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이해 – 게임과 플레이

이 글은 이전에 쓴 ‘게임 디자인 이해’와 같은 게임에 대한 이해 3부작 시리즈 중 2번째 글로
놀이에 대한 이해를 정리한 글입니다
어찌 보면 게임 개발하는데 이런 개념 이해가 굳이 필요한가 싶기도 한데
뭐 언제 어떻게든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리합니다

현재의 비디오 게임은 –컴퓨터 게임–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져서 비디오 게임은 놀이다라고 분명히 주장하기에도 무리가 있지만 저는 우선적으로 비디오 게임의 놀이적인 특성에 기반하여 아래의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 이전의 글에서 이번 글이 ‘놀이’, ‘게임’, ‘인터랙티브 미디어’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고 썼는데 글을 정리하니 인터랙티브 미디어에 대한 내용보다는 놀이에 대한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으니 그 점 이해하시고 글을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비디오게임을 바라보는 2가지 시선

오래 전에 쓴 글도 있지만
컴퓨터 게임의 학문적 접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 2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 게임을 서사의 발전적인 형태로 보는 인터랙티브 내러티브의 접근 방법과
놀이의 새로운 형태로 보는 루돌로지의 접근 방법입니다

이전의 글에서 쓴 대로 사실 저는 두 가지 중 어느 한 방법에만 집중하지는 않지만
이 글은 게임의 재미에 초점을 맞춘 게임에 대한 이해 3부작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인터랙티브 내러티브보다는 루돌로지의 접근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실 게임의 대한 학문적 접근은 놀이로서의 이해 보다 서사로서의 이해가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컴퓨터 게임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사에 대한 학문적 이론이 이미 수천 년에 걸쳐 다듬어져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서사의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서사론자(내러톨리지스트, Narratologist)들은 게임의 상호작용하는 텍스트에 초점을 맞추어 컴퓨터 게임의 학문적 이론의 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서사론자들에 의하여 게임에 대한 서사적 시각이 다듬어지는 와중에 이와 대비되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여 게임을 서사의 관점이 아닌 놀이의 관점으로서 게임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게 됩니다
서사론자에 대비되어 놀이론자(루돌로지스트, Ludologist)라고 불리는 이들은 게임의 서사적인 플롯보다는 게임의 룰에 초점을 맞추어 게임을 놀이로서 이해하게 되는데 이때 이들은 요한 호이징하의 ‘호모루덴스’와 로제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을 통해 놀이의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의 놀이 이해

호이징하는 놀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으로서 
‘호모루덴스’를 통해 이전과 다른 개념의 놀이에 대한 정의를 내렸는데 
이 이론은 이후 다른 학자들이 놀이에 대한 연구를 할 때 기본 발판이 되게 됩니다
 –아래는 간단히 설명한 것으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직접 책을 읽어 봅시다

놀이란?
1. 놀이란 간접적이며 실제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으며, 움직임의 유일한 동기가 놀이 자체의 기쁨에 있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활동이다
2. 놀이란 모든 참여자에 의해 인정받는 어떤 일정한 원칙과 규칙, 즉 ‘놀이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활동이며 거기에는 
   성취와 실패,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이 있다

놀이의 특징
1. 자유스러운 활동
2. 실재가 아닌 것
3. 장소와 지속성에 의해 일상적인 삶과 구분

호모루덴스는 최초로 놀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로 큰 의의를 지니는 책으로
놀이의 정의와 특징에 대한 접근은 이루어냈지만
아쉽게도 놀이의 분류와 같은 더 깊은 부분에 대해선 접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플레이와 게임을 별개로 구분하는 개념도 아직 없던 시기 입니다
호이징하가 못한 놀이의 더 깊은 부분에 대한 접근은 이후 호이징하의 이론을 받아들인 로제 카이와가 시도하게 됩니다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의 놀이 이해

호이징하가 놀이 그 자체에 주목하여 놀이의 정의와 특징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였다면 
카이와는 호이징하의 이론을 발전시켜 놀이의 특성에 따른 분류를 체계적으로 이뤄낸 사람입니다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규칙’과 ‘의지’라는 요소를 이용해 그 유명한 아곤/알레아/미미크리/일링크스 분류법을 만들어 냈으며
루두스와 파이디아라는 놀이의 원리도 파악해 냈지요
 –아래는 간단히 설명한 것으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역시 직접 책을 읽어 봅시다

놀이의 형태
아곤(Agon) – 스포츠경기나 체스 같은 경쟁을 하는 놀이. 규칙과 의지가 동시에 작용
알레아(Alea) – 주사위 굴림, 복권 같은 운에 의한 놀이. 규칙은 있지만 의지가 없음
미미크리(Mimicry) – 흉내, 연극 같은 모의에 의한 놀이. 규칙은 없지만 의지는 있음
일링크스(Ilinx) – 그네, 곡예와 같은 지각의 안정을 파괴하는 현기증 놀이. 규칙도 없고 의지도 없음

놀이의 원리
루두스(Ludus) – 놀이의 규칙이 중시
파이디아(Paidia) – 놀이의 자유로운 행동이 중시
루두스와 파이디아는 일직선상의 양 극단에 위치하여 파이디아가 강해지면 루두스가 약해지고 루두스가 강해지면 파이디아가 약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카이와가 분류한 놀이의 형태는 다소 중복되는 것도 많고–실제로 카이와도 저 놀이의 형태가 여럿이 묶여서 나타난다고 합니다–저 4가지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분류의 형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놀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했다는 것과 더불어 루두스와 파이디아라는 개념을 밝혀 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둡니다
 –사실 저 루두스와 파이디아라는 용어 자체는 호모 루덴스에서 먼저 언급이 되긴 합니다만 
저 용어를 이용하여 놀이의 원리를 파악해낸 것은 카이와에 이르러 된 것입니다

호모루덴스와 마찬가지로 이때까지도 플레이와 게임을 별개로 구분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비디오게임의 등장 이후 등장한 놀이론자들이 카이와의 이 이론을 받아들여 그 둘의 구분을 시도하게 됩니다

 

곤살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의 놀이 이해

호이징하가 정의한 놀이를 계승하여 카이와가 발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카이와가 밝혀낸 루두스와 파이디아의 개념을 이후 놀이론자들이 받아들여 발전시키게 됩니다

그 중 곤살로 프라스카는 루돌로지(Ludology)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놀이론자로서 카이와가 밝혀낸 루두스와 파이디아 개념을 받아들여 이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는 시도를 합니다

프라스카는 우선 파이디아에도 규칙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어 
이전의 카이와가 루두스와 파이디아가 일직선상의 양 극단에 위치한다고 했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결과’의 존재 유무에 따라 루두스와 파이디아를 구분하여 분리하는 방법으로 아래와 같이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루두스(Ludus)
특수한 종류의 파이디아, 승리와 패배, 이익과 손실을 규정하는 규칙들의 체계하에 조직된 활동

파이디아(Paidia)
당장의 유용한 목적도 규정된 목표도 없는 풍부한 육체적 혹은 정신적 활동
파이디아는 루두스와 달리 미리 설계된 별도의 승리를 위한 플롯이 없고 플레이어가 자신의 목표들을 결정할 수 있는 더욱 많은 자유를 갖는다
만일 파이디아 플레이어가 승리의 규칙과 패배의 규칙들이 있는 어떤 목표를 정하면 그 즉시 이 활동은 루두스가 된다

카이와가 루두스와 파이디아를 일직선상의 양극단에 놓고 행동에 규칙이 중시되느냐 자유행동이 중시되느냐로 그 둘을 구분했던 반면에 
프라스카는 일단 루두스와 파이디아 모두 규칙이 존재하는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고 그 행동에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로 그 행동을 루두스냐 파이디아냐로 구분합니다
 –파이디아라는 더 큰 범위를 두고 그 안에 목표를 갖는 행동을 루두스로 규정하는 것이지요

때문에 프라스카는 하나의 게임이 루두스 규칙, 파이디아 규칙을 고르게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예컨대 체스는 규칙을 가진 루두스 게임이지만 그 안에 말을 움직이는 방법을 지시하는 규칙은 게임을 끝내기 위한 것이 아닌 게임을 하기 위한 것이므로 파이디아 규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프라스카의 논의는 ‘규칙의 정도’를 가지고 루두스와 파이디아를 구분했던 카이와에 비해 ‘목표’라는 요소를 통해 좀더 명확한 분류를 했으나
카이와와 같이 여전히 하나의 게임 안에 두 가지 요소가 적용되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도 외부 관찰자에게 그 둘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고 했듯이 모호한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나의 놀이 이해

저는 직업이 게임 디자이너인지라 게임 개발을 위해 놀이(게임)를 이해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놀이(게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고 접근하였는데
후에 시스템 사고를 접하게 되면서 보다 시스템적인 개념으로 놀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간단히 시스템 사고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시스템 사고란 시스템의 작동메커니즘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발견하기 위한 사고방식으로 
쉽게 말해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고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사고에서는 시스템을 간단하게 행동과 구조로 구분하여 이해하는데
 –보다 자세한 설명은 http://persian8.com/2511334 참조
저는 바로 이 행태와 구조를 통해 놀이 개념을 다시 이해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루두스와 파이디아를 다시 정의해서 설명 드리고 싶기는 하지만
이미 그 의미가 정착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저는 루두스와 파이디아 대신 게임과 플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루두스=게임', '파이디아=플레이'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저는 시스템 사고에 의거하여 놀이의 행동은 플레이로 놀이의 구조는 게임으로서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놀이’는 바로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을 말합니다
이는 프라스카가 정의한 목표를 지닌 행동은 루두스, 목표가 없는 행동은 파이디아로 구분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고 
 –때문에 저는 루두스와 파이디아 대신 게임과 플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어찌 보면 카이와가 규칙과 자유행동으로 그 둘을 구분한 것과 유사합니다

플레이(Play)
행위자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행동으로
우리가 흔히 ‘논다’라고 동사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플레이가 됩니다

이 노는 행위에는 목표나 의지가 담길 수 있는데 이것을 이용하면 카이와가 분류한 것처럼 플레이를 분류를 할 수 있지만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능동적인 의지가 있고 
    영화나 경기를 관람하거나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수동적이라 의지가 없지만 
    똑같이 즐거움을 주는 행위이므로 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Game)
행위자의 구조를 이루는 룰이 존재하고 의사결정에 대한 의도된 보상과 벌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로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놀이 규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게임과 게임이 아닌 것의 차이를 들자면
심시티나 심즈 같은 게임도 룰과 의사결정 그리고 그 의사결정에 대한 의도된 보상과 벌이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이라 할 수 있지만 
 –상업지구를 설치했더니 세수가 늘었다거나 캐릭터에 밥을 안 먹였더니 체력이 떨어졌다 등
일반 소프트웨어는 룰과 의사결정은 존재하지만 보상과 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법이 적용되는 현실은 다른 것은 모두 존재하나 보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게임은 구조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지만 여기에 별도의 행동이 개입되면 하나의 체계가 완성됩니다

게임과 플레이
게임과 플레이는 그 둘이 결합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근본적으로 그 둘은 독립적인 행태와 구조이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다른 조합으로도 연결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게임(Game)은 노동(Work)이 될 수도 있고 -> Game.Work()
 –여기서의 Work는 동사로서 ‘일하다’를 의미합니다
플레이(Play)도 일(Work)에 결합될 수도 있습니다 -> Work.Play()
 –여기서의 Work는 명사로서 ‘일’, ‘직업’을 의미합니다

위의 조합인 Game.Work()는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온라인 게임 작업장 같은 것이 되어
분명 게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놀이가 아닌 직업적인 활동이 되는 것이고
아래의 조합인 Work.Play()는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것 또는 즐겁게 놀면서 돈 버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놀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Game.Play()가 됩니다
행태와 구조가 만나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는 것처럼
Game이라는 구조와 Play라는 행태가 만나 놀이라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지요

 

결론

간단하게 정리하느라고 내용이 부실한 부분이 많지만 더 깊게 파고 드는 것은 제 능력 밖의 일이라 여기서 정리합니다
이 글은 놀이에 대한 이해를 이전의 학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저의 생각까지를 정리한 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요한 호이징하가 놀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최초로 했다
2. 로제 카이와가 호이징하의 접근을 발전시켜 놀이의 분류를 만들었다
3. 서사론자에 맞서는 놀이론자들이 호이징하-카이와가 이루어낸 놀이 이론을 받아들여 비디오 게임에 적용했다 
   –루두스와 파이디아
4. 나는 놀이에 대한 이전의 정의들과 시스템 사고적인 시각을 결합하여 놀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고 
   놀이를 행태적인 플레이와 구조적인 게임의 결합으로 정의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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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지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suyeongpark@aby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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