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서양철학사/ 프로타고라스

  • 소크라테스 이전의 위대한 사상 체계는 기원전 5세기 후반 회의주의 운동에 직면했는데, 이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인물이 바로 소피스트(Sophists)의 우두머리 격인 프로타고라스.
    • ‘소피스트’라는 말은 본래 나쁜 의미를 포함하지 않고 교수나 교사라는 말과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소피스트는 실제 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며 받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 교육에 필요한 공공 설비가 전무한 상태에서 소피스트들은 사유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나 사유 재산을 소유한 부모를 둔 사람들만 가르쳤다. 이로써 그들은 당시 정치 정세와 맞물려 점차 강해지던 계급적 편견을 갖기 쉬웠다.
    • 아테네를 비롯한 다른 여러 도시에서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승리했음에도 귀족 가문에 속한 부유층의 재산이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이 부유층이 우리가 아는 그리스 문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했다.
  • 노예와 여자를 배제한 점에서 한계가 있었으나 아테네 민주주의에는 현대의 민주주의 체제보다 더욱 민주적인 몇 가지 측면이 있었는데, 배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행정 관리는 추첨으로 선출되었으며, 짧은 기간 직무를 이행했다.
    • 이렇게 뽑힌 자들은 오늘날의 배심원처럼 보통 시민들로서 보통 시민들의 특징인 편견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데다 전문성도 결여했다. 대개 각 소송을 참관하는 배심원은 다수였다.
    • 원고와 피고, 기소자와 피의자는 직업적인 변호사를 동반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출두했기 때문에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결과는 대중적 편견에 호소하는 웅변술에 좌우되었다.
    • 소송 관련자는 스스로 변호하는 연설을 해야 했지만, 자신을 위해 연설문을 써줄 전문가를 고용해도 되었다.
    • 혹은 많은 이들처럼 법정에서 이기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대가로 보수를 지불할 수도 있었는데, 소피스트들이 바로 그러한 기술을 가르쳤다.
  • (러셀의 말)
    • 아테네가 현대 미국사회보다 덜 편협해 보이는 한 가지 점은 불경하다거나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기소된 자에게도 자신을 변호하고 항변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 이는 소피스트들이 한 계급에게는 인기를 얻었으나 다른 계급에게는 인기를 얻지 못했던 사실을 설명해준다.
  • 대중의 사고 속에서 소피스트와 법정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보여주는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물론 전거는 의심스럽다.
    • 프로타고라스가 한 젊은이를 가르쳤는데, 젊은이가 첫 소송에서 이기면 수업료를 받고, 지면 받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이의 첫 소송은 자신의 수업료를 돌려 받기 위해 프로타고라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었다고 한다.
  •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라고 주장함.
    • 이는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이며,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 한 사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은 본질상 회의적이고 감각의 속기 쉬운 성질에 근거한다.
    • 객관적 진리를 불신하게 되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다수가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는 법과 관습과 전통 도덕을 옹호한다.
    • 그는 신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는 반면, 신들이 숭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점은 확신했다.
    • 이것은 분명히 이론상 철저하고 논리적으로 회의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올바른 관점이다.
  •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수업료를 받고 가르치는 것을 비난했는데, 러셀은 플라톤이 사유재산이 많았음을 지목하며 되려 비난 함.
  • 소피스트들이 당대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다르게 평가되는 지점.
    • 당대 소피스트들 이외의 철학 스승들은 흔히 일종의 형제애로 뭉친 학파를 세웠다. 수가 많은 적든 학원에서 공동생활을 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수도원 규칙서와 닮은 규칙을 만들어 지키게 했다.
    • 또 으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고 비밀스럽게 전하는 학설이 있었다.
    • 이러한 특징은 모두 철학이 오르페우스교에서 비롯된 경우에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었으나 소피스트들 가운데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 그들은 논쟁술이나 논쟁술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쳤다. 대체로 말하면 그들은 오늘날의 변호사들처럼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논증하는 방법을 보여줄 채비는 갖췄으나, 자신들이 이끌어낸 결론을 실제로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서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시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들에게 소피스트들은 경박하고 부덕한 자들로 보였다.
  • 소피스트들이 일반 대중과 플라톤 이후 철학자들에게 불러일으킨 반감은 소피스트들의 지적인 우수성에서 비롯되었다.
    • 소피스트들은 논증을 따라가다 종종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 플라톤은 늘 자신이 생각한 덕을 사람들에게 함양해줄 견해를 지지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그가 지적인 면에서 좀처럼 정직하지 않았던 까닭은 학설을 사회적 귀결과 연관시켜 판단하기 때문이다.
    • 그는 논증을 전개하면서 순수한 이론적 표준에 따라 판단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덕성을 함양하는 고결한 결론에 이르도록 논의를 왜곡한다.
    • 이렇게 그가 철학에 끌어들인 악습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그의 대화편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악습은 아마 소피스트들에 대한 과장된 적대감에서 비롯되었을 공산이 크다.
    • 플라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이 지니게 된 결함 가운데 하나는 윤리적 탐구를 하는 경우에 이미 도달해야 하는 결론을 안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는 경직된 청교도적인 단순한 사고방식에서 재치 있기는 커녕 지독한 냉소주의로 바뀌어가는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 변화 속에서 소피스트들이 어떤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힘없이 무너져가는 정통 신앙을 방어하려는 우둔하고 지독한 노력과 갈등을 빚었다.
  •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2차례 전쟁에 승리하고 번영을 누리며 많은 천재들을 배출하였으나 –주로 지성보다는 예술 분야에서. 당시 위대한 수학자와 철학자 가운데 소크라테스를 제외하면 아테네 출신은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ssba]

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사람/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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