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읽은 책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복잡성, 복잡계에 대한 책. 개인적으로 복잡 네트워크를 좋아해서 관련한 책은 어지간하면 다 보려고 하기 때문에 신간이 나와서 읽었음.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내용은 자기조직화에 대한 것인데 읽다보니 자기조직화라는 것은 결국 네트워크 구조에서 일어나는 최적화 문제라는 생각이 좀 들었다. –더 생각해서 차후에 정리해 봐야지

이 전에 읽었던 복잡계 관련책 –<전체를 보는 방법> — 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책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대부분은 예상이 가능해서 –아주 디테일하게 다루는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책 자체는 대단히 빨리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특별히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은 없었고 복잡성 과학은 아직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음.

복잡성 과학이 아무래도 아직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그치고, 그 근원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기 때문.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은 합리적이지만, 그 일이 일어난 근원적인 부분에 도대체 무엇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게 느껴짐. 마치 플라톤의 동굴 그림자처럼 사물의 실체는 못보고 그림자만 보고 유추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책에서는 너무 이것저것 창발(emergence) 을 가져다 붙이는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고흐가 동생인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  고흐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써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깊은 고뇌를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2권은 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것인데, 1권의 성공 덕에 출간된 느낌이라 고흐에 대해 큰 애착이 없다면 1권만 보는 게 나을 듯.

하지만 그 순수함이 그를 비극으로 몰고 갔음을 생각해 보면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오의 편지로부터 그의 말년에 그 당시 예술가로부터 서서히 인정 받는 시기였음을 알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정신은 이미 그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고갱과의 다툼 후에 잘랐던 귀가 계속 문제였을 것으로 추정– 결국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하게 되었기 때문.

나도 한 때 나의 일을 하는 시기에 심리적 압박을 참 많이 받았었는데, 나의 결과가 세상에 인정 받기 까지는 시차가 존재하게 마련이고, –10년-20년 어쩌면 평생 걸릴 수도 있다– 그 시기 동안 마음을 다스리며 그저 묵묵하게 이겨 내는 것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예술가 뿐만 아니라 학문적이든 정치적이든 업적을 쌓은 사람들 위인들도 어릴 때부터 세상의 대접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사람들도 무시를 받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를 결국 이겨냈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된거일테니까. 편하게 산 사람은 존경 받지 못한다.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 존경 받는 것.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가 쓴 미술 감상 에세이. 저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술가와 그 작품에 대해 자신의 감상을 담았다. 그런데 나는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라 책에 담긴 미술가와 그 작품들을 대부분은 몰라서 내용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미술 감상에 조예가 깊은 작가의 에세이이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작품을 구석 구석 들여다 보며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에 소개되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보다 풍부하게 책의 내용을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의 삶에 대해서도 함께 짚고 있는데, 결국 작품이라는 것은 그 작가 개인의 성향과 그의 삶이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그저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풍부한 감상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책에 담긴 작가나 작품들은 내 기준에서는 개인적인 인물이나, 일상적인 풍경 등을 주제로 그려진 그림들이었는데, 내 개인 성향상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거나 어떤 패턴 –예컨대 에셔나 몬드리안 같은– 을 담은 작품이 내 취향에는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심미안이라는 것은 결국 부지런히 다니면서 작품들을 감상하며 경험을 쌓아야 길러지는 것이기에 기회가 닿는대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찾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와 그 당시 사회상을 함께 이해하며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칙한 현대미술사

발칙한 현대미술사

인상주의 화가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엄밀히 말하면 가장 앞에는 뒤샹이 있지만– 현대미술까지의 미술의 다양한 사조를 짚고 해설 하는 책. 점점 대중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현대 미술에 대한 설명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술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고흐, 몬드리안, 에셔인데 책에서 에셔는 다뤄지지 않아서 아쉬웠음.

저자의 설명에 대해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현대 미술에 가까워지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나에게는 그저 어떻게든 갖다 붙일 수 있는 해설– 부분이 많아지는데, 특히나 작가가 어떤 좋은 학교를 나오고 등의 설명은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작가이므로 사기가 아니다는 식의– 적어도 나는 안하니만 못한 설명으로 느껴졌다. 세상에는 명문대 나온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그런식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하면 현대 미술은 점점 더 대중에서 멀어질 것이고, 종결에는 미술이라는 분야가 독립적인 예술 분야로 남기는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여전히 음악이나 문학 작품을 즐기고 납득할 수 있지만 현대의 미술은 그것과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미술사 전체로 보아 현재의 그것들이 일종의 ‘시도’였고, 이후의 미술가들 스스로도 그것이 납득이 안되어서 다시 대중의 납득 시킬 수 있는 형태 –카메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로 변해간다면 지금의 시대는 ‘카메라’라는 강력한 기술이 등장한 이후 생존을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미술의 시기라고 남을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공장 노동자들은 그것을 못해서 결국 일자리를 잃었지만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 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퇴임 후에 자신이 대법관 시절 당시 사회적으로 논의가 컸던 문제들에 대해 판결했던 것을 되짚어 보는 책. 존엄사, 삼성 문제 등 읽다 보면 당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사건들에 대해 당시 대법원에서 어떤 의견이 모아졌는지를 알 수 있다.

정의(Justice)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정의(Definition)하기 어려운 것도 그렇고 –사람을 죽인 것이 죄라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겠지만, 그 처벌의 정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현실의 많은 문제는 이해 관계의 조정인데 어느 선을 그어야 사회적으로 합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는 정답이 존재하는 영역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은 어떤 식으로 결정되든 그에 동의하는 사람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위와 같은 이유로 책에서 명쾌한 답을 얻기는 어렵지만, 법관들이 어떤 고민으로 판결을 내리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교양 삼아 읽어볼 만한 책.

심미안 수업

심미안 수업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 오랜 기간 예술을 경험해 온 저자의 미술에서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에 이르는 분야에 대한 작품을 이해하는 법이 담겨 있다. 심미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니 꾸준히 좋은 것을 직접 경험해 보라는 내용.

예술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은 결국 많이, 꾸준히 경험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도나 색채, 음감 등에 정답이 있어서 그것에 맞으면 좋은 작품이고 틀리면 나쁜 작품인 것이 아니니까. 물론 건축이나 디자인의 공학적인 부분에는 정답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안 그러면 건물이 무너지거나 제품의 사용이 불가능해 질 수 있으니– 건축이나 디자인이 가지는 아름다움에는 그러한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내가 기쁠 때와 슬플 때의 경험은 다르기 때문에, 작품을 다양한 관점에서 꾸준히 경험해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꾸준히 경험을 쌓으면 점점 아름다움을 보는 감각이 길러질 것이고, 그러면 작품이 가진 깊은 향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의 지능에 대한 논문과 강연 등을 정리한 책. 그 유명한 튜링 테스트에서부터 러브 레이스가 기계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에 대한 반론도 담겨 있고, 체스에 대한 예측 등 시대를 앞서 갔다고 할만큼 놀라운 얘기가 담겨 있다.

다만 튜링은 기계 지능을 통해 인간 지능의 비밀을 풀 수 있을거라는 다소 순진한 믿음을 갖고 생각을 전개하다 보니 인간 지능에 대한 부분에서는 약간 모호하고 허술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뇌에 대한 비밀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테니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 됨.

하지만 역시나 테니스를 잘 치려면 테니스를 훈련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 지능을 이해하려면 뇌를 봐야지 그와 유사한 것으로는 지능에 대해 도달할 수 없음.

개인적으로 요즘 드는 생각은 인간의 지능은 인간 뇌구조의 복잡도 이상 높아질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인데, 뇌구조가 그 위에 구현된 지능 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능으로는 우리의 뇌를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것. 우리의 뇌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려면 우리의 뇌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진 외계인이 등장해야 이해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음. 물론 그러한 논리를 따라가면 외계인은 다시 자기 자신의 뇌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쉽게 말해 2차원의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3차원의 물리적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현실 속의 우리는 2차원으로 쪼개진 정보를 조합해서 결국 3차원으로 이해할 수는 있기 때문에 꼭 그렇다고 하기 어려울 수는 있다.

튜링의 예측에 대해서는 놀랄 수 있지만,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정말 지능이있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있을  있고 –그 순간 사람을 속일 수 있다면 테스트는 통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슐리 메디슨이라는 바람 피우는 사이트가 그걸 해내지 않았는가– 지금 보기에는 좀 맥을 잘못 짚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어서 크게 관심있지 않다면 꼭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개인적으로 TV를 잘 안봐서 모르지만, 여튼 범죄심리학자로 유명하다고 하는 저자가 쓴 범죄 사례집. 제목만 봐서는 사이코패스 범죄에 대한 내용으로 짐작되지만, 실제 사이코패스 범죄 사례는 전체의 일부이고 전체적으로는 다소 흉악한 범죄에 대해 여럿 다루고 있다.

내가 사건 수사 현장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 추측에 불과하지만,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단순 개인탓으로 하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처벌에 그칠 뿐, 사회 전체적으로 동일한 범죄가 반복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스키너 실험에서도 증명 되었듯이 사회적 압력이 그 개인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면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도 이야기하지만, 지킬 것도 없고 앞으로 기대할 것도 없는 상황에 빠지면 범죄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사회 차원에서 범죄율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러한 지점 즉, 각 개인에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현재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이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 한다. 범죄로 얻는 이익 보다 범죄를 저지름으로 인해 잃게될 것들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크면 조금이라도 더 인내심을 발휘하게 되니까.

말이 칼이 될 때

부제에서 짐작 가능하듯 혐오 표현(hate speech)에 대한 맥락을 짚고 표현의 자유에 맞서는 혐오 표현 규제에 대해 논하는 책. 

소수자에 대한 비하를 넘어 혐오의 표현이 될 때 그것을 사회가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대단히 감정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터라 –애초에 혐오라는 정서가 감정적이니– 이성적인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특정 사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던 세력이 또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에, 책에서 논하는 혐오 표현의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혐오 표현은 교양인으로서 자제해야 하는 것이 마땅히 옳고, 혐오가 신체적인 상해나 구직이나 승진과 같은 차별 등 실제적인 것으로 이어졌을 때 그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따르는 것에도 동의하지만, 단순히 표현에 머무른 상태에 대해 법적인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희롱이나 모욕을 당했다면 소송을 걸거나 사적으로 해결해야지 그것을 두고 국가가 먼저 나서서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뇌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

현시대 뇌과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라마찬드란 박사의 BBC 리스 강의를 정리한 책.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이 생긴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뇌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에도 암시되지만 시각 영역이 중심을 이루고 마지막에는 뇌에 대한 아직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라마찬드란 박사의 생각을 정리한 부분도 담겨 있음. 

이런 저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동영상으로 보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분량도 적고 –나도 하루만에 다 읽었다– 흥미로운 주제나 생각해 볼만한 내용도 있기 때문에 관심있다면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