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서양철학사/ 카를 마르크스

  •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체계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느 누구보다 강력한 운동을 이끌어낸 사람으로 생각 된다.
    • 마르크스는 어떤 면에서 호지스킨처럼 철학적 급진파의 영향으로 성장한 철학자로서 급진파의 합리적 성형과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어받는다.
    • 다른 면에서 보면 그는 유물론을 부활시킨 학자로서 유물론을 새롭게 해석해서 인간의 역사와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시킨다.
    • 마르크스는 위대한 체계를 구성한 마지막 철학자이자 헤겔의 후계자로서 헤겔처럼 인간성의 진화를 종합하는 이성의 정칙(formula)이 있다고 믿었다.
  • 마르크스는 벤담이나 제임스 밀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언제나 과학적으로 연구하겠다는 의향을 분명히 나타낸다.
    • 그의 경제학은 원동력만 변화시킨 영국 고전 경제학의 산물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지주와 임금 노종자 양측과 대립한 자본가 계급의 복리를 목적으로 삼았다. 이와 반대로 마르크스는 임금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 착수했다.
  • 마르크스는 자칭 유물론자였지만 18세기 프랑스의 기계적 유물론을 지지하지 않았다.
    • 헤겔 철학의 영향으로 형성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전통적인 유물론과 달랐으며, 오늘날 도구주의라 불리는 사상에 더 가까웠다.
    • 그는 구식 유물론이 감각을 수동적인 작용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활동을 일차적으로 물체에 귀속 시켰다고 주장했다.
    •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감각이나 지각은 모두 주체와 객체가 상호작용한 결과로서, 지각자의 활동을 제쳐놓은 있는 그대로의 객체는 단지 재료일 뿐이므로 인식 과정에서 변형되기 마련이다.
    • 수동적 관조라는 낡은 의미의 인식은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나는 인식 과정은 물건을 다루는 과정과 같다.
    •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 마르크스는 실천의 관점에서 ‘진리’ 개념을 비판한 첫 철학자이다.
  •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헤겔과 영국 고전 경제학이 뒤섞여 형성된다. 그는 헤겔처럼 세계는 변증법적인 정칙에 따라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발전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헤겔과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
    • 헤겔은 ‘정신(spirit)’ 이라는 신비적 존재가 <논리학>에 제시된 변증법의 여러 단계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도록 이끈다고 믿었다.
    •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법칙의 불가피성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헤겔 변증법의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 그러나 물질은 인간적 요소가 완전히 말살된 원자론자들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고찰해온 독특한 의미를 갖는 물질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서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이든 정치, 종교, 척학, 예술은 속한 시대의 생산 방법과 비중은 조금 낮지만 분배 방법의 산물이다. 
  • (마르크스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
  • 순수하게 철학자로서 고찰하면 마르크스에게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그는 지나치게 실천에 치우치고 당대 문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휘둘리고 말았다. 그의 시야는 지구라는 이 행성에 그것도 지구 안의 인간에게 국한되었다.
    • 대체로 말하면 마르크스 철학 가운데 헤겔에게서 유래한 모든 요소가 참이라고 가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 모두 비과학적인 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 마르크스의 합리주의가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 그는 발전의 추세에 대한 해석이 사실이며 일어날 사건들이 확증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계급 이익이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 또 설득하려하지않고 계급투쟁에 모든 희망을 건다. 따라서 그는 실제로 권력정치에 그리고 지배 종족을 지지하는 학설은 아니지만 지배 계급을 지지하는 학설에 몰두한다.
[ssba]

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사람/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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