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읽은 책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제목만 보고 처음에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집단지성을 까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냥 많은 큰 집단 속에서 일어나는 바보 같은 의사결정에 대해 까는 약간 에세이 같은 느낌의 책이라 그냥 저냥 했다. 굳이 비교해 보자면 예전에 읽었던 <빈 카운터스> 와 비슷한 듯.

호황 vs 불황

경제의 호황과 불황기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처음 제목만 보고 무엇이 호황과 불황을 만드는가에 대한 구조적인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내용은 안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그냥 저냥 이었다.

책의 원전이 나온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이른바 주류 경제학을 한창 까고 새로운 경제학 이론들이 주목 받던 시기 –지금은 행동 경제학이 주류 경제학에 대비될만큼 커진 듯– 였음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흥미로운 내용일 수 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사실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요즘 책을 읽는 눈이 까다로워져서인지 읽다가 중간에 마는 책이 좀 많은데, 이 책은 그래도 중간에 잠깐 쉬기는 했지만 끝까지 읽기는 했다.

전체를 보는 방법

복잡함(복잡계)의 원리를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책. 환원주의를 비판하고 복잡함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 보는 내용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미 다른 곳에서 접했던 내용이 많아 그냥 저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복잡함의 원리를 좋아하여 끝까지 읽긴 하였으나, 복잡계에 대한 대중적인 책을 찾는다면 다른 책을 보는게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었음. 마크 뷰캐넌의 <우발과 패턴>, <사회적 원자> 나 렌 피셔의 <보이지 않는 지능> 을 추천.

그나저나 예전에 읽었던 복잡계에 대한 책이나 요즘 나오는 복잡계에 대한 책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 분야가 아직은 더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는 이유는 ‘공유 지식’[1]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책. 예를 들자면 나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게 아니란 걸 서로 깨달았을 때 힘을 합쳐서 집단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

집단 행동을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집단 행동을 이끌려는 입장에서는 공유 지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책에서는 예로 의례, 집회, 이벤트 등을 든다– 집단 행동을 막으려는 입장에서는 공유지식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회를 방해하거나 파놉티콘 같은 구조로 서로 간에 의사 소통이 안되게 하는 것 등– 는 내용.

더불어 약한 (혹은 느슨한) 네트워크가 강한 네트워크에 비해 광범위한 의사소통에는 유리하지만 공유 지식에는 불리하다 –잘 아는 사람끼리 있을 때 행동이 더 잘 되기 때문. 집회 참여 예측의 중요한 변수는 집회에 참가한 친구가 있는지 여부다– 는 내용도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이긴 하지만 광고 효과를 공유 지식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좀 있었다. 그래도 책이 얇아서 관심 있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괜찮을 듯하다.


[1]: ‘내가 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당신이 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는 사실을 서로가 아는 상태’를 의미하는 일종의 메타 지식

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20세기 경제사에 가장 유명한 경제 학자들의 논쟁을 다룬 책. 경제학의 오랜 논쟁인 ‘정부 개입 vs 시장 주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논의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념가에 가까운 하이에크보다는 실제로 치국의 관점에서 경제학을 한 케인즈가 좀 더 내 입장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은 책이 나온 시점인 2008년 이후 발생한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는 다시 쇠퇴의 길을 걷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점 –물론 트럼프는 그 경향과는 반대로 가고 있지만.

비단 경제학 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은 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너무나 많아서 이렇게 설명해도 그럴싸하고 저렇게 설명해도 그럴싸하다는 문제가 있는데, 책이 마무리 짓는 내용과 현재의 분위기가 또 달라서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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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설계도 게놈 편집의 세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AI보다 더 파괴적인 기술이라 생각하는 Crispr-Cas9에 대한 –AI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유전자 편집 기술은 눈 앞에 와 있다–  이야기. NHK에서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정말 TV 방송에서나 볼법한 글이 종종 나온다 –인터뷰 대상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하등 쓸데 없는 이야기

방송용이라 어려운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 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너무 대중적이라 딱히 기대한 수준의 깊이가 없어서 참 아쉬웠다. 크리스퍼의 원리에 대한 내용보다는 크리스퍼를 이용해서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현장에서 도입된 사례에 집중한 책. 추천하기는 어렵다.

뒤르켐 & 베버 : 사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두 사회학자의 이론을 소개하는 사회학 이야기. 베버의 관료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베버에 관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싶어 읽었는데, 관료제 이야기는 별로 없고 두 사회학자의 사회학 이론을 전반적으로 훑는 내용이었음.

사회의 구성이 종교적 믿음과 같은 믿음에 의해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나, 종교를 구성하는 것은 믿음 뿐만 아니라 제사라는 부분 등은 흥미로웠으나, 그 외의 전반적인 내용은 so so. 서양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이유를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찾는다는 부분을 읽고는 베버의 책을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음.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

공리주의에서 시작하여 동물 해방에 이르는 윤리 문제를 이야기 하는 책. 벤담이라는 이름을 보고 공리주의를 떠올렸지만, 공리주의와 ‘공평하라’라는 부제와는 좀 어울리지 않나 싶었는데, 실제 내용도 공리주의에 대한 내용과 우주적 관점에서의 공평함에 대한 내용으로 구분이 된다. –책에서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익을 고려한다는 논의로 공리주의에서 공평함을 찾는데, 모두가 공평한 지점이 이익의 총합이 극대화 되는 지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논의는 사실 좀 갖다 붙인 느낌이 든다.

공리주의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대한 논의나 행복을 정량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 등이 유명한데, 이에 대해 딱히 코멘트할 거는 없어 보이고, 공평함에 대한 우주적 관점이 흥미로우니 이에 대해 몇가지 생각 정리.

동물의 이익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대하여야 한다는 논의는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만한데,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므로 잡아 먹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식물은 신경계가 없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먹는게 문제가 안된다는 논의는 사실 받아 들이기 어렵다. 그렇게 따지면 유전적인 문제로 선천성 무통각증을 가진 인간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잡아 먹어도 되나? 생명이라면 생(life)에 대한 추구가 있게 마련인데, 고통을 느끼는 것을 기준으로 식물은 먹어도 되고 동물은 먹으면 안된다고 하는거는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동물을 먹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인만큼 식물을 먹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 면피성 논리는 안 하느니만 못하는게 아닐까 싶음.

사실 이런 논의를 따라가면 애초에 인간이 존재하는거 자체가 문제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사실 정말로 자연에서 인간이 없어지면 자연은 아름다운 곳이 될까 하느냐면 그건 또 아님. 인간의 자리를 다른 무언가가 대체하는 것일 뿐. 애초에 자연의 법칙이 이상적이지 않으며 –이래서 붓다는 생이 고통이라고 강변했지– 이상적인 공간을 찾으려면 빅뱅 이전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으면 불합리한 것도 없지.

모든 논의에는 범위(range)가 있게 마련이고, 어느 수준에서 합의를 하느냐가 현실의 문제다.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제목 그대로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대한 이야기. 지식인마을 시리즈의 책이 그러하듯 어려운 개념에 대한 교양 입문서 정도로 현상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사실 현상학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도 여전히 잘 모르겠어서 무언가를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후설이 엄밀한 학문으로서 철학을 꿈꿨다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간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든 가정을 하나 전제 하면 그 가정에 대한 가정이 필요 하고 다시 그 가정에 대한 가정에 대한 가정이 필요 하고… 이 반복되기 때문. 이쯤되면 무언가를 엄밀하게 정의하기 보다, 왜 무언가를 엄밀하게 정의할 수 없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논의의 방향성을 떠나 그 어렵다는 현상학에 대하여 그래도 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현상학에 관심 있다면 한 번쯤 읽어 봐도 괜찮을 듯.

데카르트 & 버클리 :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데카르트와 버클리를 중심으로 한 회의론에 대한 이야기.

지식의 체계를 견고한 토대에 올려 놓기 위한 데카르트의 회의주의는 버클리에 이르러 ‘지각 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에 도달하는데, –논쟁의 대상은 다르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 논쟁을 하면서 달을 보고 있지 않으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냐고 했지– 개인적으로는 20세기 수학자들이 수학을 견고한 토대 위에 올려 놓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처럼 애초에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간 느낌이 든다.

그래도 그들의 성과는 충분히 되새겨볼 만한데, 관찰할 수 없는 대상 –아주 작거나, 관측 가능한 우주 바깥에 있거나– 에 대한 논의는 과학이 아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이기 때문.

책의 분량도 작고 회의론에 대하여 어렵지 않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 있다면 한 번 쯤 읽어 볼만한 책이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