곤의 문화를 토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특정한 소수 문화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소수 민족이 백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 근면과 협력, 혁신을 촉진하는 규범에 있어서 원초적으로 일본적인 것, 노르웨이적인 것이 없듯이 그러한 문화의 원초적으로 흰 것, 검은 것, 갈색이 없다.
  • 인종과 문화 간에는 불변의 관계가 없지만 문화와 역사 간에는 그 관계가 긴밀하다. 이것은 퍼트넘의 남부 이탈리아 연구에서도 보았고, 협력적 주체와 비협력적 주체를 상대로 한 시뮬레이션 모형을 통해서도 보았다.
  • 사회를 비난하는 좌파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우파 간의 조정이 가능하다. 동시에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한편 문화적 빈곤의 함정을 탈출하기 위한 열쇠로서 규범과 개인의 행동을 바꾸고자 노력할 수 있다.
  • 이러한 견해가 갖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문화가 한두 세대 내에 바뀔 수 있고 또 바뀐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분화는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긍정적인 규범을 희생하지 않고도 경제적 진보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 예컨대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상당한 문화적 변화와 함께 1970년대 이래 높은 경제 성장을 경험하였으나 두 나라 각기 스페인적인 것 아일랜드적인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빈곤의 문화를 제거하기 위해 문화적 규범을 바꿔야 하지만 미국 문화와의 총체적인 동질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 물론 광범위한 공통적 규범이 있을 때 모든 사회는 더 효율적으로 가능하다. 동질적인 사회에서는 신뢰가 높아지고 협력도 쉬워진다.
    • (이민, 다민족, 다문화와 공통적 규범에 대한 내용 생략)
  • 그러나 공통의 규범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정치, 교육 체제, 그리고 미디어에 걸쳐 엄청난 과제이다. 경제 성장으로 많은 시민들이 뒤처지고 있고, 이민과 세계화로 인해 사회적 긴장을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러한 과제는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 (이하 미국의 공통 규범에 대한 내용 생략)

미래의 방향

  • 이 장에서 나는 복잡계 경제학의 아이디어를 중요한 공공 정책 문제에 적용한 연구 사례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복잡계 경제학은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다.
    • 예컨대 복잡계 경제학은 인플레이션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앞서 본 대로 경기 변동의 연동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바탕으로 거시 경제 정책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 경기 변동에서 오랜 수수께끼는 “왜 임금은 하방경직성을 가지며 불경기를 예방하기 위해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회에서는 사람을 대량 해고하기보다 임금을 낮춤으로써 경제의 하강 움직임을 흡수할 수 있다.
    • 이러한 수수께끼는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피고용인들은 임금 삭감을 불공정 행위로 보고 있으며, 동태적인 통찰력이 약하다 보니 경제가 불황이 되면 실업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 환경적 이유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다. 물리적 환경 자체도 하나의 복잡 적응 시스템이다.
    • 1750년경 시작된 세계적 부의 급증으로 대기 중의 탄소량도 크게 늘었다. 환경의 긴 시간 단위를 놓고 보더라도 경제 성장이 환경에 미친 영향은 인간이 글로벌 생태계의 변화 속도를 바꾸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 이것은 마치 인간이 눈을 감고 환경에 대한 실험을 하는 것과 같다. 그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복잡 시스템의 경우 대개 잠시 증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변하면서 급기야는 붕괴된다는 성향을 감안할 때, 이러한 실험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대대적인 조사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지구의 재생 능력을 초과하여 지구 환경 능력의 1.2배를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복잡계 경제학은 경제와 환경의 공진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경제학과 열역학을 다시 연계함과 동시에 인간이 왜 이러한 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제때 대응하지 못하였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현재 보건 시스템 개혁으로부터 선거 자금 개혁, 선거구 제도, 국제 무역, 산업 규제 해제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복잡계 경제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분야별 연구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복잡 적응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복잡계 경제학은 공공 정책 분야에서는 아직 새로 뛰어든 주자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장에서 논의한 많은 아이디어들은 탐색적 단계에 있으나 매일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면서 발전과 이해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 마거릿 대처는 “사회라는 것은 없다. 남자와 여자, 개인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복잡계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대처의 말은 옳지 않다.
    • 수백만 사람 간의 상호작용, 의사결정, 강한 상호주의적 행동, 문화적 규범의 작동, 협력, 경쟁,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현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용돌이가 만들어 내는 창발적 패턴만큼이나 실제적이다.
  • 사회 속에는 국가, 시장 그리고 공동체가 있어서 이 셋이 합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적 세계를 형성한다. 우리가 사회의 미래 방향을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서로 결합해 경제적 부와 사회적 자본 그리고 기회를 창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나는 복잡계 경제학은 전통적인 좌-우 구분을 초월할 뿐 아니라 그러한 구분을 무용화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고 복잡계 경제학이 양극 사이에서 모호한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계 경제학은 전혀 새로운 이론적 시각이며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차원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 (중간의 저자가 바라는 복잡계 경제학의 미래 모습 생략)
  • 나는 이 책을 통해 시장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제도가 경제적 진화의 기반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였다. 거기에 세 번째 요소를 가미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정책 아이디어의 진화 시스템이다.
  • 에드워드 포스터가 말하였듯 “민주주의에 대해 두 번의 축배를 들자. 첫째, 민주주의가 인정하는 다양성을 위하여, 그리고 둘째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비판을 위하여!”
  • 앞으로 복잡계 경제학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논쟁에 새로운 다양성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확산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의 진화적 역할에 달려 있다.
[ssba]

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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