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와 행위자

내가 미로 속에서 길을 찾고 있고, 그런 나를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가 있다고 하자.

그 관찰자 입장에서는 미로 전체와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한 눈에 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떠한 결과가 벌어질 지 예측이 가능한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자체는 예측할 수 없는데 내가 직진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존재하는 위치에 따라 예측이 가능한 것과 그 범위 자체가 달라진다는 특성이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서는 지금 글의 주제와 다르므로 차후에 정리해 보겠다. —-이 경우에서 행위자는 자신의 행동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방향을 유지할 경우 발생할 미래 –미로가 이어지는 길– 은 예측 불가, 관찰자는 행위자가 자신의 방향을 유지할 경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예측 가능하지만, 행위자가 현재 어떤 행동을 결정할 지는 예측 불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현재 진행하는 외길의 끝이 오른쪽으로 이어져 있고 그 길에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관찰자 입장에서 행위자인 내가 현재 방향을 고수할 경우 저 행위자는 곧 죽겠군 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행위자인 내 입장에서 내가 이 미로 속에서 죽음의 경로를 찾는 것 –자살을 하려는 것– 이 목적이 아닌 이상 길을 따라 가다 끝에서 돌았더니 낭떠러지가 나왔다면 ‘어이쿠 여기는 길이 더 없군’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그만이다. 우리는 생(life)에 대한 의지와 더 나아지려는 의지를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으나 거의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든 조직의 운명이 어려워지든 우리는 관찰자 입장에서 쉽게 ‘저러다 망하지’ 라는 말을 쉽게 내놓고 나라나 조직이 망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편으로 베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위자인 나라와 조직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생을 지속하고 더 낫게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현재의 좋지 않은 상황을 더 낫게 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것이다. –물론 나아지려고 한 결정이 스스로를 망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조직 (혹은 개인)이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 조직 (혹은 개인)이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 지에 대한 판단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예측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망할 것이라고 기우제 지내지 말 것이고, 근거 없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도 경계 해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나 압도적인 힘을 가진 경쟁자에 의한– 것이 아닌 이상, 어찌되었든 역량이 존재한다면 어려움이라는 것은 결국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ssba]

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사람/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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