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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기원/ 부의 새로운 정의: 적합한 질서

  • 폴 새뮤얼슨으로부터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라는 칭송을 받은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1996년 60세가 되자 기존의 경제 이론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학계의 이단아로 돌변했다.
  • 그는 진화적 이론 및 물히강르 통해 전통적 경제학의 오류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으며, 그 결과 1971년 <열역학 법칙과 경제 과정>을 발표 했다.
  • 이번 장을 통해 우리는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점검해 보고 현재의 과학과 결부시키는 한 편, 앞장에서 본 진화 모델들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최종 목적지, 즉 부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계의 괴짜들과 허풍쟁이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인체 내의 유전자를 통해 천천히 이루어지지만, 외부적으로는 문화를 통해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이러한 견해를 가진 경제학자는 비단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1960년대 <자유헌정론>을 출간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1970년대 문화 및 경제적 진화에 대한 그의 이론을 저서로 출간한 케네스 볼딩 등이 있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진화론과 열역학 이론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등 과학과 경제 이론을 접목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 3장에서 열역학 제 2법칙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 (열역학 제 2법칙에 대한 설명 생략)
  • 열역학 제 2법칙은 근본적으로 생물계에 진화를 가져왔다. 열역학적 관점에서 유기체란 고도의 질서를 가진 분자들의 집합체이다.
    • 모든 유기체들은 외부의 무질서에 대항하여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세포막, 피부, 내관 등 다양한 형태의 방어막을 갖는다. 이와 같은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유기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에너진다.
    • 경계 내부의 분자들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예기치 못한 일부 분자의 움직임으로 인해 유기체 내부에서 특정한 화학적 패턴이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 예컨대 돌연변이 분자들이 자연스레 하나의 완벽한 박테리아로 결합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뉴욕 대학의 생화학자인 로버트 샤피로는 이를 고물상에 토네이도가 발생했는데, 그곳의 고물들이 결합되어 보잉 747기가될 가능성에 비유했다.
    • 따라서 모든 유기체는 복잡한 내부 질서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되며, 엔트로피는 열과 노폐물을 통해 우주로 배출된다. 이러한 과정이 중단되면 유기체의 분자들은 무질서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이를 가리켜 열역학 제 2법칙에서는 열역학적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 열역학 제 2법칙은 모든 생명체에 기본적인 제약을 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너지 투입량이 에너지 소모량보다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 또한 모든 유기체들은 생존과 재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열역학적 ‘이익’을 창출해 내야 한다. 각 유기체들은 열역학적 이익을 통해 생존과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전략적으로 디자인되었다.
    • 아프리카의 코끼리는 아프리카 나무숲에 맞게, 관해 파리목은 심해 환경에 맞게 열역학적 이익을 생산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관해파리목이 2억년 간 지속해 왔음을 고려해 보면 관해파리목은 특히 성공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물론 질서 창출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 나무 등과 같은 식물은 땅, 물, 햇빛 등을 두고 경쟁할 것이며, 동물들은 먹이 사슬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습득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 경쟁적이며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생물들은 열역학적 이익을 얻기 위해 30억년 동안 진화를 지속해 왔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 과정>에서 생물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경제 과정 역시 본질적으로 고엔트로피에서 저엔트로피로의 변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 그는 전통 경제학이 경제학에서 엔트로피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다고 크게 비난하는 한 편, 신고전주의 이론은 열역학적 제약을 인정하지 않는 등 물리적 법칙을 사실상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그는 이러한 오류를 가리켜 “실제 세계와 에덴 동산의 차이점을 무시하는 것”과 같으며, 신고전주의가 말하는 생산 함수는 “환각에 의한 속임수”일 뿐이라고 했다.
    • 그러나 기존경제학계는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의 비난에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고 그의 저서는 망각 속에 묻히고 말았다.
  • 그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경제가 엔트로피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오염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환경론자들에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 따라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을 환경학자로 분류할 뿐, 그가 고전 경제학 이론에 중요한 이슈를 제기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이 경제학사에서 잊혀진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경제학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 수십 년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경제학에서 엔트로피와 에너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 자신도 엔트로피 개념을 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데, 그는 경제 시스템이 실물 세계에 존재하는 만큼 우주 내의 모든 사물이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제안: 가치 창조를 위한 세 가지 조건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진화를 거듭하는 복잡한 시스템인 경제와 우리의 숙제인 부의 기원을 근본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세 가지의 중요한 관찰을 했다.
  • 첫째, 그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비가역적 –책은 ‘불가역’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비가역이라고 바꿨다– 이라고 했다. 경제 시스템에서 시간이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화살과 같다.
  • 둘째, 그는 “의복, 목재, 도자기, 구리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물질들이 고도의 질서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경제적으로 누리는 모든 것들은 1차적으로 낮은 엔트로피를 이용하고 있음이 증명된다.”고 하였다.
    • 경제 과정은 에너지 소비를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질서를 가지고 있는 1차적인 물질과 정보를 보다 높은 질서를 가진 상품이나 서비스로 변환시키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 셋째, 상품과 서비스를 창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와 같으나, 모든 질서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저에느로피를 가진 독버섯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해오차 딱정벌레의 엔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는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정확한 조건을 말해 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의 주장을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공식적인 용어로 다시 표현하고 이를 G-R 조건이라 부른다.
  • 물체, 에너지, 그리고 정보 등의 어떤 패턴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때만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1. 비가역성, Irreversibility.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전환 혹은 거래는 열역학적으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2. 엔트로피, Entropy.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전환 혹은 거래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는 국지적으로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반면,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를 증가 시킨다.
    3. 적합도, Fitness.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전환 혹은 거래는 인간의 목적에 적합한 인공재나 행동을 만들어 낸다.

비가역성: 계란을 깨 오믈렛을 만든다

  • 어떠한 물체를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환시키는 것은 열역학적 개념이다. 19세기 프랑스의 공학자인 사디 카르노는 모든 변환 과정을 가역적인 것과 비가역적인 것 두 가지로 분류했다.
  •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은 가역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지구가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공전하는 이유는 밝혀진 바 없고 뉴턴의 공식 조차 지구가 반대 방향으로 돌 수 없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 만일 지구의 공전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 거꾸로 돌린다면 그게 거꾸로 돌고 있는 것인지 원래대로 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 반면 테이블의 우유병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혀 깨지는 것은 비가역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이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 거꾸로 돌리면 사람들은 그것이 거꾸로 돌린 장면인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 우리의 삶과 경제 현상을 거시적으로 볼 때 현재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다.
  • 우리의 머리는 본능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에너지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따라서 우유병이 깨지는 장면이나 한 방울의 잉크가 물과 섞여 무색으로 변해 버리는 장면이 담긴 영화를 볼 때 해당 시스템 내의 질서가 감소하고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반면 깨진 우유병이 다시 테이블 위로 뛰어올라와 원 위치로 돌아간다거나 물에 섞인 잉크 방울이 다시 한 방울로 뭉치는 장면을 본다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 비가역성은 엔트로피 및 질서 창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연관성은 확률 법칙, law of probabillity 을 통해 일어난다.
  • 질서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분자의 돌발적인 움직임을 통해 사물의 상태가 변할 수 있는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 묻는 것이다.
    • 커피가 담긴 잔에 일정량의 우유를 부은 후 이를 젓지 않고 그대로 두자. 이때 다양한 분자들의 돌연변이적 행위로 인해 우유가 커피 속으로 침투하고 커피와 우유를 서로 밀어내 어느 순간 둘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 이론적으로는 커피와 우유의 분자가 서로를 밀어내 우연히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지만 우주의 수명 동안에는 발생하지 않을 수준의 확률이다.
  • 이번에는 커피와 우유가 섞여 있는 컵의 중간에 나노 기술 로봇에 의해 움직이는 분자 크기의 ‘트랩도어’들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나노봇은 커피 분자와 우유 분자를 분류하여 경계막의 양쪽으로 나누어 놓는 일을 한다.
    • 시간이 지나면 커피와 우유는 나노봇에 의해 컵 안에서 정확히 양분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때 나노봇은 과거에 비해 ‘낮은 확률 상태’를 만들어 냄으로써 사실상 컵 내의 질서를 창조(엔트로피는 감소)하고 있는 셈이 된다.
    • 그러나 이러한 질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 나노봇이 그 일을하게 하려면 에너지를 주입해야만 하며, 나노봇은 일의 대가로 열을 방출한다.
    • 따라서 컵 안의 엔트로피는 점차 감소하겠지만, 컵 주변을 둘러싼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셈이 된다.
  • 물리학자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자신의 이름을 본 떠 ‘맥스웰의 도깨비, Maxwell’s Demon’라 이름 붙인 상상의 분자 분류 장치를 제안한 바 있다.
    • 맥스웰은 1867년 실험을 통해 그 같은 가설을 제기했는데, 과학자들은 140여 년 동안 논쟁과 이론화, 그리고 실험을 거쳐 맥스웰의 도깨비로도 에너지가 전혀 없으면 엔트로피의 흐름을 역행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어떠한 질서도 저절로 발생할 수는 없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이 주장하는 본질은 만약 우주가 열역학 제 2법칙을 피할 수 없다면 경제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다.
    • 변환 과정을 포함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여러 과정들은 열역학적으로 비가역적이다. 이는 가치 창조 과정을 역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기보다, 어떠한 물건을 만들거나 원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무가 여러 공정을 거쳐 종이는 될 수 있어도 종이가 다시 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 완벽하게 가역적인 가치 창조가 가능한 경제 변환 형태를 상상해 보자. 1982년 IBM의 물리학자 찰스 베넷은 가역적 컴퓨터가 이론적으로 가능함을 입증해 보였다.
    • 그러나 이어지는 실험에서 베넷의 IBM 동료인 롤프 랜다우어는 이러한 가역적 컴퓨터가 존재하려면 무한한 용량의 메모리가 필요함을 보여 주었다.
  • 첫 번째 G-R 조건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물품이나 서비스라면 모두 열역학적으로 비가역적인 변환에 의해 생산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계랸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 경제적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 뿐만 아니라 거래를 통해서도 얻어질 수 있다. 가치 창조적 생산이 비가역적인 것처럼 가치 창조적 거래 역시 비가역적이다.
    • 두 사람이 거래가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온다는 사실에 동의하면 그들이 바로 거래를 취소하거나 되돌리려 하지 않을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 그러나 물리적, 열역학적 관점에서 거래의 특성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다소 까다롭다.
    • 예컨대 두 사람이 행크 아론의 야구공과 베이브 루스의 야구공 카드를 교환한다고 할 때, 우리는 이 거래가 전진적인지 후진적인지 명확히 답변할 수 없다.
    • 이를 위해 우리는 숨겨진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각각의 선호도와 현존하는 야구공 카드의 양 등이 그것이다.
    • 거래에 앞서 시장 연구자들로 하여금 두 사람이 좋아하는 야구 선수와 가지고 있는 야구공 카드의 종류 등을 조사해 보도록 했다고 하자. 거래 후 두 사람의 선호도와 보유한 야구공 카드가 더 잘 매치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거래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또 두 사람 모두 즉각적으로 거래를 무효화하지 않을 것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거래 역시 열역학적 의미에서 보면 비가역적이다.
    • (사실 이 부분은 의문이 좀 있다. 실존 제품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재료를 혼합하여 오믈렛이라는 가치를 만들었는데, 그걸 다시 재료로 환원할 수는 없으니– 거래는 환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연 비가역적인가 하는 부분에 의문이 든다. 거래를 무효화 하는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비가역성은 가치 창조의 필요 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가치가 파괴되는 비가역적인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허리케인, 폭발, 무능한 관리 팀 등은 모두 가치를 파괴시키는 동시에 에너지를 역전 시킨다.
    • 첫 번째 G-R 조건에 따라 시간은 경제 시스템 내에서 일방성을 갖지만, 우리는 변환 및 거래가 가치를 창조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엔트로피라는 두 번째 조건을 필요로 한다.

엔트로피의 감소: 분홍색 자동차와 폭탄은 가치를 창조하는가?

  • 두 번째 G-R 조건,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변환 혹은 거래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국지적으로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반면,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창문에 돌을 던지는 것과 창문을 수리하는 것의 차이를 보여준다.
  •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은 어떠한 과정이든 비가역적이어야하고 엔트로피를 감소시켜야 한다.
  • 대부분의 경제적 변환은 엔트로피를 분명히 감소시킨다. 그렇다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경제적 변환은 존재하지 않을까? 예컨대 건물을 붕괴시키는 행위나 군대용 폭탄을 제조하는 것은 어떤가?
  • 경제적 변환을 좀 더 넓게 정의한다면 건물을 붕괴하는 행위는 가치 창조의 중간 단계일 뿐 그 자체로 변환이 완성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이는 나무를 펄프로 만드는 것이 나무가 종이가 되기 위한 중간 단계인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건물을 붕괴시키지 않는다.
  • 쓰레기 처분, 환경 정화, 재활용 등의 과정도 넓게 보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조하는 변환 과정의 1차적 단계라고 볼 수 있다.
    • 가치 창조 과정의 중간 단계로서 파괴 역할은 생물학적 시스템에서도 존재한다. 신체가 세포 및 조직 내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려면 우선 소화기 조직들이 음식 속에 정리된 화학 요소들과 에너지들을 잘게 분해시켜야만 한다.
    • 계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 폭탄의 경우는 좀 다르다. 화학 물질들을 다이너마이트나 플라스틱 폭탄으로 변환시키는 행위 자체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군대가 적의 기지를 공격하기 위해 폭탄을 사용하게 되면 이는 국가 안보를 위한 중요한 업무일 수는 있어도, 폭탄의 사용이 경제적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변환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 폭탄을 제조하는 행위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고 가치를 창조하지만 폭탄을 사용하여 적의 자산을 폭파시키게 되면, 이는 적과 관련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 행위는 경제적 가치를 창조한다기보다는 파괴하는 것에 가깝다.
    • 전쟁은 힘들여 이룩한 경제 질서를 다시 파편화시키고 인체의 생물학적 질서를 부상과 죽음으로 손상시키는 등 궁극적으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가 된다.
  • 스튜어트 포터 판사의 유명한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정의, “보면 알 수 있다” 처럼, 지금까지 보다 쉬운 방법을 통해 질서의 개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질서란 사실 모호하고 변하기 쉬운 개념이다.
    • 예컨대 여러분이 한밤 중에 집을 몰래 빠져나와 미시간 주 앤 아버의 차들을 모두 분홍색으로 칠한다고 생각해 보자. 여러분의 이와 같은 행동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앤 아버 주민들은 당신에게 크게 화를 내고 당신의 일에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이 일은 엔트로피를 감소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결과는 가능성이 낮은 가치를 위해 에너지를 쓴 것이다.
    • 또한 이 일이 엔트로피를 증가시켰다고 증가할 수 있도 있다. 모든 차를 분홍색으로 칠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 차를 분홍색으로 칠하는 행위는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일까 정보를 파괴하는 행위일까? 이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데, 질서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질서와 무질서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헬리콥터를 타고 앤 아버가 총 몇 대의 차를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하는 교통 계획자들에게 모든 차를 분홍색으로 도색하는 행위가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로 보일 수 있다. 교통 계획자는 심지어 당신에게 대가를 지불하려 할 수도 있다.
    • 반면 자동차 소유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정보를 손상시키는 일에 해당하는 만큼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 된다.
  • 질서의 상대적 특성은 열역학 이론에서는 잘 알려진 이슈다. 폴란드의 물리학자 보이체크 주렉은 이른바 ‘카드 섞기 마술’을 예로 들었다.
    • (카드 섞기를 통해 어떠한 질서는 상대적인 것이다라는 예시 생략)
  • 결론적으로 어떤 무엇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낮은 엔트로피가 필수적이지만, 어떠한 종류의 질서가 가치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다소 주관적인 문제다. 즉, 제 눈에 안경임 셈이다. 따라서 두 번쨰 G-R 조건 역시 가치 창조의 필요 조건이긴 하지만 충분 조건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적합도(1): 선호도에 관한 진화적 관점

  • 비가역성과 질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가치 창조와 연결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 특정 질서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지 왜 각기 다른 색상의 자동차를 선호하는지, 왜 딱정벌레보다 사과를 더 좋아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전통 경제학은 단순히 사람들이 각각의 선호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선호가 논리적인 순서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선호를 최대한 만족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사람들의 선호가 무엇인지 미리 알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거래하고 소비함에 따라 저절로 나오게 돼 있다. 또한 이 선호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부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그게 무엇이든지 각자가 선호하는 질서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좀 불만족스러운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행위들이 선호라는 수수께끼 같은 상자 안에 숨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 선호는 심리적 현상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의 물질적 욕구가 자아의 동물적 충동에 의해 비롯되지만, 초자아에 의해 지속적으로 검열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 따라서 경제적 선호는 “나는 저 비싼 자동차를 지금 갖고 싶어!”와 “향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지금은 저축을 해야 해!” 사이의 투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이와 달리 버러스 스키너는 선호는 본래 배움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따라서 스키너 이론의 지지자들은 우리가 고가의 자동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고가의 자동차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과 자동차 제조사들의 마케팅 문구가 우리를 현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에이브라함 매슬로는 프로이트와 스키너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인간이 음식, 물, 섹스, 안식처, 잠과 같은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에서부터 자기 존중과 사회적 존경 등의 보다 고차원적 욕구에 이르기까지 욕구의 위계질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 비록 매슬로가 우리의 욕구를 유용한 구조로 조직화하여 설명했지만, 그의 이론도 이러한 욕구가 어디에서 오는지 왜 소비자가 이 제품을 다른 제품보다 선호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에는 해답을 주지 못했다.
  • 매슬로가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최근의 진화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우리 뇌 속의 유전자가 단 하나의 목적, 즉 후세대에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생성되었다고 주장한다.
    • 사람들은 종종 진화심리학과 모든 행위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관점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진화심리학자 중에 사람들이 맥도널드보다 버거킹을 더 선호하는 이유가 그들의 유전자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 진화심리학에서는 우리의 행위 대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10만 년 ~ 5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남고 또 후손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행위 대부분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를 ‘조상 환경’이라고 말한다.
  • 모든 인간은 음식, 섹스, 사회적 지위 등을 위한 공통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또한 매우 적응적이다. 그래서 로버트 라이트가 말했듯이 이러한 욕구는 주변 환경에 맞게 조정된다.
    • 진화심리학자들에게 ‘본성 대 양육 (Nature vs Nurture)’은 그리 흥미로운 과제가 되지 못한다. 이 두 가지 모두가 행위의 결정 과정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 오히려 이들은 “천성적 부분은 왜 진화하였는가?”, “환경은 교육적 부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이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본성과 양육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가?” 등과 같은 질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수렵, 채집민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각자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법, 지위를 위해 경쟁하는 법, 재생산하는 법,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법 등과 관련하여 선호가 어떻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그러나 현대 삶의 경우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추려 내어 사람들의 선호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파악하기는 어려운데, 진화심리학자들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수렵, 채집민 생활 방식의 진화된 흔적이 근대 경제의 선호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소비 지출의 약 90%가 다음의 7가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7가지 범주를 분석해 보면, 한 가지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주거 – 총 지출의 32%
    • 교통 운송 – 총 지출의 20%
    • 음식 – 총 지출의 14%
    • 생명 보험과 연금 – 총 지출의 9%
    • 건강 관리 – 총 지출의 5%
    • 의복 – 총 지출의 5%
    • 오락, 미디어, 통신 – 총 지출의 5%
    • (각각의 항목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생략)

적합도(2): 즐거움의 단추를 누르는 것

  • 빅맥, 포르쉐, 지미추 구두, 휴대폰 등은 모두 옛날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살아가던 아프리카 사바나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서부터 생존과 번식 능력의 증대에 대한 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 우리의 필요, 욕망, 감정 등과도 부합하게 되었으며, 우리가 오늘날의 소비 사회에서 무엇을 왜 원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게 되었다.
  • 인류가 음식, 주거, 의복, 건강 관리, 휴대폰에 많은 금액을 지출하는 이유는 진화적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컨대 왜 우리는 그림을 구입하거나 음악을 듣기 위해 돈을 지출하는 것일까?
    • 혹자는 그림이나 음악에 돈을 지출함으로써 지위를 과시하거나 이성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비꼬아 얘기할 수도 있겠다.
  • 역사를 통틀어 예술을 후원하는 일에 가장 열심이었던 이들은 부유층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미적 경험의 즐거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며 부유층만이 그러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예술에 대한 갈망과 조상 환경의 진화적 이점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답은 “연관성이 없다”이다.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진화론에서 예술은 ‘굴절 적응’이라 일컬어지며, 이는 다른 목적을 위해 진화시킨 무언가에 대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 (부작용이라는 표현이 거슬리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하면 될 듯)
  • 우리가 아름다운 장면, 매력적인 얼굴, 듣기 좋은 음악 등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본디 다른 목적 때문이었다.
    • 예컨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물, 높은 곳의 대지,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등이 펼쳐진 그림에 매력을 느끼는데, 이는 심미학만큼이나 과거 조상 환경에서의 생존 방식과도 많은 연관성이있다.
    •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부분 젊음과 다산을 가능케 하는 건강함의 상징인 대칭적인 얼굴을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여긴다.
  • 스티븐 핀커는 예술을 가리켜 ‘정신적 치즈 케이크’라고 표현했다.
    • 조상 환경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지방과 설탕을 좋아하도록 진화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음식이 풍부하지 않은 시기를 대비한 것과 아이들의 양육에 필요로 되었다.
    • 진화심리학은 이러한 욕구가 처음부터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 인간의 영혼은 조상 환경에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기쁨과 고통의 단추를 진호시켜 왔으며, 그 단추들은 인간들의 생존과 번식에 크게 기여해 왔다.
    • 그러나 우수한 두뇌와 재주 있는 손을 가진 인간들은 후천적 방법을 통해 맥도널드에서 고급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포르노그래피에서 수준 높은 예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신적 즐거움의 단추를 누르는 법을 체득해 왔다.
  • 전통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선호도의 차이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계적으로 64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왜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선호도를 나타내는 걸까?
    • 왜 사람들은 코카콜라와 같은 당분이 많은 탄산 음료를 좋아하고, 왜 러시아에서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10대 청소년들은 나이키의 최신 운동화에 열광하고, 왜 <베이 와치>라는 드라마가 미국의 교외에서부터 중국의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큰 히트를 기록했던 것일까? 진화심리학자들에게 그 이유는 명백하다.
    • 진화심리학을 경제적 선호도 및 소비자 행동에 관한 연구에 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아직은 다소 추론에 의존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특정 질서가 왜 다른 질서에 비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 이제 다시 경제적 진화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의 선호가 진화 할수록 사업 계획의 진화에도 적합도의 제약이 가해짐을 알 수 있다. 사업 계획과 선호는 공진화를 한다.
    • 이를 가리켜 진화론자들은 ‘틈새 구성’이라고 했다. 유기체는 진화하면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주변 환경도 함께 진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 예컨대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발생시키는 반면, 호기성 동물들은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러한 두 종류의 유기체들이 오랫동안 함께 진화해 옴에 따라 원생대에 단 1%의 산소만 함유하고 있던 대기의 성질이 오늘날에는 21%의 산소를 함유하게 되는 등 미래 진화에 대한 이른바 적합도의 제약을 가하고 있다.
  • 경제학의 영역에는 필요와 기호의 공진화,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진화하는 사업 계획이 있다.
    • 예컨대 우리의 청력은 태초에는 생존의 도구로 진화하였고,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사방의 포식자들을 경계하도록 진화하였으며, 이는 인간이 언어 능력을 습득하게 됨에 따라 더욱 진화하였다.
  • 음악은 청각의 진화 및 정신적 능력에 부합하기 위해 약 3만 년 전에 ‘굴절 적응’으로 개발되었다. 다시 말해 MP3 플레이어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앞서 묘사한 이유들로 인간은 음악에 대한 기호를 발전시켜 왔으며, 그 이후로 이러한 고객들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업 계획서 역시 발전을 거듭해 왔다.
    • 과거에는 뼈로 만들어진 플루트와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진 드럼을 만들었다면 근대에는 기타, 하모니카 등을 팔게 되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라디오와 MP3 플레이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 따라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구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재해 왔으며 진화적 논리성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해결 방법 역시 오랫동안 큰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의 선호도가 사업 계획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사업 계획의 발전 역시 우리의 선호도를 촉진시킨 셈이다.

보편적 효용 함수

  • 지금까지의 내용을 모두 결합하면 3가지 G-R 조건이 말하는 것은 모든 경제활동은 본질적으로 질서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 무질서와 임의의 세계가 마주치게 되면 인간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주변 환경을 우호적이고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 등의 질서 복구를 위한 노력에 사용하게 된다. 우리는 에너지, 물질, 정보 등을 우리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변환시키면서 주변 환경의 질서를 만든다.
    • 그리고 우리는 진화적으로 우수한 기술들을 발견해 왔는데, 특히 협력, 특화, 거래 등을 통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욱 많은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질서를 창조하려고 바쁘게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모든 질서 창조적 행위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다소 추상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과거 벤담의 효용에 관한 정의에 귀결된다.
    •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영혼의 흐름’이라는 신비한 영기가 지속적으로 인간의 몸에 흐르고 있으며 이는 그때의 즉각적인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고 주장했다.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은 이를 진화적 용어로, 모든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우리의 모든 행위의 적합도 함수가 인간의 개인적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 진화생물학 이론에 따르면 범용적으로 유용한 기능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 즉, 유전자 복제다.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유전자는 그들 자신을 복자헤기 위한 전략으로 인체를 구성한다.
    • 복잡하고 협력적인 사회 환경에서 살아가고 도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체 중 뇌 부분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것 또한 유전자 전략 중 일부이다.
    • 뇌는 자신을 형성하는 유전자들을 복제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그 결과, 뇌는 오늘날 과거 조상 환경의 생존, 짝짓기, 자녀 양육 등과 일치하는 목적, 선호도, 욕구 등을 발달시켰다.
    • 우리는 이러한 목표, 선호도, 욕구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두뇌를 이용하여 환경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 리처드 도킨는 유전자가 계속해서 스스로를 복제하고자 하는 것과 현재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 우리의 유전자는 조상 환경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기름기와 당분이 많은 음식을 좋아하게끔 하고 있으나 사실 오늘날 당분이나 지방은 건강에 좋지 않다.
    • 마찬가지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행위 등도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협력 아니면 처벌의 공식만이 존재하고 의사소통의 가능성도 한정되어 있었던 언어 이전의 수렵, 채집민 시기에는 적절한 전략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법, 규범과 같은 장치로 인해 무분멸한 분노 표출은 백해무익할 뿐이다.
  • 진화는 우리의 행복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우리를 행복한 상태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목표, 선호도, 욕구 등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 진화를 통해 우리에게 제공되는 것은 단지 조상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사용되었던 전략들이 전부다. 논리적으로 진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 진화의 종교적 ,정신적 의미는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현대 생활의 한 가지 의문점만은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가?” 이다. 이것은 그저 그런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경험적인 사실이다.
  •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을 포함한 많은 심리학자들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행복의 원인에 대해 깊은 연구를 했는데, 그들은 행복의 약 50%가 강력한 유전적 연관성에 의해 직접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 과학자들이 뇌에서 행복을 관장하는 강력한 생화학적 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감안하면 유전학이 개개인의 뇌의 화학 작용에 따른 상대적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 카너먼과 그의 동료들은 연구를 통해 결혼, 사회적 관계, 고용, 사회적 지위, 물리적 환경 등 모든 요소들이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진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배우자, 사회적 결속, 높은 지위, 편안한 환경 등을 소유하는 것이 뇌에서 ‘행복’의 화학 물질을 배출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 부의 절대적 단위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선형적인 관계는 아니다. 가난하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가 일단 충족되면 부와 행복 간의 상호 관계는 현저하게 평등해진다.
    • 이 시점을 지나면 사람들은 부를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관점으로 보려는 경향이 생긴다. 부의 증가,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부의 증가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기존에 느끼던만큼의 행복을 느낄 뿐이다.
    • 예컨대 기대하지 않게 급여 인상이 이루어지면 두어 달은 기쁘지만, 어느덧 늘어난 급여에 익숙해지면 다시 자신의 급여가 박봉이라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 복권 당첨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복권 당첨자들은 처음에는 큰 행운에 기뻐하고 인생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에 느끼던 행복만큼만 느끼게 되며, 심지어는 그보다 못하다고 여기게 되는 경향도 있다.
  • 부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진화적으로 타당하다. 경쟁 사회에서 투쟁하고, 부를 축적하고, 쉬지 않고, 결코 만족하지 않는 유전자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유전자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탐욕은 자신과 주변인 모두의 행복에 좋을 것이 없지만, 적당한 욕심은 역사적으로 유전자 복제에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

부는 적합한 질서다

  • 모든 부는 열역학적으로 비가역적이고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부를 창출하는 행위는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지만, 질서를 창조하는 모든 행위가 부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 개인, 조직, 시장 등은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질서를 추구하는 사업 계획을 개발해 낸다. 시장은 제안을 하고 소비자는 소비를 한다. 이들은 오늘날의 필요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는 요구와 선호도를 충족시키는 질서 형태를 선호하지만 그 역사적 뿌리는 유전자의 보편적인 효용 함수에 있다.
  • 부는 반엔트로피의 형태다. 부는 질서의 한 형태이기는 하나 다른 질서와는 다르다. 부는 적합한 질서이다.
    • 상품과 서비스의 형태를 띤 경제적 질서의 패턴들은 소비자들의 필요, 욕구, 심지어 갈망 등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 우리는 경험과 선례를 참고하여 우리의 선호도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경제적 질서의 패턴을 적합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 그리고 적합한 경제적 질서를 창조하는데 기여한 사업 계획 모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폭된다. 종과 환경이 공진화 하듯이, 사업 계획과 소비자 선호도의 경쟁적 생태계 또한 공진화 하면서 오늘날의 적합한 질서가 미래에도 적합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 적합도를 중요한 개념으로 만들었다.
  • 적합도 질서로서의 부의 개념을 전통 경제학의 경제적 가치 개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무한한 가치는 공급 측면에 있으며 가치는 생산 요소들로부터 파생된다고 주장했다.
    • 예컨대, 캉티용은 가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한정된 땅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 믿었으며 카를 맑스는 노동력이 가치의 궁극적인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노동 못지 않게 자본도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윌리엄 제번스와 한계효용 주의자들에 따르면 가치는 수요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들은 가치란 한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상대적 효용의 차이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 신고전주의 신고전파 이론은 두 관점을 모두 수용했다.
    • 즉, 한정된 생산 요소들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소비자의 개별적 선호도를 충족시키게 되며, 가치는 간단히 말해 두 사람이 거래를 통해 서로 얻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 예컨대 만약 소형 가전 제품 제조업자가 1달러에 하나의 제품을 판매하려 하고 소비자는 1달러에 이 제품을 사고자 한다면 가전 제품의 가치는 1달러가 된다.
  • 진화론적 관점으로 보는 가치 역시 공급과 수요의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 공급 측면에는 낮은 엔트로피를 가진 사물이 경제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당연하게도 낮은 엔트로피를 지닌 사물은 흔치 않으며 이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 물질, 정보 등이 요구된다.
    • 반면 수요 측면에서는 우리의 선호도에 따라 경쟁 중인 두 개 이상의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 상대적 매력도가 결정된다.
    • 전통적 경제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측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만나게 되며, 사업 계획은 개인적 선호도와 부족한 질서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 화폐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기술이라 볼 수 있다. 복잡계 경제학에서도 소형 가전 제품의 가치는 여전히 1달러지만 우리는 왜 1달러인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경제적 부와 생물학적 부는 은유적으로뿐만 아니라 열역학적으로도 같은 종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두 경우 모두 낮은 엔트로피 시스템들이며 적합도 함수의 제약 하에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해 온 질서의 패턴들이다.
    • 두 경우 모두 적합한 질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경제의 적합도 함수 –기호 및 선호도– 는 생물학적 세계의 적합도 함수 –유전자 복제– 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이는 표범의 카무플라주 무늬, 박쥐의 레이더, 초파리의 눈 등과 같은 또 하나의 진화적으로 우수한 기술이다. 경제는 우수한 두뇌, 도구를 만드는 재주 좋은 손, 협력적 성향, 언어, 문화 등의 복잡하고 뛰어난 기술에 근거하여 형성된 엄청나게 복잡하고 뛰어난 기술이다.
  • 만약 부가 정말로 적합한 질서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또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이를 표현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 질서란 정보와 같다. 따라서 우리는 부를 가리켜 적합한 정보, 달리 말하면 지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 정보란 그 자체로는 효용이 없다. 반면 지식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그리고 특정한 목적에 부합될 수 있는 유용한 정보이다. 그렇다면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 전통적 성장 이론의 창시자인 로버트 솔로가 옳았다. 부의 기원은 바로 지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복잡계 경제학적 관점은 지식을 가설, 외적 주입, 경제학 경계 밖의 이해할 수 없는 과정으로 취급하기보다는 경제학 내부의 가장 중심적인 곳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 진화는 지식을 창출하는 기계, 즉 학습 알고리즘이다. 생물학적 세계의 고유한 디자인들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지식들을 생각해 보자.
    • 메뚜기는 공학적으로 경이로운 생물체이며 물리학, 화학, 생물역학의 지식의 창고이다. 메뚜기는 또한 그가 진화한 환경, 주된 먹이, 경계의 대상이었던 천적, 이성을 유횩하는데 효과적인 전략, 효과적 번식 방법 등의 지식에 대한 일종의 스냅 사진이다. 메뚜기 한 마리에 내포된 지식은 테라바이트에 달한다.
  • 그렇다면 우주의 생물권 전체에 내포된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방대함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질서와 복잡성, 모든 지식들은 가장 단순한 알고리즘, 다시말해 차별화, 선택, 복제, 그리고 이의 반복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조합된 것들이다.
    • 여러분의 주위 사물을 둘러보고 어떠한 지식들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에는 목공에 대한 지식이 들어 있을 것이고, 당신이 입고 있는 옷에는 목화 재배, 방직, 패션 디자인 등의 지식이 들어 있을 것이며, 전등에는 전기와 물질 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을 것이다. 책에는 모든 지식이 총망라 되어 있다.
    • 경제권 전체에 내포된 지식의 양은 생물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경이로울만큼 엄청날 것이다. 경제권 역시 차별화, 선별, 중복 그리고 이의 반복 과정에 의해 창조된다.
  • 우리는 이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부는 지식이며, 부의 기원은 바로 진화다.
    • (저자가 지식이 부라고 했다고 이를 오해해서 공부 많이 하면 그대로 돈이 따른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개인적으로도 ‘지식’의 단어 뜻 때문에 부가 지식이라는 것은 그대로 납득하기 어려웠는데데, ‘생명은 정보다’를 생각해 보고 이해를 했다. 저자는 정보 중에서 가치 있는 정보, 적합한 정보를 지식이라고 이해하면 –이는 이전에 사업을 행위가 아니라 기업의 하위 구조로 정의해서 이해한 것과 비슷하다– 부를 지식이라고 표현한 것과 그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화 매커니즘을 통해 시스템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된다.)
    • (저자의 부에 대한 정의도 생각해 봐야한다. 저자가 말하는 부는 ‘사회적 부’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는 사회 안에 속하는 개인의 부유함을 나타내는 부와는 다른데, 저자가 이야기 하는 지식의 증대를 개인의 부유함과 잇기는 어렵기 때문. 다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식의 증대는 확실히 사회적 부의 증대를 가져오는 것은 맞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1만 5천년 전 수렵, 채집민 부족의 소득에 비해 현대인의 소득은 어마어마하게 커졌는데, 이를 지식의 증대 덕분이라고 이해하면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험을 통과했을까?

  • 부의 창조를 설명하는 이론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 부의 창조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라면 일정 수의 사람들과 천연자원이 있는 자연 상태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엔트로피의 감소와 복잡성, 조직, 다양성, 부의 증가를 보여 줄 수 있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 또한 철제 도구를 생산하던 원시 인류에서 샤르도네 포도주를 즐기는 뉴요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불연속적이고, 폭발적이며, 소위 단속 균형 패턴을 보이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 말이다.
    • 또한 외부에서 핵심 동력을 끌어오지 않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도 최소한의 가설만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한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다른 과학 이론들과도 일치해야 하고,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 이 같은 조건은 엄청난 질서를 요구하는 일이며 이러한 이론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이론이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지금까지 바로 앞 5개의 장들에 걸쳐 많은 학자들의 이론들을 살펴보며 우리는 하나의 종합적 이론의 가능성을 점쳐 보았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석기 손도끼를 발명했던 물리적 시발점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작은 단위의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던 사회적 기술의 시발점 등을 기준으로 하여 약 250만 년 전의 원시 인류 시대에서 이 모델을 시작할 수 있다.
  • 유일한 외생적 요소들은 에너지 및 물질의 물리적 주입과 열과 노폐물의 배출이다. 그리고 유일한 외생적 동력은 연역적 추론을 하는 인간 두뇌의 성장, 언어의 발달, 기초적인 선호도의 진화 등 생물학적인 것들이다.
  • 일단 갖추어지고 나면,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사업 계획이라는 세 공간들을 통한 탐색이 시작되고 이것이 계속 진행되면서 서로에게 동력을 부여하는 등 공진화를 하고, 새로운 발견이 일어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
  • 이 세 디자인 공간을 통해 점진적인 1차적 발달 패턴 발생을 볼 수 있는데, 기간에 따라 변화의 속도에 차이가 나는 단속 패턴이 나타난다. 그러나 엔트로피 감소, 복잡성과 다양성을 향한 추세가 가속화하고 이에 따라 부가 크게 증가한다.
  • 주목할 것은, 높은 질서와 부를 추구하는 이러한 경향이 진화하면서 반드시 나타나는 결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요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다시 진화의 ‘테이프를 튼다면’ –스티븐 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 경제와 똑같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 진화는 수백만 개의 작은 사건 사고들이 누적된 결과이다. 역사상의 아주 작은 변화라도 미래의 결과상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경제적 복잡성의 발생과 증가에 필요한 조건, 그리고 오늘날의 경제 발달을 가능케 했던 많은 모수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이하 G-R 조건이 법칙임을 설명하는 내용과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등의 설명 생략)

부의 기원/ 경제적 진화: 빅맨에서 시장으로

  • 진화의 일반적 모형에서 나오는 점검표를 가지고 점검을 해보면 지금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을 갖춘 하나의 완전한 모델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즉, 경제적 진화를 위한 디자인 공간(스미스 도서관), 이런 디자인들을 코드화한 도식(사업 계획), 그러한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일단의 요소들(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사업 계획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식별자들(경영 팀), 진화적 경쟁이 일어나는 환경(시장) 등을 이미 정의한 바 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하지 못한 두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첫째, 경제적 진화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는 주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 생물학적 진화의 경우에는 생물 개체들이 상호작용의 주체가 된다. 생물 개체들 상호 간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생존하고 사멸하는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과 사멸’이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을 의미하는가?
  • 둘째, 경제적 진화에서 선택의 단위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 생물학적 진화의 경우, 선택은 유전자 단위에서 일어난다. 경제적 진화의 경우는 어떠한가?
  • 위 두 질문은 진화 경제학에서 오랜 논의와 토론의 대상이었다. 복잡계 경제학의 전체적인 틀과도 맞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전개해 온 진화의 관점과도 일치되는 시각을 여기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 우리의 모형이 완성되면 시장의 역할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1750년경 –산업 혁명, Industrial Revolution– 을 시작으로 대거 출현한 새로운 경제 활동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비유할 수 있음– 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 장에서 논의하겠지만 부 자체의 기원에 대한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은 생존과 사멸을 거듭한다.

  • 진화의 일반적인 모형에서 도식은 상호작용자의 구조를 결정한다.
    • 앞서 본 바와 같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DNA 도식은 상호작용자의 역할을 하는 유기체를 코드화 한 것이다.
    • 마찬가지로 사업 계획도 경제 시스템에서 하나의 도식으로서 사업의 구조를 코드화한 것이다. 결국 경제에서 상호작용자는 사업이고, 생존하고 사멸하는 것도 다름 아닌 사업이다.
  • 그러면 사업이란 무엇인가? 경제적 개념인 사업과 법적 실체이자 하나의 사회적 기술로 볼 수 있는 기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에 대한 정의를 원용하면 사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사업이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하나의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 전환하는 개인 혹은 다수가 조직화된 그룹이다.’
    • GE와 같이 다국적 회사인 경우 사업과 기업의 구분이 매우 쉽다. GE는 단일 기업 법인이다. 그러나 플라스틱, 조명, 미디어,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 한편 소기업은 대부분 단일 업종 기업으로 되어 있다. 예컨대 ’18번가의 신문 잡지 가게’는 단일 업종의 기업이다.
    • 따라서 우리는 기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기업이란 한 개인 혹은 단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단일 혹은 다수의 사업을 말한다.’
    • (저자는 사업을 기업이 하는 행위 개념이 아니라, 기업을 구성하는 하위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기업은 다양한 법인체로 되어 있다. 개인 기업, 합작 기업, 주식회사 등.
    • 공식적인 사회 기술적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해리는 손도끼 제조업을 혼자 운영하기 때문에 그 기업의 단일 사주다.
    • 야노마모 족의 사냥꾼들은 수렵 사업을 관리하는 일종의 합작 기업이라 할 수 있다.
    • GM사가 하나의 기업인 것도 GM의 다양한 사업들이 궁긍적으로는 같은 주주에 의해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본다면 진화 시스템에서 상호작용자는 기업이 아니라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 그 용어가 말해 주듯 상호작용자는 진화 시스템에서 서로 간에 그리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환경의 선택 압력에 서로 다른 성공률을 보여 주는 그런 단위다.
    • 단일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기업과 사업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경우 기업과 사업은 사실상 동일체가 된다. 18번가 신문 잡지 가게의 사업이 망하면 그 기업도 망하는 것과 같다.
    • 반면 GE의 경우 여러 사업체가 모여진 것이기 때문에, GE 플라스틱 사업이 망한다고 해서 GE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경우 GE에게 큰 손실을 안겨주긴 하겠지만, GE는 다른 사업을 운영하면서 계속 살아 남을 것이다.
  • 그 다음으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사업과 개별 제품 혹은 서비스와의 차이다.
    • 예컨대 GE 플라스틱 사업부가 하나의 사업이냐 아니면 그 자체가 ‘렉산’, ‘노릴’ 등과 같은 다양한 사업으로 구성된 하나의 기업 같은 조직이냐 하는 논란이 가능하다.
    • 다시 말하지만 사업의 핵심적 특성은 바로 상호작용의 거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업과 제품 혹은 서비스 상품을 구별할 떄는 고객, 경쟁자, 사업 지역, 관련 기술, 공급자 등 상호작용의 대상이 일치하는 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 앞선 신문 잡지 가판대를 신문 사업, 우유 사업 등을 취급하는 복합 사업 기업이 아니라 단일 사업이라고 한 것은, 대게 우유와 신문을 사는 고객은 같고 다른 가판대와 경쟁하여 시장에서의 상호작용이 제품보다는 상점 단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 반면 제약 회사는 심장약 사업, 암 치료제 사업 등을 가질 수 있는데, 이때 이들 사업들은 각기 고객, 경쟁자, 기술이 다르다.
  • 이러한 구문에는 주관성이나 모호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사업과 제품의 구성 요소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다. 결국 이에 대한 구분은 경영 책임자에게 맡기는 것이 현실적이고 경험론적인 판단이 아닌가 싶다.
    • 따라서 경제적 진화에서 상호작용자는 기업이 규정하는 사업 단위라고 할 수 있다. 렉산이 사업 단위냐 제품이냐 하는 것은 GE의 경영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접근법은 제품과 사업의 경계에 대한 동태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환경이 바뀌고 기술, 고객, 경쟁자가 변하면 이에 따라 경영자는 사업 단위를 재평가하고 사업 단위의 경계를 재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단위

  • 사업이 경제적 진화 과정에서 적자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상호작용자라고 해서 생물계에서 진화의 선택이 생물 개체 단위에서 일어난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사업이 바로 진화 과정에서 선택의 단위라고는 할 수 없다.
    •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확실히 알려면 한 단계 더 구체적인 단위로 내려가야 한다.
  • 우리는 앞서 ‘복제를 잘하는 자가 복제한다’는 진화의 법칙을 설명한 바 있다. 진화의 일반적인 법칙에 따르면 선택 단위는 생존과 복제를 위해 상호 경쟁하는 개체들의 ‘특질’을 코드화한 도식의 조각들이다. 생물의 경우 도식의 구성 단위들은 유전자들이다.
    • 예컨대 어떤 특정한 유전자 군이 다른 유전자 군에 비해 유기체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더 좋은 위장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도록 했다면 그 유전자군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환산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경제적 진화에서 선택의 단위는 무엇인가? 진화의 일반적 모델에서 선택 단위가 도식의 조각들이라 한다면 경제적 진화에서 그건 사업 계획의 구성 단위들임이 분명하다.
    • 그러면 어떤 부분을 말하는가? 그 부분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 세분화하여 보아야 할 것인가? 예컨대 선택의 단위가 판매 전략인가? 아니면 제품과 관련한 물리적 기술인가?
  •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례에서 경쟁에서 성공한 사업의 다른 점이 무엇이엇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 만약 점포의 형태 때문에 보더스 서점이 반즈앤드노블 서점의 시장을 일정 기간 잠식 했다면 그 상황에서는 점포의 형태가 바로 선택의 단위였다고 할 수 있다.
    • 만약 재고 관리 시스템이 사업의 성패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면 이는 진화의 선택 단위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물론 언제든 재고 관리 시스템도 진화의 선택 단위가 될 수 있다.
  • 결국 선택의 단위라는 것은 환경이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순환 논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로서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적합도 함수라는 것은 극도로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가변적이다.
    • 사전적으로 아무도 무엇이 선택될지 알 수 없다. 단지 뒤돌아보고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선택의 단위는 시간이 지난 다음 경험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 (사실 같은 진화 매커니즘으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적인 예측은 아무 의미가 없다.)
  • 생물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사후적, 경험적 방법 외에는 선택의 단위를 알 방법이 없다. 유전자의 정의도 똑같이 모호하다.
    • ‘긴 다리’와 같은 어떠한 특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다리를 길게 만드는 DNA의 어떤 배열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긴 다리’라는 특질만은 코드화한 구체적인 DNA 배열이란 것은 없다.
    • DNA는 단순한 청사진이라기보다는 촘촘히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망에 더 가깝다. ‘긴 다리’라는 특질은 잠재적으로 유전 가능한, 예컨대 뼈의 성장을 다스리는 호르몬, 근육의 생성 절차 등과 같이 상호작용하는 일단의 구성 모듈들로 이루어진다.
    • 그리고 그런 모듈들 또한 하위 모듈들로 이루어지고, 그런 식으로 내려가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개별 단백질 그 자체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런 모듈들은 동시에 다른 특질을 규정하는 과정에도 관련될 수 있다.
  • 따라서 생물학자들도 유전자를 판별하기 위해 사후적, 경험적 방법에 의존한다.
    • 예컨대 어떤 질병은 특정 단백질의 결핍이 원인이라 하자. 과학자들은 그 단백질의 결핍 원인이 되는 DNA 배열을 찾아서 그러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과학자가 발견한 DNA의 특정 배열은 그 질병 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매커니즘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따라서 ‘유전자’라는 것은 DNA를 따라 흩어져 서로 차별적인 생존과 번식의 기반을 제공하는 유전적 특질을 코드화한 도식의 구성 단위에 대한 하나의 편의상 명칭에 불과하다.
  • 경제적 진화에서 선택 단위를 식별하는데도 앞서 논의한 것과 유사한 실용적, 경험적 접근법을 쓸 것이며, 그 과정에서 ‘모듈’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모듈’은 과거에 제시되었거나 아니면 미래에 제시될 수 있는 사업 계획의 한 구성 요소로서, 경쟁적 환경에서 다수의 사업들 중 선택의 근거가 되는 부분을 말한다.
  • 모듈을 이해하기 위해 이러한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내가 한 사업의 관리자라면 그 사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하여 어떤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
    • 예컨대 판촉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고, 고객 서비스 과정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며, 새로운 비용 통제 기준이나 제품 개선 방안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것이든 사업의 성과를 차별화하는 기반이 된다면 이를 모듈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사업 계획 중 그러한 활동을 코드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 사람은 경험을 바탕으로 모듈을 식별할 수 있다. 컨설팅 전문가나 경영대학 교수들, 그 바닥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사업에서 모범 사례를 찾고 이를 확산하는데 힘을 쏟는데, 바로 이 모범 사례라는 것이 실상은 모듈이다. –실패 사례도 모듈인데, 단지 적합한 것이 아닐 뿐이다.
    • 이들은 과거에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을 찾기 위해 기업에 대한 사례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문서화 하거나 설명 자료로 만든다. 즉, 이것들을 도식으로 코드화 한다.
    • 그러고는 이를 코드화된 도식을 이해할 수 있는 경영 팀으로 넘긴다.
    • 경영 팀은 그러한 사례를 차별적인 경쟁 우위를 얻을 목적으로 경영 조직에 적용하는 시도를 한다. 즉, 선택의 단위로서 활용한다.
  • 모든 정의가 그렇듯 이 경우에도 주관과 개인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사업들 간에 성과 차이가 나는데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15장에서도 보겠지만 과거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모범 사례가 반드시 미래에도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법은 없다.
    • 그럼에도 진화적인 선택은 사업 계획 전체는 아니지만 사업 계획의 일정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선택의 단위에 대한 질문은 경제학과 생물학 모두에서 여전히 논쟁과 연구의 주제가 되고 있다.
    • 지금까지 경제 시스템,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에서 선택의 단위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적 제안이 있었다. 예컨대 경제 시스템의 경우 리처드 넬슨과 시드니 윈터의 ‘일상적인 과정’, 사회 시스템의 경우 리처드 도킨스의 ‘생물의 유전자처럼 재현 모방을 반복하는 사회 현상’의 개념, 혹은 로버트 보이드와 피터 리처슨의 ‘문화적 변이’ 등이 그런 것들이다.
    • 이러한 개념은 각기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으며, 모듈의 개념은 바로 그런 아이디어로부터 도출한 것이다. 여기서 모듈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는 목적은 우리가 지금까지 구축해 온 일반적인 진화 모형과의 일관성을 확보하면서 나아가 경제적 관점에서 ‘도식’, ‘상호작용자’, ‘선택의 단위’ 간의 구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전략이라는 접착제

  • 모듈이라는 용어는 사업 계획이 여러 가지 모듈의 혼합체이고 이들 모듈을 조립하여 여러 가지 사업 계획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 실제로 기업의 사업 계획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대게 담고 있다. ‘시장 환경’, ‘전략’, ‘제품 및 서비스’, ‘운영’, ‘마케팅과 판매’, ‘조직’
  • 사업 계획의 각 구성 요소는 또 세부, 세세부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예컨대 화학 분야 사업 계획에는 항공 산업용 신재료인 특수 탄소 섬유의 생산 공급과 관련된 제품 모듈이 있을 수 있다. 그 모듈은 탄소 섬유를 만드는데 필요한 여러 물리적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 마찬가지로 마케팅 및 판매 부문의 경우 영업망을 활용하여 탄소 섬유를 판매하는 모듈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품 모듈과 달리 이 모듈은 영업 사원의 조직, 관리 및 동기 부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 그러므로 사업 계획은 개별 단위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결합된 모듈 –부문 계획– 들이 다시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 15장에서 전략에 대해 좀 더 깊이 논의하게지만 여기서 전략은 어떤 주어진 여건 하에서 모듈들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이익이 더 많이 날 것인가에 대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컨대 어떤 기업가가 전자 장치에 대한 기술을 애플에서 빌려오고, 인터넷 판매 기술을 델에서 빌려와서 자기가 스스로 고안한 상품 디자인과 결합하여 돈을 버는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 그는 사업 계획을 만들고 이 계획서를 벤처 캐피탈에게 가져가 사업 자금을 조달한다. 사업계획서는 새로운 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전략이라는 우산 아래서 결합되는 만남의 장소와도 같다.

차별화: 기업가에서 관료까지

  • 앞 장에서 우리는 연역적 추론이 어떻게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 차별화의 매커니즘을 만들어 내는지 보았다. 사업 계획도 이와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사업의 운영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을 합리적으로 도출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그러나 짐 콜린스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설명한 것처럼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시험을 거쳐 제대로 된 것만을 취하는’ 방법 밖에 없다.
  • 사실 엄청나게 다양한 사업 계획이 항시 실험에 옮겨지고 있다. 예컨대 보다폰의 제 3세대 이동 서비스, BP의 러시아 사업 탐색, 볼리비아 커피숍의 커피 원두 교체 등 수도 없이 많은 사업 계획들이 실험되고 있다.
    • 그러므로 사업 계획 공간에서 연역적 추론은 진화적 선택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대안 혹은 대안의 과임신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성공적인 사업 계획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보다는 기예에 가깝다.
    • 그러므로 생물의 경우처럼 진화의 과정이 완전히 관측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성공할 수 있는 사업 계획을 판별하는데는 연역적 추론 가운데서도 연역적 논리보다 실험적 추론이 훨씬 유효할 수 있다.
  • 다양한 기업가 스펙트럼의 한 끝에는 전혀 새로운 사업 계획을 들고 나오는 혁신적인 기업가가 있다. 기업가적 의사 결정은 연역적 추론의 형태를 띠고 있다.
    • 즉, 기업가는 다양한 사업 계획의 모듈을 새로운 방법으로 뒤섞거나 새로운 물리적 기술 혹은 사회적 기술을 도입, 가미하여 새로운 사업 계획을 도출해 낸다는 것이다.
    • 실제로 홈 데포 창업자들은 도시 근교의 대형 소매 매장 형태를 취해 자가 조립식 건축 자재상과 결합하여 성공적인 사업 계획을 만들어 냈다.
  •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기업가를 중세의 기사에 비유하여 자본주의의 영웅으로 칭송한 바 있다. 그러나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가만이 아니라 중간관리자도 영웅이 될 수 있다.
    • 중간관리자도 담당 사업 활동을 합리적으로 기획하고 이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고려하여 여러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연역적 추론 방법을 활용한다는 점은 기업가의 경우와 다를게 없다.

선택: 통치자 대 시장

  • 유사 이래 인류는 두 가지의 경제적 선택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즉, 통치자와 시장이다.
  • 초기 경제에서 선택의 과정은 명료하였다. 즉, 살아남는 것 자체가 바로 선택되는 것이었다.
    • 만약 물리적 기술 –예컨대 활과 화살– 과 사회적 기술 –예컨대 사냥모임– 을 어떤 전략 –예컨대 강변에서 영양을 사냥한다– 하에 결합하는 사업 계획에 성공하였다면 사냥하는데 쓴 칼로리보다 사냥감으로부터 얻는 칼로리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이 남은 칼로리는 아이들을 먹인다든지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 칼로리 측면에서 수지 맞은 이 사업 계획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더 복제될 가능성이 많아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산되어 다음 세대들이 채택하게 된다.
    • 이와 반대로 다른 사업 계획의 칼로리 수익이 신통치 않았다면 다른 성공적인 계혹에 자원을 점점 뺏기게 되고 결국 그 사업을 따르던 사람들도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도태되고 말 것이다.
  • 그러나 사회와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선택의 과정도 매개 단계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선택이 중요해지는 등 과거와 달라졌다. 진화적 선택과 사회 간의 마찰이 처음 일어난 것은 어느 날 통치자가 ‘이 기름진 옥토를 아무개 –농사 잘 짓는– 에게 줄 게 아니라 나의 셋째 부인의 사촌 –농사 못 짓기로 유명한– 에게 주자’라고 했을 때였다. 정치가 경제에 개입한 지가 경제나 정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 불량 사업 계획을 우수한 사업 계획 보다 더 선호하는 의사 결정은 생존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오래가지 못한다. 만약 통치자가 이러한 결정을 과도하게 반복하면 부족이 망하거나 반란이 일어나 통치자가 쫓겨날 수도 있다.
    • 그러나 한 사회가 생존의 단계를 넘어서면서 특히 사회가 점점 더 부유해지면서 선택 과정의 사회적 왜곡은 그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더욱 심화 되었다.
  • 만약 한 부족이 대체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고 통치자의 실정, 부패 혹은 무능이 극심한 정도가 아니라면 부족이 얼마나 많은 손실을 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 로버트 라이트가 지적한 대로 경쟁은 이러한 상황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발동한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통치자가 나타나 더 나은 삶을 약속하면서 옛 통치자를 끌어내린다. 그러나 새로운 통치자가 과거의 통치자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다.
    • 그러므로 사업 계획의 선택 과정에 정치가 개입한다는 것은 진화의 과정을 지체시키는 것과 같다. 극한적인 상황에서 통치자들이 경제적 진화를 정지시키고 국민들의 생존이 궁핍하나마 유지될 수 있다면 그러한 진화의 정지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 사업 계획의 선정에서 통치자 –빅맨– 가 개입하는 시스템의 문제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통치자는 적합도 함수 자체를 왜곡시킨다. 진화 알고리즘의 특징 중 하나가 어떠한 적합도 기준이 주어지든 거기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 통치자가 선택하는 시스템에서 적합도의 기준은 그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하는게 아니라 통치자의 부의 권력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국민의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 그리고 연역적 실험 능력은 온통 통치자를 즐겁게 하는데 집중되기 마련이다. 프랑스의 샤토 –성– 에서 러시아의 에르미타지 –궁전– 에 이르는 세계 각지의 거대한 저택과 궁전도 통치자의 부라는 적합도 함수를 최대화하기 우한 경제적 진화의 소산이다.
  • 통치자가 선택하는 시스템의 대안으로서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은 고대로부터 존재하기도 하였지만 또한 근대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 자유 시장은 도끼와 고기를 교환한 이래 쭉 있어 왔지만 제대로 조직화된 시장이 등장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 의미의 시장이 처음 나타난 것은 비옥한 반원 지역 –팔레스타인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지역– 에 정착 농업이 시작되고 기원전 7,000~5,000년 경 우르와 바빌론 같은 도시가 형성된 때였다.
  • 전통 경제학의 큰 업적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선택에 따라 적응하면 그것이 바로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복지를 향상시키게 된다는 점을 놀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 통치자 경제에서 사업은 정치적 호-불호에 따라 죽고 산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는 고객의 제품 선호도와 수요에 의해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통치자 경제에서는 통치자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쪽으로 자원 배분이 일어나지만 시장 경제에서는 경제적 효율이 극대화 되는 방식으로 자원이 배분된다.
  • 사실 역사상 모든 경제는 통치자 경제와 시장 경제의 혼합체 였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통치자가 사업 계획의 성패를 결정하였고, 시장은 부차적인 혹은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여왔다.
    • 경제학자인 윌리엄 보몰은 봉건 유럽의 지배자들이 당시 경제적 생산의 80% 이상을 통제하였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 통치자와 시장 간에 있던 그러한 세력 균형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약 300년 전의 일이다.

시장 경제에서 진화의 선택

  • 통치자 경제에서 선택은 간단명료하지만 시장 경제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시장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시장이 사업 계획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그렇다고 시장 경제에 빅맨 같은 계층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카를 맑스나 요즘의 반세계화 세력들이 주장하듯 자본주의 사회에는 악덕 자본가, 기업 총수, 자기 뱃속만 채우는 기업주도 있다. 현대 대기업의 조직도를 보면 소위 통치자들의 계층 조직과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
    •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려면 자기의 사업 계획이 시장에서 다른 대안들보다 선호되어야만 가능하다.
  • 시장 경제의 사업 계획 선택 시스템은 두 단계로 작동한다.
    • 대부분의 경제적 의사 결정은 계층 조직, 특히 기업 계층 조직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업 역사 전문가인 알프레드 챈들러는 1970년대 기업의 계층 조직이라는 ‘보이는 손’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의사 결정을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기업 계층 조직의 맨 위에는 아주 얇지만 매우 중요한 단계가 있는데, 거기가 바로 기업 계층 조직이 시장과 만나는 곳이다. 시장 경제는 진화를 위해 경쟁하는 기업 계층 조직으로 구성된 시스템이다.
  • 앞서 연역적 추론을 통해 사업 계획이 선별되는 것에 대해 살펴 보았는데, 여기서는 시장이라는 상황에서 차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거쳐 사업 계획이 선택되는가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 대기업 사업부를 맡고 있는 고위 임원이 자기 사업부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사업 계획의 수정을 고려 중이라고 하자.
    • 그 첫 단계로 그가 생각하는 일은 사업과 관련된 여러 대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생산 라인 A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서비스 B를 출시할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의 생산비 절감 혹은 조직 개편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들 각 대안으르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사업 계획서 상의 특정 모듈들을 수정해야 한다. 이런 대안을 만들어 내는데 그 임원은 자신의 모든 인지 능력을 동원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연역적 사로를 통해서, 어떤 대안은 유추나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경우는 모방을 통해, 그리고 어떤 대안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 사업부의 책임자가 대안을 도출하면 그중 어떤 대안이 가장 좋은 가에 대한 판단을 위해 고민하게 된다. 대안을 대략 몇 개로 압축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가서 다시 추가적인 아이디어 도출과 시험 과정을 거치게 된다.
    • 동료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거나,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그것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 그와 직원들은 대안을 다시 수정 보완하여 이들 대안에 대한 가상 시험을 해볼 것이다.
    • 예컨대 실행 모델을 작성하고, 시험 가동을 해보고, 비용 분석을 하고, 판매 전망에 대한 연구 조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 그후 각 대안은 관련 팀들의 평가를 처기고 그 대안들은 회사 본부의 고위급 인원 회의에서 토론과 평가 과정도 거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사업부 책임자는 한두 개의 대안을 최종 선정하고 최종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 그래서 새로운 대안을 사업 계획에 추가, 수정하게 된다. 사업 계획이 수정되면 여러 현실적인 변화가 뒤따른다. 예산과 인력이 재배분되고 제품이 바뀌거나 영업 전략이 바뀔 수 있다.
  •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면 시장이 판단할 차례가 된다. 매상이 늘거나 줄 수도 있고, 이익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도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계획의 성공 여부에 대한 반응을 시장으로부터 받게 된다.
  • 그러나 이런 과정이 가시적이고 정해진 형식을 따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안의 도출, 시험, 선택이라는 반복적 과정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반복 과정은 개인의 생각 속에서 시작되어 조직 차원으로 확산되고 이를 통해 실행의 단계로 들어간다.
    • 따라서 대안 선택은 여러 단계에서 일어난다. 즉, 개인의 사고 모델에서, 조직의 계층 구조 내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시장에서 선택이 이루어진다.

복제: 성공의 확산

  • 진화 알고리즘의 마지막 단계는 복제다. 생물의 진화에서는 복제가 세포의 분열이나 짝짓기에 의해 일어난다. 한 생물체의 생존과 번식 능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바로 복제의 대상이 된다.
    • 그러므로 복제 효과를 장기적으로 보면 적합한 유전자는 모집단에서 출현 빈도가 크게 늘어나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는 빈도가 줄거나 사라진다. 생물계에서 빈도는 개체의 전체 모집단에서 특정 유전자를 가진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로 측정한다.
    • 이와 같은 유전자의 출현 빈도수를 측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상호작용자 –예컨대 인간– 들이 전체 상호작용자 모집단에서 특정한 선택 단위 –예컨대 파란 눈동자– 를 보유하고 있는가 –예컨대 20%– 를 조사하는 것과 같다.
  • 이러한 측정 방법을 경제에 적용한다면 전체 사업 중에서 어느 특정 모듈을 포함하고 있는 사업이 얼마나 되는가를 조사하는 것과 같다.
    • 그러나 이 측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거의 모든 생물 종에서 상호작용자의 크기는 큰 차이가 없다. 성인의 키는 1m-2.5m 사이에 있고 그 차이라는 것이 10배 미만이다. 그러나 경제에서 상호작용자의 크기는 구두닦이 사업과 대형 정휴 사업과 같이 10억 배에 이를 수 있다.
    • 그러므로 다섯 개의 구두닦이 가게에서 복제되는 모듈과 다섯 개의 대형 정유회사에서 복제되는 모듈은 그 경제적 영향력 측면에서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떻게든 설명할 필요가 있다.
  • 생물계에서 출현 빈도라는 것이 축약된 기본적인 측정 단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퍼센트의 개체들이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는가를 묻는 대신 동일하게 그 종의 생물 총량에서 몇 퍼센트가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 유전자 중심의 관점에서 본다면 후자가 더 사실에 근접한데, 후자의 경우 한정된 화학 및 에너지 자원 중 몇 퍼센트가 특정 유전자의 통제 혹은 영향을 받고 있는가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물론 생물 개체당 평균 생물 총량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출현 빈도 혹은 모집단에서의 비율 등은 편의상 대리지표로 볼 수 있다.
    • 따라서 ‘인간이라는 생물 총량 중에서 몇 퍼센트가 파란 눈동자 유전자의 영향을 받았는가?’ 하고 묻더라도 대답은 똑같이 ’20퍼센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원 중의 비율이라는 관점은 컴퓨터에서 레고블록까지 여러 다른 시스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화와 관련하여 그 기질에 상관없는, 다시 말해 기질 중립적인 우리의 접근법과도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지금부터 ‘자원 중의 비율’이라는 접근법을 가지고 복제 성공을 측정해 보자. 다시 말해 적합도 관점에서 사업 계획 모듈의 영향을 받는 자원들 중의 비율로 복제 성공을 측정해 보자. 여기서 자원이란 돈, 사람, 공장, 장비 혹은 무형의 자산 –브랜드 인지도, 기술 지식, 고객 관계– 까지도 포함된다.
    • 즉 자원은 공급이 한정되어 있고 이를 얻기 위해 기업이 경쟁하는 그러한 것을 총칭하는 것이다. –‘자원 중의 비율’이라는 접근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원 기반의 기업론’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16장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 그리고 현재 우리가 말하는 측정은 단절된 것이 아닌 연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업 계획 모듈은 복제된다기보다는 확산 내지 증폭 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특정 사업 계획 모듈이 자원에 미치는 영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진다면 그 사업 계획 모듈은 사업 계획 공간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 이제 우리는 선택에 대한 논의를 좀 바꾸어 어떻게 성공적인 사업 계획 모듈이 확산되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게 되는지에 관해 살펴 보기로 한다.
    • 첫째, 가상 사업 책임자의 머리속으로 들어가보자. 그 책임자는 자기 사업 계획에 대한 여러 대안을 고려하면서 자기가 성공할 것으로 믿는 모듈을 정하고 이를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모듈을 실행하면서 거기에 사람, 돈, 그리고 다른 자원을 투입한다.
    • 따라서 그가 선택한 그 모듈은 더욱 확산되고 가용 자원도 늘어나게 된다. 그가 고려는 해보았지만 채택하지 않은 다른 10개의 대안은 자원을 받지 못한 채 최소한 그의 사업부에서는 사멸되고 만다.
    • 그 후 매출이 늘고 이윤이 증가하는 등 그의 사업 계획이 상당히 고무적인 초기 성과를 보였다고 하자. 회사 고위 임원들은 이에 감복하여 그와 같은 모듈을 채택하고자 할 것이다 –예컨대 새로운 판매 전략– 그래서 더 많은 사람과 돈 그리고 자원이 그 모듈을 실행하는데 투입되어 그 모듈은 더욱 확산되는 것이다.
  • 몇 달 후 그의 경쟁자가 사업 계획이 변한 것을 알고 이를 모방하면 이 모듈은 더욱 확산되어 다른 회사에서의 자원도 끌어들이게 된다. 그 모듈의 성공으로 이 두회사가 성장하게 되면 은행이나 자본 시장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이 이들 회사로 모이게 되고 그 모듈의 영향은 더욱 확산된다.
  • 결국 그 사업 책임자는 그 모듈을 채택하지 않은 조그만 기업을 매입하기로 한다. 매입 목적은 그 모듈을 적용할 기회를 확대하고 그 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 새로 매입한 기업에 그 모듈을 적용하고 따라서 모듈의 영향은 더욱 확대된다.
    • 즉, ‘복제를 잘하는 생물이 복제된다.’는 생물학에서의 말과 같이 경제에서는 ‘확산을 잘하는 자가 확산된다.’는 말이 성립된다.

경제적 진화의 핵심

  • 사업 계획이라는 것은 그 내용을 식별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추진할 수 있는 지침서들이다.
    • 이 지침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적으로 결합하여 사업 모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설명한다.
    • 여러 사업 계획들은 이익을 낼 잠재력이 있는 사업을 찾는 사람들의 연역적 추론에 의해 걸러지고 선별되는 과정을 거친다.
    • 이러한 선별 과정에서의 실험은 생물 세계에서의 진화와 같은 완전한 임의적인 차별화와는 다르지만 진화의 선택이 작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과임신 수준의 사업 계획들을 대상으로 한다.
  • 선택의 과정은 개인적인 차원의 시뮬레이션에서 그룹 차원의 문제 해결 실험에 이르는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난다.
    • 사업 계획들이 조직의 의사 결정 시스템을 따라 걸러지면서 선택은 계속된다. 그러나 일정 단계에 이르면 선택된 계획이 마침내 실행되고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시장의 몫이다.
  • 성공적인 모듈은 보다 많은 자원에 대한 영향력 확대로 보상을 받는다. 모듈의 성공은 두 단계에서 결정된다.
    • 첫째는 사업 계획이 조직 내부에서 선택되는 단계로서, 이때 사업 계획의 실행을 위해 사람과 자원이 배분된다.
    • 둘째는 모듈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성장하는 단계로서, 이때는 더 많은 자원이 고객과 자본 시장으로부터 흘러 들어오게 된다.
    • 이것이 바로 적자를 걸러내는 과정이다.
  • 사업 계획의 과임신 현상은 실행 단계에 들어가는 선택들에 비해 그 전에 훨씬 많은 선택이 고려된다는 것이고, 시장에서 성공으로 판정 받는 선택들과 비교해 볼 때 실행 단계에서 훨씬 많은 선택들이 시도된다는 의미다.
  • 진화의 선택 과정이 일어나면서 승자는 더 많은 자원을 향유하게 되는데, 이러한 진화는 매우 동태적인 과정으로서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승자가 된다는 법이 없다. 그래서 진화의 과정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새로운 모듈이 부침하면서 사업은 흥하거나 망한다. 그러면서 시장의 수요에 맞게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 진화 알고리즘의 기본적인 구조 외에는 경제적 진화와 생물적 진화 간에 특별한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예컨대 생물의 진화에서 선택 단위는 세대 간의 ‘하향식 개량’이라는 패턴을 따르는 반면 경제적 진화에서는 제각기 다른 사업 계획을 두고 수평적인 선택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그러나 경제적 진화도 진화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며 다만 그 패턴이 다를 뿐이다.
    • 인간은 두뇌를 활용하고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 인간이 개입되어 있는 경제 시스템에서의 적자 선별과 선정 과정이 생물계에서와 같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경우 다 진화의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 저자가 제시한 진화의 이론적 틀은 시장, 화폐, 사유 재산, 주식회사 혹은 문자와 같은 사회적 기술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떻게 도끼를 더 많은 고기와 교환할 것인가 하는 유인원 ‘해리’의 선택 과정이나 중국 시장 진출 전략에 대한 다국적 대기업 임원의 선택 과정이나 본질적으로는 다를게 없다는 뜻이다.

시장 예찬의 또 다른 이유

  • 전통 경제학자들이 모두 의견을 같이 하는게 있다면 그것은 시장의 우월성이다. 물론 시장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 효율성에서 이를 따를 시스템은 없다.
    • 이러한 결론은 일반 균형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서, 20세기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 논쟁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글로벌 자본주의의 핵심 논거가 되고 있다.
    • 진화론적인 경제관도 시장이 우월하다는데 다름이 없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다르다.
  • 전통 경제학은 시장이 균형 상태에서 사회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앞서 본 대로 문제는 현실에서 균형 상태는 달성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시장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 우리의 논리 구조를 따르면 시장을 진화를 위한 탐색 메커니즘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시장은 사업 계획의 선별을 위한 ‘연역적 추론’이 일어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 그리고 시장은 사회 구성원의 광범위한 수요를 반영하는 적합도 함수와 선택 과정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시장은 선택된 사업 계획으로 자원을 몰아 주어 승자는 더욱 번성하게 하고 패자는 도태시키는 역할을 한다.
  • 간단히 말해 시장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오겔의 제 2법칙’, 즉 ‘진화는 당신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 통치자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지적이고 자비롭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적합도 지형에서 적합도가 가장 높은 정점을 찾아가는데는 진화의 알고리즘을 당할 수 없다.
    • 따라서 시장이 명령, 통제보다 우월한 것은 시장이 균형 상태에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불균형 상태에서 기술 혁신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들 역시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이 효율적이며 통치자에 의한 배분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본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자들은 균형 상태에서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라고 보는 반면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효율성을 상대적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완벽한 효율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는 실제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 존재한다 하더라도 시장의 불균형성 때문에 그런 효율적인 상태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열역학적으로 100% 효율적인 자동차란 없다는 것이다.
    • 시장이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신화 같은 전체적인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분산 처리 시스템과 같은 시장의 계산 능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장은 려러 신호 주에서 적합한 신호를 적합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 실증적 기록을 보더라도 시장이 진화 메커니즘으로서 매우 성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이 말하였듯이 자유로운 시장들은 역사적으로 혁신 제조기였다.
    • 현실에서 통치자 경제 하에서 만들어지거나 아니면 디자인된 SKUs가 얼마나 있는가? 아주 소수의 예외 말고는 대부분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혁시은 시장 경제의 산물이다.
    • 소련의 항공기 디자인 등과 같은 통치자 경제에서의 혁신은 주로 경제적 동기보다는 군사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 물론 그렇다고 시장 경제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자본주의 사회는 소득 격차, 환경 파괴, 에이즈와 같은 보건 문제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사회의 과도한 물질주의가 국민을 반드시 행복하게 한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통치자의 경제는 똑같은 문제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메타 혁신: 다시 보는 1750년

  • 책의 시작 부분에서도 언급한바 있지만 인류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은 1750년경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폭발적인 부의 증가와 경제의 복잡성 증대다.
    • 우리의 진화 이론적 틀을 활용하면 당시 무엇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기간 중 일어난 일련의 사회적 기술의 혁신은 경제적 진화 자체를 엄청나게 가속화 시켰다.
  • 11장에서 과학 혁명, 즉 첫 번째 메타 혁신을 논의한 바 있다. 1,500년 전 인간의 지식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축적된 것이다. 그러다 과학의 출현으로 물리적 기술을 이용한 인간의 탐구 노력은 가속화하였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에 있어서 합리적인 연역과 실험적 사고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 두 번째 메타 혁신은 시장의 조직화와 함께 일어났다. 시장 경제의 발전은 빅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2세기에 걸친 사회적 기술의 진화 결과다. 이러한 진화의 핵심 동인은 영국 의회민주주의 발전과 미국 혁명을 들 수 있겠다.
    • 1509~1547년 동안 영국의 헨리 8세는 절대 권력자였으나 1세기 동안 민중 봉기와 개혁을 거쳐 1690년에 이르면 영국은 입헌 군주국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때 국가 재정권이 의회로 넘어갔고 통화 관리를 위해 영국 중앙은행이 설치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 동안 법치주의의 정착과 사유 재산권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제도도 도입되었다.
    • 이와 같은 사회적 기술의 본질적인 변화는 그 후 수세기에 걸친 사회 변화, 즉 봉건적, 계급적, 통치자 중심의 사회로부터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였고, 이에 따라 상인 계급의 부상, 경쟁적인 민간 부문의 성장, 자본 시장의 출현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 그때까지도 다른 유럽 국가들은 하향 통제식 경제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나라에 따라 어느 정도 제도 개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북유럽에 시장 경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바람이 유럽 대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 1776년에 시작된 미국 혁명은 시장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두 번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 역사가 폴 존슨에 의하면 영국의 식민지 정책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매우 달랐는데, 하향 통제식으로 경제를 관리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달리 영국은 식민 통치에 필요한 군사에 대규모 투자를 할 여유가 없었다. 영국은 항시 유럽 대륙과의 복잡한 관계 관리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영국령 미국 식민지는 대개 독립적인 농부와 상인이 분산되어 사는 정착지로 발전하였다. 초기부터 영국의 북미 식민지는 무역의 자유, 생각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그야말로 자유로운 곳이었다. 영국의 식민 당국이 억압하려고 하면 주민들은 억압을 피하기 위해 더 먼 곳으로 이주해 버렸다.
    • 따라서 1776년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 새로운 국가 미국은 이미 한 세기의 경제적 자유를 경험하였고 1인 통치가 불가능한 평등한 대중적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미 미국에는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 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미 미국은 자유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1700년 미국의 GDP는 영국의 5%에 불과하였으나, 1775년 40%로 늘어났다. 이를 두고 존슨은 ‘세계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의 하나’라고 평가하였다.
  • 18세기 말 미국, 영국 그리고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는 시장 경제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기술이 터를 잡았다. 그러나 아직 시장 경제라고 말하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예컨대 은행 제도는 매우 원시적인 단계에 있었고 주식회사 제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 계획의 선택 과정에서 통치자의 자리는 사라지고 기업가 정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 또한 이 지역에서 과학도 뿌리를 튼튼히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이 산업 혁명의 중심지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19세기와 20세기를 통해 과학은 엄청난 물리적 기술을 창출하였고, 시장은 이러한 기술을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사업 계획의 진화를 촉진하였다. 물리저거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사업 계획 혁신 간의 선순환이 일어나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대한 경제 발전 시대를 열었다.

부의 기원/ 사회적 기술: 수렵, 채집민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 2002년 국제경제연구소의 윌리엄 이스털리와 미네소타 대학의 로스 레빈은 72개의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한 나라를 다른 나라보다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 국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들 중에는 천연자원, 정부 정책 역랑, 국가의 물리적 기술의 정교함 등이 포함된다고 추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 이스털리와 레빈은 이런 요소들이 어느 정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가장 의미있는 요소는 국가의 사회적 기술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법률 규정, 재산권의 존재, 잘 조직된 금융 제도, 경제적 투명성, 부정부패 척결 그리고 그 외의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이 국가의 경제적 성공을 결정하는데 다른 범주에 속하는 요인들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했다.
    •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정부가 무능한 국가라도 강력하고 잘 개발된 사회적 기술이 있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반면 사회적 기술이 형편 없는 국가들 중에는 좋은 성과를 거둔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 사회적 기술은 국가 경제의 결과에도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더 세밀한 산업 차원이나 기업 차원에서의 실적 차이도 설명할 수 있다.
    • 1990년대 말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 20년간 투자된 컴퓨팅 능력 덕분이라고 설명하려 했다.
    • 하지만 맥킨지 연구소의 내 동료들은 생산성을 증가시킨 실제 요인은 회사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변화, 바꿔 말해 사회적 기술의 혁신 덕분임을 알게 되었다.
  • 맥킨지가 심층 검토한 산업 부문 중 하나는 소매업, 특히 월마트가 산업 부문 전체 생산성에 미친 영향이었다.
    •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월마트는 대형 매장 형식과 효율성이 높은 물류 시스템으로 혁신을 구현하여 경쟁 업체보다 40%나 더 생산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었다.
    • 이런 도전을 받은 경쟁 업체들은 월마트의 조직적인 혁신을 흉내내지 않을 수 없었고, 1990년대 말까지 생산성을 28%나 향상시켰다. 그 기간 동안 월마트는 생산성을 22%나 더 향상시켰다.
    • 소매업 부문에서 나타난 이런 사회적 기술 혁신 경쟁은 같은 기간 미국 전체의 생산성 증가의 거의 1/4을 차지했다. 나머지 생산성 증가는 대부분 다섯가지 다른 산업 부문에서 이루어진 비슷한 사회적 기술 혁신 경쟁으로 인한 것이었다.
    • 이 과정에서 컴퓨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월마트의 정교한 물류 프로세스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이 주된 역할을 했다기 보다는 그러한 실현을 가능하게 한 역할을 했다. 엄청난 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 것은 정작 조직과 프로세스의 혁신이었다.

조직하라

  • 앞 장에서 물리적 기술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물질, 에너지 및 정보의 집합체를 어떤 한 상태에서 달느 상태로 변환하는 방법 및 디자인으로 정의했는데, 사회적 기술도 비슷하게 정의할 수 있다.
  • 사회적 기술(ST)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법 및 디자인이다.
  •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회사를 시작하고 종교를 형성하거나 볼링 리그를 만들기도 한다.
    • 그런 조직화 행위는 항상 목표를 추구한다. 그 목표는 이익일 수도 있고, 계몽일 수도 있고, 재미일 수도 있다.
    • 물리적 기술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물리적인 영역에서의 질서를 구현하는 방법인 것처럼, 사회적 기술 역시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사회적 영역에서 질서를 구현하는 방법이다.
  • 사회적 기술이라는 용어는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제도(institution)와 비슷하다.
    • 노벨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를 ‘사회 내에 존재하는 게임의 규칙’으로 정의한다.
    • 제도는 조직화의 한 가지 구성 요소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사회적 기술의 정의에서는 의미를 다소 확대하여 구조, 역할, 프로세스 및 문화적 표준과 같은 다른 구성 요소를 포함하고자 한다.
    • 즉 사회적 기술에는 조직화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포함된다. 축구 팀의 사회적 기술에는 게임의 규칙만이 아니라 골키퍼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 팀의 문화적 규범, 팀의 전방에 스트라이커를 세 명 세울 것인지 아니면 전방에 두 명을 넣고 후방에 스위퍼를 둘 것인지 등과 같은 내용도 포함된다.
    • 축구 팀의 사회적 기술에는 팀, 조직, 방식에 대한 모든 설명이 포함되지만 팀이 사용하는 전략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왼쪽으로 공격한다’거나 ‘숏 패스를 주로 사용한다’와 같은 문장은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상황에서 보면 그런 전략은 비즈니스 사업 계획에 속한다.

사회적 기술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 이러한 사회적 기술에 대한 정의를 고려하면, 사회적 기술의 이론적인 디자인 공간, 즉 모든 가능한 사회적 기술 도서관을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여기서도 물리적 기술 디자인 공간을 구상하면서 거쳤던 과정을 다시 따라갈 것이다.
    • 사회적 기술 도서관에는 사회적 구조를 구현할 수 있는 특정한 디자인과 명령을 규정하는 도식들이 있다. 야노마모 족의 사냥 파티를 조직하는 명령을 작성하거나 GE의 조직적 구조의 규정, 유럽의 금융 관련 규정을 수립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이런 명령의 집합체에는 자연어로된 텍스트, 차트, 도표가 포함된다. 그중에는 조직 구조, 역할, 의사 결정 프로세스, 공식적인 규칙, 인센티브 시스템, 품행 규정 등이 있다.
    •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회적 기술이 500페이지 분량의 책 여러 권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우주보다 더 큰 모든 가능한 사회적 기술 도서관이 될 것이다.
  • 현실 세계의 물리적 기술이나 비즈니스 계획의 경우처럼, 일부 사회적 기술은 문서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사회적 기술도 많다.
    • 사회적 기술은 기록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자격있는 식별자가 그에 따라 행동하면 규정된 대로 실현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명시할 수 있다.
    • 따라서 야노마모 족 사냥꾼은 사냥단의 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적절한 경험을 갖춘 EU 행정관은 금융의 규제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 지금까지 설명한 다른 디자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술의 도서관은 세 가지 중요한 속성을 갖추고 있다.
    • 첫째,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 기술처럼 사회적 기술 디자인 공간은 자급자족형이며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된다. 사회적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때마다 그 다음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더 많은 디자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돈이 발명되자 회계학이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주식회사가 만들어졌으며, 그로 인해 주식 시장이 생기게 되었다.
    • 둘째, 사회적 기술은 모듈형 빌딩 블록의 특성이 있다. 예컨대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조직 디자인은 사업부를 조직하는 디자인, 회계 및 통제 시스템 디자인, 위원회 구조 디자인, 문화적인 행동 규범 디자인 등이 포함된 모듈의 집합체이다.
    • 셋째, 사회적 기술 디자인 공간과 관련된 적합도 지형은 알프스 산과 같은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그런 지형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기술 디자인이 서로 약간 다르면 상대적 적합도도 약간 차이가 있지만, 때때로 조금만 변경해도 사회적 기술이 전혀 실행 불가능한 것이 되거나 훨씬 더 잘 작동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적합도 지형처럼 사회적 기술 적합도 지형은 개략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는 알프스 산과 같은 형태가 된다. 이런 형태의 지형에서는 평평한 지점도 있고, 스위스 치즈와 같은 구멍이 있거나 때때로 더 높은 지면으로 연결되는 입구도 있다.
  • 이 가정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 기술 공간에 S곡선과 파괴적인 기술이 있었던 것처럼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도 그에 해당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 예컨대 수렵, 채집민의 사회적 기술에서 정착 농경 사회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인간 경제 조직의 S곡선이 크게 이동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포드가 1914년에 제조 공정, 즉 생산 라인을 조직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개발한 것은 초기 자동차 산업과 그 외의 많은 산업 부문의 구조를 바꾸어 놓은 매우 파괴적인 사회적 기술이었다.

사회적 기술 공간의 연역적 추론

  • 사회적 기술 적합도 지형이 알프스 산과 같은 지형이라면 그것을 찾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은 인류 사상 최고의 검색 알고리즘인 진화이다.
    • 사람들이 ‘연역적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물리적 기술 공간을 탐색하는 것처럼,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도 연역적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적합한 사회적 기술을 탐색한다.
    • 예컨대 헨리 포드와 그의 팀이 생산 라인을 개발했을 때, 단순히 앉아서 연역적으로 이론화하여 문서로 만든 것이 아니고 임의적으로 실험을 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 포드는 대중이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자동차를 제조하고 싶다는 마음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제조 공정에서 숙련공의 수를 줄여서 기능과 경험이 부족한 작업자가 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했다.
    • 포드는 제조 공정에서 표준화되고 상호 교환이 가능한 부품을 미국 군수부의 스프링필드 아머리가 개발한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와 그의 팀은 이론적인 경제학 서적을 많이 읽지는 않았겠지만, 일반적으로 노동 전문화의 장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 일련의 연역적 가설들을 세운 포드는 1908년부터 1912년 사이에 공장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실험하기 시작했다. 4년 동안 실험을 한 후 1913년에 그는 작업자가 아니라 자동차 자체가 생산 라인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1914년에는 완전하게 작동되는 이동식 조립 라인을 구현했다.
  • 사회적 기술에서 연역과 실험적 추론 방식의 비율은 물리적 기술에 비해 실험적 추론 방식 쪽으로 더 기울어진다.
    • 경제학과 조직 이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제트기를 제작하거나 새로운 심장약을 만드는 것에 비해 회사의 조직을 재디자인하거나 중앙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같은 활동에는 과학 외에도 훨씬 더 많은 학문이 관련된다.
    •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진행된 사회적 기술 공간의 적합도 지형에 대한 탐색 패턴을 보면 방향을 알려주는 비교적 적은 수의 연역적 논리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시행착오적 실험이 그 특징을 이룬다.
    • 복잡계 경제학이 약속하는 것 중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기술에서 예술과 과학의 경계선을 화학 쪽으로 한 걸음 더 밀어 놓겠다는 것이다.
  •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 연역이 더 작은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연역적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적합한 사회적 기술을 찾는 과정은 진화적 프로세스다.
    •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기술로 실험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적인 디자인은 계속 지속되고 덜 성공적인 디자인은 사라지게 된다.
    • 성공적인 디자인은 복제되어 더 많은 자원을 끌어당기고 확산되면서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 예컨대 이동하는 조립라인이라는 포드의 혁신은 제조업 부문 전체에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다른 사회적 기술을 대체하면서 지금은 표준 작업 방식으로 남아 있다.
  •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사이에는 긴밀한 연간 관계가 있다.
    • 사람은 물리적 기술의 적합도 지형 내에서 이동하면서, 사회적 기술 지형 내에서 굉음, 지진, 그리고 그 외의 격변을 일으키고, 또 그 반대의 현상도 일어난다.
    • 황소가 끄는 쟁기와 같은 물리적 기술의 진보는 촌락을 중심으로 하는 농경이라는 사회적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은 물리적 기술의 진보가 각각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기술로 연결되고 그것은 다시 물리적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공진화적인 회전목마라고 볼 수 있다.

협력을 위한 경쟁

  • 그 다음에 이런 질문이 생긴다. 사회적 기술 공간을 인류로 하여금 연역적 추론 방식으로 탐색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를 조직화 하면서 더 나은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찾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비제로섬 게임’의 마법에 있다.
  • 비제로섬 게임에서의 협력은 1+1=3 이라는 논리다.
    • 이 논리에 따르면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 주는 식으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둘이 하여 함께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 비제로섬 협력은 생물학적인 진화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생존 요령 중 하나다. 개들은 떼를 지어서 사냥을 하고, 흰개미는 집단적으로 흙무더기를 만들며, 물고기도 떼를 지어 헤엄친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장류처럼 호모 사피엔스 종족들도 집단으로 생활한다.
  • 비제로섬 게임에서 협력하는 것은 상당한 장점이 있지만, 죄수의 딜레마에서 볼 수 있듯이 더 큰 선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좁은 의미의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것 사이에는 종종 긴장이 존재한다.
    • 생각을 자극하는 저널리스트이자 과학 서적 저자인 로버트 라이트는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협력과 이기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핵심적인 긴장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 라이트는 단순한 수렵, 채집민 종족에서 조직화된 마을로, 그리고 국가와 세계적인 기업으로 사회적 복잡성이 확산되는 과정은 사람들이 점점 더 큰 규모로 협력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고, 더 복잡하고 수익성 있는 비제로섬 게임을 하는 방법을 고안한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 그는 주어진 한 시점에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세계에는 경쟁으로 인해 협력하는 압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를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혁신을 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협력하게 만드는 경쟁이다.
  • 내가 만든 언어로 라이트의 논문을 다시 고쳐 쓴다면, 사회적 기술의 적합도 지형 전체에 대한 연역적 추론 방식의 탐색은 사람들이 비제로섬 게임을 하면서 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찾는 행위로 볼 수 있다.
    • 첫째, 사회적 기술에는 비제로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
    • 둘째, 사람들이 그 게임을 하고 싶어 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 결과를 할당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 셋째, 사회적 기술은 변절이라는 문제를 관리하는 메커니즘을 갖추어야 한다.

비제로섬 게임의 마법

  • 비제로섬 게임에는 1+1=3이 되는 마법의 4가지 요소가 있다. 이 4가지는 모두 전통 경제 이론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들이다.
  • 첫째는 분업이다.
    • 분업의 장점은 2세기전 애덤 스미스가 지적한 것이다. 두 사람이 약간이라도 서로 다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각기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주력한 다음 거래를 하면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 둘째는 사람들의 이질성이다.
    • 사람들은 필요와 취향이 서로 다르기 떄문에 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를 할 기회가 생긴다.
    • 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다 푸에지언 인디언들의 거래를 관찰하였다.
    • ‘양쪽 다 웃음을 터뜨리며 이상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들이 불쌍했다. 누더기를 받고 싱싱한 생선과 게를 주다니. 그들은 저녁 한 끼를 잘 먹고는 그렇게 멋진 장식품을 내놓을 정도로 바보스러운 사람을 만나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원주민은 장식물을 받아서 좋고 항해자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서로 좋은 상황이지만, 서로에게 건네 준 것은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들.
  • 셋째는 돌아오는 몫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 예컨대 한 명의 사낭꾼이 몇 시간 사냥하면서 500kcal의 에너지를 투자하여 2,500kcal의 식품에 해당한느 동물을 사냥할 기회가 20%라고 하자. 이 경우 예상 소득은 500kcal에 해당하므로 그는 투자한 만큼 얻은 것에 불과하다.
    • 이제 그가 다른 두 명의 사냥꾼과 함께 사냥단을 만들었다고 하자. 이 때 세 명의 사냥꾼은 각각 500kcal를 투자하지만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90%로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 가치는 각각 750kcal가 된다.
    • 그냥 함께 모인 것에 불과한데도 이 사냥꾼은 투자한 것에서 250kcal의 이익을 보았으므로 위험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 넷째, 협력은 시간 경과에 따른 불확실성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 한 사냥단이 성공적인 하루를 보내고, 다른 사냥단은 그렇지 못했다면, 성공한 사냥단은 그렇지 못한 사냥단과 수확을 공유할 수 있다. 단, 상황이 뒤바뀌는 경우 상대 사냥단도 동일하게 하며 되갚을 때는 약간의 이자를 포함시킨다는 전제 하에 그렇게 한다.
    • 협력은 위험 부담을 완화시키는 생존 요령이다. 자급자족하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친다면 굶어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로 협력하는 집단에 속해있다면 동료들이 살아남도록 도와줄 것이며 나중에 되갚아 줄 수 있다.

수확물의 배분

  • 이러한 비제로섬 게임 이득의 4가지 요인을 다양한 상황에서 혼용하고 서로 짝을 맞추면 사람들이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협력하는 방법을 거의 무한하게 만들 수 있다.
    • 하지만 서로 협력할 동기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 수확물에서 약간의 몫을 받아야 한다.
    • 따라서 협력의 결과를 분배하는 방식은 중요한 문제다. 잘못된 방식으로 분배하는 경우, 협력은 무너지고 비제로섬 이득은 사라지게 된다.
  • 존 내시가 1950년대 ‘계약의 문제’라는 제목을 단 놀라운 논문으로 유명해진 것이 바로 협력에서 얻은 결과를 할당하는 방법이었다. 이 논문에서 내시는 ‘두 명의 계약자가 합의에 어떻게 도달하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을 했다.
    • 해리는 래리에게 손도끼를 받는 대가로 고기를 얼마나 줄 것인가?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게 들리지만 여러 세대 동안 경제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한 문제였다.
    • 내시의 문제 해결 방법은 두 명 이상의 계약자들이 교환에서 얻는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은 각각이 거래의 이익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 그리고 계약자들의 대안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 것이었다.
    • 각자는 다른 모든 사람도 역시 가장 좋은 거래를 찾고 있다는 가정 하에 자신에게 가장 좋은 거래를 찾게 되며, 다른 사람의 행동을 고려하더라도 그 어느 누구도 위치를 변경할 이유가 없는 지점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 지점은 ‘내시 균형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그렇기 때문에 해리와 래리는 도끼를 놓고 흥정할 때, 결국 두 사람 모두 행복하게 거래할 수 있고 누구든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는 자신의 입장을 개선할 수 없는 합의점을 찾아내게 된다. 즉, 거래가 성사된다.
    • 두 사람 모두 전혀 거래를 하지 않은 경우보다 더 나은 상태로 헤어지게 되므로, 협력의 비제로섬 이득을 얻게 된다.
  • 하지만 내시 균형점이 존재한다고 해서 행복하고 협조적인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 1단계 죄수의 딜레마에서, 내시 균형점은 두 죄수가 모두 서로를 밀고하여 함께 감옥을 가게 되는 것이다.
    • 이는 서로가 상대를 고발할지 조용히 있을지 알지 못하므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범죄를 함께한 사람에게도 동일한 인센티브가 존재하므로, 그도 밀고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 내시의 공리는 협력하게 만드는 비제로섬 게임의 경우 각자가 최상의 반응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결과를 구조화해야 하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반응을 조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 예컨대 그 죄수들에게 증언하는 사람은 누구든 죽여 버릴 것이며 침묵을 지킨 사람은 석방 후에 보상해 줄 것이라고 약속한 마피아 보스가 있다고 한다면 결과 구조는 바뀌어 내시 균형점은 둘다 침묵을 지켜 풀려 나오는 지점으로 옮겨지게 된다.
    • 마찬가지로 그 죄수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여 상대방에게 제안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들은 협력하고 대응하여 변절의 덫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이 마지막 해결 방법의 경우 한 죄수가 이득을 얻기 위해 상대를 팔아 먹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쨌든 도둑들 사이에 명예란 없기 때문이다.
    • 이것은 사회적 기술 적합도의 세 번째 중요한 요소로 연결된다. 즉, 사회적 기술이 적합하려면 게임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 사람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기꾼과 승리자의 차이

  • 속이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는 것은 협력이란 본질적으로 이루기 어려우며 설령 협력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잠재적으로 불안정함을 의미한다.
    • 한 사냥꾼이 동료들보다 약간 느리게 달리며 겨우 400kcal만 사용하지만, 그가 부닥하게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을 동료들이 눈치 채지 못한다면 그는 750kcal의 고기를 가져가게 된다.
    • 마찬가지로 멋진 손도끼를 받고 그 대신 다소 오래되거나 육질이 거친 고기를 줄 수 있고, 170그램으로 합의해 놓고 140그램을 줄 수도 있다.
    • 생물학적 진화의 이기적인 논리는 속이는 사람들이 속임수를 써서 이득을 얻게 되면 그 속이는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임수는 진화에서 유리한 특성이다.
  • 하지만 생물학적인 선택에서 속이는 유전자가 잘 속는 유전자보다 우위에 있다면, 집단 내에서 협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발을 붙일 수 있겠는가?
    • 그 대답은 협력하여 얻는 이득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협력하는 유전자가 속이는 유전자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 하지만 그 유전자가 순진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잘 속지 않게 해야 하며 속이는 사람은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협조적인 유전자가 생존하려면 정교한 방어 매커니즘이 필요하다.
    • 앞에서 설명한 크리스티안 린드그렌의 모델으르 생각해 보자. 죄수의 딜레마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번만 게임을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밀고할 인센티브를 가지게 되지만, 그 게임이 반복되며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그 구조가 훨씬 복잡해 진다.
  • 일반적으로 발전하는 그리고 강력하고 성공적인 종류의 전략 논리는 다음과 같다.
    • ‘나는 상호 협력을 전제로 시작한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속인다면 협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당신을 처벌할 것이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용서하고 다시 협조할 수 있다. 단, 그 속인 행동이 실수 또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 탓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다시 속인다면, 내가 당신을 다시 용서할 확률은 더 낮아질 것이며, 처벌은 훨씬 더 강력해질 것이다.’
  • 린드그렌의 컴퓨터 모델 세계에서 진화에 의해 이런 종류의 논리가 생긴 것처럼, 진화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과 본능 속에도 이런 종류의 논리를 새겨 넣었다.
    • 이 책의 앞부분에서 ‘최후 통첩성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실헝메 대해 설명했었다. 이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두 명의 피실험자에게 돈 다발을 주고 한 사람이 그것을 나누는 방법을 결정하라고 했는데, 상대방이 분할 방식이 공정하다고 동의한 경우 둘 다 자신의 몫을 가질 수 있었지만, 상대방이 분배된 몫을 거부하면 아무도 돈을 가질 수 없었다.
    • 경제적 논리에 따르면 사람들이 나눈 몫이 아무리 작아도 제안을 수락해야 한다. 없는 것보다는 약간이라도 있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피실험자들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하는 제안은 손해를 보면서도 거부했다.
    • 그 결과는 수렵, 채집민 문화를 포함해서 지구 상의 어느 문화권에서도 일관성이 있었다. 다른 게임들과 실험들에서도 인간의 협력-상호이익(상호주의) 행동 방식은 일관성 있고 뿌리 깊은 특성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 진화는 비제로섬 이득의 재물을 획득하기 위해 협조적이 되게끔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로 인해 속임수에 대한 민감한 반응, 공정함에 대한 기대,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처벌하려는 의지 등도 갖게 되었다.
    • 그 결과 진화는 우리의 정신적 소프트웨어에 정교하면서도 직관적인 내시 균형점 탐지 능력과 공정성 감지 능력을 프로그래밍해 넣었다.
    • 이런 특성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집단은 최소한 합리적이고, 안정적이며 불로소득자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의 공격에 저항하는 연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우리에게 내장된 상호 이익 소프트웨어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즉, 지역적인 상황에 맞추어 적응할 수 있다.
    • 대부분의 경험에 다른 사람들의 협력과 상호 이익이 관련되어 있고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회적인 규범이 존재하는 환경이라면 정신적인 협력 소프트웨어는 협력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또한 이 소프트웨어는 변절이나 속임수의 예를 보게 되었을 때 더 놀라고 더 관용적이 된다.
    • 본질적으로 우리의 정신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집단을 통계적으로 샘플링하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협조적인 경우에 만약 속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행동 방식이 아마도 실수나 오해로 인한 결과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 반면 덜 협조적이며, 협조를 지지하지 않는 사회적 규범이 있는, 다시 말해 속임수가 많은 환경에서는 경험에 입각한 협력 소프트웨어가 우리를 의심하는 쪽으로 치우치게 만든다.
    • 즉, 속임수를 쓴다는 증거가 처음 나타났을 떄도 거칠게 반응하며, 용서한다해도 천천히 용서한다. 그리고 상대 측에서 먼저 협조한다는 증거가 나올 떄까지는 협력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
  • 상호 이익 규범을 국지적으로 조정하면 모집단의 수준에서 매우 복잡한 구조가 생길 수 있다.
    • 협력을 잘하는 사회라 해도 속임수가 한 계 수준에 도달하면 협력이 붕괴될 수 있으며, 협력을 잘 안하는 사회는 비협조적이고 경제적으로 헐벗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
    • 그리고 협력하는 전통이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섞이게 되면, 오해와 혼란이 유발될 수 있다.
    • 동일한 문제가 조직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16장에서 설명하겠지만, 회사 내에 협조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문화가 있으면 경제적인 성과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회사를 합병하여 신뢰도 변수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모이게 되는 경우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그렇기 때문에, 비제로섬 이득이 생기는 요인들을 이용하고 그런 이득을 할당하는 협조적인 내시 균형점을 찾아내 변절 문제를 관리하는 등의 일을 잘하는 사회적 기술은 그렇지 못한 사회적 기술에 비해 적합도 지형에서 더 높은 곳에 존재하게 된다.
    • 사람들이 적합한 사회적 기술을 찾기 위해 그 지형에서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연역적 실험을 시도하면서 인류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더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적 구조를 발전시켰다.

가족 단위에서 비즈니스 단위로

  • 사회적 기술의 진화 과정은 가까운 친척과 가장 밀접하게 협조하는 유전적인 경향에서 시작한다.
    •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들은 유전인자를 공유하며 그들을 돕는 것은 그 유전 인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확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기 떄문에 우리 조상들의 가장 오래된 협조적인 사회적 구조는 가족이다.
    • 인간의 가족 생활 습관은 방탕한 침팬지와 일부일처형 원숭이 사이의 어딘가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수렵, 채집민 부족에서 일부다처형 남자들은 가능한 한 여러 명의 아내를 취했고 남자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배우자가 더 많아졌다.
    • 초기 인류는 일부다처제가 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침팬지와는 달리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배우자와 자식들을 떠나지 않고 그들에게 투자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족 구조 단위가 형성되었다.
    • 일부 사회들은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구조 이상으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예컨대 로버트 라이트에 따르면 누나미우트 에스키모와 쇼쇼니 족 인디언들이 상당히 최근까지도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그 이상의 사회적 구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 사회적 구조의 사다라에서 첫 번째 계단은 협조적인 사냥단이었다.
    • 사냥단의 기본적인 칼로리 논리, 즉 먹을 것은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논리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요즘 존재하는 대부분의 수렵, 채집민 사회 그리고 함축적으로는 대부분의 초기 사회에서 이런 형태의 협력을 발견하였다.
    • 하지만 대부분의 초기 사회에서 협조적인 사냥단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으며 대부분 친족이나 친족에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 사회적 협력에서 빅뱅은 정착 농경이 도래하면서 시작되었다.
    • 식물을 재배하는 물리적 기술은 1만 1천 년쯤 전에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시작되어 발견되었다.
    • 정착 농업으로 인해 획득되는 칼로리가 증가하고 위험 부담이 줄어들면서 정착 생활은 더 영구적이 될 수 있었으며, 인간 집단의 규모는 커졌다.
    • 이것은 협력이 가족 구성원들의 씨족 이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였다. 더 나아가 이로 인해 많은 새로운 비제로섬 게임이 가능하게 되었다.
    • 협조적인 그룹은 주거지를 건축하는 것과 같이 규모의 경제를 이용할 수 있었고 몇 명의 가족 구성원들만으로는 지을 수 없었던 다른 구조들의 경우에는 인공물을 만드는 인력을 세분화하여 이익을 얻을 수 이었으며, 멀리 떨어진 마을과의 무역도 추구할 수 있었다.
    • (이 부분을 보니 농경 생활의 시작으로 집단의 규모가 커지자 유전자를 공유한 친족이 아닌 사람들과 협업을 하게 되었고,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법과 직급이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법이야 사람이 많아지면 필요한 거니 설명은 생략하자면, 직급의 경우 같이 일을 하자고 해도 사람들이 이기적인 행동으로 협조를 잘 안하기 때문에 직급의 힘으로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 그 직급이 발전해서 계급이 출현하고 한게 아닐까?)
  • 하지만 협력과 관련된 이 모든 혁신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즉, 생성된 부를 분배하는 방법이라는 이른바 ‘내시의 문제’였다.
    • 영장류에 배경을 두고 있는 성적인 계층 구조는 이 문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답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로버트 라이트와 그 외의 사람들이 이른바 ‘빅맨 소사이어티 (Big Man Society)’라고 부른 것이다.
    • 우리의 가장 가까운 영장류 친척의 경우, 다른 많은 종들도 마찬가지지만,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인 접근 권한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 크고 강하고 똑똑하고 공격적인 남성이 약한 남성을 밀어 내고 여성에 대한 접근 권한을 차지하기 때문에, 크고 강하고 똑똑하고 공격적인 유전자가 그 이후 세대로 전달되게 된다. (성선택)
    • 초기 인류와 같은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남성이 더 지배적일수록 배우자 수가 더 많으며 배우자 수가 더 많을수록 자식이 더 많다. 이로 인해 신분이 높은 남성과 신분이 낮은 남성의 계층 구조가 생겼다.
    • 초기 인류의 집단이 서로 합쳐져서 비친족사회가 되면서 이런 성적인 계층 구조가 협력의 수확물을 분배하는 사회, 경제적 신분 계층 구조로 바뀐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 물론, 이 두 가지 계층 구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즉, 우리 선조들의 환경에서 성적인 지배력의 특성은 경제적인 성공으로 구현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잘되는 것은 성적인 지위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부유한 사람이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현대의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대화의 주제 세 가지는 성, 돈, 신분으로 이것은 초기 시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 계층적 구조는 인기가 별로 많지 않다. 독재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기업은 계층을 줄여 팀을 만들어야 하며, 기업 지도자들은 마치 우두머리 남성이나 여성으로서 자기 회사 주위를 뽐내며 돌아다니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 하지만 네트워크 이론은 계층 구조가 정보처리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분업과 규모의 경제적 장점을 이용하려면 업무를 분할하고 그 실행을 조정하고 상황을 다시 결합해 그 결과물을 할당해야 한다. 초기 사회에서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성적으로 지배적인 남자였다.
  • 일단 인류가 계층 구조를 만들자, 계층 구조 내에 계층 구조를 중첩시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간단했다.
    • 그 진행 과정을 상상해 보자. 어느 시점에서 성장하는 마을을 운영하는 성공적인 빅맨이 연어 덫 제작을 지켜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어 동생이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 일을 담당하도록 임명한다. 즉, 비즈니스 단위가 태어난 것이다.
    • 그 빅맨 사장은 자신에게 보고하는 소사장들을 두게 되며, 그 소사장들은 또 자기에게 보고하는 소사장들을 두게 된다. 계층 구조가 생기면 분업과 정보 처리가 촉진된다.
    • 이것은 수렵, 채집민에서부터 지역 볼링 리그,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사회적 구조에 스며들어 있다.

평화, 사랑, 그리고 이해

  • 사회적, 경제적 계층 구조에는 정보 처리 면에서 중요한 장점이 있지만 그런 구조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 최상위 지점에는 항상 경쟁이 있고, 빅맨이 그 능력을 상실하거나 죽으면 계승 전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조직적인 동요는 손해가 매우 크며 안정성은 이득이 많다.
    • 안정적인 조직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지식과 기능을 축적하고, 더 장기적이고 이익이 있는 비제로섬 게임을 하며, 참여자들에게 더 많은 확실성을 제공하여 더 낮은 비용으로 협력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 영장류의 무리에서 계층적 구조의 관리 방식은 상당히 단순하다. 크고 똑똑하고 공격적인 남자가 집단을 지배하며, 더 크고 더 똑똑하고 더 공격적인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면 폭력적인 쿠테타를 일으켜 그를 끌어내린다.
    • 불행하게도 이런 방식의 계층 구조 관리는 지금까지도 독재 정권, 조직화된 범죄 단체 그리고 그 외의 불미스러운 사회 조직에서 사용되고 있다.
  • 농업과 함께 더 크고 더 영구적인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희생이 크게 따르는 폭력 없이 계층적 구조의 권력 이동을 관리하는 일련의 혁신적인 방법이 개발되었다.
    • 이런 혁신 중에는 장자상속권과 장로들에 의한 지도자 선출이 포함되었다. 비교적 최근의 혁신 중에는 보통 선거 방식의 민주적인 선출과 기업의 주주 지배 구조가 포함되었다.
    • 흥미롭게도 현대화된 이런 프로세스의 형태에는 문명성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그 표면 아래에는 항상 물리적인 힘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층적 구조에서 변화를 관리하는 사회적 기술은 조직이 안정성을 유지하고 시간이 경과해도 버틸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중욯나 역할을 해왔다.
  • 계층 구조 내에서 경쟁을 관리할 필요도 있지만 서로 다른 계층 구조의 구성원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한 위협과 기회도 관리해야 한다.
    • 인간 집단에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극복해야 하는 첫 번째 문제는 서로 신뢰할 것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 협력과 상호 이익 행동 방식 규범에 관한 모수들은 서로 많이 다를 수 있으며, 거래에서 한쪽이 상대방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 떄문에 사람들은 직계 혈족 이외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 마을 밖으로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최초의 그런 사회적 기술은 의문의 여지없이 부족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즉, 외부인들과 나의 사람을 구분함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공유할 가능성이 더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부족 내에서의 상호 작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용당하거나 파괴적이고 잘못된 의사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적다.
  • 역사적으로 무역망은 최초로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부족, 민족, 종교 집단 내에서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다.
    • 기원전 250년부터 900년까지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의 거대한 지역에 존재하던 마야 무역망이나, 지난 1천 년 동안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까지 뻗어있던 방대한 무슬림 무역망, 그리고 아이비리그가 지배하는 월스트리트의 회사들을 생각해 보라.
    • 외부인들과 나의 사람들이라는 이 꼬리표의 추한 측면은 바로 차별 대우다. 차별 대우는 본질적으로 자기 제한적인 것이다. 즉, 다른 정보가 없는 경우,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위험한 부담을 줄이는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잠재적으로 이득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더 큰 세계를 제외시키는 역할도 한다.
  • 어떤 의미에서 배타적인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동일한 브랜드의 컴퓨터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폐쇄형 컴퓨팅 환경을 만드는 것과 같다.
    • 통신과 그 작동 방식에 대한 표준 프로토콜을 두는 것은 장점이 있지만 그 대신 확장성을 양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기술에서 주된 혁신은 낯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개방적인 약속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법률의 규칙이다.
  • 법률이 있으면 배경, 역사, 민족성 및 사회적 규범 등이 서로 다른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 서로 비즈니스를 수행하면서도 위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예컨대 주택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큰 투자는 재산법, 건축 법규 및 보험 등의 모든 보호 수단에도 불구하고 겁나는 일이 될 수 있다. 만일 그런 보호 수단 조차 없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라.
  • 사회의 부와 법 집행과 판결을 위한 매커니즘이 포함된 성문법의 존재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은 가난한 국가에서 성장을 자극하려고 하는 개발 경제학자들에게는 중요한 과제로 간주되었다.
    • 강력한 법률 제도가 없는 국가들은 결국 꼬리표와 같은 수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덜 효율적이고 사회적으로 불화를 일으키는 그런 대용품이다.
    • 물론 법률은 신뢰를 완전히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사람들이 법률 기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사회는 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과 규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서 협력을 위한 프로토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복잡하고 대규모인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의사소통도 협조적인 행동 방식을 발생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개발되면서 사회적, 경제적인 협력 잠재력이 극적으로 증가하였고 무수하게 많은 새로운 비제로섬 이득을 얻게 되었다.
    • 언어가 개발된 시점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널리 인정되는 추정 시기는 3만 년 전부터 100만 년 전까지 그 범위가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아마도 도구가 제작되고도 한참 후에 개발되었을 것이다.
  • 언어가 개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그 성격상 복잡성의 정도가 제한적인 그런 경제 활동의 시기가 있었다.
    • 언어가 물리적 기술을 생성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언어는 사회적 기술의 생성도 바꾸어 놓았다.
    • 언어 유전자와 함께 나타나게 된 이점들을 생각해 보라. 어휘가 증가하면서 유익하고 협조적인 사회적 게임의 공간이 폭발적인 속도로 열리게 된다.
  • 일단 언어가 개발된 다음, 일련의 물리적 기술 혁신으로 인해 협조적인 활동에서 언어의 가치는 더욱 강화되었다.
    • 약 5천 년 전에 나타난 문자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은 지식을 보다 널리 보급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도 보다 정확하게 지식을 보존할 수 있었다.
    • 만약 문자가 없었다면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의 복잡한 사회는 유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 부족적인 암흑시대에서 유럽 사회가 등장한 것은 인쇄기로 인해 촉진된 것이며, 산업 혁명의 사회적 혁신도 신뢰할 수 있는 우편 서비스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현대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보여 주는 그 복잡성도 전화기, 팩스, e메일이 없었다면 제대로 관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 (마지막 부분은 마치 고층 건물에서의 엘레베이터 예시랑도 비슷하네, 고층 건물을 건설할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건설해도 위로 올라가기가 힘들어서 고층 건물이 만들어지지 않다가, 엘레베이터의 등장으로 건물 높이 제한이 크게 풀린 예)

사람들에게서 나온 컴퓨터

  • 이미 언급한 것처럼 많은 수의 주요 사회적 기술 혁신은 정보 처리라는 의미가 있으며 ‘정보 처리 제품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사회적 기술의 발전이 많은 사람들이 협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의미 있는 데이터를 전달하고 저장하는 수단을 가지는 단계에 이르자 인간 조직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즉, 새로운 형태의 계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은 개인들이 혼자 힘으로는 처리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정보를 처리하고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다.
    • 예컨대 BP –영국의 석유회사– 는 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원유와 가스를 추출하여 정제한 다음 수백만 명의 에너지 사용자들에게 공급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라고 생각할 수 있다.
    • (기업이라는 것도 사람 네트워크 구성이라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네트워크 구성 면에서 볼 때 컴퓨터에 대응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인간 뇌에도 대응되는 것 같다. 인간 개체 하나가 뉴런 하나이고 인간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 하나의 뇌가 되고, 어차피 뇌라는 것도 뉴런들이 시냅스를 통해 –언어나 여타 매체를 이용한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정보를 전달하며 지식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아주 그럴싸함. 어쩌면 집단 지성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 사회가 학습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듯.)
    • 그 엄청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충분히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일 BP로 흘러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이사회 수준의 판단에서부터 북해의 굴착 장치 근무 스케쥴에 이르기까지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에 대해 생각해 보라.
    • 존 브라운만큼 유능한 CEO조차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원유를 찾아내고 뽑아내고 정제하여 배포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는 매일매일 고도로 분산된 형태로 해결되고 있다.
  • 개미집이나 두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조직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새로운 지능 형태를 보여 준다.
    • (인간 사회가 거대한 두뇌라 할 때, 복잡계의 자기조직화 원리를 따를 때, 인간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원리인 듯)
    • 캘리포니아 대학의 인류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에드윈 허친스는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조직화된 집단과 개인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 그는 조직들이 집단 내에서 개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합적인 새로운 기능을 보유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본질적으로 BP는 그 구성원 하나하나보다 더 총명할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 전체의 합보다도 더 총명하다.
    • (이 부분은 IDEO의 슬로건과도 같군)
  • 사회 내에서 BP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 하지만 아무리 강경한 기업 비평가라 할지라도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BP 같은 조직은 인간 협력의 경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직원들의 대부분은 서로 전혀 만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만날 일 없겠지만,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구조, 규범, 프로토콜, 법적 구조 및 인센티브로 이루어진 망 안에 함께 묶여 있다.
  • BP 정도의 규모와 복잡성을 지닌 조직은 인류 사회가 수백만 년 동안 발전시켜 온 사회적 기술 혁신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할 것이다.
    • 이런 혁신 중에는 2,600년 전쯤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효용 변환 수단이 되는 돈과 같은 사회적 기술이 포함된다. 돈이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경제적 필요와 욕구를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욕구와 동일한 단위로 변환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BP는 13세기의 이탈리아 상인들이 처음 개발한 복식 기장 회계라는 사회적 기술이 제공하는 금융 정보로 이루어진 중앙의 신경 시스템이 없었다면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 또한 1825년과 1862년 사이에 일련의 법령으로 영국 의회에서 창안한 유한 합자 회사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BP는 지금처럼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 BP는 효용이 있는 사회적 기술의 유산에 의존하지만, 경제적인 진화 시스템에 참여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BP의 매니저들은 연역적으로 실험을 시도하면 새롭게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고, 여기서 나온 성공적인 사회적 기술은 채택되어 BP 내부와 외부로 퍼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 영장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생물학적인 전통으로부터, 우리는 상호 이익이 되도록 협력하려는 경향과 지배적인 계층 구조에서 경쟁하고 싶은 충동을 물려 받았으며, 결국에는 인간의 두뇌가 발전하면서 언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 이 초라한 출발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조직화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면서 수만 년 동안 이른바 ‘연역적 추론’의 진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 협력에서 발견된 본질적인 비제로섬의 이익은 이를 위해 활용된 사회적 기술에 보상을 해주었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인류는 점점 더 효과적이고 조직적인 성공을 위한 생존 요령을 발견하였다.
    • 인류는 이렇게 알프스 산과 같은 사회적 기술이라는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면서 진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효용이 있는 생존 요령을 찾아낼 수 있었고, 성공적인 혁신이 나올 때마다 훨씬 더 많은 미래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 그런 혁신으로 인해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의 능력이 개선되면서, 사회적 기술이라는 적합도 지형에서 점점 더 풍부한 영역이 열렸다.
    • 동시에 사회적 기술 공간은 물리적 기술 공간과 공진화 하였다. 각 공간에서 나온 발견들이 다른 공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토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의 기원/ 물리적 기술: 석기에서 우주선으로

  • 스탠리 규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유인원 무리들끼리 웅덩이에서 경쟁하는 장면.
    • 집단의 규모, 공격성, 집단 조직이 집단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것은 진화의 결과가 아닌데, 어느 종에서나 유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다음 수십 만년이 지난 후에 유인원이 멧돼지를 뼈를 두드리며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
    • 이것은 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종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것은 아니다. 다른 종의 동물도 주위의 물체를 도구로 활용할 줄 안다.
  • 그 후 다시 수십 만년이 지난 후에 유인원들이 뼈와 나무막대기로 몽둥이를 만들고 있는 장면
    • 우리 조상들은 주위의 물체를 있는 그대로 도구로 사용하다가 도구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구 상의 어느 종과도 다른 진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 인류학자들은 이를 천연재를 사용하던 단계에서 가공품을 이용하는 단계로의 발전이라고 한다.
  • 이 장면에서 성인 유인원이 아이들에게 몽둥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도구를 만드는 지식이 미래 세대에게 자연적인 방법 –유전자를 통한 기억– 이 아닌 문화적인 방법으로 전달되는 것을 보여준다.
    •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문화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것 또한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미 사자도 새끼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친다.
    •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박새는 부리로 우유병을 비틀어 여는 방법을 알았고, 다른 새들도 이를 본 떠 모든 박새들에게 확산됐다고 한다.
    • 그러나 도구를 만들고 동시에 그 제조 방법을 동료나 아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로 이 점 때문에 진화가 육체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 문화에 자리 잡게 된다. 이때가 바로 기술이 태동되는 순간이다.
  • 그 다음 장면에서 유인원들이 또다시 웅덩이에서 경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무기를 가진 집단이 손쉽게 상대편을 제압한다.
    • 이 영화에서 큐브릭의 의도는 명료하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그 제조 기술을 문화적으로 전달하게 되면서 인간의 진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오늘날 우주선을 포함한 많은 현대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인간의 탄생

  • 인간이 스스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약 250만년 전이다.
    •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도구를 만든 것은 340만년 전, —(기사) 340만년전 인류 최초의 도구 발견, 기존 학설 100만년 앞당겨 — 인간의 직립이 300-400만년 전이라는 것에 의하면 —(기사) 원시인류, 다양한 갈래 직립보행 진화의 역사— 인간의 도구 사용과 직립의 시기는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손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직립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 더불어 아래 보면 도구 제작 기술이라는 지식 전달에 언어의 역할이 매우 컸음이 서술되고 있는데, 도구 제작 기술을 전달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언어가 탄생한게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개인적인 믿음. 그렇지 않은 것은 진화적 법칙에 의해 존속되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 약 100만 년 전 인간이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면서 도구들도 상당히 세련되고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구인 불을 발견한 것도 호모 에렉투스이다.
    • 그래서 260만 년 전에서 10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물질과 에너지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기 위해 두뇌를 쓰기 시작하였고, 이로부터 습득한 지식을 동료와 후손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 경제는 두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물리적 기술과 그러한 재화를 생산하고 거래를 원활히 하도록 사람들을 유인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 시대에 이미 이러한 요소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때 이미 경제 활동이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 초기 인간의 도구 제작은 초보적인 논리적 추론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컨대 강한 돌로 연한 돌을 치면, 연한 돌이 깨진다는 등의 추리를 바탕으로 강도가 다른 여러 돌을 이용하여 실험을 했을 것이다. 실험에 성공하면 “이런 종류의 돌이 도끼를 만드는데 적합하다”는 법칙이 성립하게 된다.
    • 이 법칙은 그 후 다른 사람 혹은 후대에 전수되어 다시 실험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와 같은 기술의 사회적 확산으로 인간의 물리적 기술 능력은 발달을 가속화 시켰다.
    • 이러한 확산 과정에서 각각의 세대는 전 세대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 온 것이다.
    • 여러 고고학적 기록에 나타난 대로 도구의 발전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가속화되어 왔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물리적 기술과 우주

  • 자동차나 이동 전화와 같은 현대 기술에서도 비슷한 진화 과정을 볼 수 있다.
    • 자동차의 경우 ‘모델 T’에서 전자 장치로 가득한 요즘 자동차에 이르기까지의 진화, 이동 전화의 경우 초기의 여행 가방만 한 크기에서 오늘날 호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소형화된 과정 등도 옛날의 기술 진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또한 각기 다른 기술 간의 관계는 종의 분화 과정과 유사하다. 예컨대 비행기와 열기구, 행글라이더 등 비행기구와의 관계가 이를 잘 설명하여 준다.
    • 어떤 기술은 없어지기도 한다. 워싱턴 한복판에는 19세기 건설된 운하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 ‘기술의 진화란 잘못된 표현이 아닌가?’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 진화가 앞서 9장에서 설명한 진화의 일반 모형에 접합될 수 있다면 이른바 은유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물리적 기술을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 물리적 기술(PT)은 물질, 에너지 및 정보를 어떠한 목적을 위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환하는 방법과 디자인이다.
    • 예컨대 유인원 래리가 몇 개의 돌(물질)에 약간의 힘을 들여(에너지) 조각을 내고 그것으로 동물의 뼈를 자를 수 있는 손도끼를 만든다(목적). 혹은 프로그래머가 컴퓨터에 전기를 연결하고(에너지) 소프트웨어 정보를 활용하여(정보)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목적) 비디오 게임을 만든다(디자인).
  •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물리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어떤 기술은 유형의 제품을 만들고 어떤 기술은 서비스를 창출한다. 유형의 제품과 같이 서비스를 생산하는데도 물질과 에너지, 정보가 필요하다.
  • 물리적 기술 그 자체는 제품이 아니라 그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자 지침 혹은 방법이다. 물리적 기술은 마치 제품을 만드는 절차, 방법 등을 설명하는 지침서와 같다.
    • 예컨대 돌도끼 제조 지침서에는 완성된 도끼의 그림, 제조에 필요한 돌의 종류, 제조 방법에 대한 안내 등이 포함된다.
  • 그렇다면 앞서 ‘스미스 도서관’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는 물리적 기술에 대해서도 하나의 도식을 정의할 수 있다.
    • 자연 언어, 수학적 부호, 그림, 청사진, 제조 시범 비디오 등으로 된 도식이다.
    • 무엇이든 이론적으로 신호화 할 수 있다면 도식으로 표현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구전된 지침과 암묵적 지식도 기술 도식으로 코드화 될 수 있다. 예컨대 유인원 ‘래리’가 손도끼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 도식을 작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내가 말하는 물리적 기술은 여러 측면에서 전통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술과 유사하다.
    • 전통 경제학 이론에 ‘생산 함수’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원재료, 자본, 노동을 제품 혹은 용역으로 전환하는 체계를 말한다. 그리고 기술이란 그러한 전환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말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 그러나 전통 경제학의 경우 기술을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알 수 없는 요소로 간주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 기술을 일종의 진화의 산물로 보고 그 진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점이 다르다.
  • 이제 상상 가능한 모든 기술에 대한 도서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 앞서 살펴보았던 다른 도서관처럼 이 도서관도 주어진 시점에서는 유한하다. 그리고 그 규모는 보유한 기술 중 가장 길고 복잡한 도식의 길이로 정의될 수 있지만 거의 무한대에 가깝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규모는 계속 불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
    • 따라서 이 도서관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청사진, 디자인, 지침서,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다양하게 변환시킬 수 있는 방법 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 다른 도서관에서처럼 이 도서관에 있는 기술 디자인의 대부분은 아무 소용 없는 것일 수 있다.
    • 거기에 있는 디자인들이 물리적으로 실현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무의미하고 실용성이 없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네모난 바퀴의 자전거, 구멍 뚫린 물병, 치즈로 만든 도끼 등 쓸데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은 그중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기술도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기술 진화는 마치 거대한 건초더미에서 쓸만한 기술인 바늘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그중에서도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술을 찾아내는 것은 경제가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리적 기술의 식별자들

  • 앞에서 논의했던 다른 디자인 공간들처럼 물리적 기술도 도식으로서의 요건을 갖추려면 도식 식별자가 이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 따라서 물리적 기술에 담겨 있는 정보를 읽어내고 이를 물질, 에너지, 정보로 이루어지는 실제 경제 활동으로 바꾸려면 특별한 사람 또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 즉, 설계 도면을 알아보고 실제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여기서 도식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자 한다. 도식은 누구나 그것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격을 갖춘 식별자만이 그 계획을 읽고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 에컨대 자격이 있는 건설 기술자들이 건축 기술을 이용해서 주택 설계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제약 회사의 과학자들이 제약 기술을 이용하여 골다공증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물리적 기술에 대한 설명 자료는 어느 특정 문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수도 있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할 수도 있다. 중요한 원칙은 그러한 기술 설명 자료가 어떠한 형태든 기록 혹은 정리되고 식별자에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결국 멘델의 도서관, 스미스의 도서관에서와 마찬가지로 물리적 기술에 대한 도식과 그 식별자는 상호 작용하면서 진화, 다시 말해 공진화를 한다.
    • 즉 주택 건설자의 기술과 방법이 변하면 주택의 디자인이 변하고, 주택의 디자인이 변하면 그런 주택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기술자의 요건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암묵적 지식의 경우 도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 그러나 어떠한 형태든 기술이나 지식이 표현될 수 없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 확산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지식을 기예라고 부를 것이며 우리가 말하는 기술 도서관에서 제외할 것이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지식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어떤 형태로든 코드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만일 래리가 아주 멋진 도끼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술을 어떤 형태로든 코드화 하거나 전달 할 수 없다면, 그 기술은 래리와 함께 사라지고 더는 진화할 수 없을 것이다.
  • 인류 역사 초기의 물리적 기술은 단순하게 도구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일종의 경험 법칙에 불과하다.
    • 즉, 도끼를 만들려면 이 돌을 써서 각 면을 세 번씩 치고…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은 모방, 몸짓, 원시 언어 등을 통해 전달 되었다.
    • 그러나 이러한 비언어적 신호는 코드화하거나 전달하는 도식치고는 한계가 분명한 꽤 낮은 수준이었고 따라서 물리적 기술의 공간 규모나 복잡성도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 더구나 몸짓 같은 것은 그렇게 신뢰할 만한 전달 수단이 아니다. 게다가 초기의 물리적 기술의 전달 과정에서는 오류들도 불가피하게 끼어들었을 것이다.
    • 그러나 진화가 적절하게 작동하려면 정보 전달에 최소한의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언어의 출현은 보다 규모가 크고 복잡한 기술을 코드화 하고 이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일들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정확하게 수행하는데 엄청난 돌파구 역할을 하였다.
  • 고고학 기록을 보면 도구 제작과 관련된 기술 혁신과 다양성 측면에서 극적인 폭발이 일어났던 시기는 구석기 시대 말이었다. 이때 여러 다양한 재료와 함께 낚싯바늘, 바느질 바늘과 같은 새로운 디자인들이 출현한다고 한다.
    • 인간의 언어 능력이 정확하게 언제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도구 디자인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확산은 인간의 언어 능력 형성의 강력한 증거라는 역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일부 연구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물리적 기술은 스스로 자란다

  • 인간이 만든 물리적 기술이 가진 놀라운 특성은 바로 그 스스로가 새로운 발명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내연 엔진의 개발이 자동차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고, 자동차의 확산으로 고무 타이어, 와이퍼, 아스팔트 포장, 모텔, 패스트푸드, 고속도로 요금소, 심지어 라스베이거스의 드라이브-인 예식장 등의 관련 기술과 제품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 발명은 새로운 발명의 가능성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발명에 사용된 부품 소재 또한 새로운 재발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 자동차 같은 경우 그러한 기술 효과가 엄청난 반면 어떤 경우에는 그 영향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카우프만은 그 규모가 거듭제곱의 법칙을 따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발명이든 작더라도 리플(ripple) 효과 –파급효과– 는 있기 마련이다.
    • 어찌하여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스스로 급증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기술은 어떻게 스스로 성장하는가?
  • 물리적 기술도 다른 도식들과 마찬가지로 앞서 살펴보았듯이 모듈화된 빌딩 블록의 특성을 갖고 있다.
    • 모든 물리적 기술은 요소(components)와 구조(architecture)인 전체적 디자인, 이 두 가지를 코드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주택은 방, 배관, 창문 등으로 되어 있고,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집 모양 –예컨대 튜더 양식 등– 을 갖추게 된다.
  • 손도끼와 같이 원시적인 물리 기술도 마찬가지다.
    • 돌도끼는 기본적으로 돌을 다른 돌로 깎아 날을 세워 만든 것이다. 따라서 돌도끼의 경우 요소는 깎는 돌과 도끼로 깎인 돌로 구분할 수 있다.
    • 그리고 이 경우 구조는 전체적인 디자인 그 자체다. 따라서 요소들과 구조를 다양하게 결합하면 다양한 디자인들의 수가 결정된다.
    • 예컨대 도끼의 손잡이를 어떠한 모양으로 하느냐에 따라 손바닥으로 움켜쥐는 원형 도끼와 손가락으로 싸고 쥐는 나팔 모양 도끼로 나누어진다. 도끼의 날의 경우에도 돌 한쪽만 깨어 만든 것과 양쪽을 깎아 만든 것이 있다. 전체적인 구조 측면에서도 소형 도끼, 대형 도끼, 화강석 도끼, 부싯돌 도끼 등으로 나누어진다.
    • 이것만 가지고도 16개의 다른 도끼들로 분류할 수 있다.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제품도 이런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이러한 요소와 구조의 결합적 특성 때문에 물리적 기술들의 공간은 우주보다도 큰 규모를 갖게 된다.
    • 이는 기술 혁신이 일어나면 물리적 기술 공간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시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 손도끼를 만드는데 양날 만들기와 홑날 만들기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자. 어느날 유인원 ‘해리’가 도끼날을 만드는 더 좋은 방법을 개발했다고 하자. 또한 이 새로운 방법이라는 것이 조그만 돌을 이용해 돌을 조금씩 더 정말하게 깨어서 더욱 날카로운 도끼날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하자.
    • 이 기술의 개발로 우리는 세가지 형태 –양날, 홑날과 지금 만들어진– 의 도끼날을 갖게 된다. 이 하나의 기술 혁신으로 가능한 손도끼 종류의 수가 16에서 24로 늘었다.
    • 1장에서 살펴본 상품 다양성의 척도에 따르면 이 경우 하나의 기술 혁신의 결과로서 물리적 기술 공간에서 찾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SKUs 수는 8개 늘어나게, 다시 말해 50% 증가하게 된다. 같은 시긍로 인텔이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 때마다 컴퓨터 시장에서 가능한 SKUs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 제품 구조에서의 기술 혁신 또한 SKUs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 해리가 대형 나팔형 손도끼를 쥐고 도끼날을 세우는게 아니라 오히려 도끼날을 갈아 무디게 만들었다고 하자. 이건 언뜻 생각하기에 요소에 대한 사소한 기술 혁신 같지만, 사실 전혀 새로운 제품 구조의 혁신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약간의 변화로 손도끼를 견과류, 곡류 등을 찧는 전혀 다른 용도의 도구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 이것으로 해리는 석기 시장에 4개의 새로운 잠재적 SKUs를 추가하는 셈이 된다.
  • 기술 혁신은 제품의 복잡도에 따라 SKUs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킨다.
    • 요소가 2개 뿐인 제품의 경우 만약 각 요소별로 2개의 변종이 있다면 SKUs의 수는 4개가 된다. 제품이 3개의 요소로 되어 있고 각 요소별로 변종이 3개가 있다면 SKUs는 27개, 4개의 요소로 되어 있고 각 요소별 변종이 4개가 있다면 SKUs의 수는 256개가 된다.
  • 제품 구조의 혁신이 새로운 요소 혁신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 예컨대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은 그 구성 요소의 디자인에 광범위한 혁신을 몰고 왔다.
    • 결론적으로 각 혁신은 물리적 기술 공간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파장을 미치고, 그때마다 컴퓨터 시장에서의 SKUs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 그러나 무한한 SKUs 중 실제로 상용화되거나 실용화를 위한 실험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 현재 개발 가능한 개인용 컴퓨터가 수천, 수십만 종에 달하겠지만 실제 생산되어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컴퓨터의 종류는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애플사가 파워 PC 프로세서를 장착한 반투명 오렌지색 컴퓨터를 출시하고, 델사는 펜티엄 프로세서를 장착한 검정 컴퓨터를 시장에 내놓았다고 하자. 이때까지 아무도 팬티엄 프로세서를 장착한 반투명 오렌지색 컴퓨터를 내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이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 아직 물리적 기술 공간에서 실현된 SKU는 아니다.
    • 따라서 새로운 발명의 의의는 경제적으로 시장에 새로운 SKUs를 추가하는 것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SKUs들로 이루어지는 공간도 확대시킨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각 발명은 새로운 발명의 가능성을 넓혀주고, 이에 따라 물리적 기술의 공간은 손도끼로부터 지구둘레를 회전하는 우주선으로까지 확대된다.

연역적 추론에 의한 기술의 진화

  • 진화의 시스템과 관련된 환경, 즉 적합도 지형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울퉁불퉁한 지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산봉우리 하나로 질서정연하게 모아지는 단순한 지형도 아닌, 그 중간에 해당하는, 다시 말해 산봉우리와 고원 계곡 등으로 구성된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그런 지형이다. 따라서 진화의 환경은 지형으로 말하자면 전형적으로 알프스 산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물리적 기술 공간의 경우에도 진화의 환경, 즉 적합도 지형이 그와 같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진화가 물리적 기술의 탐색에 가장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직관적으로 물리적 기술 공간의 지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 즉, 이 공간에서 서로 비슷한 물리적 기술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적합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예컨대 스파크 플러그만 조금 다를 뿐 디자인은 똑같은 엔진의 경우 완벽하게 같지는 않더라도 그 성능은 서로 비슷할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상관관계는 완벽한 것이 아니다. 스파크 플러그의 디자인이 아주 미세하게 다르다면 몰라도 그 차이가 어느 정도가 되면 엔진 자체의 성능도 현격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물리적 기술 공간의 적합도 지형 역시 서로 가까이 위치하는 경향이 있는 높은 정점들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원도 있고, 움푹 파인 곳도 있는 그런 지형과 같을 것이다.
  • 물리적 기술 공간이 알프스 산맥과 같은 그런 적합도 지형이란느 가설을 지지하는 추가적인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존재의 증명이 될 것이다.
    •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진화는 그와 같은 지형을 추적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식이며, 또한 진화의 과정은 그러한 지형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 그러므로 만약 사람들의 물리저거 기술에 관한 혁신 과정이 진화적인 탐색 과정과 괕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다면, 물리적 기술의 공간도 그와 같은 지형, 즉 알프스 산과 같은 적합도 지형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 물리적 기술 혁신이 진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하면 당장 “진화는 맹목적이고 임의적인 과정인데 반해 기술 혁신은 인간의 이성과 의도에 의한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 그러나 진화 알고리즘의 특성상 반드시 의도성이나 합리성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을 뿐더러 진화가 반드시 임의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도 없다.
    • 기본적으로 진화는 실험과 선택, 그리고 –선택된 것의– 확산의 반복적 과정이다.
    • 생물적 진화 과정에서 임의적인 부분은 선택이 작동하기 위한 변종들의 창출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조차 완전히 임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돌연변이는 임의적일 수 있지만, 양성 생물의 재조합은 그렇지 않다. 짝짓기를 위한 경쟁의 원리상 적합도 점수가 높은 것들끼리 맺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이제 유일한 필요조건은 알고리즘에서 선택을 위한 실험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형적으로 설명하자면, 실험은 최소한 진화의 알고리즘이 정점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적합도 지형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그와 같은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컨대 물리적 기술 공간을 추적하는 인간의 경우 연역적 추론(deductive-tinkering)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 내가 말하는 연역적 추론은 심리학자 도널드 캠벨의 아이디어들과 허버트 사이먼의 ‘의도적 적응 (purposeful adptation)’이라는 개념을 빌려 혼합한 것이다.
    • 기본적으로 인간은 발명에서 두 가지의 인식 과정을 거치게 된다.
  • 하나는 연역적인 논리적 사고다.
    • 아주 낮은 차원에서 보면 연역법은 몽둥이는 사냥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연상을 하게 하는 유인원의 사고 능력과 같은 것이다.
    •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연역법은 회로를 칩에 올릴 수 있는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양자 역학을 이용하는 인텔 엔지니어의 과학적 추리와도 같은 것이다.
  • 두 번째는 궁리한다는 것. 즉 무언가 한 번 실험을 해 추론하는 것이다.
    • 현대의 엔지니어들이 과학을 활용하듯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실험해 보자”하는 것이다.
    • 우연히 중요한 발명을 하게 된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알 고 있다. 3M에서 포스트잇을 만든 예
    • 포스트잇은 연역적 과정으로 발명도니 것만은 아니다. 이 경우 궁리 끝에 나온 뜻밖의 생각도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 듀크 대학교의 헨리 페트로스키는 이를 두고 “실패를 해야 전적이 쌓이는 법이다”고 하였다.
    • 궁리를 한다는 것 자체는 무의식적인 귀납적 인식 과정, 연상 그리고 유추 등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는 단순히 무작위적 행동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리를 통해 연역적인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실험을 우리는 할 수 있다.
  • 연역적인 논리와 귀납적인 추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에 열광하는 인간의 속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1982년 트럭 운전사 래리 월터스는 어느날 시어스 백화점에서 야외용 의자를 샀다. 그는 의자 45개에 헬륨 풍선을 묶은 다음 맥주용 냉장 박스와 공기총을 싣고 1만 6천 피트 상공으로 날아갔다. 이 때문에 당시 남캘리포니아 주의 항공 교통이 마비되었다. 원래 그는 공중에 올라간 후 공기총으로 풍선을 터뜨려 착륙할 계획이었으나, 긴장한 나머지 풍선 두 개를 터뜨린 다음 공기총을 떨어뜨리고 말았고, 몇 시간 후 서서히 하강하여 땅에 닿을 무렵 그의 기구는 전선에 걸려 이 때문에 롱비치의 거의 전 지역에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 월터스는 무사히 귀환했지만, 그가 항공공학 이론을 연역적으로 실험한 것도 아니고 야외용 의자를 비행용으로 쓰기 위한 상업적 실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냥 한 번 날아 보고 싶었을 뿐이다.
    • 과학에 바탕을 둔 연역적 공학 기술과 잘 짜여진 귀납적 실험 등도 있지만, 이와 관계없이 항상 어떤 일에 미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 비록 야외 의자로 비행하는 실험은 실패했지만, 무엇엔가 열광하는 사람들 때문에 물리적 기술 공간에서의 실험은 계속 확대되고 간혹 성공하면 기술이 출현하게 된다.

  • 연역적 추론의 효과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자.
    • 알프스 산과 같은 적합도 지형에 한 점이 있다고 하자. 이 점이 하나의 기술, 예컨대 마이크로 칩 디자인을 나타낸다고 가정하다.
    • 그리고 그 점을 중심으로 실험의 범위를 나타내는 등고선 같은 것을 그으면 마치 현재의 기술에서 퍼져 나가는 가지 같은 모양을 하게 된다.
  • 그 그림은 현재의 기술에서부터 마치 곤충의 촉수처럼 뻗어있는 모양인데, 그러한 가지는 연역적 실험의 영역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 이러한 영역은 이론, 과학 그리고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있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뻗어나게 되어 있다. 당연히 이론과 과학 그리고 경험과 다른 방향은 피하게 되어 있다.
    • 마이크로 칩의 경우 이러한 가지는 칩 전문가들이 치브이 디자인을 개선하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그러한 방향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러한 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이 바로 추론을 통한 실험의 구역이다. 이 구역은 칩 디자이너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더 파격적이고 모험적인 시도를 나타낸다.
  • 그 밖에 마지막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점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그냥 실험을 해보는 그러한 점들을 나타낸다.
    • 적합도 지형에서 이러한 실험의 분포는 임의적인 돌연변이나 교배로 실험이 이루어졌을 때와 똑같은 모양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실험이 진화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기술 지형에서의 선택

  • 따라서 연역적 추론은 물리적 기술의 변이를 위한 메커니즘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 여러 가지 기술 중에서 어떻게 적자가 결정되며, 물리적 기술 지형에서 적합도를 결정 짓는 것은 무엇인가?
  • 이 경우 생물학적인 진화와는 그 과정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고 볼 수 있다.
    • 모든 물리적 기술은 목적이 있고, 어떤 기능이 있다. 휴대용 전화는 통신을 위한 것이며, 커피 잔은 커피를 담기 위한 것이다.
    • 물리적 기술을 선택하는 기준은 얼마나 그러한 목적에 적합하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목적한 바의 기능을 더 잘 수행하는 기술을 선호하는 것이다.
    • ‘더 낫다’는 것은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눈장갑을 만드는 기술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눈 장갑이 놀이뿐 아니라 기념품으로서의 기능도 효과적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진화 시스템 속에서 선택이라는 과정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노스웨스턴 대학의 조엘 모키어가 말하는 ‘과임신’ 상태가 발생하여야 한다.
    • 즉, 주어진 환경에서 벅찰 정도로 많은 디자인들이 출현하여 이들 간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 기술의 경우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기술의 종류가 더 많은 상황, –예컨대 관광객의 수요보다 기념품 장신구가 더 많은 경우– 인 경우 상호 경쟁적 기술이 동시에 존재하고, 또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목적에 가장 맞는 기술을 선호하기 때문에 선택을 통한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모방은 가장 진심 어린 칭찬이다

  • 진화의 과정을 점검하는 마지막 단계는 복제의 과정이다.
    • 성공적인 디자인이 다른 경쟁 디자인에 비해 눈에 자주 띈다는 것은 진화의 시스템이 실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 생물의 경우 진화의 과정은 단순 명료하다. 살아남는데 가장 필요한 유전자는 그렇지 못한 유전자에 비해 후대로 상속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적응력이 높은 유전자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 그렇다면 기술의 경우는 어떠한가? 어떻게 적응력이 높은 기술이 복제되고 확산되는가?
  • 간단히 말해 사람에게 유용한 기술은 모방된다.
    • 예컨대 벽돌 만드는 기술은 처음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5,000년경에 개발 되었다. 이 기술은 그 후 널리 모방되었고 ‘연역적 추론’을 통해 여러 형태의 벽돌 기술이 이로부터 진화되었다.
    • 벽돌 만드는 기술은 사람의 두뇌에 저장되었고 벽돌 그 자체에 체화되었을 뿐 아니라 기록으로도 남겨졌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모방하였으며, 숙련 기술자는 도제들에게 가르쳤고, 또한 어떤 사람들은 벽돌 자체를 보고 어떻게 만들까 궁리하였을 것이다.
    • 이 모든 결과는 기록되어 벽돌 기술은 급속도로 세계 각지로 퍼지게 된 것이다.
  • 따라서 물리적 기술은 사람의 두뇌를 통해 전파되고 그 기술을 담고 있는 제품이 모방되면서 복제된다.
    • 그리고 그 기술에 대한 기록이 돌에 새겨지거나 책으로 인쇄되거나 웹 페이지에 올려지면서 복제된다. 성공적 기술은 확산되고, 그렇지 못한 기술은 쇠퇴하면서 기술의 시장 점유율이 변한다고 볼 수 있다.
    • 예컨대 빅토리아 시기 벽돌 기술은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나, 그후 20세기에는 유리 혹은 철강 기술에 밀려 시장에서의 위치가 크게 약화되었다. 벽돌 기술이 한동안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였으나 다른 우월한 기술이 등장하면서 퇴조한 것이다.

기술 S커브

  • 1980년대 맥킨지의 리처드 포스터는 기술의 자연적 생명 주기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여 <기술 혁신: 공격자의 이점>이라는 저서에 소개하였다.
    • 포스터의 이론은 범선으로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이르는 기술에 대한 관찰과 이들 기술에 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 그는 개별 기술에 대한 연구와 자료를 통해 놀랍게도 일관성 있는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 신기술의 초기에는 기술의 성과가 부진하고 발전 속도도 더디다. 그러나 투자기와 다양한 시험기가 지나면 기술의 성과가 갑자기 기하급수적인 상승 곡선을 타게 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연구 개발 투자가 기술의 성과를 개선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기술이 성숙 단계에 이르면 성과 곡선은 완만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투자 수익이 체감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 포스터는 이와 같이 투자에 따른 기술성과의 변화 패턴이 S자와 유사하다고 하여 이를 ‘S 커브’라 명명하였다.

  • 포스터의 두 번째 이론은 한 기술에 대한 투자 수익이 감소하기 시작하면 디업가들은 다른 새로운 기술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 이 단계에서도 초기의 발전 속도는 더디지만 결국 이륙 단계를 지나면, 새로운 기술이 기존 기술을 대체하게 되고 시장은 새로운 S커브를 타게 된다.
    • 포스터의 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의 S커브와 새로운 S커브 간의 단절 기간이 기업에게는 매우 어려운 취약 기간이라는 것이다.
    • 이미 자리 잡은 기업은 기존 기술로부터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대게 그러한 기업들은 과거의 성과가 장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기존 기술의 성과가 퇴조하는데도 불구하고 새로 진입하는 신기술의 위협을 과소평가한다. 이러다 보면 기존 기업은 새로운 기술에 바탕을 둔 혁신 기업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iPhone 이후 노키아와 블랙베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음
  • 만약 물리적 기술의 진화를 설명하는 지형이 알프스 산과 같은 지형이라면 포스터가 관찰했던 것과 같은 S자 형태의 진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튜어트 카우프만이 얘기한 바 있듯 자전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실험적인 디자인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앞바퀴가 큰 것, 뒷 바퀴가 작은 것, 다양한 방향 조절 손잡이 등
    • 그러나 앞뒤 바퀴 크기가 같은 요즘 자전거가 등장하면서 자전거의 기본 디자인이 급속히 개선되고 성능도 크게 좋아진다.
    • 그 후 자전거 기술이 S커브의 윗부분에 이르고 더는 개선의 여지가 줄어든 채 기본 디자인이 고정된 상태에서 개선 노력이 기어, 경량화 등 부분적인 기술 변화에 국한된다.
    •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경주용, 산악용 자전거가 등장하면서 자전거 기술은 새로운 S커브를 타게 된다.
  • 그러한 과정을 진화를 설명하는 지형, 즉 적합도 지형을 이용해서 살펴보자.
    • 지형의 한 지점을 최초 자전거 디자인을 나타내는 점이라고 하자. 그 점은 또 진화의 정도를 나타내는 일정한 고도를 가진 지점이라고 하자.

  • 이 점 주변의 지역에는 등장할 수 있는 조금씩 다른 종류의 디자인들이 잠재해 있다.
    • 이 점에 인접하여 있는 지역은 최초의 자전거 디자인과 유사한 디자인을 나타내는 반면, 멀어질수록 디자인은 점점 더 달라진다.
    • 이 자전거의 성능을 개선할 목적으로 실험을 시작하고 디자인을 변형시켜 성능이 개선되는지 퇴보하는지 실험한다는 것은 최초의 지점으로부터 계곡이 어디인지, 정상이 어디인지를 탐색하는 것과도 같다는 얘기다.
  • 최초 자전거 디자인으로부터 시작해 변화 과정을 본다면 사실 우리가 실험해 보지도 못한 무수한 다른 디자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 이중 많은 것들은 자전거의 성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은 그렇지 못하였을 것이다. 자전거를 만드는 나쁜 방법의 수는 좋은 방법의 수를 압도하는 까닭이다. —좋은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
    • 그러다 일단 좋은 디자인의 방향을 찾으면 –다시 말해 산의 정점으로 향하는 길을 찾으면– 그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 처음에는 이 길 저 길을 가보고 어느길이 가장 빠른 길인가 찾느라고 그 움직임이 더딜 수 있다. 정상은 항상 멀리 있고, 등산은 산자락에서 시작되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처음 얼마간 헤매다 보면 디자인을 찾게 된다. –예컨대 양바퀴가 똑같고, 후륜 구동의 자전거와 같은– 이는 등산의 원리와 비슷하다.
    • 그후 얼마간 등산은 순조롭고 속도도 빠르다. –당신의 적합도 점수의 상승이 매우 가파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정상에 이르게 한다.
    • 결국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속도는 떨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전과 달리 정상으로 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의 수가 줄어든다. 처음에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 수없이 많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등산로의 선택은 줄어드는 것이다.
  • 만약 물리적 기술의 진화 과정을 나타내는 적합도 지형이 완전히 임의적인 것이라면, 기수루 발전 과정에서 S커브와 같은 패턴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수익도 임의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러한 지형에서는 움직임 자체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와는 정반대로 후지 산과 같이 하나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 단순한 지형이라면, 가장 좋은 자전거 디자인 하나만 존재할 뿐 디자인 간 경쟁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어떤 기어가 더 좋은지 논란의 여지도 없다. 또한 이 경우 하나의 S커브로부터 새로운 S커브로 옮겨 갈 일도 없을 것이고 일단 정상에 닿으면 더는 갈 곳이 없게 된다.
    • 따라서 S커브 현상은 높은 산, 낮은 산 등 여러 산이 어울려 있는 알프스 산과 같은 그런 적합도 지형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파괴적 기술

  • 하버드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은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왜 하나의 S커브에서 새로운 S커브로 옮겨가는 것이 성공적인 대기업에게조차 위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 컴퓨터 하드 디스크 산업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크리스텐슨은 기술의 조그만 변화도 때때로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 크리스텐슨은 기술이 파괴적이나 아니냐 하는 것은 기술 진보의 급진성보다 기술 변화가 S커브 상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 만약 새로운 기술이 주어진 S커브 상에서 성과를 급속히 제고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S커브로의 환승을 초래하지 않는 한, 그 기술은 현재 기술 경쟁 관계를 깨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 그러나 신기술이 기존 기술보다 성과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S커브로의 환승을 요구한다면, 이 기술은 파괴적인 기술이며 산업 구조 자체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 이 상황에서의 기존의 성공적인 기업의 경우 초기 예상 수익이 높지 않은 신기술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최초의 3.5인치 디스크는 느리고 비쌀 뿐만 아니라 저장 능력도 적었다.
    • 신기술이 새로운 S커브를 타기 시작할 즈음 기존 기술을 생산하던 기업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골몰하게 되고 그러다가 망하기 십상이다.
  • 크리스텐슨이 말하는 ‘혁신 기업의 딜레마’는 알프스 산과 같은 기술 진화 지형에서 본 경우와 정확히 일치된다.
    • 하드 디스크 디자인이 14인치에서 1.8인치로 소형화 되는 과정에서 문제는 디스크의 소형화 기술 자체가 아니었다. 그러한 소형화를 위해서 여러 관련 부품과 제조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상당히 많은 기계 부품을 전자 부품으로 교체해야 했다. 그러한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긴 하짐나 기술 적합도 지형 관점에서는 상당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 기술 적합도 지형을 편의상 3차원으로 도식화하여 설명하였으나, 기술은 여러 부분의 결합체이기 때문에 실제 기술의 진화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다차원적 현상이다.
    • 만약 한 디자인에서 5개의 구성 부품을 바꾼다면 이것만 하더라도 5차원의 그림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 기술 적합도 지형에서 ‘거리’라고 하는 것은 변화되는 구성 부품의 수와 각 구성 부품의 변화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하드 디스크의 경우와 같이 여러 구성 부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기술 적합도 지형 상에는 큰 변화를 의미한다.
  • 범선에서 증기선으로의 벌전, 경주용 자전거에서 산악용 자전거로의 벌전과 같은 구조 자체의 혁신은 많은 것들이 동시에 변할 때 일어난다.
    • MIT의 레베카 핸더슨과 하버드의 킴클라크는 반도체 장비 산업 연구를 통해 산업 구조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구조적 혁신이 부품 혁신보다 훨씬 파괴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 혁신을 기술 적합도 지형에서의 탐색으로 본다면 포스터, 크리스텐슨 그리고 헨더슨과 클라크 간의 일맥상통하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기존 기술로 성공한 기업일수록 기술 접합도 지형에서 새로운 기술로 갈아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 어떤 기업이 정상에 있을 때는 다른 정상으로 올라가기보다 밑으로 내려가기가 훨씬 쉬울 뿐 아니라, 다른 정상으로의 점프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 기업가나 신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진입자 입장에서 보면 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새로운 길도 많고 도전할 수 있는 정상도 많다.
    • 한편 계곡에서 산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정상에 이르기도 전에 깊은 계곡으로 잘못 빠져 들거나 낮은 봉우리에서 끝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 그러나 많은 기업 중에 결국 어떤 기업은 정상으로 가는 좋은 길을 찾아내게 마련이다.

과학 혁명: 진화의 재프로그램화

  • 물리적 기술 진화의 특징은 과학적 이론 등에 근거한 연역적 탐색이 임의적인 탐색이나 실험적 추론에 비해 성공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연역적 능력은 어떤 사건의 결과를 예측하고 –실제로 실험하기보다– 두뇌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 인류 역사의 99.9%에 해당되는 기간만 하더라도 인간의 연역적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따라서 이 기간동안 앞서 설명했던 연역적 추론 모델은 연역보다는 단순한 실험적 추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인간이 그동안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러한 기술들이 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0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간의 발명은 천천히 끊임없이 계속되고 늘어났다.
  • 앞서 1장에서 보았듯이 1750년경 매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이때 물리적 기술 공간이 크게 확대되면서 SKUs의 수도 급증한 것이다. 그것을 촉발한 것은 과학 혁명이었다.
    • 과학 혁명은 1500년 경 이탈리아 르네상스 기간 동안 고전 지식의 부흥과 함께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자연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싲가했다.
    • 자연 현상에 대한 관심은 다빈치, 코페르니쿠스 등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16세기에 더욱 확산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다빈치나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자라기보다는 기술자에 가깝다.
    • 17세기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이 나오고 갈릴에이가 실험의 역할을 정립하면서 뉴턴, 보일을 포함한 과학자들에 의한 엄청난 발전이 가능하였다. 그 후 과학은 기하급수적인 곡선을 그리며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 이러한 과학 발전의 영향으로 인간의 연역적 통찰력은 급속히 성장하였다.
    • 그러면서 ‘연역적 추론’ –연역적 논리와 실험적 추론의 혼합– 에서 앞부분인 연역적 논리 과정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론이 현실에 다 맞는다고 하는 엔지니어가 없듯이, 연역적인 과학 이론이 실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았다.
    •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이론의 중요성이 점점 증대되면서 물리적 기술의 적합도 지형에서 진화가 새로운 정점을 찾을 수 있는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 기술 진화는 단순한 은유적 비유가 아니다. 기술 진화는 물리적 기술 공간이 담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는 인간의 연역적 추론의 결과다.
    • 여기에 차별화, 선택 그리고 복제과정의 성격은 생물적 진화와는 전혀 다르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진화 과정이다. 이는 물리적 기술의 진화가 다른 진화의 경우에 적용되는 일반적 진화의 법칙을 따른다는 얘기다.
    • 따라서 물리적 기술의 진화 또한 달느 경우와 같이 혁신은 또 다른 혁신을 촉진한다든지 기술 변화가 이른바 단속 균형을 나타낸다든지 하는 행태를 보인다.
    • 그러나 물리적 기술 진화의 특성은 인간 사회의 시스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진화의 탐색 알고리즘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 과학의 발명은 인류로 하여금 물리적 기술 공간을 매우 빠르게 탐색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이로 인한 산업 및 정보 혁명은 우리 사회와 지구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 인류의 시작에서 우주 시대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한 우리는 이제 다시 우리의 유인원인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볼 것이다. 물리적 기술이란 인류 생활의 반쪽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의 기원/ 디자인 공간: 게임에서 경제까지

  •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가정
    • 경찰이 두 명의 범죄 공범자를 별실에 가두어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도록 한 상태.
    • 두 명의 용의자가 모두 침묵하면 둘 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남.
    • 한 명의 용의자가 침묵한 상태에서 다른 용의자가 상대방의 범죄를 시인하면, 침묵한 용의자는 높은 형량을 받고, 밀고한 용의자는 석방 됨.
    • 두 명의 용의자가 모두 상대방의 범죄를 시인하면, 둘 다 약간의 형량을 받는다. 복잡계 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미시간 대학의 로버트 액설로드는 죄수의 딜레마를 ‘사회과학계의 이콜라이(E.coli, 대장균)와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 생물학자들이 박테리아균, 초파리 등 여러 단순한 유기체들을 가지고 첫 실험을 한 후 본격적으로 인체에 적용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간단한 경제 모델을 사용하여 경제 활동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된다는 이야기다.

죄수의 딜레마

  • 죄수의 딜레마를 매트릭스로 그리면 아래 이미지와 같다. 아래의 보상 매트릭스에 따르면 두 용의자 모두 침묵할 때가 가장 유리함을 알 수 있다.

  • 만약 당신이 용의자이고 당신의 파트너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면, 증언을 하는 편이 낫다.
    • 일단 당신의 파트너가 증언을 하지 않았다면 더욱 더 증언을 하는 편이 낫다. 보상 매트릭스를 보면 상대방이 침묵한 상태에서 당신이 침묵하면 0점이지만, 증언하면 1점을 얻기 때문이다.
    • 반면 상대방을 증언을 하는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증언을 하는 편이 낫다. 보상 매트릭스를 보면 상대방이 증언한 상태에서 당신이 침묵하면 -5점이지만, 증언하면 -2점이기 때문이다.
    • 위 경우는 두 용의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두 용의자 모두 증언하고 감옥에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 그런데 이것은 용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최적은 아니다. 만일 두 사람 간에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면 침묵을 선택하여 석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 이론의 한 예로, 자신만의 이득을 좇는 경우와 협력을 통해 더 큰 이득을 좇는 경우 사이의 상충관계를 보여준다.
    • 이러한 관계는 핵무기 조절, 사업 전략, 부부 관계 등 다양한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좇다가 전체의 이익의 이익을 놓치는 경우
    • 게임 이론은 그 이름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둘 이상의 대상, 목표, 결정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시험 대상자들의 결정에 대한 보상 매트릭스의 제시를 통해 연구되어 왔다.
  • 죄수의 딜레마는 ‘비제로섬 게임 (non-zero-sum-game)’ 혹은 ‘비영합 게임’이라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 비제로섬 게임에서 둘 이상의 사람들은 협력을 통해 모두에게 더욱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두 사람이 의사소통을 하여 둘 다 침묵을 지켰을 경우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 “당신이 내 등을 긁어 주면 나도 당신의 등을 긁어 줄 것이다.”라는 격언은 비제로섬 게임을 잘 표현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협력을 통해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 이와 반대로 제로섬 게임에서는 둘 중 한 명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 명이 승리할 경우 다른 한 명은 반드시 패배해야 하고 두 사람 모두 승리할 수는 없다.
  • 비제로섬 게임, 그리고 이기심과 협동 간의 끝없는 긴장감은 복잡계 경제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죄수의 딜레마는 우리에게 일종의 수수께끼를 제시한다.
    • 경제는 구성원 간 협동의 산물로서 사람들은 함께 생산을 하고 무역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만의 단기적 이익을 좇을 경우, 일터에서는 꾸물거리고 거래할 때는 상대방을 속이는 등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 심지어는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려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더 큰 이익을 얻고자 협력의 손길을 뻗었을 경우 상대방이 이를 어떻게 대응할지 전혀 모른다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 산타페 연구소의 경제학자 새뮤얼 볼스는 자신의 저서 <미시 경제학>에서 인도의 작은 시골 마을 팔란푸르에서 한 농부와 가졌던 대화를 제로섬 게임의 한 예로 설명하고 있다.
    • 팔란푸르 농부들은 겨울 농작물을 파종할 때 수확량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후에 파종을 시작한다. 농부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모두가 파종을 일찍 시작할수록 많은 수확량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첫 번째로 파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 그 이유는 어느 한 논밭에 씨가 뿌려지고 나면 새들이 몰려와 순식간에 먹어 치워버리기 때문인데, 나는 그들에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농부들이 같은 날 다함께 파종하는 것을 논의해 본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괭이질 하던 농부는 대답했다. “만약 그 방법을 알았다면 가난해지지는 않았겠지요”
  • 위와 같은 딜레마를 조화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을 경우, 게임 이론가들은 이를 가리켜 ‘변절’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면 경제에서 협력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우리는 어떻나 방법으로 이와 같은 변절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죄수의 딜레마로 다시 몰아가 한 번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경험했던 용의자들에게 ‘재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결과에 변동이 있을까?
    • 이미 수차례 감옥행을 경험한 용의자들이라면 서로가 침묵하기로 협조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팔란푸르 농부들 역시 같은 날 파종하기로 결정했는데, 일부 농부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다음 경작기에 이로 인한 벌칙을 받게 될 것이다.
  • 그러나 불행히도 이 논리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만약 게임이 반복되더라도 일정 횟수만 한다고 한다면 용의자들은 또 다시 변절하는 상태로 되돌아가고 만다.
    • 죄수의 딜레마에서 용의자들이 총 5회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이들은 5라운드 전체를 1라운드인 것처럼 게임에 임하게 된다. 5라운드가 마지막 라운드라는 것을 알고 있는 두 용의자는 그 라운드에서 모두 협조를 거부하게 된다.
    • 심지어 4라운드에서도 같은 딜레마를 겪게 되는데, 협조한다 하더라도 5라운드에서 이에 대한 보상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4라운드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결국 게임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 그러나 실생활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게임을 하게 될 지는 미리 알 수 없다. 만약 게임을 경험하게 될 횟수가 유한하다고 해도, 그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 팔란푸르 농부 역시 그가 평생 동안 경작할 수 있는 횟수가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는 있으나, 몇 번이 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게임은 균형을 잃게 되며 전형적인 경제 분석법으로는 최고의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게임에 임하는 다른 전략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죄수의 딜레마 경연 대회

  • 1970년대 후반, 로버트 액설로드는 전례 없는 방법을 사용해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시도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논리 정립을 시도했는데, 이 실험은 학계에 큰 반향을 몰고 왔다.
    • 그는 수학적 분석법 대신 경연 대회를 개최하여 세계 각지에서 온 사회과학자들로 하여금 최고의 전략을 찾아내어 제출하도록 했다. 게임이 여러 차례 지속되면서 참가자들은 여러 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매우 세심한 전략을 구사했으며, 복잡한 수학적 공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 그러나 경연 대회 우승자인 토론토 대학의 심리수학과 교수 아나톨 라포포트가 제출한 방법은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라포포트의 전략은 이른바 ‘눈에는 눈(Tit for Tat, 팃포탯, 맞대응)’ 전략으로 일단 처음 만난 상대에게는 무조건 협조하는 편을 선택한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내린 결정을 보고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 만약 상대방이 협조하는 편을 택했다면, 라포포트는 그와 다시 만났을 때 협조하는 편을 택했다. 만약 상대방이 협조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면, 라포포트는 그와 다시 만났을 때 협조를 거부했다.
    • 이와 같은 단순한 전략의 성공에 놀란 액셀로드는 이 전략을 더욱 깊이 연구하기 위해 대규모의 두 번째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두 번째 대회에는 경제학,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 진화생물학 등 각 학문 분야에서 명망이 높은 62명의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그러나 역시 우승은 팃포탯 이었다.
  • 액설로드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전략이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전략을 누르고 계속해서 우승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팃포탯이 최고의 전략으로 증명 된 것일까? 아니면 아직 이보다 더 우수한 전략이 발견되지 않은 것 뿐일까?
    • 팃포탯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몇몇 특정 전략과 대응했을 때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팃포탯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 만약 두 참가자가 모두 팃포탯 전략을 구사한다고 가정해 보자. 두 사람이 모두 협조했을 경우에는 뛰어난 점수를 쌓을 수 있지만, 어느 한 순간 한 명의 실수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두 참가자는 계속해서 서로에게 협조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 특히 핵무기 조절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액설로드는 이런 단순한 실수에서 비롯될 수 있는 재앙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 액설로드는 다른 전략들을 찾아내길 원했으나, 서둘러 더 큰 경연 대회를 개최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액설로드의 동료 교수인 존 홀란드는 1970년대 중반 자신이 개발했던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 액설로드는 대회를 통해 사람들이 죄수의 딜레마 전략을 찾는 대신 홀란드의 시뮬레이션 진화 연산법을 통해 컴퓨터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해 가장 성공적인 전략을 찾아내도록 했다.

실리코 전략

  • 액설로드는 1987년 그간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펴내면서 진화적 시뮬레이션과 게임 이론을 혼합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최근 이 연구를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크리스티안 린드그렌으로 스웨덴 찰머스 공대에 재직 중인 물리학자다. 린드그렌의 모델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그간 학자들이 두 명의 행위자를 대상으로 죄수의 딜레마를 실험해 왔던데 반해, 그는 컴퓨터 상에서 동시에 두 명 이상을 대상으로 집단 실험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 린드그렌의 죄수의 딜레마 진화 시뮬레이션 역시 다소 단순한 이콜라이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는 이를 통해 복잡한 실물 경제 체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정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 첫째, 경쟁과 협조 간 내재적인 상충관계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와 시스템을 상시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한다. 이 때문에 협력적 구조는 실물 경제에서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개인적 구도로 변하게 된다.
    • 둘째, 린드그렌의 모델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실험하는 행위자들에게는 최적화된 결정을 내릴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바의 과거 선택을 기억해 내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 셋째, 행위자들의 다양한 상호 작용은 종종 예상치 못했던 복잡한 창발적 패턴의 형태로 이어지는데, 린드그렌의 모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넷째, 가장 흥미로운 점은 린드그렌의 모델이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칼 심스의 ‘진화하는 가상 생물체(Evolving Virtual Creatures)’ 연구처럼 린드그렌 역시 죄수의 딜레마 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략을 찾기 위해 진화적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린드그렌 모델은 죄수의 딜레마에 관해 가능한 모든 전략이 포함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담은 방대한 디자인 공간을 진화적 방법으로 탐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린드그렌 모델의 전체적인 구조는 사실상 죄수의 딜레마와 인생 게임(the Game of Life)이라는 두 가지 게임이 혼합된 체제다. 수학자 존 호턴 콘웨이에 의해 개발된 인생 게임 시뮬레이션은 양 방향으로 눈금이 그려진 바둑판 같은 배경에서 죄수의 딜레마 실험을 한 것이다.

  • 인생 게임 규칙
    • 위 그림에서 각 네모칸은 셀(cell)이라고 부르며, 각 셀은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On이 될 수도 있고, Off가 될 수도 있다. 만약 On이라면 해당 셀은 검은색으로 칠해지고, Off면 흰색으로 칠해진다.
    • 각 셀은 직접 혹은 대각으로 맞닿은 총 8개의 셀과 인접하고 있고, 인접한 셀의 상태에 따라 다음 라운드에 상태가 결정된다.
    • 만일 인접한 셀 중에 On으로 표기되어 있는 셀의 숫자가 정확히 2라면, 셀은 On/Off 여부와 상관없이 다음 라운드에서도 현 상태를 유지한다.
    • 만약 인접한 셀 중에 On으로 표기되어 있는 셀의 숫자가 정확히 3이라면, 셀은 On/Off 여부와 상관없이 다음 라운드에서 On이 된다.
    • 이 외의 모든 경우는 다음 라운드에서 Off가 된다.
  • 인생 게임은 경우에 따라서는 검은색과 흰색에 어지럽게 널려 있기도하고, 마치 세균 배양 접시에 박테리아가 자라나는 듯 복잡하지만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기도 한다.
    • 혹자는 존 콘웨이의 인생 게임에서 카우프만의 불리언 네트워크와 유사한 점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두 경우 모두 1960년대 폰 노이만이 발전시킨 계산 시스템들로 구성된 고도로 일반화된 그룹, 즉 ‘세포 자동자’의 형태들이다.
  • 린드그렌은 죄수의 딜레마에다 콘웨이의 인생 게임 개념을 도입했다. 다만 게임이론의 일반적 규칙에 따라 On/Off를 표시하는 대신, 죄수의 딜레마의 협조/경쟁 결정에 따라 On/Off를 표시하도록 했다.
    • 각 셀은 행위자라고 볼 수 있으며, 각 행위자들은 인접한 4명의 행위자들 –동, 서, 남, 북– 과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벌이게 된다.

  • 한 행위자가 팃포탯 전략을 쓰고 다른 행위자는 반팃포탯 전략을, 또 다른 행위자는 항상 협조하는 등 다양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 린드그렌은 각 셀을 행위자들의 전략에 따라 색칠하기로 했다. 그런 다음 각 행위자들이 인접한 4명의 행위자들과 벌인 게임의 점수를 평균한다.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행위자는 해당 라운드의 승자가 되어 인접한 패자 셀들의 중앙을 차지한다. 마치 바이러스와 같이 승리의 전략을 이웃에 전파하게 되는 것이다.
    • 만약 반팃포탯 전략을 사용한 행위자가 승리할 경우 중앙의 행위자는 반팃포탯 전략을 사용한 행위자에게 잠식당하게 되며 다음 라운드에서는 반팃포탯 전략을 사용해야만 한다.
  • 그렇다면 각 행위자들의 전략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우선 임의로 각 행위자들에게 모두 다른 전략을 부여한 다음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 그러나 그 경우 특정 균형에 도달하거나 단순히 반복되는 주기를 형성하는 등 정확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 이는 팃포탯보다 월등한 전략을 찾고자 했던 액설로드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임의로 선택한 전략이 우수한 전략으로 판명 날 가능성은 상당히 낮기 때문이다.
  • 린드그렌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하여금 스스로 진화를 통해 죄수의 딜레마 전략이 모두 모여 있는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고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내도록 했다.
    • 린드그렌은 격자 무늬 바둑판 위에 놓인 행위자들에게 전략을 1과 0으로 암호화한 컴퓨터 DNA 도식을 각각 부여했다. 린드그렌은 행위자가 과거의 자신과 상대방의 결정을 기억해 다음 라운드에서는 경험에 의한 성공적인 전략을 예측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
    • 따라서 각 행위자의 컴퓨터 DNA에 자신과 상대방의 과거 결정을 주입하게 되면, 행위자는 협조할지 변절할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 린드그렌은 행위자들에게 전 라운드만의 결과를 주입한 후 게임을 시작했다. 바로 전 라운드의 결과만을 알고 있는 행위자들은 다음과 같은 총 4가지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 항상 변절한다. 항상 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이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와 무관하게 변절한다.
    • 항상 협조한다. 항상 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이 어덯나 결정을 내렸는지와 무관하게 협조한다.
    • 팃포탯 – 항상 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이 내린 결정을 따라 한다.
    • 반팃포탯 – 항상 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이 내린 결정과 반대로 따라 한다.
  • 린드그렌은 게임을 시작할 때 임의적으로 각 행위자들에게 위의 4가지 전략을 고루 부여한 후 진화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고 주기적으로 임의적 변화를 주어 그 결과를 추적했다. 린드그렌의 모델에서는 3가지 변화를 가했다.
    • 첫째는 ‘점 돌연변이(Point Mutations)’로 행위자의 컴퓨터 DNA 일부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예컨대 01 -> 00.
    • 둘째는 ‘유전자 복제(Gene Duplication)’로 DNA 일부가 복사되어 꼬리에 첨가된다. 예컨대 01 -> 011.
    • 유전자 복제 효과 중 하나는 행위자가 과거의 결정 패턴을 더욱 많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자는 바로 전 라운드의 결과뿐 아니라, 그 이전 라운드에 있었던 일까지도 기억해 내어 게임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기억이 확장될 수록 행위자는 더욱 복잡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상대방이 변전할 경우 나도 변절한다. 상대방이 또 변절할 경우 나는 협력한다”
    • 셋째는 ‘분할 돌연변이(Split Mutations)’로 DNA의 어느 한쪽을 모두 삭제하는 것이다. 예컨대 011011000110001 -> 011011. 분할 돌연변이는 기억력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초래하고 전략의 복잡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 한편 린드그렌은 이런 변이에 덧붙여 협조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벼절을 택하게 하는 등 행위자들이 가끔씩 실수를 하도록 만드릭도 했다.

바둑판 위의 우림

  •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린드그렌은 가로 세로 각각 128칸의 게임판을 제작했다. 게임판 내에서는 총 1만 6,384개의 네모 칸이 있으며, 한 칸에 한 명의 행위자가 자리한다. 각 행위자는 앞에서 언급한 4가지 전략 중 임의로 하나를 택하여 게임을 시작한다.
    • 린드그렌이 스위치를 누르면 게임이 시작되고 진화 과정이 진행된다. 전략들이 진화하기 시작하고, 이중 가장 우수한 전략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서 근접한 셀에 자리한 행위자들에게 자신의 전략을 전파시킨다.
  • 게임이 진행되면서 생태계가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4가지 전략이 상호작용한 끝에 최초에는 아무렇게나 질서 없이 흩어져 있던 행위자들이 점차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 ‘팃포탯’과 ‘항상 협조 전략’을 택한 행위자가 함께 고득점을 차지하게 된다. 반면 ‘항상 변절 전략’을 택한 행위자는 ‘반팃포탯’을 무자비하게 이용해 먹고, ‘항상 협조 전략’의 행위자는 ‘항상 변절 전략’의 행위자에게도 예외 없이 협조한다.
    • 그러나 곧 항상 변절하는 행위자의 대다수가 게임판에서 사라진 반면, 협조하는 행위자들의 규모가 크게 늘어나 하나의 섬을 이룬 듯한 모양을 띈다. 그리고 이 섬 모양의 중심에는 항상 협조 전략을 택한 행위자들이 대거 자리하고 있으며, 계속적인 협조를 통해 높은 점수를 올린다. 팃포탯 전략가들이 항상 협조 전략가들을 둘러싸고 있으며, 항상 변절 전략가들은 섬의 밖으로 밀려난 것을 볼 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협조적인 섬이 항상 이 모습 그대로 지속될 수는 없다. 때때로 변절 전략을 택한 행위자들이 협조적 무리를 파고들어 인근 협조 전략가를 침몰시키는 경우도 있고, 협조 무리들의 규모가 마치 박테리아와 같이 빠른 속도로 증대되어 변절자들의 무리를 몰아내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협조와 변절 간의 전략 게임이 지속되면서 네모, 지그재그, 소용돌이 등 다양한 모양의 패턴이 형성된다.
  • 시간이 지나면, 4가지 전략들의 싸움터에 혁신적인 새로운 전략이 등장할 수도 있다. 돌연변이의 등장으로 인해 행위자의 기억력이 증대되어 더 오래된 과거에 있었던 대결 경험까지도 참고할 수 있게 되면서 더욱 복잡한 전략 구사가 가능해진다.
    • 이러한 돌연변이 중 다수는 오래지 않아 소멸되어 버리는 무의미한 전략이지만, 일반적으로 기억력의 확대는 행위자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이며 새로운 전략이 성공했을 경우는 인근 행위자들을 통해 전파된다.
    • 그 예로 린드버그는 ‘사기꾼’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이 전략에 따르면 이전 라운드에서 두 행위자가 협조와 변절 여부에 상관없이 똑같은 전략을 선택했을 경우 이번 라운드에서는 협조하는 편을 택하고, 이전 라운드에서 두 행위자의 선택이 같지 않았을 때는 변절하는 편을 택해야 한다.
    • 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복수적 전략’ 이다. 첫 라운드에서는 협조하는 편을 택한다. 그런데 이때 상대가 변절하는 편을 택했을 경우 다음 라운드에서는 변절하는 편을 택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팃포탯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어지는 3라운드에서 다시 한 번 변절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알려준 뒤 다시 협조로 돌아선다.
    • 일부 전략들은 매우 훌륭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팃포탯 전략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는 두 팃포탯 전략가가 맞서게 될 경우 한 명이 실수로 변절하면 두 행위자는 끊임없이 서로를 변절하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 ‘공정’이라는 이름의 전략은 첫 라운드를 협조하는 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변절할 경우 ‘화가 난’ 행위자는 상대방이 다시 협조로 돌아설 때까지 계속해서 변절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만약 공정 전략가가 실수할 경우에는 상대방이 이를 용서해 줄 때까지 협조하게 되며, 결국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면 다시 두 행위자는 협조를 지속하게 된다. 따라서 공정 전략을 택한 행위자들은 말 많고 실수투성이인 환경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숲의 제왕

  • 승자는 누구일까? 가장 우수한 전략은 어떤 전략일까? 린드그렌에 따르면 이와 같은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린드그렌의 모델처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시스템에서는 단 한명의 승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최적, 최고의 전략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특정 시기에 생존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다른 누군가는 모두 죽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 결국 살아남으려면 행위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과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해야 하며,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주변의 다양한 변수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 “모두가 승자다”라는 표현이 있다. 어찌 보면 비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생존이라는 것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지구 상에 존재했던 많은 생물들 중 대다수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이른바 적합도 지형의 극히 작은 부분만이 특정 시점에 현실 속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 만약 당신이 ‘초우량 기업을 찾아서’와 같은 식의 연구를 해서 100가지의 가장 우수한 생존 및 증식 전략을 뽑았다고 하자.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그 리스트를 살펴 본다고 하자.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 보일 것이다. 오늘 날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 100년 후에는 가장 별볼일 없는 전략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반대로 100년 후에 가장 성공적인 전략으로 칭송받을 전략이 오늘날에는 그저 그런 점수를 받고 있거나 심지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전략일 수도 있다.
  •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생태계에서 어떤 한 전략이 가장 우수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 린드그렌의 모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느 한 순간 특정 전략이 등장하여 한동안 게임판을 지배하는 등 화려한 나날을 보내다가도 새롭게 등장한 다른 전략에 의해 결국 소멸되는 경우도 있고, 때때로 일부 전략들이 동시에 등장하여 게임판을 독식하다가 새로운 전략의 등장으로 게임판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 함께 등장한 두 전략이 공생 관계처럼 협조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러한 경우 한 전략에 문제가 생길 경우 나머지 한 전략도 동시에 침몰하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 그런가 하면 게임판에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들도 있다. 팃포탯과 같은 단순 전략을 구사하면서 게임판을 독식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상관없이 근근이 삶을 이어 나가는 전략 말이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게임은 앞에서 설명했던 일느바 ‘단속 균형’이라는 불연속적 패턴으로 흘러간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승리 전략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 이들이 게임을 지배하게 되면서 상대적인 안정기가 지속될 수 있다.
    • 이러한 시기에는 모두가 공생하면서도 일부 행위자들의 전략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구가하게 되어 아무도 전략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진화생물학자 존 스미스가 말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ies, ESS)이다.
    • 그러나 조만간 또 다른 작은 혁신이 일어나 발전 모멘텀을 얻게 되면 게임판의 패턴은 순식간에 뒤바뀔 수도 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 경제가 호황일 때는 협조 위주의 전략이 우세를 보이는 등 가끔씩 모든 행위자들이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경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면 변절과 실패의 시대가 도래한다.

예측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은 특정 환경과 시간에서 어떤 전략의 성공과 실패 여부가 다른 전략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이 게임판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제인과 크리슈나의 ‘핵심종(keystone, 키스톤) 모델’과 아주 유사한 하나의 거대 생태학적 그물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키스톤 모델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일부분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는 널리 전파되어 반대편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 팃포탯 전략가들에게 둘러싸인 ‘항상 협조’ 전략가들을 떠올려 보자. 팃포탯 전략가들은 ‘항상 변절’ 전략가들로부터 ‘항상 협조’ 전략가들을 보호하는 형국을 띠고 있다. 그러나 팃포탯 전략가들에게 작은 돌연변이가 발생해 이들이 일종의 축소 악순환에 빠져 드는 일이 발생한다고 가정하자. 이 틈을 타서 ‘항상 변절’ 전략가들이 섬 내부로 침입을 시도하면 ‘항상 협조’ 전략가들의 섬은 급속히 붕괴되어 게임판에서 사라지고 만다.
    • 이렇게 변화에 민감한 성향으로 인해 그 누구도 방정식을 사용하여 모델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실제 경제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 혹자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이 모델 내의 임의적 요소들, 예컨대 임의적 돌연변이나 행위자 행태상의 임의적 오류 같은 것들 때문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에 프로그램된 모델은 사실상 완벽하게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돌연변이율이나 오류를 임의로 작성한 후 두 차례에 걸쳐 프로그램을 돌려 보면 두 번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는 한 모델의 행태를 조절하는 특정 모수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돌연변이의 등장 횟수, 오류 발생 비율, 그리고 게임 내의 상대적 보상 체계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게임의 거시적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수들의 값에 따라 행위자들은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도 있고, 반면 빠져나올 수 없을만큼 침체된 비협조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 또한 가장 혁신적인 신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수들의 값은 어떤 것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결과 예측은 여전히 불가능 하지만 “돌연변이의 비율이 0.001 이하면 혁신과 협조 수준은 매우 낮다” 혹은 “돌연변이의 비율이 0.001 이상 0.01 이하일 경우 게임 환경은 매우 역동적이고 혁신적으로 변화하며 협조 수준과 이익 또한 상승한다” 등과 같은 표현들이 가능해진다.
    • 마찬가지로 모수들의 값에 따라 게임 환경은 특정 전략들에 우호적 또는 적대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친절하지만 터프한(Friendly But Tough) 전략은 비록 많은 오류가 발생하지만 협조적 환경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였던 반면, 강철주먹(Iron Fist) 전략은 매우 비협조적인 환경에서 돋보였다” 등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 또한 모수들의 값에는 아무런 변화 없이 임의로 서로 다른 외부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그런 결과들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아보기 위해 모델을 수천 번 돌려 볼 수도 있다.
    • 그 결과 “모수의 조건을 X와 같이 구성했을 때 고득점 게임 환경이 나타날 확률과 저득점 게임 환경이 나타날 확률은 각각 60%와 40% 였다” 등과 같은 분석이 가능할 수 있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델의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모수들의 값을 관찰하고 통계를 모아 모델의 행태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다. 많은 경우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 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앞에서 우리는 칼 심스가 진화를 이용해 수영이라는 문제에 대한 좋은 해답을 발견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린드그렌의 모델에서는 경제 문제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찾기 위해 진화적 방법이 사용되었다. 최고의 전략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과 같이 오히려 진화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전략이 등장한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 생태계와 같다.

바벨의 도서관

  • 대니얼 데닛은 그의 저서 <다윈의 위험한 생각>에서 영어로 쓰일 수 있는 500페이지 분량의 모든 책들이 소장된 초대형 도서관을 상상해 보도록 제안한다. 그는 이 상상의 도서관을 가리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을 따라 ‘바벨의 도서관(the Library of Babel)’이라고 불렀다.
    • 바벨의 도서관에는 1001,000,000에 해당하는 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멘델의 도서관’이나 ‘레고의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우주보다 더 크고 방대한 크기로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다.
  • 바벨의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 빈칸으로만 가득한 책들, ‘a’라는 문자만 가득한 책들, 온통 검은색으로 색칠된 책들 등 여러 가지 책들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책들의 거의 대부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들의 조합만이 담겨 있을 것이다. 데닛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단 한 문장이라도 문법적으로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을 포함한 책을 발견할 확률은 극히 낮다.
    • 그러나 바벨의 도서관에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 뿐만 아니라 <모비 딕(Moby Dick)>에 대한 완벽한 제본도 들어가 있다. 또한 <모비 딕>과 모든 면에서 똑같아 보이지만 <보비 딕(Boby Dick)>이라는 고래가 등장하는 책도 있고 <코비 딕(Coby Dick)>, <도비 딕(Doby Dick)>도 있다.
    • 더욱 놀랄 일은 바벨의 도서관 어딘가에는 여러분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그리고 여러분의 죽음에 관한 내용까지 정확히 담긴 500쪽짜리 당신의 자서전도 있다는 것이다.
    • 만약 500페이지가 못 되는 책이라면, 예컨대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처럼 192페이지에 불과한 책의 경우 바벨의 도서관에는 192페이지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가 담겨 있지만, 나머지 308페이지에는 아무 내용도 없는 그런 책이 된다. 반대로 500페이지가 넘어 933페이지에 달하는 <율리시스>와 같은 책은 2권 세트로 구성된다.
    • 여러분은 특정 레고 세트를 사용하여 만들 수 있는 레고 디자인은 한정되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것이지만 향후 쓰일 책들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디자인 공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작품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디자인 공간이 확대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이 역시 틀렸다고만 볼 수 없다.
    • 디자인 공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디자인 공간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계가 없으며 마치 풍선처럼 그 크기가 확대될 수 있다. 바벨의 도서관에 놓여 있는 책의 수를 유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데닛처럼 각 권의 페이지를 500페이지로 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임의적인 한계일 뿐, 이론적으로 책의 길이(페이지 수)에는 정해진 한계가 없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보면 가장 긴 책은 있기 마련이고 이것이 그 순간에는 상한선이 된다.
    • 물리학적 법칙은 도식 식별자가 끝도 없이 긴 코드를 해독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만들어지는 디자인은 유한한 도식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유한한 도식은 곧 디자인 공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디자인 공간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장 길게 만들어질 수 있는 도식의 가장자리 둘레가 늘어나거나 축소될 수 있으므로 디자인 공간은 시간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구 상에서 DNA를 가지고 있는 생물체의 디자인 공간은 확대돼 왔다. DNA는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지고 해당 종족이 ‘테크놀로지(기술, 예컨대 난자, 자궁 등)’를 통해 길어지는 디자인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마찬가지로 문헌 상의 디자인 공간의 크기 역시 시간에 따라 변한ㄴ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석판에 상형 문자를 새겨 넣던 시기의 책은 당연히 짧았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 초고속으로 책의 내용을 바로 우리의 뇌로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발견된다면 프루스트의 작품도 간결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 바벨의 도서관은 디자인 공간에 관해 또 하나의 중요한 저미을 상기 시켜 준다. 알파벳, 숫자, 그림 혹은 DNA의 화학적 코드 등 일련의 기호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디자인 공간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디지털화되어 컴퓨터에 저장될 수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 공간의 자격 조건을 갖춘 것이다.
    • 따라서 우리는 유한 하지만 무한한 음악, 예술, 요리법, 빌딩 디자인 등의 도서관들을 상상할 수 있다.
  • 이제 한 사업가가 실수로 공항 검색대에 놓고 간 노트북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이 컴퓨터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MP3 음악 파일, 가족사진, 프레젠테이션 문서 자료, 가계부, 이메일 심지어 사업 계획서 등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스미스의 박물관

  • 복잡한 대규모 기업들조차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일의 사업 계획서를 가진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의 경우 사업 계획서의 내용들이 조직 전반에 걸쳐 산재해 있을 것이다. 반면 소규모 기업의 경우 형식적인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있는 계획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만약 현재 문서로 된 사업 계획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 이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작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 데닛의 바벨 도서관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자. 한 권당 500페이지에 달하는 혹은 여러 권으로 구성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사업 계획서들로 가득한 방대한 도서관을 상상해 보자. 도서관의 각 선반에는 우주를 가로지를 만큼의 방대한 양의 사업 계획서로 가득차 있다. 사실상 가능한 모든 사업 계획서가 있는 이 도서관은 바벨 도서관의 일부 특별 구역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바벨 도서관의 제 2 도서관인 이곳을 애덤 스미스의 이름을 붙여 ‘스미스의 도서관(the Library of Smith)’라고 부르기로 하자
  • 스미스의 도서관 서가에서 우리는 타임스퀘어에서의 1인 구두닦이 사업 계획서에서부터 IBM의 전략을 정확히 기술하고 있는 사업 계획서,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슈퍼나노 신경 포배관을 제조하고 판매한느 기업의 사업 계획서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물론 다른 디자인 공간처럼 스미스 도서관에 있는 방대한 사업 계획서들 중 대다수는 문법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문장으로만 가득할 것이며 실현 가능한 계획이 담긴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 이 상상의 사업 계획서는 어느 정도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야 할까? 어떻게 <모비 딕>과 사업 계획서를 구분할 수 있을까?
    • 다른 도식을 사용하여 이 실험을 반복해 보기로 한다. 스미스 도서관의 사업 계획서가 사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테스트는 사업 계획서 식별자가 있어서 그 계획을 활용해 경제적 활동을 조직화하고 창출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 계획서 식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기업의 경영 팀이다.
  • 현재가 2006년이라고 상상하고 스미스 도서관에서 ‘시스코 시스템스의 2007년 사업 계획서’라고 적힌 문서를 꺼내 현재의 시스코 경영 팀에 전달한다. 만일 시스코 경영팀이 이 책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고 이를 행동에 옮길 수 있다면 이는 유효한 사업 계획서가 된다. 만일 해당 사업 계획서에 허무맹랑한 내용만 담겨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만일 시스코 경영팀에 전달한 책이 <모비 딕>이었다면 경영자들은 <모비 딕>을 재미있게 읽겠지만 시스코의 사업 내용에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 어떤 상상의 사업 계획서도 그것이 비록 수천 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세세한 측면에서 시스코를 발전시킬 수 있을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 그러나 도식을 디자인으로 바꾸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도식이란 결국 이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디자인을 간단히, 압축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내용들이 세세하게 계획서에 기술될 필요는 없다.
    • 사업 계획서는 식별자가 이미 알고 있는 묵시적인 지식, 문장, 기술 등에 크게 의존한다. 마치 레고의 도식에서 어린아이들이 플라스틱 벽돌들을 선택하여 쌓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처럼, DNA 도식에서 정말 필요한 능력을 갖춘 난자와 자궁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 따라서 사용 가능한 사업 계획서란 2006년 시스코 경영 팀이 이 계획서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지니고 있으면 충분하다.
  • 생물학적 시스템에서처럼 사업 계획서의 도식과 식별자들은 함께 진화한다. 예컨대 시스코의 2005년 사업 계획서는 2006년에 어떤 종류의 경영 팀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고, 그 구성원들이 어떤 기술을 획득해야 하는지, 어떤 종류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런 조건 하에 어떤 종류의 경험을 해야 할지에 이미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다시 그 팀이 식별해 내어 2007년에 수행하고 하는 사업 계획서의 형태를 정의하고, 그 2007년 사업 계획서는 다시 관리 팀의 미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식의 ‘공진화’ 과정으로 나가는 것이다.

경제의 진화 모델

  • 야노마모 족, IBM, 2023년도의 슈퍼나노 신경 포배관 회사 등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통해 스미스 도서관에서 적합한 디자인을 탐색하면서 경제는 발전해 왔다. 마치 모든 죄수의 딜레마 전략들이 자리하고 있는 도서관에서 진화적 알고리즘을 통해 혁신, 성장, 창조적 파괴라는 과정이 발생하는 것처럼 스미스 도서관을 통한 진화 역시 실물 경제에 혁신, 성장, 창조적 파괴라는 동일한 패턴을 가져다준다.
  • 앞서 언급했던 보편적 진화 모델로 돌아가보자. 사업 계획서라는 ‘기질’에서 변이, 선택, 그리고 복제의 과정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 우리는 앞으로 4장에 걸쳐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찾기 위한 진화 과정을 조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계속 실험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사업 전략, 조직 디자인을 창안하면서 이른바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선택은 경제의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일부 사업을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디자인에 더욱 많은 자원이 주어지고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경제 시스템에서 복제가 일어난다.
  • 경제의 진화는 하나의 단일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3개의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앞 장에서 리처드 넬슨이 말했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물리적 기술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기술’이고 사회적 기술은 인간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디자인, 과정 혹은 규율 등을 말한다.
    • 사업 계획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혼합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한다. 사업 계획서,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은 각각 독특한 적합도 함수를 가지고 있는 만큼, 3개의 디자인 공간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 사업 계획서는 경제적 목적에 맞게 선택되는 경향이 있지만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의 경우 다른 목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많은 중요한 물리적 기술들이 군사적, 보건 혹은 기타 사회적 필요에 의해 개발되었거나 단순히 과학자나 발명가들의 호기심에 의해 개발되었다. 사회적 기술의 많은 부분도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갖고 있지만 당초에는 다른 목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진화 시스템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원래 한 가지 목적으로 진화된 혁신이 향후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는, 이른바 전용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내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려는 모델은 경제의 진화를 물리적 기술 공간, 사회적 기술 공간, 사업 계획 공간이라는 세 공간에서의 합동적인 진화의 산물로 본다. 세 공간은 별개의 개념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함께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각 공간 마다 진화가 작동한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적합 디자인을 찾아내 증폭시키는 한 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은 도태시킨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술, 사회, 경제 세계의 질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부의 기원/ 진화: 그건 바로 저기에 있는 정글이다

  • 조직, 시장, 경제는 생태 시스템과 단순히 비슷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진화 시스템이다.
  • 진화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혁신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다목적용의 고도로 강력한 처방전이다. 이것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지식을 축적해 가는 하나의 학습 알고리즘이다. 진화는 자연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 주는 공식이다.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

  • 진화 이론가이자 터프츠 대학의 인지과학센터 소장인 대니얼 데닛은 진화를 ‘디자이너 없이 디자인을 창조하는’ 방법이라고 부른다.
  • 우리가 어떤 무엇이 디자인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다시 말해 어떤 과업에 적합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망치는 못을 박거나 뽑도록 디자인되어 있고, 박테리아는 특정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우리는 또 디자인을 가진 것들에 대해 거기에는 어떤 수준의 복잡성, 질서, 구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해변에 있는 임의의 모래알이 디자인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잡한 구조를 갖는 제트 엔진, 나선형 방으로 된 조개껍데기, 복잡한 음들의 배합으로 이루어진 음악 등은 모두 디자인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 디자인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 짓는 것은 바로 목적에 대한 적합성과 복잡성의 결합이다. 줄무늬 있는 암석은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복잡한 패턴도 갖고 있으며 심지어는 예술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떤 기능을 갖고 있거나 어떤 특정한 목적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임의의 지질학적인 힘들의 작용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디자인된 것들은 엔트로피가 낮다. 다시 말해 디자인된 것들은 결코 임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의미다.
  • 우리가 디자인을 보는 영역은 두 가지다. 생물 세계에서, 그리고 생물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 산물들에서다. 캥거루의 점프를 위한 다리, 어둠 속에서 물체를 탐지하는 박쥐의 음파 탐지기, 수분을 촉진하기 위해 꿀벌 성기로 위장한 꽃 수술 등이 생물 세계에서 디자인 된 것들이며 나사를 돌리기 위한 드라이버, 사람들을 수송하기 위한 점보제트기는 인위적인 디자인 산물들이다.
  • 영국 국교회 사제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처럼 복잡하고 디자인된 특별한 것은 시계 제조업자를 전제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자연 세계의 복잡성과 디자인은 성스러운 시계 제조업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고도로 디자인된 것들은 저절로 이 세계로 튀어나온 게 아니다. 디자인은 목적, 지능 그리고 문제 해결을 보여 준다.
  • 그러나 바로 이것이 진화가 하는 일이다. 진화는 스스로 디자인을 창조한다. 옥스퍼드 대학 진화 이론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를 “앞이 보이지 않는 눈먼 시계 제조업자” 라고 불렀다. 진화는 맹목적이고 기계적이며 단순한 공식이지만 영리한 디자인을 창조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인공적 생물

  • MIT 미디어랩의 전 멤버였던 칼 심스는 1994년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연구해 보고 싶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박테리아와 과일 파리를 가지고 하는 실험이 아니라 좀 더 빠르고 더 많이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의 실험이었다. 그래서 그는 슈퍼컴퓨터에 인공적인 컴퓨터 생물들이 사는 가상의 진화 세계를 만들었다. –슈퍼컴퓨터와 칼 심스의 프로그래밍 재능이 없었다면 아마도 맥시스의 ‘심라이프’와 MS의 ‘임파서블 크리처스’와 같은 여러 상업용 컴퓨터 게임들을 이용한 가상적인 진화 실험을 경험했을 것이다.– 각 생물들의 몸은 상호 연결된 일련의 직사각형 블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블록은 정육면체, 짧고 두꺼운 직사각형, 길고 얇은 직사각형 등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질 수 있다. 각 블록들은 관절이 있어서 구부리거나 펼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이 블록 생물은 움직임을 조절하는 간단한 컴퓨터 칩의 힘으로 관절이 달려 있는 블록 몸체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심스는 각 블록 생물에 목표를 주었다. 각 생물은 그 목표에 비추어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몸에 있는 센서를 통해 평가한다. 그 후 각 블록 생물들은 관절로 연결되어 있는 각 블록 몸체들을 움직임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을 취한다. 첫 번째 실험에서 이 인공적 생물들에 주어진 목표는 가상의 강을 빠르게 헤엄쳐 건너가는 것이었다.
  • 그리고 심스는 이 블록 생물들의 세계에 생물학적 변화를 주었다. 바로 컴퓨터 DNA를 부여한 것이다. DNA는 1. 각 생물 몸체의 형상 2. 관절로 연결된 블록 몸체들을 움직이는 방법 3. 뇌의 초기 상태에 관한 정보들을 각각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심스는 일련의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완전히 임의적인 컴퓨터 DNA, 그리고 완전히 임의적인 블록 몸체들을 가진 300개의 블록 생물들로 각 실험을 시작했다.
  • 심스는 생물들을 컴퓨터 안의 가상 수영장에다 풀어 놨다. 임의적으로 디자인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허우적거리고 넘어지거나 물에 빠졌다. 그러나 우연히도 몇 개는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자신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동작 또는 스스로 방향을 잡는 능력 등이 그것이다.
  • 심스는 1세대인 임의의 생물들에게 간단한 진화의 공식을 적용해 봤다. 가장 성공적인 수영을 한 생물들은 그대로 남았고, 수영에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생물들은 제거 됐다. 그 뒤 수영에 가장 성공적인 블록 생물들은 자신들의 컴퓨터 DNA를 서로 교환하는 컴퓨터 섹스를 통해 양 부모의 특성들을 그대로 이어받는 새로운 생물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새로운 생물들은 자신들의 DNA를 변화시키는 임의의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 정리를 해 보면 블록 생물들의 집단은 서로 다른 특성, 즉 변이를 보여 주었다. 특정한 시점에서 생물들의 수영 능력은 다양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들은 선택되었고, 성공적인 생물들은 재생해 그 디자인을 확산시키는 과정이 있었다. 변이, 선택, 그리고 재생(복제)이라는 이 단순한 공식이 약 100세대까지 계속 반복 되었다. 20-30세대를 거치자 볼품없이 이리저리 허우적거리고 넘어지던 블록 생물들이 실제로 수영을 할 수 있는 그런 생물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 일부 생물들은 등 뒤에 펄럭이는 꼬리를 가지는 등 크고 핵심적인 몸체를 발전시켰다. 어떤 꼬리는 돌고래처럼 위아래로 움직였고 또 어떤 꼬리는 상어처럼 옆으로 움직였다. 몇몇 생물들의 경우 다양한 물고기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몸을 안정화 시키는 지느러미가 돋아나기도 했다. 또 다른 생물들은 길고 가느다란 몸체로 발전했는데, 많은 부분들이 서로 연결돼 마치 뱀처럼 꼬리를 휘둘렀다. 또 다른 생물들은 작은 팔을 많이 가진 형태로 발전해 노래기 같이 회전했다. 그리고 또 다른 생물들은 매우 우아한 해마 모양으로 진화했다.
  • 진화의 알고리즘은 수영을 잘하기 위한 단 하나의 최고 방법, 최적의 방법을 찾은 것은 아니기만 대니얼 데닛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화 공식들은 여러 가지 ‘생존을 위한 좋은 기술’을 찾아 냈다. 물에 관한 기초 물리학은 무한하지는 않지만 많은 수의 운동 방식을 허용한다. 물속에서 작전을 펴려면 또한 지느러미나 유체역학적인 몸체로 균형을 잡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물의 물리학은 수영하는 데 성공적인 몸의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제약 조건들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것은 모든 수생 생물들이 인간이 만든 잠수함과 기계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목적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다른 특성, 즉 변이들로 구성되는 이유다. 이것은 또한 심스의 블록 생물들이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재빠르게 이런 성공적인 디자인들을 발견한 이유다.
  • 심스의 컴퓨터 진화가 복잡한 제약 조건을 가진 세계에서 좋은 기술을 발견하는데 성공한 것은 단지 수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심스는 생물들에게 가상의 중력을 가진 평평한 표면에서 걸어가라는 목표를 주고 비슷한 실험도 했다. 다시 진화 공식이 20-30회 거듭되자 이리저리 허우적거리던 생물들이 진화를 했다. 기어가고, 깡충깡충 뛰고, 굴러가고, 심지어 두 다리로 걸어가는 생물들은 물론이고 게처럼 허둥지둥 달리는 생물,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가는 생물들이 나왔다. 또한 가상의 음식 블록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실험에서는 각 블록 생물들이 팔, 갈고리 발톱, 입 등을 진화시켰다.
  • 심스는 각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생존 해법들 중 그 어떤 것도 사전에 전제하지 않았다. 진화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각 블록 생물들에 대해 어떤 디자인도 하지 않았다. 즉, 지느러미, 꼬리, 다리, 발톱 등에 관한 것은 프로그램에 없었다. 이런 디자인들은 발견된 것으로서 많은 세대에 걸쳐 진화 과정을 겪으며 밑에서부터 출현한 것이다. 지난 수백만 년에 걸쳐 생물들에게 눈알, 방호를 위한 위장술, 악취를 뿜어내는 기술 날개, 다른 손가락과 마주할 수 있는 엄지손가락 등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져다준 것도 똑같은 과정을 통해서였다.

혁신을 위한 알고리즘

  • 알고리즘은 하나의 처방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투입 요소들을 넣고 어떤 과정을 통해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그러고 나서 지시사항대로 따르면 어떤 산출물이 확실히 나온다는 그런 처방전이다. 데닛은 알고리즘의 또 다른 보기로 토너먼트를 들었다. 누군가 또는 어떤 기관에서 선수들을 투입하고, 주어진 규칙대로 과정을 거쳐 승자라는 하나의 결과를 확실히 내놓는다. 토너먼트 과정은 꽤 일반적인 알고리즘으로 수많은 기질에도 사용될 수 있다. 여기서 기질이란 알고리즘이 움직이는 바탕이 되는 물질 또는 정보를 생각할 수 있다.
  • 어떤 알고리즘은 기질 중립적(substrate-neutral)이다. 즉, 이런 알고리즘을 분해해 보면 어떤 기초적인 환경 조건이 충족되는 한 기질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작동하는 기본적인 핵심들을 보유하고 있다. 에컨대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분류하는 알고리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알고리즘은 사과를 분류하거나 성의 길이를 분류할 때 유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알고리즘을 정의하는 것은 특정 기질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논리다. 분류 알고리즘은 사과나 성을 물리적으로 분류하는 게 아니라 사과의 무게나 이름 철자의 길이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작업을 한다. 알고리즘들은 정보를 처리하는 공식들이다. 이것은 사실상 컴퓨터 프로그램들이다.
  • 진화는 기질 중립적인 하나의 알고리즘이다. 디자인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정해진 대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정보를 처리한다. 진화는 또한 순환적이다. 즉, 한 사이클의 산출물은 다음 회에 투입물이 된다. 이런 순환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화를 멈추게 하지 않는 한 계속 돌아간다는 얘기다. 데닛의 토너먼트 사례 또한 순환적이다. 전 게임의 결과 –예컨대 준결승– 는 다음 게임 –결승– 의 투입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승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는 언제 멈출지 미리 결정된 게 없다. 태양이 폭발할 때까지, 지구가 더는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때까지 진화는 순환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레고 도서관

  •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생물학자이자 진화 이론가인 스튜어트 카우프만이 레고 조립게임에서 이겼는데, 당시 매우 간단한 빌딩 블록에서 출발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디자인으로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주제로 진화를 연구하고 있던 카우프만에게는 특히 적합한 재능이 아닐 수 없었다. 레고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하고 여러 색깔을 가진 블록들이 무수히 많은 방버븡로 조합되어 흥미롭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 가장 간단한 블록들조차 수많은 치환 또는 변화을 통해 여러 가지로 조립될 수 있다. 예컨대 1by2 직사각형 블록은 서로 동일하지 않다면 –예컨대 색깔이 다르다면– 14가지 다른 방법으로 조립될 수 있다. 만약 2by2 블록 두 개라면 33가지 방법으로 조립될 수 있다. 블록의 수, 크기, 부착 방법의 수가 늘어나면 바꾸어 조립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적당한 크기의 레고 세트라고 해도 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가능한 구조물으리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유한하다. 진화 이론가들은 이런 가능한 변환의 집합을 ‘디자인 공간(design space)’라고 부른다. 창조라라는 이름의 레고 세트에 500개의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레고들이 있다고 하면 여기서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레고 블록 디자인은 대략 10120개나 된다. 대니얼 데닛의 용어를 빌려 이 디자인 집합을 ‘모든 가능한 레고 디자인 도서관’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도서관은 우주 자체 –우주는 단지 약 1080개의 원자들을 갖고 있다.– 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모든 선반들이 고유한 레고 디자인을 위한 지시 사항들을 적어 놓은 종이 노트 카드들로 꽉 들어찬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레고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노트 카드를 집어 든다면 너무도 많은 수의 디자인들이 정말 지루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한 개의 푸른색 2by2 블록을 빨간색 2by2 블록에 다른 방법으로 부착하는 디자인의 수 33가지, 노란색의 2b2 블록에 부착하는 또 다른 디자인이ㅡ 수 33가지 등 단지 두 개의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블록을 연결하는 방법만도 수백만 가지이고, 세 블록을 연결하는 데는 수조 가지나 된다.
  • 그러나 도서관 한복판 어디엔가는 7년간 씨름할 정도로 의욕 속에서 만들어진 384개의 블록으로 구성된 찬란한 레고 우주선 디자인이 박혀있다. 마찬가지로 405개의 블록으로 만들어진 레고 성 디자인은 물론 220개의 블록으로 된 환상적인 레고 말 디자인도 있다. 또한 앞의 성과 똑같은 디자인에 단지 1개의 블록이 추가된 406개의 블록으로 된 레고 성 디자인도 있다. 이렇게 단지 블록 1개 차이의 변이 디자인들도 무수히 많다. 그러나 성에 관한 수조 가지의 변이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레고 도서관에서 정말 흥미로운 디자인은 극히 드물다. 정말이지 너무도 지루하고, 임의적이며, 영문 모를 디자인들도 정말 많다. 그리고 실제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디자인들 또한 많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 세계의 중력에 직면했을 때 넘어지고 갈라지거나 무너져 내리는 그런 디자인들도 많다. 데닛의 용어를 빌리자면 당신이 레고 도서관에서 흥미를 가진 특정 디자인을 발견하기란 현실 세계의 대양에서 특정한 물 한 방울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다.
  • 그러나 당신이 특정한 디자인을 위해 레고 도서관을 찾아야 하는 정말 보람 없는 일을 떠맡았다고 생각해 보자. 지루하고 임의적인 디자인들로 가득 찬 우주보다 훨씬 더 넓은 바다에서 성, 우주선, 말 등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당신이 이리저리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선반들을 엿보고 희미하게나마 흥미로운 디자인 한 개를 발견하는데만 수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우리는 이 광활한 디자인 공간에서 신뢰할 수 있고 또 재빠르게 좋은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알고리즘을 필요로 한다. 진화가 바로 그런 알고르짐이다. 사실상 진화는 ‘그랜드 챔피언(grand champion)’이다.

진화의 구조

  • 모든 알고리즘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구조를 필요로 한다. 알고리즘들은 정보를 처리한다. 따라서 우선 모든 가능한 레고 디자인들을 ‘정보’로 전환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가 레고 디자인을 코드화 하는 방법은 많다. 영어 문장을 사용하여 적을 수도 있다. 에컨대 ‘Attach a re 2by6 block on top of a blue 2by2 block’ 이라는 식이다. 우리는 또 건축가가 청사진을 만드는 방식으로 디자인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또는 레고 디자인을 표시할 특정한 코드를 만들 수도 있다. 예컨대 ‘RED26TOPBLUE22AT56TO12’ 라는 형태다. 또는 1과 0을 이용해 ‘101011100100101 등과 같이 컴퓨터 방식으로 레고 디자인을 표현할 수도 있다. 코딩이 정확히 어떤 형식으로 돼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을 신뢰할 만한게 정확하게 코드화하고 또 풀어낼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디자인 코드화를 ‘도식’이라고 한다. 일단 도식을 정립하고 나면 디자인 공간에 있는 임의의 모든 디자인은 이 도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 그 다음에는 도식으로 표현된 정보를 저장한느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 레고 도서관의 경우 종이 노트 카드에 도식을 적음으로써 저장한다고 생각해 보자. 예컨대 어떤 카드는 ‘RED26TOPBLUE22AT56TO12’ 또 다른 카드는 ‘YELLOW26TOPBLUE22AT56TO12’의 도식들을 적어 놓는 식이다.
  •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도식으로 표현된 이론적 디자인을 현실 세계에서 진짜 플라스틱 레고 건축물로 바꾸는 메커니즘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도식 식별자이다. 생물학적 세계에서 도식 식별자는 DNA를 생물로 바꾸는 메커니즘이다. 예컨대 새들의 경우 새끼에 대한 DNA 디자인을 실제 살아 있는 새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것은 수정란이다. 인간과 다른 포유동물의 도식 식별자는 여성 자궁 속 수정란이다. 데닛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주라기 공원> 이라는 소설과 영화에서 치명적인 약점은 이것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룡을 재탄생 시키려면 과학자들은 공룡이라는 도식의 식별자, 다시 말해 암컷 공룡과 그 알을 필요로 했다는 얘기다.
    • 참고) 정보를 담은 코드와 그 코드를 기록할 저장소, 그 코드를 읽고 해석하여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컴파일러가 있어야 한다는 것
  •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도식 코드가 그 자신의 고유한 도식 식별자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경우 여자 태아가 20주가 될 때면 이미 난소와 함께 그 안에 수백만 개의 알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출산을 하기 전에 자궁 안에 자기 자신의 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딸 안에 그녀의 미래 손자들을 위한 알도 갖고 있는 것이다.
  • 레고 장난감은 아직 스스로 복제하는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레고 도식 식별자는 해당 도식 코드를 알고 있는 일곱 살 어린이다. 이 어린이 앞에 레고 블록들이 담겨 있는 큰 박스를 던져 주고 이를 디자인 하기 위한 코드를 담은 카드를 이 어린 친구에게 넘긴다고 하자. 이 어린이는 충실하게 필요한 플라스틱 부분들을 다 꺼내 놓고 선 종이에 적혀 있는 코드대로 이들을 조립해 디자인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이 어린이를 ‘식별자 (reader)’라고 부를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식별자가 하는 일을 표현할 적절한 용어가 필요하다. 즉, 디자인 공간에 있는 이론적이고 잠재적인 그런 디자인과 실제로 만들어진 살아 있는 디자인을 구별할 용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진화 철학자 데이비드 헐로부터 그 용어를 빌리겠다. 바로 ‘상호작용자(interactor)’이다. 상호작용자는 디자인 공간에서 만들어져 어떤 환경에서 실재화된 디자인을 말한다. 어떤 진화 시스템에서 일단 한 디자인이 만들어져 실재화 되면 그것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선택의 압력에 직면하기 때문에 상호 작용자는 적절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 한편 진화의 구조에서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적합도 함수 (fitness function)’다. 지금까지 레고 도서관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저자는 단지 흥미로운 디자인을 찾고 있다고만 말했다. 누구에게, 무엇에 흥미롭다는 말인가? 칼 심스 모델에서 적합도 함수는 수영 속도를 의미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디자인은 목적을 나타낸다. 따라서 레고 장난감의 목적은 어린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레고 디자인 적합도에 대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할 두 번째 일곱살 어린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식별자는 다양한 도식에 따라 레고 장난감을 조립하고 이를 적합도를 결정하는 어린아이 –심판자라고 부르겠다– 에게 넘긴다. 이 심판자는 자신에게 넘어온 여러 장난감들을 보고, 0(따분하다)에서 100(최고다)의 척도로 평가를 한다.

진화의 과정: 어린이들의 놀이

  • 진화가 작동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정보 처리 기구들이 갖추어지면 우리는 이 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레고 조각들이 식별자의 바닥에 쏟아져 있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레고 도서관에서 ㄷ자인의 도식이 적혀 있는 100개의 카드를 임의로 꺼내어 식별자에게 건넨다. 그는 카드에 적혀 있는 대로 충실히 장난감을 조립해 심판자 앞에 그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러면 이 심판자는 장난감을 따분한 것에서 멋있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척도를 이용해 평가한다. 이 장난감은 완전히 임의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에 평가 점수는 대부분 0이거나 0에 가깝다. 그러나 일부 장난감은 다른 장난감들에 비해 좀 더 흥미롭다는 이유로 약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심판자들이 이렇게 적합도 함수를 적용해 장난감을 평가하는 과정을 ‘선택’이라고 말한다.
  • 식별자는 최고로 높이 평가 받은 2개의 장난감을 선택해 이들의 디자인 변종을 시도한다. 그는 이들의 도식 카드를 꺼내 임의로 반을 뚝 잘라서 서로 바꾸어 끼운다. 그러면 새로운 변종은 가장 높이 평가를 받은 두 장난감 각각의 디자인 특성들을 갖게 된다. 진화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렇게 도식의 부분을 서로 바꾸는 것을 ‘(염색체의) 교차’라고 한다. 진화 알고리즘의 중요한 필요조건 중 하나는 어떤 디자인의 적합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평균적으로 보다 많은 변종들이 여기서 만들어질 것이란 점이다. 디자인의 적합도를 높게 만드는 특징들이 그 집단 내에서 ‘증폭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레고 모집단의 규모에는 제약 조건이 있다. 식별자가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레고 조각들의 수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모집단 안에서 적합도가 높은 장난감의 특성들은 증폭시키고 적합도가 떨어지는 장난감의 특성들은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가은 규칙을 실행할 것이다. 즉, 최고로 적합도가 높은 20개의 디자인들은 ‘교차’하는 짝당 4개의 변종들을 갖게 된다. 그 다음 20개의 경우는 3개, 그 다음 20개는 2개, 그 다음 20개는 1개의 변종을 각각 갖게 되고, 가장 적합도가 낮은 20개의 디자인은 단 하나의 변종도 갖지 못한다. 적합도 점수가 같으면 동전을 던져서 결정을 한다. 처음 100개의 디자인을 가지고 우리는 전체 100개의 변종들 –40+30+20+10+0– 을 만들 것이다.
  • 일단 변종들이 만들어지면 처음 100개는 파괴해서 그 부품들을 박스 안에 도로 집어 넣는다. 우리는 또 높은 점수를 받은 디자인이 박스에서 이용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부품들을 필요로 할 경웬느 가장 점수가 낮은 디자인을 분해해 필요한 부품을 제공한다는 규칙을 도입할 것이다. 레고 세계에서조차 유한한 자원 때문에 경쟁이 있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식별자 어린이가 완벽하지 않다고 가정할 것이다. 때때로 진행 과정에서 실수가 벌어질 것이다. 한 카드에 있는 도식을 다른 카드에 옮겨 적는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 예컨대 우연히 기호를 변화시키거나 누락하고 또는 그전에 없던 기호를 추가할 수 있다. 이런 실수의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즉, 어디에선가 한 부분의 색깔이 바뀌었다든가 특정한 블록 벽돌 부분의 방향이 좀 달라졌다든가 하는 경우들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임의의 실수 하나가 후속적으로 나오는 장난감의 적합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임의의 실수가 바로 ‘돌연변이’다.
  • 자, 이제 두 어린이가 수십 번 이 사이클을 따라간다고 하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칼 심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처럼 처음에는 임의의 낮은 적합도의 디자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보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은 한동안 수많은 흥미 없는 디자인들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한 두 디자인이 심판자의 눈에 띄게 될 것이고, 그 디자인은 변종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할 것이다. 곧 보다 적합도가 높고, 보다 흥미로운 디자인들이 나타난다. 장난감 집단 전체적으로 적합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장난감들에서 공통된 특징들이 나타날 것이다. 심판자의 입맛을 충족 시키는 이른바 ‘좋은 기술들’이다. 예컨대 만약 심판자가 사람과 동물들의 이미지를 갖는 장난감들을 좋아한다면 사지와 얼굴을 가진 장난감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심판자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면 전체적으로 놀아 색조가 많이 흐르는 장난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복잡한 구조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레고 인간, 레고 말, 레고 강아지 등 적합도를 결정하는 심판자의 기호에 맞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나타날 것이다. 레고 도서관을 임의로 찾아 나설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디자인에 대한 발견이 훨씬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 상호 작용자 집단에서 공통된 특징과 좋은 기술들이 출현하는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복잡한 디자인은 내내적으로 모듈적(modular)이다. 우리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시스템, 부분 시스템 그리고 요소들의 배열로 이루어져있다. 예컨대 심장 혈관 시스템에는 심장과 적혈구가 있고, 이는 다시 또 시스템과 부분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인간 몸의 디자인은 자동차의 브레이크 시스템, 브레이크 그 자체, 그리고 개별 브레이크 패드와 똑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복잡한 디자인은 모듈과 부분 모듈들이 계층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집합체로 볼 수 있다. 진화 시스템에서 이들 시스템, 부분 시스템, 요소들 각각은 도식에서 그에 상응하는 코드 정보들을 갖고 있다. 진화적인 건축을 위한 도식은 빌딩 블록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빌딩 블록들은 보다 높은 차원의 빌딩 블록으로 결합되고, 이는 다시 더 높은 차원의 빌딩 블록으로 결합된다.
  • 생물학에서 DNA 도식을 구성하는 빌딩 블록은 바로 개별 유전자들이다. 이 개별 유전자들은 눈 색깔에서부터 유독성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꾸는 화학적 사이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코드화한 것이다. 레고 사례에서 레고 사지와 노란색 등을 코드화하는 도식의 덩어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빌딩 블록이 상호 작용자의 적합도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시간이 갈수록 그 빌딩 블록은 집단 내에서 보다 확산된다. 예컨대 모든 인간은 암모니아를 분해하는 매우 유용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심판자가 노란색을 정말 좋아한다면 모든 도식들에서 노란 빌딩 블록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 실제로 도킨스가 지적했듯이 선택은 상호작용자 그 자체가 아니라 빌딩 블록에서 작용한다. 심판자는 어떤 특징을 선호하고 그 결과 진화 과정은 심판자 앞에 서로 다른 결합들을 매달아 놓고 어떤 특징이 심판자의 눈을 사로 잡는지 시험해 그런 특징을 가진 것들을 더 많이 채택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 특징들은 집단 내에서 보다 확산된다. 따라서 사실상 진화 과정은 개별적인 장난감을 선택하는게 아니다. 비유를 하자면 “심판자는 사지(limbs)가 있는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런 것이다.
  • 이제 그 심판자를 제거하고 다른 심판자로 바꾼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레고 환경에서 적합도가 높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전 심판자의 기호를 충족 시켰던 많은 장난감들이 이제는 심판자 2에 의해 ‘따분한 것’으로 평가되는 적합도의 붕괴가 일어난다. 그러나 일정 시점이 되면 진화 알고리즘이 안착되면서 좀 더 나은 디자인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일단 이런 일이 일어나면 더 좋은 디자인의 변종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고, 결국 레고 장난감 집단들의 적합도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만약 심판자 2가 비행기, 자동차, 녹색을 좋아한다면 날개, 바퀴, 녹색을 많이 가진 그런 디자인들이 출현하기 시작할 것이다.
  • 진화는 가능한 모든 가능성의 공간에서 시작하는 변화의 과정이다. 많은 디자인들을 시험해 보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그중 좋은 것은 더 많이 채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여기에는 어떤 예측, 계획, 합리성, 그리고 의도적인 디자인 같은 것들은 없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알고리즘만 있을 뿐이다.

복제자는 복제를 원한다

  • 내생적인 진화의 논리 또는 외부의 디자이너다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지 않는 그런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구 상에서 생물의 발전을 살펴 보는 것이다. 지구는 대략 46억 년 정도 되었다. 처음 수십억 년 동안은 어떤 종류의 생물도 없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냉각수 같은 대양에서는 여기저기 허우적대는 초기 지구의 풍부한 화학적 작용이 있었다. 격랑이 일면서 땅덩어리가 만들어졌고, 화산 등 대기권으로의 분출도 일어났다. 천문학적으로 많은 수의 분자들이 열을 받고, 냉각되고, 이리저리 튀겨지고, 전기적으로 충전되면서 상호 작용을 하고 서로 반응 했다. 이를 통해 점점 더 복잡한 분자들이 생성 되었다.
  • 이런 과정을 거쳐 30 ~ 35억 년 전에 이르러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분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맨 처음 복제하는 분자의 수준은 매우 단순한 것으로, 본뜨기 형판, 즉 주형을 넘는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자기 복제 분자가 아마도 주변의 다른 화학 물질 집단에서 정반대 분자들을 끌어들이고, 이들이 다시 자신들과 정반대인 분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초기 분자의 복제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마치 네거티브 사진을 찍어 프린트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간단한 자기 복제 분자조차 우연히 일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러나 조의 조의 한 번은 정말 작은 확률이지만 수조의 조의 분자들이 약 10억 년에 걸쳐 1000의 6제곱의 제곱만큼의 상호 작용을 하는 경우라면 충분히 일어날 만하다. 어떤 과학자들은 또한 그 가능성이 열역학 법칙적으로 크게 높아졌다고 믿는다. 초기 지구는 화산과 다른 여러 가지 지열 활동, 그리고 신진 대사의 기초인 반응 네트워크과 복잡한 유기 분자들로 인해 엄청난 양의 자유 에너지를 가졌다. 따라서 자기 복제는 이 모든 에너지가 대양의 화학 작용을 통하여 퍼져 나가는 자연스럽고도 가능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 과학자들은 처음으로 자기 복제를 한 분자 –또는 분자들– 의 정확한 구성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이것이 여전히 중요 연구 영역이 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최소한 하나의 분자는 RNA의 전조와 같은 것이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지구 상의 모든 생물들은 리보솜 RNA 상의 공통된 유전자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단 초기 지구에서 이리저리 튀기는 임의의 화학작용으로부터 첫 복제 분자가 발생했다면 하나의 특이한 논리가 일어난 것이다.
  •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지적한 대로 어떤 복제 과정도 완벽하지 않다. 결국 오류가 끼어들고 이로인해 여기저기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자기 복제 분자는 원래와 거의 비슷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은 것을 만들어 낸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오류가 자기 복제 과정에서 크게 손상될 정도로 그렇게 충분히 큰 게 아니라고 생각해 보자.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화학 물질들의 집단은 조금씩 서로 다른 다양한 자기 복제 분자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 화학 물질 집단 내에 있는 다양한 자기 복제 물질들은 똑같다고 봐야 할 것인가? 도킨스도 동의하듯이 불가피하게도 그렇지 않다. 어떤 분자들은 다른 분자들에 비해 화학적으로 좀 더 안정적일 것이고, 그 결과 이 분자들은 더 오래 살아남거나 자기 복제에 더 빠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더 좋고 더 빠른 자기 복제자들이 집단 내에서 더욱 퍼지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자기 복제를 하는 분자들의 이웃에서 이들의 복제에 쓰이게 될 유한한 원료들이 공급된다. 임의의 변화가 발생해 어떤 분자가 다른 분자에 비해 화학적으로 이런 원료를 끌어들이는데 더 능숙하게 된다면 그 분자는 보다 많은 자기 복제를 하게 될 것이다. 유한한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은 맨 처음부터 진화의 테마였다.
  • 결국, 어떤 분자들은 다른 동료 자기 복제자들의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거나 분해하는 화학적 구조를 우연히 갖추게 되고 이로 인해 공격하는 분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물이 된 분자들을 편입할 수 있다. 이런 우연한 혁신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준다. 혼자서 원료를 발견하고 조립하는 것보다 동료 복제자들로부터 미리 조립된 원료를 취하는게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붕괴에 취약하고 자신의 화학 물질을 도둑 맞은 분자들은 집단 내에서 급격히 쇠퇴하는 반면 훌륭한 파괴자들은 재빠르게 자기 복제를 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일부 자기 복제 분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자기 복제 장치와 외부 세계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하는 화학 물질, 예컨대 지질을 외층부에 우연히 갖게 될지 모른다. 파괴자들을 대비해 방어 장치를 가진 분자들은 성공적으로 보다 빈번하게 자기 복제를 할 것이고, 그만큼 집단 내에서 확산된다. 일단 밖의 세계에 대비한 장벽을 갖추고 복제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눈에 잡히는 어떤 특별한 무엇이 있다. 바로 바이러스다. 어떤 바이러스는 지금 살아 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 분자들의 전쟁 밑바닥에 흐르는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좋은 복제자들이 복제된다는 점이다. 동의어의 반복처럼 들리지만 단순하고 순환적인 논리는 가장 미묘하면서도 강력한 진화의 동인이다. 우연히 복제 능력에 어떤 격차가 발생하면 복제를 촉진시키는 요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집단 내에서 더욱 보편화 될 것이다. 진화는 궁극적으로 복제를 지원하는 빌딩 블록 들을 선택한다. 이것이 도킨스의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 이론의 핵심이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의미는 때때로 잘못 이해되기도 하는데, 도킨스는 유전자가 우리 –또는 다른 생물들– 를 생존 탐색과 관련하여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게 만든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종들에게 협력은 실제로 중요한 생존 수단이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복제의 논리였다. 자신의 복제를 지원하는데 능한 유전자들이 복제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좋은 복제자들이 복제된다’는 논리는 때때로 우리의 컴퓨터를 망쳐 놓는 바이러스의 세계에서도 볼 수 있다. 어떤 성공적인 컴퓨터 바이러스는 자신을 많이 복제하는 바이러스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수신자의 이메일 주소록을 이용해 자신을 복제한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복제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도착할 때 수신자로 하여금 이메일을 열어 보도록 속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바이러스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에서부터 ‘OOO의 누드 사진’에 이르는 제목들을 단 이메일로 날아온다. 최근에 저자가 받은 이메일은 보낸 사람이 ‘관리자’이고 제목은 ‘당신의 이메일 계정이 폐쇄된다’는 제목을 단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해커들이 자신들의 만든 바이러스가 복제되도록 하기 위한 기술들이다. 복제되기 좋은 바이러스들이 복제 되기 때문에 전 세계 컴퓨터 바이러스 집단을 조사해 본다면 특히 잘 속이는 바이러스들이 그중에서도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이렇게 해서 약 38억 년 전 자기 복제 분자 전쟁은 훌륭한 복제자들이 오늘날 RNA와 비슷한 자기 복제 과정, 그리고 분자들과 외부 세계 사이의 기초적인 막을 갖는 정도로 진전됐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세포핵 또는 보다 고등 유기체 세포에서 발견되는 다른 세포 기관 등은 갖추지 못한 그런 수준이었다. 이들 첫 생물 형태는 봉지 안에서 자기 복제를 하는, 예컨대 바다에서 거품이 인 매트 모양으로 떠다니는 간단한 남조식물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일단 자기 복제 분자가 이정도에 이르면 진화는 경주를 향해 출발한 것이나 다름 없다. 보다 복잡한 내부 조직을 갖추고, 이동하고 햇빛을 처리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수많은 단세포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18억 년 전에 이르면 진화는 다세포 생물 형태라는 디자인을 발견한다. 이것이 식물, 동물,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의 폭발을 가져온 것이다.
  • 이 생물 진화 이야기에는 물론 추가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과학적 세부 사항들이 많이 있지만 그 논리는 어떠한 외부적 요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도식과 도식의 식별자, 그리고 적합도 함수가 있으면 바로 진화의 논리는 정립될 수 있다. 생명 이야기에서 도식과 도식 식별자는 똑같은 하나다. 자기 복제 분자들이 코드이면서 동시에 식별자인 것과 같다. 복제를 위한 기술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를 해왔다. 이 과정을 거쳐 DNA와 DNA를 보호하는 핵막, 성적 재생, 그리고 상대방 성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많은 전략들과 같은 혁신들을 만들어 냈다.
  • 레고 실험에서 적합도 함수는 심판자에 의해 외생적으로 주어졌다. 생물학에서 적합도 함수는 내생적이다. 적합도를 결정하는 어떤 제약 조건은 고정적이다. 예컨대 물리나 화학 법칙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적합도 함수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은 시스템과 더불어 공진화를 한다. 하나의 유기체를 둘러싼 환경 중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은 다른 유기체들이다. 각 유기체의 진화를 향한 움직임과 그 반대의 움직임은 다른 유기체들의 적합도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약탈자라면 매우 빠른 스피드 쪽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먹잇감은위장술을 발전 시킬 것이고, 이에 따라 약탈자의 시력은 보다 향상될 것이다. 이런 식의 맞물려 진화하는 일종의 군비 확장 경쟁이 끝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각 움직임마다 적합도 함수가 변한다. 적합도의 또 다른 요소인 지구의 기후조차 생물이 진화하면서 변해 왔다. 예컨대 식물의 발전은 대기권에 산소량을 증가시켰다. 이는 산소를 들이마시는 생물들을 위한 길을 만든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지금은 인간의 진화가 기후는 물론이고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적합도 함수를 더욱 바꿔 놓고 있다.
  • 진화를 위한 준비는 결국 정보 처리로 귀결된다. 진화가 발판을 마련하려면 정보를 처리하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는 도식을 저장하고 수정하고 복사하기 위한 것이다. 생물 세계에서 진화가 출발하려면 열역학과 우연히 결합돼 분자 디자인을 저장하고, 수정하고, 복제할 수 이는 첫 자기 복제 분자가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제 3부에서 경제 세계에서는 진화에 발판을 마련해 주는 정보 처리 매개체가 말과 문서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정보 처리 매개체가 정립되면 차별화, 선택, 그리고 복제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좋은 복제자가 복제되고, 무엇이 적합한지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데, 여기에는 다른 복제자들과의 경쟁이 포함된다. 그렇게 진화는 보다 더 좋은 복제자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디자인 공간을 향해 행진을 시작한다.

적합도 지형 탐색

  • DNA로 코드화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디자인 공간을 생각해 보자. DNA 알파벳은 4문자, C, G, A, T다 이들 4개의 뉴클레오티드 염기는 시토신, 구아닌, 아데닌, 티민이다. 각각 염기쌍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이들은 다시 우리가 익숙한 이중 나선형 DNA로 되어 있다. 인간 게놈은 약 60억 개의 DNA 염기쌍을 갖고 있다. 인간보다 더 긴 DNA 가닥을 가진 생명체의 진화를 생각해 보기위해 염기쌍이 100억 개가 넘는 DNA 알파벳의 모든 가능한 서열을 담고 있는 그런 디자인 공간을 상상해 보자. 나아가 두꺼운 책에다 각각의 서열을 적어 책상 위에 쌓는다고 해보자. 당연히 우주의 규모보다도 훨씬 더 클 것이다. 책상 위 어디엔가 당신의 전체 DNA 서열을 담은 3천 페이지짜리 책 한 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대장균 서열 관련 책 약 1만 900권, 식물 종들 관련 책 1012,000 등 너무도 많은 책들이 있다. 대니얼 데닛은 가능한 모든 DNA 생명체들의 디자인 공간을 가리켜 맨 처음 유전자를 발견한 19세기 수도사의 이름을 따서 ‘멘델의 도서관’ 이라고 부른다. 레고 도서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은 시시한 것들이다.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처음부터 실패작인 돌연변이체를 생산하는, 한마디로 유전자로서는 별 볼일 없다는 얘기다.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는 디자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보다 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대한 디자인 공간의 규모와 비교해 보면 극히 드물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레고 도서관에서와 마찬가지로 멘델 도서관도 유한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특정 시점에서 유한하다. 사실 지구에서 생물의 역사를 보면 단순한 박테리아에서부터 보다 복잡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DNA 가닥의 길이가 확장돼 왔다. 이는 곧 DNA 디자인 공간 규모의 확장이다. 디자인 공간을 풍선의 표면과 비슷한 것으로 새각해 볼 수 있다. 특정 시점에서는 유한하지만 공기 등이 들어가면서 표면이 팽창하듯이 이것도 늘어난다. 멘델 도서관과 같은 디자인 공간의 유한성은 수학적으로는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실제적인 목적 측면에서 보면 무한한 것과 비슷하다. 인간들과 다른 생명체들의 모든 가능한 디자인들에 대한 완전한 탐색은 수많은 우주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 데닛으로부터 또 하나의 이미지를 차용하자. 멘델 도서관에 있는 각 DNA 책은 그 위에 탑처럼 금속 막대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상상하자. 우리는 각 막대기의 높이가 그 밑에 있는 특정 DNA 서열의 적합도를 나타내도록 할 것이다. 그러니까 높을수록 디자인의 적합도가 좋은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적합’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특정 시점에서 특정 환경에 대한 적합을 의미한다. 추가적인 가정을 하나 더 하겠다. 멘델 도서관에 있는 DNA 책들은 한 비트씩 떨어진 순서로 배열되었다고 하자. 가령 AGCCT 서열은 CGCCT 옆에 있고, CGCCT는 GGCCT 옆에 위치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DNA를 담고 있는 책 바로 옆에는 단지 글자 하나만 차이나는 무려 360억 가지 변종들이 있다. 우리는 한 번에 한 글자씩 움직여 책에서 책으로 이동하면서 각 DNA 서열에 대해 막대 높이로 표시되는 적합도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 위 그림의 서로 다른 막대 높이를 가진 산 같은 경관을 보자. 어떤 디자인이 다른 다자인보다 더 좋은지 알 수 있도록 디자인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을 생물학자들은 ‘적합도 지형 –경관– ‘ 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진화 이론가인 시월 라이트가 1931년 처음 개발한 개념이다. 적합도 지형은 디자인 공간에서 좋은 디자인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연구자들에게는 수학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디자인은 높은 적합도 정점을 가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거의 무한에 가까운 디자인 공간에서 좋은 디자인을 발견하는 문제는 적합도 지형에서 높은 정점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 적합도 막대로 구성된 이 거대한 산더미 같은 지형은 어떻게 생겼을까?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모든 막대들이 서로 다른 높이를 갖는 경우다. 이때 그 지형은 완전히 임의적이고, 뾰족한 막대들이 무질서하게 뒤범벅된 그런 모양새일 것이다. <그림 9-4> 또 하나의 극단적인 경우로 완전히 질서 잡힌 지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낮은 적합도에서 높은 적합도로 점진적으로 발전, 탑처럼 올라가면서 후지 산 같은 단일 정점을 가진 모양새다. <그림 9-5>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중간 어디쯤에 해당한다는 것이 카우프만의 주장이다. <그림 9-6>
  • 그러나 당신의 DNA 책과 단지 글자 하나가 다른 DNA 책은 십중팔구 –그것이 특별히 운지 옿은 혹은 운이 나쁜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당신의 것과 똑같은 적합도를 가질 것이다. 두 글자가 다른 DNA 책 또한 동일한 적합도를 가질 것이다.그러나 당신의 DNA 책에서 점점 멀어져 수십 자, 수백 자 또는 수천 자가 다른 DNA 책으로 이동하면 이런 변하ㅗ가 적합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올라가기 시작한다. 멀리 떨어질수록 그 책의 접합도 또한 다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런 변화들이 거리에 따라서 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조그만 변화가 큰 효과를 가질 수도 있고, 큰 변화임에도 반대로 조그만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이웃 DNA 간의 적합도는 단지 개략적으로만 상호 연관되어 있는 셈이다. 책들 사이의 거리가 보다 떨어지도록 이동하면 적합도 변화는 울퉁불퉁한 모양새가 된다. 카우프만이 발견한 것은 이런 적합도 지형에서 개략적인 상관관계의 효과는 임의적으로 뒤범벅된 형태 또는 하나의 정점을 가진 후지산 모양 보다는 스위스 알프스 산과 비슷한 지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산타페 연구소의 짐 크러치필드 등 다른 연구자들은 적합도 지형의 수학적 형상을 연구해 추가적인 특징을 밝혀냈다. 먼저 정상적인 산의 지형과 달리 적합도 지형은 평탄한 지역들로 둘러싸여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유기체 DNA 코드 상의 수많은 조그만 변화들은 그것이 적합도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따라서 당신의 DNA와 한 자가 다른 360억 개의 변종들, 그리고 몇 글자 다르지 않은 수조의 수조의 변종들로 이루어진 지형은 크고 평탄한 모양새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탄한 고원 내부에는 깊은 구멍 또는 무시무시한 크레바스들이 있다. 마치 스위스 치즈의 얽은 자국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구멍에 빠지면 적합도는 크게 떨어진다. 수많은 조그만 돌연변이들이 거의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중에는 꽤 위험한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뇌 기능에서 중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그런 지시가 당신의 DNA에 빠져 있다면 당신은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매우 부정적인 돌연변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매우 긍정적인 조그만 돌연변이도 있다. 그런 긍정적인 조그만 돌연변이들은 적합도의 괄목할만한 향상을 가져오거나, 때때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적합도 향상을 위한 돌연변이’가 추가적으로 나올 길을 열어 놓을 수 있다. 크러치필드는 적합도 지형에서 이를 ‘관문들(potals)’이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마치 산에 있는 한 고원에서 다른 고원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산으로 올라가는 빠른 경로들이다. 앞 장에서 우리는 생태계에 있는 수많은 종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구조를 논하면서 단속 균형을 설명하는 모델을 살펴보았다. 크러치필드에 따르면 평평한 지역, 스위스 치즈의 구멍, 그리고 관문 등 적합도 지형의 특징들은 유전 변화의 영향과 관련하여 비선형성을 갖게 함으로써 단속 균형에도 기여한다. 대부분의 변화들은 거의 또는 아무 영향이 없지만 어떤 변화는 적합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다양한 종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큰 영향을 미친다.
  • 도식 상에 조그만 변화를 나타내는 대부분은 적합도에 미치는 영향이 작거나 거의 없지만 그중의 일부가 큰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 공간은 그림에서 본 바와 같이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모양의 그런 생물학적 적합도 지형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바로 그런 특징이 진화를 적합도 지형을 탐색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알고리즘으로 만든다.

탐색 알고리즘의 그랜드 챔피언

  • 높은 정점을 향해 멘델의 산 같은 적합도 지형을 탐색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나 과제는 가장 높은 정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단일의, 또 명확하게 가장 높은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똑같은 높이의 여러 개 정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모든 막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적합도 막대가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이다. 게다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정점의 높이도 계속 변한다. 그래서 막상 가장 높은 막대를 발견했을 때는 그것이 이미 낮아졌거나, 또 다른 막대가 더 높아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어떤 ‘전역 최적점’을 탐색한다기 보다는 주어진 시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점들을 찾는 것이 과제다.
  • 도보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탐색과 관련하여 세 가지 추가적인 조건들을 소개하겠다. 먼저, 칠흑 같은,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은 방랑이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더 낮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어떤 의미에서도 진화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진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뿐이다.
  • 둘때, 이런 산 같은 적합도 지형은 상당히 위험한 특징을 갖고 있다. 카우프만은 지형에서 적합도가 낮은 계곡이나 갈라진 틈에 붙어 있는 유독성 안개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만약 당신이 헤매다가 너무 낮은 곳으로 가면 안개 속으로 내려가 질식해 숨지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안개는 자연 선택을 나타낸다.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당신의 적합도가 너무 낮으면 당신은 솎아져 나올 것이다.
  • 셋째, 적합도 지형은 정태적이지 않다.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한다. 환경이 변하면 적합도 함수도 변하고, 이에 따라 오늘은 적합도가 높은 정점인 곳이 내일은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환경이 변하면 지형도 움직이고 기복이 생겨난다. 적합도가 떨어지는 계곡들이 갑자기 밀고 나와 새로운 산이 되고, 반면 그전에 높은 정점이었던 곳은 낮은 곳으로 내려앉아 유독성 안개 밑에 위치하는 식이다. 주어진 특정 시점에서 지형의 어떤 지역은 안정적이고, 다른 지역은 텍토닉 플레이트처럼 점진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반면 또 다른 지역들은 매우 활발해, 극적인 융기, 지진, 분화 등으로 가득 찬 단층성과 같은 것들일 수 있다.
  • 소행성의 지구 충돌과 이로 인한 기후 변화처럼 적합도 지형의 일부 변화는 환경에 대한 임의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그러나 움직이고 솟아나는 일의 대부분은 종 자체의 진화 결과다. 앞서 모든 종은 다른 종들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약탈자, 먹잇감, 공생, 기생 등이 관계들이다. 종들은 공진화를 하면서 공격과 방어, 협력과 경쟁 간 일종의 군비 확장 경주를 벌인다. 그 결과 어느 한 종의 진화적 변화는 다른 종들의 적합도에 연쇄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 지형을 탐색하기 위하여 먼저 임의의 한 출발점을 선택한 뒤 다음과 같은 간단한 규칙을 따른다. 임의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서 더 올라간 것이면 다시 임의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전 위치로 돌아와 다시 시도한다. 만약 출발점이 계곡 아래쪽이고 이 규칙을 따른다면 처음에는 계곡 바닥에서 이리저리 헤맬 것이다. 그러나 결국 위로 올라가는 경로를 발견할 것이고 꽤 빠르게 가장 가까운 정점으로 기어오를 것이다. 이런 규칙을 ‘적응적 보행’이라고 부른다. 적응적 보행은 개별적인 정점으로 올라가는데는 효율적이지만 한계가 있다. 일단 정점의 꼭대기에 이르면 거기서 멈추어 국지적인 어떤 최고점에 박혀 버린다. 더 높은 정점이 그 계곡 건너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결코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그곳으로 가려면 다시 처음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적응적 보행 모델은 에베레스트 산들로 이루어진 지역의 중간에 있는 한 흙 두둑 위에 멈춰 버리고 마는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이제 또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임의의 출발점을 선택하자. 이번에는 보행이 아니라 매우 강력한 스카이 콩콩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이 버튼을 누르면 임의의 거리, 임의의 방향으로 옮겨 갈 수 있다. 높은 곳에 도착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당신은 버튼을 계속 누른다. 이 전략은 ‘랜덤 점프 (random jump)’로 불린다.
  • 랜덤 점프는 적응적 보행 모델과 비교하여 국지적인 최고점들에 바히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즉, 낮은 정점에서 보다 높은 정점을 향해 중간에 있는 계곡들을 넘어 계속 뜀박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불리한 점이 있다. 즉, 어떤 죽음의 계곡 밑에 당신이 놓여있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적응적 보행 전략의 경우는 최소한 당신을 가장 낮은 지역에서 빠져 나오게 하고 유독성 안개를 피하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랜덤 점프는 적응적 보행 전략에 비해 좀 위험한 전략이다. 랜덤 점프는 또 실제로 높은 정점을 발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원뿔 형태로 된 산의 기하학을 생각해 보자. 원뿔을 놓고 수평으로 반을 뚝 자르면 원뿔 밑의 반 표면은 위의 반 표면 보다 항상 더 클 것이다. 지형의 보다 큰 표면적은 높은 적합도보다 낮은 적합도를 갖는 영역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평균적으로 볼 때 랜덤 콩콩 점프를 하면 적응도가 낮은 곳에 당신이 위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운 좋게도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가능성 측면에서는 그렇다. 적합도 지형을 탐색하다가 적당히 높은 적합도를 가진 지역을 찾아낸 그 누구에게도 지금보다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질 수 있는 수많은 길들이 항상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 점을 다시 한 번 상기 하는 것이 좋겠다. 어떤 디자인 공간에서 좋은 디자인의 수는 데닛의 표현을 빌리자면 ‘0에 가까울 정도로 적다’
  • 이제 우리는 골라 잡을 수 없는 이른바 홉슨의 선택 (Hobson’s Choice)에 직면한 것 같다. 위험도는 낮지만 매우 높은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작은 전략을 택하든지, 아니면 높은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은 있지만 잘못하면 유독성 안개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 위험도가 큰 전략을 택하든지 해야 한다.

  • 이제 다음으로 두 가지 선택을 혼합한 알고리즘을 시도해 보자. 적응적 보행을 함으로써 지형에서 계속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또한 국지적 최고점에 박혀 버리지 않도록 몇 번의 랜덤 점프도 하는 알고리즘이다. 그리고 보다 짧은 점프 쪽에 가중치를 줄 것이다. 이는 국지적 최고점에서 멈추는 일을 막는데 도움이 되면서도 정말 낮은 계곡에서 종말을 맞을 가능성을 줄여 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변화를 추가한다. 단 한명이 아니라 적합도 지형을 탐색하는 일단의 보행자들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모델은 어떻게 작동할까?
  • 만약 우리가 카우프만의 표현을 비렬 이른바 ‘신의 눈’으로 보면 각 보행자들은 거대한 영역 위에 하나의 조그만 검은 점이고 이들이 보다 높은 정점을 찾아다님에 따라 우리의 군대는 와글거리는 구름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적응적 보행을 취함에 따라 구름은 산 위쪽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결국 구름은 국지적 고원에 이르게 되고 참가자들은 더 높은 곳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구름 또한 그 주변으로 퍼질 것이다. 적응적 보행을 계속함에 따라 일부 참가자들은 스위스 치즈의 구멍으로 빠져 사라지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국지적 고원 주변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때떄로 이 그룹에서 랜덤 점프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주력 부대에서 멀리 떨어져서 나아간다. 마치 선발대처럼 이들 랜덤 점퍼들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새로운 경로들을 찾아 나선다. 일부 점퍼들은 고원 경계 밖으로 벗어나 유독성 안개 밑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또 다른 점퍼들은 우연히도 더 높이 올라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할지 모른다. 적합도가 낮은 계곡에서 더 높은 새로운 계곡으로 가는, 크러치필드가 말한 ‘관문’이 되는 다리들 중 하나를 발견할지 모른다.
  • 우리는 양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을 취한다. 하이킹 참가자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적응적 보행 쪼긍로 할당돼 지형을 탐색해 간다. 그러나 군데군데서 베팅도 한다. 일부 참가자들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채 흩어져서 수색하고 그중 몇몇은 정말 멀리 떨어져 탐색한다. 이러한 전략은 불가피하게 일부 참가자들의 손실도 가져오지만 국지적 고원에 박히지 않고 보다 높은 적합도 지역을 발견할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 이렇게 한 집단 전체에 걸쳐 군데군데 베팅을 하는 것은 정확히 진화가 하는 일이다. 각 상호 작용자 또는 생물에서의 유기체는 하나의 보행자도 볼 수 있다. 복제 과정은 적응적 보행에 에너지를 준다. 만약 높은 적합도를 보이는 보행자가 다른 높은 적합도를 가진 보행자와 그 도식들을 다시 결합하고 그 결과 낮은 적합도를 가진 보행자들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가지는 경향을 보인다면, 보행자들의 구름은 보다 높은 고도에서는 커지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차별화 과정은 –생물에서는 염색체의 교차와 돌연변이를 통하여– 지형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보행자들이 있다는 의미다. 물론 대부분은 같은 지역에 서로 가까이 모여 있을 것이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보행자들이 어쨌든 살아 있다면 최소한 유독성 안개 위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기 보다는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언제나 더 많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최소한 일부는 멀리 떨어져서 더 높은 입지에 이르는 길을 찾을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 만약 멀리 위치한 첨병들이 어떤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면, 가령 새로운 높은 적합도 지역으로 가는 관문이 되는 육교를 건너간다면, 이들은 빠르게 재생하여 그 지역에서 새로운 구름 집단을 만들 것이다. ‘신의 눈’으로 보면 어떤 다른 고원 위에서 와글거리는 구름 집단이 보일 것이다. 이 와글거리는 구름 집단은 다른 말로 하면 새로운 종이다.
  • 차별화를 통한 베팅은 적합도가 높은 지역을 향해 새로운 길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지형이 변하더라도 일부 보행자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보행자 집단의 대부분은 갑자기 지형이 바뀌고 그로 인해 고원이 안개 아래로 붕괴될 순간에도 괜찮은 적합도를 갖는 고원에서 생을 즐기면서 와글와글하고 있을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변화 후 살아남은 보행자들은 멀리 떨어져서 집단을 재생해야 하는 첨병들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낮은 적합도 지역에 있던 첨병들은 지형이 변함에 따라 자신들이 새롭고 보다 높은 고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유전자적 다양성이 집단에서 갖는 중요한 역할이다. 적합도 지형 전역으로 사전에 베팅을 해놓지 않으면 갑자기 환경이 변할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 진화는 점프를 만들어 냄으로써 존 홀란드가 말하는 탐색과 활용 간의 긴장을 관리한다. 진화가 보다 높은 고원을 발견하면 그 집단 구성원의 대부분은 그 지역 주변에 모여들어 재생을 하며 성장한다. 복을 활용하고 자신들이 발견한 이 성공적인 적응을 십분 이용한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언덕을 올라가는, 새로운 길을 찾아 이른바 ‘과도한 적응’을 예방하는 도보 여행자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 흥미롭게도 진화는 탐색과 활용 간의 적절한 균형을 자동적으로 맞춘다는 점을 홀란드는 보여 주었다. 상황이 좋으면, 높은 고원을 발견했다면 그런 환경에 맞추어 진화는 집단의 보다 많은 자원을 이에 대한 활용 쪽에 투입한다. 그러나 상황이 나쁘면, 집단이 계곡 밑에 위치해 있으면 보다 많은 탐색 쪽으로 향한다. 진화가 적합도 지형의 새로운 부분을 점유할 때면 언제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 대한 베팅을 할당한다. 그러나 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여느 다른 베팅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유망해 보이는 베팅에 자원을 증강하고 싶어 한다. 홀란드는 활용과 탐색 간 균형을 위한 최적의 공식을 만들어 냈고 진화는 최적 균형을 달성하는데 매우 근접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진화는 하나의 도박꾼이지만 가능성을 매우 잘 활용하는 그런 도박꾼이다.

좋은 기술, 강요된 움직임, 그리고 경로 의존성

  • 데닛의 이른바 ‘좋은 기술’은 소멸의 고통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매력적이어서 진화적 탐색이 반복적으로, 독립적으로 찾아낼 가능성이 높은 그런 조치들이다. 예컨대 적합도 지형에서 ‘눈을 가진 생물들’로 불리는 크고 높은 산 지역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여기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DNA 책은 빛을 탐지하는 센서를 만들라는 지시를 담고 있다. 눈을 통해 빛을 탐지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사실상 환경에 관계없이 적합도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적합도 지형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이 거주하는 곳은 높은 적합도를 가진 매우 크고 안정적인 지역이다. 이 지여의 규모, 높이 그리고 안정성을 보아 진화적 탐색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크고 높은 산 지역들은 또한 여기에 이르는 다수의 진화 경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좋은 기술은 여러 종들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그 종들은 포유류의 눈 디자인, 곤충의 눈 디자인처럼 어느 정도 서로 다른 디자인을 가질 것이다.
  • 데닛은 또 다른 요소도 설명하고 있다. ‘강요된 움직임 (Forced Moves)’이다. 체스에서 선수들은 때때로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어떤 다른 움직임도 자살적 행위가 되는 그런 상황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적합도 지형에서 진화 탐색 움직임은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이미 적합한 것들로 인해 제약을 받는다. 즉, 적합도가 낮은 유독성 안개 위에 있는 산등성이를 따라 달려가는데, 여기서 벗어나면 죽음이 되는 경우다. 강요된 움직임은 물리학이나 화학 법칙들에 의해 부과된 제약 조건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예컨대 열역학 법칙이 그렇다. 이 법칙은 모든 생물체들은 자신들과 외부 세계 사이에서 낮은 엔트로피의 내부와 높은 엔트로피의 외부 간 장벽으로 작용할 일종의 경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생명체는 피부, 막, 외골격, 프로테인 셸, 또는 다른 용기와 같은 것들을 가진다. 현재의 환경 상태로 정의되거나 종들 간의 공진화로 정의되는 다른 여러 가지 강요된 움직임들은 영원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적합도 지형도의 마지막 결론은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던 ‘경로 의존성’ 이다. 진화 시스템에서는 역사가 중요하다. 당신이 앞으로 갈 길은 당신이 과거에 왔던 길에 의존한다. 차별화는 집단들을 적합도 지형 주변으로 흩어지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랜덤 점프는 임의적이면서 동시에 보다 작은 점프 쪽에 가중치를 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어떤 정점을 어류와 같은 디자인들이 점유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어류들의 환경은 계속 변한다. 생태적 지위가 사라지면서 그 정점은 유독성 안개 속으로 빠지고 있다. 그러나 신의 눈 관점에서 보면 근처에는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형태의 어류 디자인을 위한 정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유독성 안개 위에 있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디자인 사이에 어떠한 경로도, 육교도 없다. 랜덤 점프로 이어지기에는 두 디자인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첫 번째 어류 디자인과 두 번째 어류 디자인 사이를 이어주는 지속 가능한 중간적 생태 지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류는 자신이 가진 ‘역사의 포로’가 되고 만다. 특별한 정점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특별한 경로, 그리고 미래를 위한 선택 방안들은 그 과거에 의해 제한 받는다.
  • 수학자들과 진화 이론가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지형도에 관하여 다양한 종류의 대안적인 탐색 알고리즘을 탐구해 왔다. 어떤 알고리즘은 완전히 임의적인 지형들을 탐색하는데 더 좋고, 어떤 알고리즘은 고도로 질서가 잡히거나 규칙적인 지형을 탐색하는데 더 좋다. 그러나 그 중간에 있는,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수준이고 고원, 구멍 관문 등과 같은 복잡한 특징들을 가진 그런 지형들의 경우는 진화를 이기기 어렵다. 그리고 지형이 계속 변할 때, 탐색 문제가 동적인 것일 때, 탐색과 활용 간의 긴장을 감안해야 할 때, 진화는 모든 알고리즘 중에서 진정 그랜드 챔피언이다.

진화의 기본 요소들

  • 우리가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기질 중립적인 진화 버전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이것들은 진화가 작동하기 위한 필요 조건들이다.
    • 모든 가능한 디자인들을 담고 있는 디자인 공간이 존재한다.
    • 이들 디자인들을 신뢰성 있게 코드화하여 하나의 도식으로 만들 수 있다.
    • 이 도식들을 신뢰성 있게 해독해 이들을 상호 작용자로 만들 수 있는 어떤 형태의 도식 식별자가 있다. 내생적 진화에서 도식은 자신의 고유한 식별자를 코드화 한다.
    • 상호 작용자는 모듈과 모듈의 시스템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도식에서 빌딩 블록들 형태로 코드화 된다.
    • 상호 작용자는 하나의 환경으로 바뀐다. 그리고 환경은 상호 작용자들에게 제약 조건들을 부여한다. 물리 법칙들, 기후, 레고 심판자 등 이 제약 조건들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제약 요소는 유한한 자원을 놓고 상호 작용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이다.
    • 하나의 환경에서 제약 조건들은 집단적으로 적합도 함수를 만들어 낸다. 이에 따라 어떤 상호 작용자는 다른 상호 작용자보다 더 적합한 일이 일어난다.
  • 진화의 과정은 제약 조건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는 알고리즘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디자인 공간을 다음과 같이 탐색한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식들에 변이의 과정이 일어난다. 도식자들은 수많은 작용자들, 예컨대 염색체 교차나 돌연변이 등으로 인해 변할 수 있다.
    • 도식은 하나의 집단을 만들어 내는 상호 작용자들로 바뀐다.
    • 선택의 과정이 상호 작용자들에게 작용한다. 이에 따라 어떤 디자인은 적합도 함수에 의해 다른 디자인들보다 더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적합도가 낮은 상호 작용자는 집단에서 제거될 확률이 보다 높다.
    • 복제의 과정이 있다. 적합한 상호 작용자들은 평균적으로 보다 큰 복제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적합도가 낮은 디자인보다 적합도가 높은 디자인에서 보다 많은 변종들이 만들어진다.
    • 상호 작용자의 적합도에 기여하는 빌딩 블록들은 시간이 갈수록 보다 빈번하게 복제되고, 이에 따라 해당 집단에서 더욱 퍼지게 된다.
    • 마지막으로 변이, 선택, 그리고 복제의 알고리즘 과정은 순환적으로 일어난다. 한 단계에서 나온 산출물은 그 다음 단계에서 투입물 역할을 한다.
  • 진화의 알고리즘이 적절히 준비된 정보 처리 기질, 적합한 모수(parameters)을 가지고 작동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 임의성에서 질서가 나온다. 단순한 임의의 디자인에서 출발, 적합도 함수의 관점에서 지시된 복잡한 디자인을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다. 모든 진화의 과정은 개방형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그 겨로가 알고리즘은 국지적인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임의성을 질서로 바꾸어 나간다.
    • 적합 디자인들의 발견이다. 알고리즘은 적합 디자인을 찾아 매우 광활한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기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내생적인 진화에서 어던 디자인들이 살아남아 환경의 제약 조건 하에서 복제를 해나간다면 그것들은 적합한 디자인들이다. –좋은 복제자들이 복제된다.
    • 연속적인 적응이다. 알고리즘은 적합도 함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학습하고 그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디자인들을 추구한다. 적합도 함수가 변하면 진화는 새로운 선택 압력을 반영하는 디자인들을 생산해 낸다.
    • 지식의 축적이다. 진화 과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식을 축적한다. 우리가 레고 진화 과정을 멈추고 특정 시점에 모든 장난감들에 대한 도식 카드들을 분석하면 카드들에 들어 있는 정보는 역사적으로 장난감들이 진화해 왔던 적합도 환경에 관한 학습 또는 지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DNA는 생물학적 디자인들이 과거에 작업을 해왔던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 만약 당신이 다른 행성에서 떨어진 외계인이고 지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떻게 해서 지구의 한 유기체로부터 DNA를 얻었다면 그 DNA 코드만으로도 지구 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당신이 DNA 식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다– 도식들은 진화 과정에서 일종의 하드 드라이버와 같은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보들을 채워 나간다.
    • 새로운 것의 출현이다. 진화 과정 동안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새로운 변종의 디자인들을 차옺한다. 이론적 의미에서 보면 모든 가능한 디자인들은 이미 디자인 공간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발견하고 실제로 만들어 냄으로써 진화는 새로운 디자인을 현실 세계로 이끈다. 레고 사례에서 진화 알고리즘은 틀림없이 어린이 스스로는 그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디자인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 상의 가상적 진화를 이용해 제트 엔진의 팬블레이드에서 컴퓨터 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해 보는 실험도 새로운 디자인들을 만들어 냈다.
    • 성공적인 디자인에 기여하는 자원의 증가다. 성공적인 디자인 집단들은 성장한다. 성공적인 디자인들이 경쟁에서 이겨 자원을 획득해 감에 따라 성공하지 못한 디자인들은 사라져 간다. 집단들이 크다는 것은 성공적인 도식들이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 측면에서 비성공적인 도식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관리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러한 증가는 평탄한 패턴을 따르는게 아니라 공진화에서 오는 네트워크 효과와 적합도 지형 그 자체 간의 결합에 따른 단속 균형 패턴을 따를 것이다.
  • 진화는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수준의 적합도 지형을 가진 광활한 디자인 공간에서 적합 디자인들을 찾아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 진화는 병행 탐색을 활용한다. 사실 집단의 각 멤버는 개별적인 디자인 실험이다. 많은 보행자들이 밖에서 높은 정점을 찾아다닌다.
    • 진화는 점프의 스펙트럽을 만들어 낸다. 진화는 국지적 최고점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할 위험이 있는 짧고 점짅거인 점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모할 정도로 긴 점프를 많이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진화는 연속적인 혁신의 과정이다. 알고리즘의 순환적 특성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지형이 계속 볂는 특성을 갖고 있는 한 이는 중요하다. 진화는 탐색과 활용의 균형을 맞추어 가기 때문에 기간에 따라 보다 활발하거나 그렇지 않은 탐색 기간이 있을 수 있지만 탐색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시스템은 균형이 없다. 진화 시스템에서 정지는 소멸을 위한 처방이다.
  • 실제로 진화는 말한다. “나는 많은 것들을 시도해서 그 결과를 보고 도움이 되는 건 더 많이 하고 그렇지 않은 건 덜한다.” 그러나 이 이동의 과정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알고리즘은 적합도 함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학습한다. 그리고 그 학습의 지식이 도식에 쌓여 간다. 그리하여 진화 과정은 더욱 적합한 디자인을 탐색하면서 새로운 것을 생성해 낸다.
  • 진화는 놀이와 같다. 배역과 각본은 정해져 있지만 구체적인 배우, 세팅, 그 외의 많은 세부적인 사항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진화 과정은 생물학, 컴퓨터 가상 실험, 레고 장난감 게임에 적용될 수 이쏙, 인간 문화, 기술, 그리고 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보편적인 진화 과정은 구체적인 기질이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조건만 구비되면 바로 앞에서 기술했던 그런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

진화 이론에서 경제 현실로

  • 진화와 경제학은 상호 밀접하게 연관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약 180여 년 전으로 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프레드 마셜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의 많은 거장들이 진화를 경제학에 포함시키는 문제로 씨름해 왔지만 그들은 결국 다음 두 가지 제약을 받았다. 우선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이해를 경제적 진화에 그대로 일대일로 대응시키려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예컨대 유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경제에서는 무엇인가? 기업들의 그룹은 하나의 집단인가? 경제에서 부모와 그 후손들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초기의 노력들은 발라, 제번스 그리고 다른 한계주의자 (한계효용학파)들과 마찬가지로 은유적 추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 생물학 대신 3부에서 우리의 출발점은 조금 전에 우리가 기술했던 진화에 대한 일반적인 알고리즘적 관점이 될 것이다. 진화에 대한 현대의 알고리즘적 관점이 주장하는 것은 진화 시스템들은 보편적 법칙들을 따르는 하나의 보편적 클래스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는 이 클래스의 한 부분이고 이런 법칙들을 따르는지 물을 것이다. 대답이 “예”라면 경제와 생물학적 세계는 둘 다 보편적 클래스에 속한다. 이들은 알고리즘의 구체적인 실행에서 매우 다를 수 있고, 따라서 경제학에서 생물학적 진화가 말하는 부모와 자손들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세계는 진화 시스템의 일반적 법칙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강한, 일종의 가족 유사성을 보여준다.
  • 이런 방향으로 이론을 개척한 사람들은 아마도 리처드 넬슨과 시드니 윈터가 처음일 것이다. 두 사람은 <경제 발전의 진화론(Evolutionary Theory of Economic Change)>이라는 독창적인 책을 저술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들어서고 나서야 이들의 관점에서 출발한 기질 중립적인, 알고리즘적 진화 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존 홀란드의 이정표적인 <자연 및 인공 시스템에서의 적응론(Adaptation in Natural and Artificial Systems)>은 1975년에 나왔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은 1976년에 출간 됐다. 존 스미스의 <진화와 게임 이론(Evoution and the Theory of Games)>은 1982년에 발표 됐다. 그리고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질서의 기원(Origins of Order)>은 1993년이 되어서야 나왔다. 이들 저서들을 비롯한 여러 저서들의 아이디어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관련 연구 프로그램이 만개하는데 씨앗 역할을 했고, 오늘날에도 중요한 연구들이 계속되고 있다.
  • 그러나 넬슨과 윈터는 물론이고 그들의 경제학적 선행자들은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부족했다. 오늘날 엄청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값싼 계산 능력이 당시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진화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큰 집단을 대상으로 수천 번, 수백만 번, 수십억 번 무작정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던 분석적 방법으로 모델링하기란 불가능하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가 더욱 강력해지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 이제 우리는 진화적 놀이의 역할 각본을 갖고 있다. 그 역할을 할 경제적 행위자들을 캐스팅하고 조직, 시장 그리고 국가 경제라는 세팅을 만들 준비가 돼 있다. 그런 놀이의 이야기는 바로 ‘부의 창출’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 그 때가 왔다.

부의 기원/ 창발성: 패턴들의 퍼즐

  • 1315년경 영국 경제는 나쁜 기후로 인한 2번의 연이은 흉작으로 바닥 없는 추락으로 빠져 들었다. 농부들은 물론 귀족과 왕실에서조차 음식을 구하기 어려웠을 정도였고, 영국 경제의 붕괴는 바로 대륙으로 퍼져나가 프랑스 파리에서 네덜란드 남서부까지 침체가 확산되었다.
  • 불경기(depression), 경기 후퇴(recession), 물가 상승(inflation) 등은 근대에 나타난 현상들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이 시작된 이래 반복 되어 왔다. 경제학에서도 똑같이 오래된 패턴들이 있는데, 1인당 부의 장기적인 성장, 부의 분배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패턴들이 그렇게 오래 됐다는 것은 경제의 작동에 깊은 뿌리를 둔 원인들, 즉 특정 시대의 기술, 정부 정책, 사업 행태 등과는 독립적인 그런 원인들의 결과임을 보여 주는 것이 분명하다.
  • 생산, 실업률, 인플레이션 등 경제 관련 시계열 데이터들의 그래프를 보면 데이터들이 곳곳에서 파동을 친다. 이런 요란한 파동에도 불구하고 그 데이터에는 패턴들이 있다.
  • 위 그래프를 보면 몇 가지 패턴을 읽을 수 있는데, 첫째, 장기적 성장 추세를 읽을 수 있다. –이 그래프는 로그를 취한 것으로 실제로는 기하급수적 곡선이다.– 그 다음 이런 장기적 성장 추세 위에는 세 가지의 낙타혹 또는 파고가 층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몇백 년간씩 지속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보다 짧은 등락의 사이클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들은 단지 몇 년간 이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이 그래프의 데이터는 그렇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니다.
  • 다른 시계열 자료들도 이와 비슷하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임의적인 것도 아닌 특성을 갖는다. 예컨대 미국 경기 사이클의 업앤다운(Up and Down)은 명백히 진동하는 패턴을 보여 주지만 그 진동의 빈도는 짧게는 18개월에서 길게는 9년에 걸쳐 있고, 진폭을 보면 완만한 침체들에서부터 깊은 침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은 불규칙적인 역사적 패턴을 이용하여 미래 경제의 행태를 예측하는데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경제학이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는 질문은 두 가지다. 경제 데이터의 패턴들은 왜 그렇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닌 특성을 갖는가? 또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패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뿌리 깊은 구조적 특성은 무엇인가?
  • 전통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이 질문에 답을 하려 노력 해왔다. 전통 경제학은 bottom-up 관점의 미시 경제학과 top-down 관점의 거시 경제학으로 구분 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미시와 거시 경제학이 별도로 분리 되지 않는게 이상적이라는데 동의한다. 미시적 행태에서 출발해 위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하고 거시 패턴으로 출발했으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이론 안에서 두 가지 접근법을 끊어짐 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아직 그런 열망을 달성하지 못했다.

경기 사이클은 꼬물거리는 젤리인가?

  • 신고전파 균형 모델은 저절로 춤을 추거나 파동을 치거나 진동하는 일이 없다. 그 모델은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질 때만 활기를 찾게 된다. 이렇게 균형 모델은 전파 과정을 따라 움직인다. 하나의 충격을 모델에 가하면 모델은 충격을 전달하며 하나의 산출 패턴을 생산한다. 이 모델에 대한 예로써 접시 위에 젤리 더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젤리 더미를 숟가락으로 두드리면 긴 진동이 젤리 전체로 전달되면서 다른 쪽으로도 전해져 젤리가 파동을 치거나 흔들린다. 이렇게 두드리는 것은 외생적 투입이고, 다른 쪽에서 파동 치는 것은 산출 패턴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통 경제학 문헌에서 이렇게 움직이는 모델들은 실제 경기 사이클 모델로 알려져 있다. 이 모델들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핀 키들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코타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다.
  • 그러나 전통적인 젤리 모델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전통 이론은 보통 외생적 투입을 임의적인 것 –최소한 예측이 가능한 패턴을 갖지 않은 것– 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젤리에 대한 투입이 정말 임의적인 것이면 그 산출 또한 임의적일 것이다. 신호는 전파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될 수 있지만 그 산출은 그래도 임의적일 것이다. 이제 숟가락으로 두드리는 투입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젤리의 파동을 그래프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산출 파동은 정확히 숟가락으로 두드린 투입과 시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즉, 두드리는 것이 젤리 전체로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진동이 더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번 두드리면 3-4개의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파동이 처음 두드린 것과는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여전히 임의적이다. 젤리 혼자서는 임의적이고 무질서한 투입을 취하거나 복잡한 질서를 추가할 수 없다. 젤리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이다. 두드리기를 멈추면 젤리는 안정을 되찾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젤리가 진실로 질서 있는 파동을 만들어 낼 유일한 방법은 두드리기라는 투입도 질서 있게 이루어지는 경우다. 만일 SOS를 위한 모스 코드를 젤리에 집어 넣으면 산출 파동은 더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SOS 신호의 구조를 담게 될 것이다.
  • 따라서 실제 경기 사이클에 대한 미시 경제학의 접근은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임의의 데이터를 집어 넣으면 그 산출물은 실제 세계와 별로 비슷하지 않다. 또는 어떤 구조를 갖는 데이터를 집어 넣은 뒤 모델에 어떤 효과를 추가함으로써 산출물이 그렇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닌 실제 데이터의 특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해당 사이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그 설명을 외부 요인들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이제 신케인지언

  • 경제학의 다른 측면, 거시 경제학이 해왔던 일 쪽으로 가보면 이와는 다른 접근법을 볼 수 있다. 거시 경제학자들은 반드시 데이터로 시작해 이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거시 경제학 이론의 역사를 통틀어 그렇게 규칙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임의적인 것도 아닌 특성을 가진 경제를 거시 경제학자들이 신뢰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통적인 미시 경제학의 정통성에서 물러서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시 경제학자들은 좀 다른 방향에서 자신들의 철길을 놓아야 했다.
  • 합리적 균형이라는 집단 또는 조직으로부터의 일탈과 관련하여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전기는 존 케인스가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썼을 때였다. 1930년대 동안 케인스는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불균형 사건 중 하나인 대공황을 목격했다.
  • 신고전파 미시 경제학 이론은 균형을 이룬 경제는 완전 고용의 경제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경제가 그 조건에서 어떻게 이탈할 수 있는지, 또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아야 했다. 케인스가 발전시킨 이야기, 즉 일반 이론은 이에 대한 하나의 동태적인 스토리였다.
  • 어떤 이유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섰다고 생각해 보자. 예컨대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자연재해 또는 전쟁 등으로 말이다. 소비자들과 사업가들은 보다 보수적으로 변하고, 덜 쓰고, 현금에 보다 집착하기 시작한다. 특정 시점에 경제에 있는 현금의 양은 고정적이기 때문에 이런 행태들이 나타나면 유통되는 현금은 줄어 든다. 이는 농부, 제조업자, 상점 주인 그리고 다른 생산자들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스스로 소비도 줄이고 투자도 줄인다. 그 결과 또 누군가의 소득이 줄어든다. 결국 소비와 투자의 급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이는 또 다시 불안감으로 이어져 소비는 더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면 급감하는 소비와 투자, 상승하는 실업률 그리고 소비자들과 사업가들 사이에 점증하는 불간감이라는 안 좋은 방향으로의 악순환이 가속화 된다.
  • 화폐 공급의 이런 위축은 종국적으로 자정 능력을 갖는다고 균형 경제학은 말한다. 즉, 물가와 임금은 화폐 유통량의 감소를 반영해 떨어지고 결국 모든 것은 정상적인 완전 고용 균형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대공황 때 물가와 임금은 분명히 떨어졌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은 소비를 그전보다 훨씬 덜했고 –디플레이션 환경에서 돈은 미래에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그 결과 상황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확산되어 갔다. 케인스는 이런 동태성으로 인해 경제가 아주 오랜 기간 균형에서 벗어난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를 완전 고용으로 되돌리려면 정부가 화폐를 경제 시스템에 투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의 투입으로 소비 하락을 막고, 실업률 상승으로 멈추게 하면 신뢰가 다시 회복돼 악순환 사이클을 선순환 사이클로 역전 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 전후 수년간 서양 정부들은 케인스의 이런 아이디어를 널리 채택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수십 년 동안의 경제 사이클을 보면서 케인스의 아이디어는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 이 논쟁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정점에 달했는데, 당시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가 주창했던 정부 지출과 같은 것으로는 장기 성장에 이르는 게 아니라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의 이 주장은 1970년대 고인플레이션, 저성장 기간 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프리드먼의 시카고 대학 동료 로버트 루카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케인스 이야기의 동태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경제가 나쁜 쪽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며, 이에 따라 자신들의 행태를 스스로 조정해 경제를 다시 완전 고용 균형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합리적인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은 개입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이미 간파하여 정부의 조치를 예상하고 그 정책의 효과를 무력화 시키는 쪽으로 행동한다. 그리 되면 결국 정부 개입은 불경기를 막는데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루카스의 이론은 수학적으로 근사했고 그는 이 연구로 199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더 강력한 이런 합리성 버전은 수많은 전통 경제학자들의 고지식함을 맘껏 이용한 것이다.
  • 루카스의 연구에 이어 UC 버클리 대학 교수이자 2001년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는 허버트 사이먼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런 주장을 내놨다.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토마토를 사면서 정부의 미래 재정 적자를 추정하려고 노력한다는게 실제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데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소비해야 하는데,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얘기다. 애커로프는 귀납적인 합리성 모델(inductively rational model)을 정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을 보여 주었다. 즉, 소비자와 생산자가 완전 합리성에서 약간 모자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정확히는 사람들이 결정을 어떻게 내리든 상관 없이– 케인스가 말한 동태성이 작동되고, 그 결과 경제가 침체로 빠져 드는 데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애커로프는 또한 시간 지체가 경제의 동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가격과 임금의 고착성과 즉각적인 조정을 할 수 없는데서 오는 시간 지체에 주목했다. 그의 모델은 또 정부가 시장에 유동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악순환에 반작용을 가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애커로프의 연구는 에드먼드 펠프스, 올리비에 블랜차드, 그레고리 맨큐와 같은 인물들의 연구와 합쳐져서 오늘날 ‘신케인지언 경제학’의 영역으로 발전했다. 신케인지언 경제학이 경제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좀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정부와 월스크리트 등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자율과 재정 적자 같은 요소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 21세기 초에 전통 경제학은 우리가 경제에서 보는 진동 패턴들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경쟁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미시 경제학에 기초한 ‘실제 경기 사이클 이론’은 합리적 균형 모델 관점에 의지하며 경제를 외부 충격을 단지 전파하는 것으로 본다. 이 이론 하에서 경제적 진동의 핵심 원인들은 외부적인 정치 사건, 기술 변화, 그리고 기타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경기 사이클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 외생적 요인들상의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역사 내내 왜 그렇게 끈질기게 반복되는지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 주지 못한다.
  • 거시 경제학에 토대를 둔 신케인스주의는 전통적 정통성에서 뒤로 물러나 완전하지 않은 합리성 동태성, 그리고 시간 지체 등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측면에서 신케인스주의는 복잡계 경제학을 향해 한 발짝 나간 것이다. 그러나 신케인스주의는 균형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되었다. 그 결과 이론의 실증적 성공은 지금까지 제한적이었다.

모아 놓으면 다르다

  •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 행위자들의 미시적 상호 작용이 어떻게 거시적 구조와 패턴을 유발하는지 논의한 적이 있다. 예컨대 슈거스케이프에서 매우 단순한 행위자들조차 그 상호 작용이 경제 성장과 소득 불평등 같은 패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복잡계 경제학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업적은 행위자 네트워크, 진화의 이론에서 시작해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거시적 패턴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론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어떠할지 그 희미한 빛이라도 볼 수 있게 됐다.
  • 그 이론은 거시 경제학적 패턴을 ‘창발적(emergent)’ 현상들, 다른 행위자나 환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생겨난 시스템의 전체적 특성들로 본다. 복잡계 경제학 역시 경기 사이클, 성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경제적 패턴들을 시스템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내생적으로 일어나는 창발적 현상들로 본다. 복잡 적응 시스템들은 많은 형태의 시스템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테마적인 창발적 패턴들을 갖고 있다. 이 패턴드을 분석하면 그런 시스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그런 테마적인 세 가지 패턴, 진동, 단속 균형, 거듭제곱의 법칙 등을 살펴볼 것이다.

진동: 맥주 세계의 호황과 불황

  • 앞 뒤로 움직이는 시계추, 기타 줄의 떨림, 심장 박동 등은 모두 진동 시스템의 사례다. 경제는 경제 전반의 경기 사이클, 산업 차원의 상품 사이클, 그리고 보다 장기에 걸친 파동 변황에 따라 진동한다.
  • 진동은 복잡 적응 시스템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예컨대 생물의 생태계에서 개체 수는 진동의 패턴을 따른다. 20세기 초반 우크라이나 화학자 알프레드 로트카와 이탈리아 수학자 비토 볼테라는 생태계에서 약탈자와 먹잇감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발생하는 진동을 묘사하기 위해 유명한 모델을 만들었다. 예컨대 여우와 토끼의 개체 수를 생각해 보자. 토끼의 개체 수가 증가하면 여우는 보다 많은 토끼를 잡아 먹을 수 있으므로 여우의 개체 수는 증가하고 그러면 잡아 먹히는 토끼가 많아지므로 토끼의 개체 수는 다시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토끼의 개체 수가 감소하면 먹잇감이 줄어드므로 결국 여우의 개체는 줄어들고 이에 따라 토끼의 개체 수는 다시 늘어난다. 여우와 토끼의 개체 수 진동은 이렇게 일어난다. 이런 동태적 시스템은 결코 정지하지 않고 무한히 진동한다. 로트카와 볼테라 모델에서 진동을 초래하는 외생적인(exogenous) 충격은 없다. 부침(ups and downs)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에서 나온다.
  • 그렇다면 경제 시스템의 구조에서 어떻게 내생적인 진동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경제 시스템을 내생적으로 진동하게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1950년대 MIT의 제이 포레스터는 ‘맥주 유통 게임’으로 불리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과 동태적인 구조를 결합할 경우 이것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통하여 간단한 경제 시스템에서 진동을 만들어 내는지를 증명했다.
  • 먼저 네 명의 지원자들에게 상품의 제조와 유통을 시물레이션 게임을 시킨다. 네 명의 학생들은 각각 양조 업자, 유통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의 역할을 맡는다. 제조업자, 유통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로 구성된 공급 체인은 물론 많은 산업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구조이다. 이 게임에서 맥주 소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없다. 소비자 수요는 소매업자 옆에 엎어 놓은 카드 더미 형태로 제공된다.
  • 이 게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각 참가자는 맥주 상자들을 재고로 갖고 있다. –이는 게임 점수판에 칩으로 표시된다.– 매회 초기에 소매업자가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으면 –예컨대 4상자– 옆의 카드 더미에서 카드를 꺼내어 뒤집은 뒤 도매업자에게 주문을 넘긴다. 도매업자는 소매업자로부터 온 주문을 보고 유통업자에게 넘긴다. 유통업자는 이 주문을 양조업자에게 제출한다. 각자는 일단 주문을 받으면 맥주 상자를 실어 보냄으로써 주문을 충족한다. 양조업자는 유통업자에게 실어 보내고, 유통업자는 도매업자, 그리고 도매업자는 소매업자에게 각각 실어 보낸 후 소매업자는 맥주를 고객에게 판다. 주문 흐름은 고객에서 양조업자로 공급체인을 따라가지만, 맥주 흐름은 그 반대다. 주문이 제출되고 맥주가 공급되면 그 다음 회의 게임이 시작된다.
  • 한편 참가자들은 보유한 재고에 대해 상자당 0.5달러를 지불한다. –맥주를 쌓아서 보관하는 비용– 그리고 맥주의 재고가 바닥나는 경우에는 상자당 1달러를 내야 한다 –화난 고객과 판매 손실을 감안– 따라서 참가자들은 재고가 바닥나는 일 없이 주문을 충족 시키기에 충분한 재고를 보유하려고 한다. 비용의 비대칭성 때문에 –추가적인 재고 비용보다 부족 비용이 더 크다– 플레이어들은 약간의 추가적 재고를 가지려는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게임의 승자는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말은 쉽게 들리지만 몇 번의 곡절 또는 변화가 일어난다. 실제 생활에서처럼 맥주를 주문하는 시점과 주문된 맥주를 받는 시점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다. 예컨대 맥주를 생산해서 트럭에 실어 보내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문을 내는 시점과 그것이 처리되는 시점 간에도 조그만 시간 지체가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주문을 받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신용을 체크하는 등의 일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문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떤 상호 작용도 참가자들 간에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양조업자는 고객 수요가 소매업자 쪽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모른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유통업자들이 보내온 주문이다.
  • 이런 시간 지체들은 상황을 좀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령 당신이 유통업자인데 도매업자로부터 큰 주문을 받는다고 하자. 우선 당신이 보유한 재고에 갑작스러운 감소가 일어난다. 그러면 당신은 그 재고를 채워넣기 위하여 제조업자에 큰 주문을 낸다. 그러나 맥주를 받으려면 몇 회가 걸릴 것이고, 그 사이 또 큰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다음에도 높은 수요가 이어질 것을 예상해 아예 주문을 더 크게 내야 할까? 그러나 일시적인 하락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자칫 2회 뒤에는 당신의 재고가 맥주로 넘칠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들의 행동과 행동에 대한 반응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는 경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 이 게임은 정확히 균형에서 출발한다. 각 참가자들은 4상자의 맥주를 주문받고 정확히 그만큼을 실어보낸다. 수송 파이프라인 또한 꽉 찬 채로 출발, 각 참가자는 게임 1회에서 정확히 4상자의 맥주를 접수한다. 따라서 공급 체인 전체에 걸쳐 재고 수준은 그대로다. 그 이후부터 참가자들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 얼마나 주문할지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참가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소비자 덱에 쌓여 있는 첫 카드들은 4개를 유지한다. 참가자들에 따라서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 회피적이냐에 따라 4개보다 좀 더, 혹은 좀 덜 주문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회에 이르러 소비자 수요가 4개에서 8개로 갑자기 늘어난다. 참가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소비자 수요 수준은 앞으로 남은 게임 동안 8개로 유지될 것이다. 한 번에 주문이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주문의 증가는 공급 체인을 따라 예상치 못한 변화로 이어진다. 전통 경제학에 따르면 수요 측면에서 외생적인 추격이 발생하면 참가자들은 몇 번의 조정 후에 새로운 균형으로 옮겨 가게 돼 있다. 일단 균형에 도달하면 모든 참가자들은 8개를 주문하고 그 결과 각자의 재고도 그대로 유지된다.
  • 그러나 실제 사람들과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주문의 갑작스러운 점프로 재고 수준이 떨어지자 초과 주문을 하는 등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초과 주문의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전달되는 과정에서 확대된다. 수요가 4개에서 8개로 늘어나는 것에 놀란 소매업자는 재고를 다시 채워 넣을 필요를 느낄 것이고, 따라서 12개를 주문한다. 소매업자의 주문이 12개로 늘어나는 것을 본 도매업자는 16개를 주문한다. 그런 식으로 파장이 이어진다. 이런 넘치는 행동 외에도 참가자들은 주문과 실제 수령 상의 시간 지체를 적절히 고려하지 못한다. 그 결과 소매업자는 지난 회에 12개를 주문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재고는 계속 바닥이다 그는 12개를 더 주문한다. 이런 식의 불가피한 결과가 초래되면서 결국 많은 양의 맥주가 공급 체인을 따라 다시 흘러들어가기 싲가하고 각 참가자들은 재고의 늪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 이런 과잉 반응 사이클은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일부 참가자들은 주무을 줄이기 시작하고 심지어 일부는 아예 주문ㅇ르 하지 않기도 한다. 과잉 주문과 과소 주문의 진동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이에 따라 가상의 맥주 사업도 매우 값비싼 부침의 사이클을 겪는다.
  • MIT 교수 존 스터먼과 그 동료들은 세계 여러 곳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맥주 게임을 수백 번이나 했는데, 여기에는 MBA 학생부터 사업가들, 임의로 선정된 사람들, 전문적인 재고 관리자들, 고도로 합리적인 경제학자 등이 포함되었다. 결과는 언제나 같았는데, 거친(wild) 진동의 파장 보였다. 전통 경제학 이론은 참가자들이 완전하게 합리적일 경우 거친 진동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게임은 한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말끔하게 이동한다는 의미다. 실험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이론적으로 합리적인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실제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는 비용은 평균적으로 완전 합리적인 비용의 10배에 달한다.
  • 어떤 종류의 행태로 인해 그렇게 단순한 실험에서 거친 진동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인가? 스터먼은 참가자들이 활용한 의사 결정 규칙을 통계적으로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이 규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단 닻을 내리고, 그 다음 조절한다”는 행태에 기반을 둔 것이다. 참가자들은 재고 수준을 살피고, 시간 지체의 효과를 고려해 자신의 미래 수요를 연역적으로 계산하기 보다는 단순히 주문과 재고 수준에 대한 과거의 패턴을 보고 귀납적으로 추론해 정상적으로 보이는 하나의 패턴에 닻을 내린다 –시선을 고정한다는 의미다– ‘IF, THEN’ 규칙이 논리적으로 그들을 정상적인 패턴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므로 어떤 참가자는 4상자의 맥주를 정상적인 주문 패턴으로 보고 상황이 달라지면 이를 중심으로 조절하려고 한다. 예컨대 “재고가 떨어지고 있다. 더 주문해!” 이런 식으로 의사 결정을 내린다. 시간 지체가 있는 환경에서는 일단 닻을 내리고 조절한다는 규칙이 개인들을 과잉 반응하도록 만들고 그 결과 사이클 행태라는 ‘창발적 패턴’이 발생한다.
  • 맥주 게임은 젤리와 같은 전파 과정이 아니다. 물론 이 게임에도 하나의 회생적인 충격을 받는다. 즉, 주문이 4개에서 8개로 증가하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번의 두들김을 받은 젤리와 달리, 맥주 게임에서는 진동이 시작되면 시스템이 결코 균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맥주 게임에서 진동의 궁극적인 원천은 외부적인 충격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 이것은 단지 시스템을 불할하게 한다는 것 뿐임– 참가자들의 행태와 시스템의 반응(feedback)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외생적인 동력을 전파하는게 아니라 내생적으로 동력을 창출한다.
  •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개별 행태상의 예측불허 변화들이 모이면 거시적 차원에서는 크고, 창발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앞의 사례는 “일단 닻을 내리고 나서 조절한다” 는 규칙이 어떻게 진동을 발생시키는지 보여 준다. 그렇다면 거시 경제의 회전은 훨씬 복잡한 차원의 맥주 게임과 같은 것이 만들어 낸 결과인지 물을 것이다. 경제는 결국 공급 체인, 재고, 시간 지체들로 가득 차 있다. 거시 경제의 실제 진동의 원인은 가지 각색이지만 맥주 게임이 주는 교훈은 사이클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서 활용하는 귀납적 규칙들이 경제 시스템의 동태적 구조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 경제가 거대한 맥주 게임과 같은 것이라면 이것이 던지는 한 가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금리 인하, 재정 지출 증가와 같은 표준적인 해법들은 사이클의 근원을 다룬다기 보다는 단지 그 증상을 다룬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기 사이클을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지만 –실은 주기적인 경기 위축기가 오면 비효율적인 자원의 사용을 씻어 내고 혁신을 부추기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사이클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우리가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 사이클의 효과를 감소 시키고자 한다면 경제 시스템 자체의 구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실 경제의 동태적 구조는 명시적인 정부의 개입이 없다고 하더라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맥주 게임의 사이클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간 지체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가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1960년대 시작된 정보 기술 혁명은 이 두 가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경기 사이클 변동성은 1959년 이후 계속 줄어 왔으며, 특히 1980년대 들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빠르고 값싼 컴퓨터의 광범위한 확산과 정확히 일치한다. 컴퓨터 덕분에 기업들은 신속한 주문 처리, 저스트인타임(just-in-time), 재고 관행 채택, 생산자와 부품 등 공급 체인 간 전자적 연결이 가능해졌다. 줄어든 사이클 변동성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다른 요인들에 비해 기술 및 산업 관행의 변화로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맥주 게임이 변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속 균형: 핵심 기술이 있는가?

  •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뒤 한 세기 동안 생물학자들은 진화는 위엄이 있고 선형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평단한 종의 형성과 소멸의 패턴을 보인다고 가정했다. 그 뒤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굴드와 나일스 엘드리지는 1972년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기존의 이런 관념을 뒤집었다. 그들은 화석 기록은 진화가 평탄한 경로를 결코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히려 진화는 오랜 기간 동안의 정체 상태와 더불어 폭발적인 혁신과 대량 소멸 기간들이 곳곳에 가미된 그런 과정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5억 5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에 터진 진화 혁명 때 다세포 생물의 지구 지배가 일어났다. 오늘날 지구에 있는 주요 종족들의 대부분이 이 당시 탄생했다. 그 후 약 2억 4,500만 년 전, 후기 이첩기 동안 굴드가 말하는 ‘조상의 대소멸’이 일어났다. 지구 위 해양 종족들의 96%가 사라졌다. 굴드는 이와 같이 고요와 폭풍이 교차하는 패턴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속 균형(단선적, 불연속적 균형)’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기술적으로 그렇게 정확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진화는 수학적 의미에서 균형 상황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굴드가 이 용어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정적 혹은 정체의 기간들에 변화의 기간들이 가미된다는 그런 의미였다고 스스로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이 고착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 단속 균형의 패턴은 생물학적 진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눈사태에서부터 주식 시장의 폭락에 이르는 다른 복잡 시스템에서도 나타난다. 복잡계 연구자들은 1980년대부터 이런 패턴들과 그 기원들을 쭉 연구해 오고 있다. 이 연구의 결론 중 하나는 이런 행태를 가져오는데 가장 중요한 기여자는 바로 시스템에서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네트워크 구조라는 점이다. 산타페 연구소의 던컨 와츠와 마크 뉴먼은 많은 형태의 네트워크들이 매우 밀도 있는 연결과 매우 듬성듬성한 연결을 서로 혼합해 놓은 구조를 향해 자기조직화 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인도 과학연구소의 산제이 제인과 네루 센터의 산디프 크리슈나는 생물 생태계에서 단속 균형이 출현한 밑바탕에는 그런 네트워크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 제인과 크리슈나는 컴퓨터 창조물들의 진화 생태계에 관한 가상 실험을 고안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에서 임의로 어떤 종들을 제거할 경우 대개는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러나 이따금 어떤 종들의 경우는 이를 제거하면 일련의 연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대량 소멸로 이어졌다. 이런 종들은 먹이사슬과 생태적 지위의 경쟁 측면에서 다른 종들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종들을 ‘핵심 종’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아메바 같은 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종은 다양한 곤충들과 여과 섭식(filter feeding) 연충의 먹이 원천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다양한 새들과 포유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새들과 포유동물들은 여러 식물의 종들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먹이사슬 밑바탕에 있는 아메바 개체 수에 갑작스러운 감소가 발생하면 그 파장은 생태계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
  • 생태계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인과 크리슈나는 단속 균형에는 세 가지의 뚜렷한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임의의 국면 (random phase)이다. 네트워크가 퍼져 나가지만 특정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임의의 여러 변화들이 일어나지만 이 단계에서는 큰 효과를 수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국면은 균형의 기간이다. 그 뒤 어떤 혁신이 일어나면서 네트워크는 성장 국면으로 바뀐다. 국면 전환을 가져오는 이런 혁신은 양의 되먹임 고리를 통해 다른 혁신들을 촉진 시킨다. 혁신이 추가적인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 생태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먹이와 생태 지위 네트워크에 질서가 형성된다. 이런 성장 국면은 계속 이어지는게 아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성장 국면이 완화되면서 조직화된 국면이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변화들이 통합되고 네트워크는 고도로 구조화된다. 그리고 핵심 종들은 상호 작용 네트워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마치 항공기의 비행 경로를 그린 지도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도시처럼 말이다. 네트워크는 조직화된 국면에서 한동한 계속해서 끓기만 한다.(균형의 또 다른 기간이다.) 그러나 그 뒤 어떤 혁신이나 돌연한 변화가 핵심 종들에 타격을 가하는 일이 발생한다. 핵심 종에 영향을 주는 변화는 전체 조직 구조로 퍼져 나가고 네트워크는 멸종의 파고 속에서 무너진다. 이런 과정이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임의의 국면이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성장 국면이 오는 식으로 반복된다.
  • 많은 관찰자들은 기술 혁신은 정적과 폭풍이라는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중에는 카를 맑스와 요제프 슘페터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기술 혁신은 제한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1957년 GE는 석영 할로겐 램프를 발명했다. 이 기술은 1980년대 이르러 가격이 매우 싸졌고, 그 결과 할로겐 전구는 대중적인 소비 제품이 되었다. 할로겐 전구는 표준 백열광 전구에 비해 하나의 중요한 발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사회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처음에는 선행 기술에 대해 점진적인 발전에 불과했지만 커다란 영향을 몰고 온 것들도 있다. 1901년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영국 콘월에서 대서양 건너편 캐나타의 뉴펀들랜드로 전파를 이용해 세 번의 모스 코드 신호를 보냈다. 마르코니의 발명은 유선 전신에 비해 보다 싸고 편리한 대안 정도의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발명은 인상적인게 아니었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의 인용에 따르면 앵글로 아메리칸 케이블 회사는 이 신기술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부했다. “무선 전신 기술의 가능성은 상업적으로 너무 멀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낙관한다.” 라디오는 그것만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뒤 TV, 마이크로파 통신, 레이더, 이동 전화, 무선 인터넷의 발명을 유도했다. 마르코니의 발명은 대중문화, 오락, 정치, 군사 전략에 이르기까지 눈사태 같은 변화를 불러왔다.
  • 지난 수년에 걸쳐 기술 개발을 하나의 진화 과정으로 보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왔다. 이 연구에서 제기된 두 가지 중요한 관찰은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단속 균형과 관련이 있다. 첫째, 어떤 기술도 독립적으로 개발되지 않는다. 모든 기술은 다른 기술들과의 관계에 의존한다. 예컨대 이동 전화의 발명은 라디오 기술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기술과 코딩 기술 등 다른 많은 분야를 활용했다. 이러한 상호 관계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안니라 경제적인 것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그 주변에서 같이 성장한 경제적 연계망에는 철강에서부터 석유, 호텔, 패스트푸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산업들이 포함돼 있다.
  • 둘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킴 클라크가 지적했듯이 기술은 본질적으로 모듈적이다. 예컨대 자동차는 엔진, 변속기, 차체 등으로 만들어 졌다. 이런 모듈들이 조립돼 만들어진게 이른바 아키텍처(architecture)다. 모듈의 혁신은 새로운 아키텍쳐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마이크로 칩으로 PC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후속적으로, 연관되는 혁신들을 촉진하는 등 큰 파급 효과를 갖는 경우는 아키텍처 혁신이다.
  • 우리는 제인과 크리슈나 모델에서 단속 균형 패턴을 가져오는 중요한 특징 두 가지를 알았다. 상호 작용을 하는 네트워크와 개별 노드의 촉매 효과다. 11장에서 기술 연계망이 어떻게 연쇄적 변화와 연관되면서 단속 균형이라는 창발적 패턴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어떤 특정 기술들은 이 연계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살펴볼 것이다.

거듭제곱 법칙: 지진과 주식 시장

  • 참고) 용어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을 다른 곳에서는 멱함수 법칙이라고도 한다.
  • 참고) 랜덤 워크란 한 지점에서 출발한 사람이 일직선 위를 1회에 일정한 거리 a만큼 멋대로 움직일 때 n회 걸음을 옮긴 후 출발점으로부터의 거리 r와 r+dr 사이에 있을 확률을 구하는 문제. 난보(亂步) ·취보(醉步)라고도 한다.
  • 위 그림은 예일 대학의 수학자 베노이트 만델브로트의 연구에서 따온 것이다. 하나는 1959년부터 1996년까지 IBM의 주식 가격에 로그를 취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랜덤워크 데이터이다 –이 랜덤워크는 그 안에 하나의 성장 추세를 갖고 있다.– 이 그래프는 매우 비슷해 보여서 구분을 해 놓지 않으면 어느 것이 IBM 주식이고 어느 것이 랜덤워크인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랜덤워크는 100년에 걸쳐 금융이론의 핵심이 되어 왔다.
  • 그러나 절대적인 가격 수준이 아닌 특정한 날에 주식 가격이 얼마나 올라가고 내려갔는지를 표현한 위 그림에 의하면 두 그래프는 매우 다르게 보인다.
  • IBM 주식 그래프에는 뾰족한 곳들이 군데군데 있는데, 다시 말해 가격이 크게 움직인 기간과 작게 움직인 기간들이 시간에 따라 집적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 아래의 랜덤워크 그래프는 가격이 크게 움직인 기간과 작게 움직인 기간들이 사간에 따라 임의적으로 혼재한 양상으로 모호해 보인다. 이렇게 보면 IBM 데이터는 모호한 랜덤워크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몇 연구자들은 주식 가격이 랜덤워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 군데군데 집적 모양의 IBM 패턴은 가격의 변동성이 시간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속균형이 보여주는 폭풍-고요-폭풍이라는 형태의 연속과 유사하다. 랜덤워크 그래프에서는 가격의 움직임이 다른 것에 비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없지만 IBM 데이터는 다른 것에 비해 높이 치솟은 것들도 있고 푹 꺼진 것들도 있다. 무엇이 이렇게 극적인 가격 움직임을 초래하는 것인가?
  • 전통적 경제학에서는 새로운 뉴스가 시장에 전달될 때 주식 가격이 변동한다고 말한다. 전통 이론의 예측 중 하나는 가격의 큰 움직임은 예상치 못한 빅뉴스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커틀러, 제임스 포터바, 래리 서머스는 1989년 한 연구에서 이런 예측을 검정해 봤다. 그는 1941년부터 1987년까지 가장 변동이 컸던 미국 주식 시장 움직임을 살펴보고 그 당시의 신문을 쭉 훑어 시장의 큰 움직임과 일치하는 뉴스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러나 실제로 주식 시장의 대폭락 시점 앞뒤로 그렇게 특이한 뉴스들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7년 S&P 500 지수가 20% 폭락한 것에 대한 ‘뉴욕 타임스’의 설명은 “달러 가치 하락과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 였으나 이것은 매번 제기되던 이슈이지 새로 불거진 이슈는 아니었다. 1946년 9월 3일 또 다른 폭락이 있었던 날, 신문의 기사 제목은 “가격이 급락할 근본 이유가 없다” 였다.
  • 커틀러와 그의 동료들은 뒤집어서 살펴보기도 했다. 즉, 해당 기간 동안 큰 뉴스들을 조사해서 그 당시 주식 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았다. 예컨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을 때 주식시장은 단지 4.4% 떨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평화적으로 해결 됐을 때 시장은 단지 2.2% 올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왜 그렇게 큰 뉴스가 시장의 변동성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관찰에서 얻을 수 있다. 주식 가격 움직임은 랜덤워크를 많이 닮은 게 아니라 이와는 다른 현상, 즉 지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 1950년대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 출신 지리물리학자들인 베노 구텐베르크와 찰스 리히터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도서관에서 지진을 다룬 연구들을 죄다 찾아보았다. 이들은 얼마나 많은 지진들이 여러 가지 강도별로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예컨대 규모 2의 지진은 규모 4의 지진보다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더 큰가와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지진 자료들을 각 구간별로 나누어보았다. 예컨대 규모 2.0~2.5, 2.5~3.0 등으로 나누고 분포 곡선을 그려 보았더니 슈거스케이프의 소득 자료 그래프와 비슷하게 나왔다.
  • 가장 잘 알려진 분포는 종형(bell curve)이다. 이는 ‘정상 분포’, ‘가우스 분포’ 등으로 불린다. 만약 우리가 어떤 모집단에서 여자의 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 분포를 그려보면 종 모양의 곡선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의 키는 150-180cm 사이에 존재하며 키가 과도하게 크거나 작은 여자들은 매우 적다는 얘기다.
  • 위 그림은 구텐베르크와 리히터가 그린 그래프에 로그를 취해 표현한 것이다. 이 그래프는 지진이 클 수록 그 빈도 수는 적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진 에너지가 2배가 될 경우 그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1/4로 떨어진다. 그 결과 그래프는 오른쪽으로 가면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물리학자들은 이런 관계를 거듭제곱의 법칙 (power law)라고 부른다. 분포가 지수 또는 거듭제곱을 갖는 방정식으로 표현된다는 이유에서다.
  • 거듭제곱의 법칙은 여러 광범위한 현상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생물들의 소멸 사건들의 규모, 태양 표면의 폭발 강도, 규모별 도시 순위, 교통 혼잡, 면사의 가격, 전쟁에서의 사망자 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섹스 파트너의 분포 등이 그렇다. 거듭제곱 법칙은 진동과 단속 균형과 더불어 복잡 적응 시스템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 지진이 처음으로 발견된 거듭제곱 법칙은 아니다. 사실 거듭제곱 법칙의 첫 발견은 경제학에서였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빌프레도 파레토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이 거듭제곱 법칙인지 몰랐다. 소득이 1% 증가할 때 그에 해당되는 가구 수의 감소 폭은 1.5%였는데, 양 축에 로그-로그를 취하면 직선이 나온다.
  • 거듭제곱 법칙은 1960년대 경제학에서 다시 살짝 나타났다. 베노이트 만델브로트가 시카고 상품 거래 시장에서 면사 가격의 변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다. 만델브로 만델브로트는 데이터를 그래프로 그렸을 때 면사 가격 변동이 IBM 주식 가격처럼, 전통 이론이 예측하는 것보다훨씬 더 큰 움직임들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게다가 그는 이 가격 변동에는 어떤 자연적인 시간 척도가 없는 것 같다는 점도 발견했다. 그래프의 한 부분, 가령 한 시간 구간을 잘라 하루 길이로 늘렸더니, 어느 그래프가 시간별 데이터이고 어느 것이 1일 데이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금, 밀 등 다른 상품 데이터들도 조사했는데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 바로 거듭제곱 법칙이었다. 만델브로트의 발견을 경제학자들은 무시했는데, 어떤 이들은 그가 수학자였기 때문에, 또 다른 이들은 그의 연구 결과가 전통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 파레토와 만델브로트가 했던 발견의 놀라운 특성은 1980년,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조명 받았다. 경제를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 보는 아이디어들이 나오면서 거듭제곱 법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촉발되던 때였다. 물리학자들은 자연 시스템에서 거듭제곱 법칙을 분석해 본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경제물리학자(econophysicist)들이 주식 시장 데이터들 쳐다보기 시작했다.
  • 그들 중 보스턴 대학의 진 스탠리는 흥미로운 계산 결과를 내놨다.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이 주장하는 대로 랜덤워크를 따른다면 1987년 블랙 먼데이 대폭락이 일어날 확률은 10-148% 였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플랑크(plank) 길이가 10-33cm 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얼마나 작은 값인지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임의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다가 그런 대폭락을 겪는 경우는 엄청나게 일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가우시안 분포나 랜덤워크는 표준 편차 5보다 더 큰 변동을 거의 겪지 않는다. 그러나 주식 시장 대폭락과 같은 데이터를 보면 표준 편차 5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큰 편차를 갖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스탠리와 그의 동료들은 모든 주식 거래를 대상으로 1994년부터 1995년까지 5분마다 표본 추출을 했다. 대상은 미국에서 가장 큰 1천 개 기업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4천만 개나 되는 대량의 데이터를 컴퓨터를 통해 고속으로 처리하기 싲가했다. 주식 가격의 변동은 분포의 꼬리 부분에서 거듭제곱을 따른다는 게 분명했다.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이들은 1962년에서 1996년까지 35년간에 걸쳐 6천 개의 미국 주식들을 대상으로 3천만 개의 1일 데이터를 조사했다. 이런 기록들 역시 거듭제곱 법칙을 보여주었다. 전통 경제학자는 스탠리가 조사했던 데이터들은 단기간인 5분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비가우스적(non-Gaussian) 모습이 나왔을 뿐 좀 더 긴 기간을 대상으로 하면 가우스적으로 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스탠리는 5분에서 6,240분 –16일을 넘어서면 어떤 강한 결론을 내는 데 충분한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 에 이르는 기간을 세 번 –길이 순으로– 변화시켜 보았다. 기간이 길면 좀 더 가우스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듭제곱 법칙을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 이런 연구 결과는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변동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시장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를 경우 검은 월요일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0-5에 가까워진다. 이는 언제인지 몰라도 100년에 한 번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 놀랍게도 다른 경제적 데이터에서도 거듭제곱 법칙은 분명히 나타났다. 로버트 액스텔은 1997년 미국 센서스 데이터를 사용하여 1명 이상을 고용한 550만개 기업을 분석했는데, 종업원 수로 측정한 기업드르이 규모 또한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 다는 점을 발견했다. 스탠리와 연구 팀은 국가의 GDP 성장은 물론이고 기업의 매출 성장도 마찬가지로 그 규모가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주식 시장은 왜 변동성이 큰가?

  •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변동성이 큰 이유는 무엇인가? 초기 산타페 연구소에서 경제학 미팅에 참석했던 물리학자인 도인 파머와 그의 연구 협력 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믿고 있다. 요점은 주식 거래소에서 우리는 두 가지 형태의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시장가 주문 –시세대로의 매매 주문 또는 성립가 주문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다. 거래자가 이용 가능한 가장 좋은 가격에 주식 X를 바로 매수하거나 매도하라고 말하는 주문이다. 또 하나는 제한 주문이다. 거래자는 가격이 100달러 떨어지면 주식 X를 매수하라고 하고, 반대로 가격이 100달러 오르면 주식 X를 매도하라고 말한다. 이 경우 100달러는 거래자가 거래를 준비하는 제한선이다. 시장의 모든 주식에 대해 제한 주문을 기록한 제한 주문 장부가 있다.
  • 제한 주문 장부는 아직 충족되지 못한 주문들을 위한 일종의 재고 장치와 같은 것이다. 거래자가 주식 X에 대해 100달러에 매수 제한 주문을 내고 현재 가격이 110달러라면 이 주문은 가격이 100달러로 떨어져 매수 주문이 이루어지거나 주문이 취소될 때까지 이 원장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제한 주문 장부를 보면 무엇이 최선의 매수 제안이고, 또 최선의 매도 제안인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최선의 매수 제안은 100달러이고, 최선의 매도 제안은 102달러일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를 ‘매수 호가-매도 호가 범위(bid-ask spread)’라고 한다.
  • 이제는 새로운 시장가 주문이 제한 주문 장부에서 일치하는 것이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모든 거래소가 공유하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바로 가격 우선과 시간 우선이다. 앞서 시장가 주문은 지금 바로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가격에서 내는 매수 또는 매도 주문이다. 가격 우선은 주문 장부에서 최선의 가격에서 시작해 맺을 수 있는 주문은 다 체결하고 그 다음 최선의 가격 수준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시간 우선은 주문 장부에 똑같은 가격에 두 개의 제한 주문이 있을 경우, 먼저 낸 주문이 우선적으로 맺어진다는 의미다.
  • 이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하자. 당신은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 X를 1,000주에 사달라는 시장가 주문을 내고 당신의 주문을 거래소로 송부한다. 현재 주문 장부에서 최선의 매도 제안은 102달러에 나온 제한 주문이고 그 가격에 가능한 주식 수는 200주다. 이 시스템은 우선 그 가격에 200주를 확보하고 아직 800주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그 다음 최선의 가격을 찾아 나선다. 그 결과 105달러에 300주 매도 주문을 발견하고 이 주식을 매입한다. 그러나 아직 500주가 남아있다. 다시 주문 장부를 조사해 그 다음 최선 가격을 조사해 본 결과 107달러에 200주 제한 매도 주문, 그리고 역시 같은 가격에 600주 제한 매도 주문을 찾아낸다. 그런데 200주 매도 주문이 주문 예약 장부에 더 오래 기록돼 있었다고 가정하면 시간 우선을 적용해 우선 이 주문부터 먼저 받아들인다. 그리고 두 번째 주문에서 300주를 더해 500주를 채운다. 당신의 주문은 이제 다 채워졌으며 평균 105.4달러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현재의 주문 장부에 상황에서는 이것이 1,000주를 매수할 수 있는 최선의 가격이다. 1,000주 거래가 끝남에 따라 이제는 107달러에 이용 가능한 300주가 남아 있는 최선의 매도 호가다. 당신이 낸 1,000주 시장가 매수 주문의 영향으로 매도 가격은 102달러에서 107달러로 올라갔다. 파머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즉, 제한 주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지는 눈처럼 주문 장부에 뿌려지면서 가격 수준별로 쌓인다. 그런 다음 시장가 주문 –또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 차이 범위 내에 있는 제한 주문– 이 나오면 주문서에 있는 제한 주문들이 나가게 되고 이로 인해 쌓여 있는 재고의 가격이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 파머와 그의 팀은 주문 완성 과정과 제한 주문 장부의 구조가 어떻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들은 주문 장부에 대한 완전한 열람과 함께 거래별 데이터를 보여 주는 런던 거래소로 가서 가장 많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6개 주식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연구자들은 약 4천만 건 이상을 분석했는데, 여기에는 주문 발주와 취소도 포함됐다. 파머와 그의 팀은 큰 가격 변동의 원인은 주문서 자체의 구조라는 점을 발견했다. 주문서에 쌓인 주문들 간의 가격 수준 차이가 클 때 큰 변동이 일어났다.
  • 이에 대한 보기로 이들은 글로벌 제약 회사 아스트라제네카 주식의 거래 순간을 관찰했다. 그들이 연구했던 특정 시점의 아스트라제네카의 제한 주문서에는 31.84달러의 소량의 매도 주문과 그다음에는 이와 큰 차이가 나는 32.3달러의 제한 매도 주문이 있다. 그 후 한 건의 소량의 시장가 매수 주문이 들어왔고, 매도 호가는 한 번의 거래로 31.84달러에서 32.3달러로 올랐다. 46펜스가 올라간 1.4% 증가였다. 이 한 번의 거래, 그것도 2만 8천 달러 정도인 작은 거래로 주식 가격은 23펜스 올랐다. 이로 인해 아스트라제네카의 전체 시장 가치는 3억 7,400만 파운드가 올랐다. 그러나 그날 신문에 특이한 뉴스는 없었다. 이렇게 큰 시장 가치의 변화는 단지 주문 장부에 쌓여 있던 주문 패턴의 인위적 구조에 따른 결과다.
  • 추가적인 분석에서 파머와 그의 연구 팀은 이런 일들이 꽤 흔하며, 제한 주문서는 일반적으로 덩어리처럼 뭉쳐 있으면서 동시에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밝혀냈다. 규모가 크고, 유동적인 주식의 경우조차 제한 주문은 30개 정도의 가격 수준에 몰려 있고 나머지 가격 범위에는 대부분 비어 있어 격차가 발생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제한 주문은 최선의 매수, 매도 가격 주위에 몰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른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팀은 주문들이 주문 장부 전체에 걸쳐 퍼져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현재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 수준에서 매도 주문을 고집할 수도 있다. 가격이 결국 상승할 것이라는 희망에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주문 패턴이 고르지 못하고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 전문 거래자들은 큰 주식이라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유동성이 작고, 들어온 주문들의 패턴도 그렇게 고르지 못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큰 거래를 시간에 따라 조금씩 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한 번에 큰 거래가 일어나면 가격이 너무 크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머와 그 동료들의 연구가 나오기까지 이런 고르지 못한 주문 패턴이 주식 변동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들은 주문 예약의 수학적 모델을 만들고 임의의 거래를 할 때 –다시 말해 아무런 실제 뉴스가 없을 때– 예약 주문의 구조는 그 자체로 중요한 변동성의 원인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작고 거래량이 적은 주식들의 경우 크고 유동성이 큰 주식들보다 변동성이 더 크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 후속적인 연구에서 파머와 그의 동료 마이크 스자볼크스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제한 주문 장부에 있는 주문 발주 패턴을 자세히 조사해 봤다. 그들이 집중적으로 본 변수는 현재 최선인 매수-매도 범위와 새로운 제한 주문과의 거리 패턴이었다. 예컨대 현재 최선의 매수-매도 가격 범위가 100달러에서 102달러라면 매도 제한 주문이 101달러, 102달러, 103달러 등의 가격에 이를 가능성은 얼마인가? 또 매수 제한 주문이 101달러, 100달러, 99달러에 이를 가능성은 얼마인가? 연구팀은 주문들이 매우 규칙적인 패턴을 따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패턴은 매수-매도 호가 범위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학생 분포’의 모양새 –마녀가 쓰고 있는 끝이 뾰족한 모자– 다. 파머와 스자볼크스는 주문 패턴의 규칙성은 주문을 발주하는 거래자들의 행태에도 어느 정도 규칙성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거래는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사건들로 파생된다는 전통 이론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파머와 스자볼크스는 이 연구 결과를 제한 주문 장부에 대한 그 전의 연구와 결합했을 때 자신들이 연구했던 주식들이 나타낸 이른바 거듭제곱 법칙에 의한 변동성을 거의 비슷한 정도로 재생할 수 있었다.
  • 그런 연구 결과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이 주식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아스트라제네카가 투자자들이 놀랄 그런 결과들을 발표하면 그 주식은 반응할 것이 분명하다. 제한 주문 장부는 많은 경우 기억의 한 형태로서 또는 그 안에 내재돼 있는 주문 패턴은 해당 주문들이 발주될 당시의 뉴스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뉴스의 창고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주식 가격 변동 중에는 현재의 뉴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대신 새로운 주문과 그 주문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장부의 특정한 주문 패턴이 상호 작용하면서 나오는 일종의 인공 산물인 경우들도 많다는 것을 이 연구 결과는 보여 주고 있다.
  • 일부 전통 경제학자들은 이런 가격 변동은 무시해도 되는 하나의 단기적 잡음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지 모른다. 이에 대한 파머의 대답은 두 가지다. 우선 제한 주문의 영향은 결코 단기간에 끝나 버리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파머와 그의 연구 팀은 또 같은 변동성 분포가 훨씬 더 긴 시간 척도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다음으로 그것은 임의적인 잡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격 변동의 거듭제곱 법칙은 앞서 샆펴 보았던 맥주 게임에서의 진동이 해당 시스템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과 같이 시스템 그 자체의 구조에서 파생된다는 얘기다. 파머의 연구 결과는 개별 주식에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 많은 측면에서 맥주 게임과 파머 연구 팀 모델이 던지는 시사점들이 같다. 경기 사이클과 주식 가격 변동 등 복잡한 창발적 현상들은 세 가지 근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시스템 참가자들의 행태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제 인간들의 행태를 보면 규칙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맥주 게임 참가자들이 보여 준 ‘일단 닻을 내린 다음 조절하는 규칙’일 수도 있고, 주식 주문에서 ‘학생 분포’를 보여주는 그런 규칙성일 수도 있다. 둘째, 시스템의 제도적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맥주 게임에서 제조업자와 소매업자들 간의 공급 체인 구조는 참가자들의 행태와 결합해 진동을 일으키는 그런 역동성을 만들어 냈다. 주식 시장의 경우에는 제한 주문 시스템의 구조가 거래자들의 행태와 결합, 거듭제곱 법칙이라는 변동성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시스템에 대한 외생적 투입 요소들이다. 맥주 게임에서는 고객 주문 한 번만에 뜀박질할 경우였고, 주식 시장에서는 뉴스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외생적인 충격이 시스템의 역동성에 불을 붙이고 촉발에 기여한다는 것은 물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외생적 충격이 하나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불행히도 전통 경제학에는 이른바 균형이라는 굴레 때문에 이 요소에 너무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 바람에 앞의 두 가지 근원이 희생되고 말았다.

부의 기원/ 네트워크: 오! 너무나 복잡한 거미집

  • 네트워크는 어떤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든 반드시 포함되는 필수적인 요소다. 행위자들 간의 상호 작용이 없다면 어떠한 복잡성도 없을 것이다. 생물 세계는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분자들은 세포에서 상호 작용하고, 세포들은 유기체에서 상호 작용한다. 그리고 유기체들은 생태계에서 상호 작용한다. 인간의 몸은 다른 네트워크와 상호 작용하는 네트워크 내부에 또 네트워크로 구성된 고도의 복잡한 구성체다. 뇌, 신경계, 순환계, 그리고 면역체계 등을 포함한다. 인간 몸에서 이런 네트워크 구조를 다 떼어 내면 우리는 화학 물질을 담은 조그만 박스나 욕조 반 정도의 물에 불과할 것이다.
  • 경제적 세계 역시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도로, 하수도, 수계, 전기 배관망, 철로, 가스 라인, 전파, 텔레비전 신호, 광케이블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것들은 경제의 개방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의 간선 도로와 부차 도록의 역할을 한다. 경제는 매우 복잡한 가상 네트워크들도 포함한다. 사람들은 기업에서 상호 작용을 하고, 기업들은 시장에서 상호 작용을 하고, 시장들은 글로벌 경제에서 상호 작용을 한다. 생물 세계에서처럼 경제 세계의 네트워크들은 네트워크 내부의 네트워크라는 계층별로 배열되어 있다.
  • 경제 활동에 미치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는 최근까지도 경제학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사회학자들이 수년 동안 네트워크를 연구해 왔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경제학보다는 사회정치적 관계라는 맥락에서였다. 전통 경제학은 이것이 균형이라는 패러다임과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적당히 얼버무리려는 경향을 보였다. 전통적 모델의 전형적인 가정은 행위자들은 단지 경매(또는 다른 가격 설정 메커니즘)를 통하거나 일대일 협상으로 상호 작용을 한다. 이런 가정이 도입된 것은 경매와 양자 게임의 경우 하나의 균형 시스템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보다 큰 그룹의 사람들이 복잡한 상호 작용에 관계하면 수학적으로 모델화 하기는 훨씬 더 어렵고, 많은 경우 컴퓨터 가상 실험을 필요로 한다.
  • 네트워크가 경제학에서 받은 대접과 달리 물리학에서는 수년간 관심을 끌어 왔다. 헝가리의 수학자 파울 에르되와 알프레드 레니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개척자적 연구 결과를 많이 내놓았다. 최근에는 새로운 수학적 도구들과 컴퓨터의 발달에 힘입어 물리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과학적으로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가 크게 진전됐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입자들의 상호 작용 네트워크에 대해 말하든, 아니면 뇌에서의 신경망 혹은 하나의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든 상관없이 네트워크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수많은 일반적인 특성이 있다.
  • 네트워크의 특성을 탐색해 보기 전에 몇 가지 용어들을 정의해 본다. 종이를 꺼내 점을 몇 개 그리고 그 점들을 서로 연결하면 네트워크가 된다. 여기서 점들을 ‘노드 (node)’라 하고 이 노드를 연결하는 선을 ‘에지 (edge)’라고 한다. 노드와 에지로 구성된 네트워크 자체의 그림은 ‘그래프 (graph)’라고 한다. 만약 당신이 점들을 연결할 때 선을 임의로 그었다면 당신이 그린 네트워크는 ‘랜덤 그래프 (random graph)’라고 한다. 만약 당신이 그린 연결이 규칙적인 패턴을 보인다면 그런 네트워크는 ‘래티스 그래프 (lattice graph)’라고 부른다. 랜덤 그래프와 래티스 그래프는 모두 경제 현상에서 볼 수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네트워크 중 일부는 이 두 가지가 결합된 형태이다.

네트워크의 폭발

  • 이메일, 팩스, 전화 등과 같은 상품들은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유용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네트워크 효과’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은 이런 형태의 제품들이 왜 갑자기 불이 붙어 인기를 크게 얻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별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론 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에르되와 레니가 발전시킨 랜덤 그래프 이론이 그 답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 단단한 목재 바닥 위에 1천 개의 단추들을 이리저리 늘어놓은 그림을 그리고 당신의 손에는 몇 개의 실이 있다고 상상하자. 당신은 2개의 단추를 임의로 주워들어 이들을 실로 연결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당신이 집어 든 각 단추들이 연결이 안 돼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당신은 계속해서 많은 단추들을 두 개씩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다른 단추에 이미 연결돼 있는 단추를 집어 들게 되고 그러면 세 번째 단추를 계속 추가해야 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결국 연결되지 않은 단추가 점점 적어지게 되면 3개의 단추들로 이루어진 클러스터 (cluster, 단위체)들이 더 생기고 그 다음에는 4개, 5개로 이루어진 클러스터들이 형성되기 시작할 것이다.
  • 계속해서 단추를 연결해 나가면 분리된 단추들의 클러스터가 갑자기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슈퍼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5개의 단추로 이루어진 클러스터 2개가 이어지면 10개의 단추로 이루어진 클러스터가 되고, 각각 10개의 클러스터와 4개의 클러스터가 이어지면 단추 14개의 클러스터가 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시스템의 특성에서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상변화’라 부른다. 예컨대 증기를 가져다 온도를 1도씩 낮추어 100도가 되면 그 증기는 물로 변하고 다시 0도에 이르면 얼음으로 바뀐다.
  • 임의의 네트워크에서 작은 클러스터에서 거대한 클러스터로의 상 변화가 특정 시점에서 일어나느데, 그것은 바로 단추(node) 당 연결될 실(edge)의 비율이 1을 넘어설 때다. 그렇다면 1의 비율은 ‘분기점 (티핑 포인트)’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분기점은 임의의 네트워크가 드문드문 연결된 상태에서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로 갑작스럽게 바뀌는 시점을 말한다.
  • 카우프만은 네트워크 형성에서 이 분기점은 생명을 위해 필요한 화학 반응 네트워크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효과가 경제나 기술이라는 맥락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인터넷이야 말로 이를 보여 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인데 1960년대 국방부 프로젝트로 시작된 인터넷은 근 20년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는데, 주로 학계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 후반 갑자기 폭발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은 빠르고 싼 모뎀, 보다 좋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덕분에 사람들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에지-노드의 비율이 1이라는 매직 넘버를 넘어서면서, 다시 말해 분기점을 넘어서면서 폭발적인 사용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 랜덤 그래프 이론은 그런 현상을 모델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는 부드럽고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로 비선형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런 네트워크를 분석하면 왜 갑자기 어떤 패션이 히트하는지, 왜 갑자기 정치적 운동이 뜰 수 있는지, 또 심지어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작은 세계

  • 1967년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는 캔자스와 네브래스카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편지를 보 내쓴데, 그 내용은 이 편지는 보스턴에 있는 두 명의 수신자 중 한 명에게 보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밀그램은 단지 그 수신자의 성명, 직업, 인구 통계적 사항, 그리고 개략적인 주소만 파악한채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참가자들에게 이 편지를 성이 아닌 이름을 기준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받은 누군가는 또 이름 기준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도록 한 것이다. 이 편지는 수신자에게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만일 당신이 한 참가자인데 보스턴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그 편지를 동부 해안 쪽 대학으로 간 오하이오에 있는 사촌에게 보낼 것이고, 그 사촌은 그 편지를 보스턴에 있는 대학 친구에게 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최종 수신자가 의사이기 때문에 한 의사에게 편지를 보낼 것이고 그 의사가 최종 수신자에게 편지를 전달할 것이다. 편지 릴레이는 이런 식이다.
  • 밀그램은 이 실험에서 두 가지 놀라운 점을 알아 냈는데, 첫 번째는 대부분의 편지가 전달 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연쇄적 전달의 중앙값이 6이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6개의 상호 연결 고리 내에 있다는 개념을 말하는 이른바 ‘6단계 분리 법칙’의 토대가 되었다.
  • 컬럼비아 대학의 던컨 와츠와 코넬 대학의 스티브 스트로가츠는 6단계 분리 원칙과 관련하여 케빈 베이컨 게임을 사용한 기발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와츠에 따르면 이 게임은 윌리엄메리 대학의 남학생 사교 클럽 회원들로 이루어진 한 그룹이 발명했다. 이들은 영화광들로서 케빈 베이컨이라는 배우를 영화 세계의 중심인물이라고 결정하고 그가 임의의 배우가 케빈 베이컨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가졌는지를 파악한다. 예컨대 케빈 코스트너는 케빈 베이컨과 같은 영화 —- 에 출현했기 때문에 베이컨 넘버 1을 갖는다. 반면 브루스 윌리스는 케빈 베이컨과 같은 영화에 출현한 적은 없지만 <아마겟돈>에서 패트릭 맥코맥과 출연했고, 패트릭 맥코맥이 <할로우맨>에서 베이컨과 출연했기 때문에 베이컨 넘버 2를 갖는다.
  • 이런 식으로 버지니아 대학의 브레트 차덴은 전 세계 배우들의 데이터를 정리했는데 미국 배우 아무나 생각해도 가장 높은 베이컨 넘버는 4였고 전 세계 약 57만 명의 배우 중 90%가 베이컨과 연관성을 가졌으며, 그중 최고 베이컨 넘버는 10이었다. 또한 85%는 3 이하의 베이컨 넘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자들, 기업 이사회 멤버들을 비롯한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유사한 연구들이 수행되었는데 모두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 64억 명이 사는 지구의 사람들이 어떻게 6 다리만 거치면 되는 걸까? 와츠와 미시간 대학의 마크 뉴먼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답을 내놨다. 이른바 ‘좁은 세계 효과’는 네트워크 그 자체의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와츠와 뉴먼이 발견한 것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규칙성과 임의성이 매우 효율적으로 배합된 형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 미국의 지도를 놓고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 도시들을 표시해 보자. 그리고 각 도시와 그 도시에 가장 가까운 4개의 이웃 도시들을 선으로 이어 보면 ‘래티스 네트워크’ 형태의 모습이 나타난다. 4개의 가장 가까운 이웃을 연결하는 규칙이 의미하는 것은 이 네트워크가 규칙성과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규칙성의 불리한 측면은 이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동하려면 너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보스턴과 샌디에고를 연결하려면 20-30번이나 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는 래티스 그래프가 ‘높은 정도의 분리 단계들’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 가장 가까운 이웃을 연결하는 규칙 대신 도시마다 임의로 4개의 도시를 잇는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어떤 선은 매우 짧을 것이고, 어떤 선은 매우 길 것이다. 모든 선은 임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짧은 거리, 중간 거리, 긴 거리의 연결선들의 수는 같을 것이고 어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단계의 수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 두 도시를 적절히 연결하기 위해 단, 중, 장거리 여행을 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래티스 그래프에서 랜덤 그래프로 옮겨가면 분리된 단계의 정도가 확 줄어든다.

우연히 안 친구의 가치

  • 사회적 네트워크는 래티스 그래프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질서와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친구들은 같이 자란 사람, 같은 학교 사람, 같은 직장 사람 등일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당신의 친구들이 서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평균이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회적 네트워크들을 보면 너무도 식별이 가능한 클러스터들 또는 배타적 파벌들이 있다. 예컨대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치과의사들은 서로 이미 알고 있기 쉽다. 이런 클러스터의 존재는 네트워크가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질서와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구조화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우연히 알게 된 몇 명의 친구들도 있다. 이들은 정규적인 사회적 서클 내부에 속해 있지 않거나 그 외부에 있지만 어떻게 만나 친해진 사람들이다. 예컨대 휴가지에서 만나거나 병원 대기실에서 만났을 수도 있다. 정규적인 클러스터에 해당되지 않는 이 사람들은 우리의 사회적 네트워크 밖에서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에 연결해 준다. 만약 우리가 근사한 구조를 가진 래티스 그래프에다 몇몇 임의적인 견결 고리들을 집어 넣으면 양쪽 세계의 이익을 모두 얻게 된다. 예컨대 당신의 친구들이 세인트루이스의 치과의사들이지만 당신이 한때 할리우드에서 일했던 친구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곧 마돈나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은 샬럿에서 샌디에고까지 급행 항공 여행과 같은 것이다.
  • 뉴먼과 와츠는 이 효과를 계량화 했다. 각자 10명의 친구를 가진 1천 명의 집단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치구들은 전혀 없다고 하자. 그러니까 친구들은 모두 각자가 속한 엄격히 규정된 단체 출신들이다. 여기서 평균 분리 단계는 50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임의로 선정된 한 사람에게서 출발해 또 다른 사람으로 이어지려면 50 단계가 걸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각자 친구들의 25%가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이라고 하면, 평균 분리 단계는 3.6으로 떨어진다.
  • 흥미롭게도 우연히 알게 된 친구라는 아이디어는 무엇이 좋은 네트워크인지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반직관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세계를 매우 잘 알면 그 사람을 연결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와츠와 뉴먼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연결이 좋은 사람들은 접촉하는 그룹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다. 누구에게나 말을 걸 수 있고 모든 계층과 환경에서 친구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 연결이 잘 돼 있는 사람들이다.
  • 사회적 네트워크 구조는 개인에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조직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구성원들이 엄격한 경력 단계별로 올라가야 하고 격납고나 저장고 형태의 사업 단위 내지 부서들을 가진 그런 조직체라면 사회적 네트워크는 임의성이 충분하지 않은 과도하게 구조화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정보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위한 단계들의 연결 체인이 길어진다. 부족한 소통, 느린 의사결정이 초래된다는 얘기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떤 조직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여러 기능과 업무를 거치도록 한다. 이를 통해 회사 내에서 보다 다양한 연결성을 갖도록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든다. 사람들이 너무 자주 바뀌면 그 사회적 네트워크가 엉망이 될 수도 있지만 적당히 하면 조직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네트워크는 컴퓨터다

  • 오랜 기간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네트워크는 컴퓨터다’는 슬로건으로 광고를 했는데, 이는 흔히 볼 수 없는 통찰력 있는 구호이다. 왜냐하면 이는 네트워크와 컴퓨터 두 가지 모두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사실상 네트워크이고 네트워크는 현실에서 컴퓨터다. 컴퓨터는 개별 트랜지스터에서 동력을 얻는게 아니라 이것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동력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개별 컴퓨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 주면 보다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슈퍼컴퓨터가 그 예이다.
  • 0 아니면 1의 상태에 있는 노드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이를 처음 만들어 낸 수학자 조지 불의 이름을 따 ‘불리언 네트워크(Boolean Network)’라고 부른다. 불리언 네크워크에서 노드들의 0 또는 1 상태는 일련의 규칙들로 결정된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켜졌다 꺼졌다 하는 일련의 크리스마스트리 전구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이것을 설명한다.
  • 세 개의 전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편의상 이 전구들을 A, B, C라 하고 전구의 켜짐과 꺼짐은 1 또는 0으로 표현한다고 하자. 각 전구는 자신의 양쪽에 있는 두 전구로부터 그것들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알 수 있는 투입 자료를 받는다. 전구는 다른 두 전구로부터 받은 투입 자료에 따라 그 다음 기간에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규칙을 따른다. 예컨대 전구 A는 전구 B와 C가 1이면 1이고 그 외의 상황에서는 0이 된다는 규칙을 따를 수 있다. 이를 ‘불리언 AND 규칙(Boolean AND rule)’이라 한다.
  • 만일 A와 B가 0이면 C도 0이고, 그 외의 다른 모든 상황에서는 1이라는 규칙이 있다고 하면 이는 ‘불리언 OR 규칙(Boolean OR rule)’이라 한다. 우리가 전구에 부여하는 규칙에 따라 시간에 따라 전구가 깜박거리는 형태가 결정된다. 네트워크는 각 상태에 따라 클릭을 계속해 나간다. 다른 두 전구의 투입 자료와 규칙을 보고 다음 기간에 켜질지 꺼질지를 결정한다. 이런 규칙에 따라 한 기간에서 다음 기간으로 네트워크의 상태를 연결할 수 있다.
  • 불리언 네트워크는 컴퓨터 칩 상의 트랜지스터에서 화학 반응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우리의 뇌가 컴퓨터의 0과 1 논리를 사용하여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개별적인 신경 단위(neuron)는 수학적으로 그렇게 표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뉴런의 덩어리인 뇌가 불리언 네트워크의 한 형태라고 믿고 있다(물론 압도적으로 복잡한 네트워크지만). 우리가 경제도 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경제도 하나의 불리언 네크워크다(이는 훨씬 더 압도적으로 복잡한 네트워크다).
  • 30년이 넘는 불리언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 덕분에 그 특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제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불리언 네트워크는 WWW를 형성하고, 당신의 몸을 가꾸며, 정신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산물이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변수가 이 네트워크의 행태를 이끈다. 첫째, 네트워크에 있는 노드의 수다. 둘째, 각 노드가 얼마나 많은 다른 노드들에 연결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노드의 행태를 이끄는 규칙들과 관련한 ‘치우침(bias)’의 정도다.

큰 것이 아름답다: 정보의 규모

  • 불리언 네트워크와 관련하여 첫 번째로 중요한 사실은 네트워크가 처할 수 있는 상태의 수가 노드의 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점이다. 2개의 노드를 가진 네트워크는 4가지, 즉 22개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3개의 노드를 가진 네트워크는 8(23)개의 상태를 보일 수 있다. 정확히 100개의 노드를 가진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우리가 지구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의 속도로 네트워크가 처할 수 있는 가능한 각 상태들을 하나하나 클릭해 들어간다고 하면 모든 상태를 탐색하는데 5억 6,800만 년이 걸린다. 5개의 노드를 더해 노드가 105개가 되면 우주의 수명을 넘는 기간이 걸릴 것이다.
  • 우리가 이들 작은 네트워크들을 전부 탐색할 수 없다면, 극도로 작은 부분만 탐색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긍정적인 측면은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지만 이것이 취할 수 있는 정보량 또는 이것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 생물학은 네트워크 성장의 ‘파워’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인간 게놈은 유전자를 켰다, 껐다 하는 거대하게 복잡한 화학적 네트워크로 생각할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출범하기 전에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이 약 10만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을까 추정했었다. 과학자들은 막상 지도가 완성 됐을 때 인간이 약 3만 개의 유전자만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비교 하자면 이렇다. 미천한 회충은 1만 9천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인간 유전자 수의 2/3이다. 인간은 회충보다 33% 더 복잡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찬란할 정도로 복잡한 호모 사피엔스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선충류보다 단지 33% 더 많은 유전자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다른 데 있다. 유전자는 불리언 네트워크에서 우리 몸의 성장을 조절한다. 그런데 이 1만 개 남짓한 유전자가 더 있으면 인간 유전 네트워크는 회충 네트워크가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결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 가능한 모든 상태의 가지 수 측면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일어나면 정보를 처리하는 단위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에서는 강력한 규모의 경제가 일어난다. 전통 경제학자들은 규모의 경제를 비용과 수량에 관련된 함수로 대개 생각해 왔다. 예컨대 생산된 상품의 수량이 증가하면 상품당 비용이 내려간다는 그런 의미다. 그러나 불리언 네트워크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규모의 경제를 생각하게 한다. 불리언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지만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0개의 노드를 가진 불리언 네트워크는 210개의 가능한 상태의 수를 갖는다. 그리고 100개의 노드를 가지면 상태의 수는 2100이다. 여기서 100개의 노드를 갖는 네트워크의 가능한 상태들을 모아 놓은 공간은 10개의 노드를 갖는 네트워크의 그것보다 단순히 10배 더 큰 게 아니다. 차이를 따지면 1030만큼이나 된다.
  • 커피숍에서 일하는 10명의 사람이 보잉에서 일하는 18만 명으로 증가하면 근로자 수 측면에서는 단지 104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카페라떼를 만드는 것에서 점보 제트기를 만드는 것으로 그 복잡성이 증가한 것으로 치면 그보다 엄청나게 더 큰 차이가 난다. 인간이 회충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것처럼 말이다. 또 보잉의 조직 규모는 내재적으로 미래 혁신을 위해 더 많은 공간을 갖고 있다. 보잉 조직 네트워크에서 가능한 상태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은 보잉이 조그만 구석의 커피숍보다 생존하기 위한 방법들이 훨씬 더 많다는 의미다.
  •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가 경제 성장 역사와 항상 같이했다면 우리는 200만 년 전에 석기를 만들었을 때보다 지금은 훨씬 더 싸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조직을 불리언 네트워크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물론 단순히 켜지거나 꺼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태들을 가진 네트워크지만– 조직이 규모면에서 증가함에 따라 가능한 혁신들의 공간은 기하급수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 인간의 경제 조직은 실제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규모면에서 증가해 왔다. 특히 조직의 점프가 일어난 것은 기술 변화에 일치했다. 정착 농업의 발전으로 그전 조직 단위로 볼 수 있는 수렵, 채집민 시절보다 확실히 큰 마을의 형성이 가능해졌다. 마찬가지로 산업 혁명은 대규모 공장의 설립과 산업 도시의 형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정보 혁명은 거대한 글로벌 회사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선순환 고리가 생겨났다. 다시 말해, 기술 변화는 보다 큰 단위의 경제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경제 협력 단위는 큰 정보 규모를 활용, 미래의 혁신을 위한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 그러나 불리언 네트워크의 수학은 우리를 난처한 입장에 빠뜨린다. 작은 조직이 큰 조직을 혁신에서 압도하는 비즈니스 신화들이 유효한 이유는 무엇이고, 실리콘 밸리에 있는 친구들이 큰 골리앗 같은 기업들을 이기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큰 것은 나쁘다: 복잡성의 불행

  • 뉴먼의 이론은 규모가 커짐에 따라 또 다른 면, 보다 어두운 측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불리언 네트워크의 두 번째 변수, ‘연결의 정도’에 의해 발생하는 중요한 규모의 불경제가 있다. 매우 듬성듬성하게 연결된, 예컨대 크리스마스 전구 줄처럼 각 노드가 자신의 양쪽에 있는 한 노드에만 연결되는 그런 네트워크를 상상해 보라. 또는 이와 대조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가령 수천 개의 노드들이 있고 각 노드가 다른 모든 노드들에 연결되는 그런 네트워크를 상상해 보라. 노드당 연결의 수는 네트워크 행태에 중요한 효과를 갖는다. 카우프만과 그의 동료들은 산타페 연구소에서 이 관계를 기핑 연구했다. 이들이 발견한 핵심적 내용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관찰로부터 나온다. 즉, 어떤 네트워크가 노드당 평균적으로 한 개가 넘는 연결을 갖는다면 노드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연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네트워크에서 상호 의존의 수는 네트워크 그 자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상호 의존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네트워크의 한 부분에 변화가 생기면 네트워크의 다른 부분에 그 효과를 미칠 사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이러한 파급 효과 (spill over, 어떤 조치나 행동을 취했을 때 그것이 간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이나 환경에 미치는 2차적인 또 간접적인 효과)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네트워크의 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게 될 가능성도 증가한다.
  • 당신이 단지 두 개의 담당 부서 밖에 없는 조그만 기업의 공동창업자라고 하자. 당신이 제품 개발을 담당하면서 신제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이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위해 미팅을 열고 마케팅 부서에서 동의하고 나서면 준비는 끝난다. 너무나 간단하다. 당신이 생각해 낸 신제품은 성공하고 회사는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당신은 금융과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부서가 필요하다고 결정하여 조직의 부서가 네 개로 증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기 기업들이 그렇듯 당신 기업도 조직적으로 아직은 좀 엉성하다. 새 그룹의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신이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 모두 당신에게는 말한다. 당신은 또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3개의 부서들과 모두 회의를 갖는다. 모든 부서들이 이 새로운 제안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해놓기 위해서다. 전체 미팅 수는 처음에 한 번 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엔 세 번으로 늘었다. 회의가 많아지는 등 전보다 좀 복잡해졌지긴 했지만 아직 나쁜 상황은 아니다.
  •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소통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지루하다고 느꼈고 각 부서장들에게 직접 이야기 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각 부서장들은 다른 부서장들과 정기적으로 미팅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조정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곧 이메일이 날아다니고 회의실은 미팅으로 가득 찬다. 소통을 높이려는 당신의 조치는 성공이다.
  • 당신의 이제 세 번째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고 마케팅부서와 회의를 연다. 그러나 바로 OK 하기 전에 마케팅 관리자는 금융 부서로부터 이미 승인이 난 자신들의 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 부서 친구들은 고객 서비스 부서로부터 추가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비용들에 대한 추정치를 받아 보기 전에는 당신의 프로젝트를 승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객 서비스 부서는 이 신제품 계획이 회사의 브랜드와 가격 전략과 일치하는지 마케팅 부서와 함께 따져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갑자기 세 번의 미팅이면 충분하던 것이 열 번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조직의 규모는 그대로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소통 연결의 밀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점점 성장하면서 예컨대 각자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적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라. 만약 당신이 법률부서를 추가하면 미팅의 수는 25번으로 증가할 것이다. 사실 당신이 하고 싶어 했던 것은 더 좋은 소통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당신 회사는 관료주의적인 수렁에 빠져들고 만다.
  • 당신은 이 미팅 수의 폭발적 증가에 대해 신기한 다른 무엇을 발견한다. 각 미팅에서 이루어지는 의사 결정은 서로에게 상호 연결됨으로써 조직의 한 부분에서 조그만 변화가 일어나면 네트워크를 통하여 일련의 단계적 변화가 초래된다는 점이다. 당신의 신제품 계획이 마케팅 부서로 하여금 더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게 만들고, 금융 부서는 고객 서비스로부터 자료를 받고 예산을 채택한다. 그리고 고객 서비스 부서는 당신이 지원을 용이하게 하려면 제품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당신은 이런 요구를 당신 신제품 계획에 집어 넣는다. 그 결과 이는 다시 돌아가 마케팅에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마찬가지로 네트워크의 한 부분에 지체가 발생하면 광범위한 교통 혼잡을 야기할 수 있다.
  • 네트워크에서 이런 종류의 상호 의존은 카우프만이 말한 ‘복잡성의 불행’을 야기한다. 이런 효과가 일어나는 이유는 이렇다. 네트워크가 규모면에서 발전하고, 상호 의존의 수가 늘어나면 네트워크 한 부분에서는 긍정적이던 변화가 단계적 반응을 통해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인 변화를 야기할 확률이 노드 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밀도 있게 연결된 네트워크는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유통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 이런 복잡성의 불행은 관료주의가 잡초처럼 강인하게 자라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많은 기업들이 관료주의를 없애는 문제와 싸우지만 몇 년 후 다시 조직이 관료주의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발견하고 만다. 그 어느 누구도 관료주의 문제를 고의적으로 설계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네트워크에서 자신들의 담당 영역만을 최적화하려고 하면서 관료주의가 튀어나온다. 즉, 금융부서는 수치들이 증가하는지를 확실히 하려고 하고, 법률 부서는 우리가 소송을 안 당하기를 원한다. 마케팅 부서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 노력한다. 문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나쁜 의도에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네트워크 성장이 상호 의존을 가져오고, 이 상호 의존으로 인해 제약 조건들이 상충하는 일이 일어난다. 상충적인 제약 조건들로 인해 의사 결정은 느려지고 궁극적으로 관료주의적 정체로 이어진다.

가능성의 정도 대 자유의 정도

  • 조직에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힘이 작용한다. 노드 증가에서 오는 정보, 즉 ‘규모의 경제 (economy of scale)’ 그리고 상충하는 제약 조건들의 증가로 인한 ‘규모의 불경제 (diseconomy of scale)’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힘은 큰 것이 왜 아름답기도 하면서 나쁘기도 한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조직의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가능성의 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자유의 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큰 조직은 작은 조직들에 비해 내재적으로 보다 많은 매력적인 기회들을 가지고 있다. 큰 조직은 이론적으로는 작은 조직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그들이 못하는 것도 한다. 그러나 그런 미래의 기회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충 관계에 직면한다. 조직의 네트워크가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이런 상충 관계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조직 내 특정 부서에 고통스럽다는 이유 때문에 조직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는 어떤 새로운 상태로 옮겨 가지 못하고 마는 일종의 조직 정치학이란 것도 생겨난다.
  • 수십 년 동안 IBM은 컴퓨터 산업을 지배하기 위해 조직을 확대하고 글로벌 규모로 키워서 1980년대 세계 PC 산업에서 가장 좋은 몫을 차지했지만, 19세의 마이클 델이 우표 거래를 통해 저축한 단돈 1천 달러로 가지고 만든 회사에 밀려 PC 사업에서 손을 떼기에 이른다. 1990년대 초 델이 IBM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IBM 내부에선 컴퓨터를 메일을 통해 파는 것에 대한 논의가 분명 있었을 것이고 또한 IBM의 그일에 할만한 역량이 충분했지만 IBM은 델이 시장 점유율에서 IBM을 앞지른 뒤 7년이 지나고서야 고객에게 직접 컴퓨터 파는 일을 시작한다. 이는 IBM이 ‘복잡성의 불행’의 희생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 상호 의존성과 적응성 사이의 긴장은 네트워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특징으로 여러 형태의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프트웨어 설계자는 프로그램이 너무 복잡해져서 무엇을 개선하거나 버그를 고치면 새로운 5개의 버그가 일어나는 때가 언젠인지를 살핀다. 건축가는 고객이 벽을 30cm만 옮겨 달라고 부탁하고 그 결과 그로 인한 간접적인 여파로 프로젝트 비용이 매우 높아지는 시기가 언제인지를 안다. 스튜어트 카우프만 같은 일부 생물학자들은 이런 긴장이 유기체의 복잡성에 상한선을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 경제 조직에서는 규모의 이익과 복잡성으로 인한 조정 비용 및 제약 조건 사이의 상충 관계가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계층 구조에 대한 두 찬사

  • 네크워크 이론은 조직들이 두 가지 조치를 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연결의 밀도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 결정의 예측성을 높이는 것이다.
  • 만약 네트워크를 계층적 구조로 배열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3명의 근로자들은 하나의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3명의 관리자들은 하나의 경영자에 보고하는 그런 구조를 상상해 보자. 이 네트워크는 그전과 다른 모습으로 밀도가 높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혼합체 이다. 카우프만은 조직의 적응성을 높이고 상충하는 제약 조건들을 피해 나가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조직을 쪼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네트워크를 계층적 구조로 바꾸면 연결의 밀도를 줄임으로써 네트워크의 상호 의존성을 감소시킨다. 계층 구조는 규모의 불경제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네트워크가 더 큰 규모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은 자연 세계와 컴퓨터 세계에서 그렇게 많은 네트워크들이 네트워크 안에 네트워크로 구조화 되는 이유다.
  • 조직적 관점에서 볼 때 계층적 구조는 적응성을 줄이는 관료주의의 한 특징이라는 게 전통적인 생각이다. 관리자들은 계층을 없애는 등 조직을 되도록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반직관적으로 계층적 구조는 상호 의존성을 낮추고 조직 전체가 자리 잡기 전에 조직이 더 큰 규모에 이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적응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계층 구조가 없는 40개의 노드는 의사 결정을 위해 1,600번의 미팅을 필요로 하지만 계층을 이루면 전체적으로 13번의 미팅이면 충분하다.

  • 물론 계층 구조는 문제점들이 있다. 예컨대 정보가 체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변질될 수 있고, 최고 경영자가 일선 현장과 유리될 수 있으며, 위 단계에서 누군가 일을 잘못 수행하면 많은 손실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계층적 구조는 원래 나쁘다고 가정해 버리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상호 의존성을 줄이는 계층 구조의 핵심적인 역할을 놓치는 것이 된다.
  • 이와 관련하여 나타난 한 움직임은 계층적 구조 내의 조직 단위들에 보다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알프레드 슬로안의 위대한 통찰 중 하나로, 그는 자율적인 부서의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는 당시 GM이 성장해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슬로안은 하나의 자동차 회사 안에 본질적으로 5개의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다. 이들 회사는 각자 고유의 브랜드와 함께 높은 독립성을 가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많은 회사들이 독자적인 손익 책임성을 갖는 보다 자율적인 조직 단위로 옮겨 간 것은 대부분 조직 확대에 따른 복잡성 문제에 대한 대응이었다.
  • 최종적으로는 조직을 스핀오프(spin-off, 조직의 재편성 방법으로 자회사 등의 형태로 모회사에서 분리 독립 시키는 것) 하거나 회사를 분리함으로써 궁극적인 자율성을 조직에 부여하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지루함이 더 낫다

  • 카우프만과 그 동료들이 맨 처음 연구를 수행했을 때 비계층적 네트워크들은 각 노드당 평균 1-2개의 연결을 갖는 자연 발생적인 질서를 보여 주지만, 노드당 4개의 연결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경우에는 카오스에 빠진다. 뒤이어 파리의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의 두 물리학자 베르나르 데리다와 제라드 바이스부흐가 국면 전환(phase transition)이 일어나는 지점을 결정하는 모수(parameter)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치우침(bias)이다.
  • 앞서 전구 이야기에서 각 전구 내부에는 이웃한 전구들로부터 받은 투입 자료를 산출로 바꾼다는 규칙이 있다고 한 것을 상기해 보자. 그런데 이번에는 각 전구 내부의 규칙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자. 각 전구는 하나의 블랙박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구마다 투입 자료를 넣어보고 그 산출이 무엇인지 관찰함으로써 개별 전구의 행태를 연구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전구를 하나 선택해 임의로 1과 0을 집어 넣어본다. 투입 스트림(input stream)은 대략 50%의 1과 50%의 0일 것이다. 산출 스트림(output stream) 또한 50:50으로 1과 0이면 산출은 치우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산출의 90%가 1이면 이것은 1쪽으로 치우쳤다고 하고, 90%가 0이면 이것은 0쪽으로 치우쳤다고 한다. 전구들의 산출은 투입이 정해지면 여기에는 결정론적인 규칙이 적용돼 계산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결과가 치우침이 작다고 해서(예컨대 50:50) 전구가 임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비로운 의사결정 규칙이 똑같이 1과 0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규칙이 무엇인지 모르는 3자 입장에서 보면 치우침이 낮은 노드의 행태는 예측하기 어렵고, 반면 치우침이 높은 노드는 예측하기 쉽다.
  • 데리다와 바이스부흐는 치우침이 높을수록 네트워크는 카오스로 이행하기 전에 노드당 더 많은 연결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평균 치우침이 50:50이라면 카오스로의 이행은 노드당 2개와 4개의 연결 사이 범위에서 발생한다. 카우프만 연구에서도 그랬다. 만약 평균 치우침이 75%라면 카오스로의 이행은 노드당 연결이 4개를 넘어설 때 일어난다. 치우침이 더 높은 수준이면 네트워크가 카오스로 빠져들기 전에 노드 당 6개의 연결까지 가능하다. 요점은 노드의 행태에 규칙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네트워크가 감내할 수 있는 연결의 밀도도 더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 조직적 맥락에서는 이런 치우침을 예측성의 잣대로 간주할 수 있다. 조직의 의사 결정에 예측성이 있다면, 이 조직은 더 밀도 높은 네트워크를 가지고도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 결정이 예측할 수 없다면 밀도가 덜한 연결, 보다 계층적인 구조, 보다 작은 관리 범위 등이 요구된다. 군대를 예로 들면, 군대처럼 규칙적이고 예측 간으한 행동이 중시되는 조직에서는 가량 창조적인 광고 회사보다 더 큰 조직 규모에서도 문제점들을 피해 나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이는 또한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요소들, 가령 사무실 내의 정치학이나 감정적인 부분들은 조직이 복잡성에 압도될 정도로까지 발전할 수 없도록 그 규모를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제 어떻게 하면 기능 장애 조직이 되는지 그 처방을 알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 평평한 계층 조직, 그리고 매우 밀도 높은 상호 연결을 혼합하라. 그러면 무슨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가능성은 거의 제로일 것이다.

질서의 선

  • 카우프만과 그 동료드릥 연구는 직관과는 다른 통찰력을 제시한다. 델에 대한 IBM의 문제는 이 블루칩 회사가 변화에 둔감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에 너무 민감했던 데 있다. 밀도 높은 상호 연결, 혼란스러운 상호 작용을 가진 사업 시스템은 조그만 변화에도 조직전반에 거려 연쇄적 변화를 야기해 큰 문제들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의미했다. 그래서 왜 우편으로 컴퓨터를 팔 수 없는지에 대해 수천 가지의 이유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 이것은 복잡계 이론을 단순히 은유적 차원에서 해석할 경우 위험한 이유 중의 하나를 보여 준다. 많은 경영학 책들과 논문들이 카오스의 경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질서와 혼돈의 경계선인데, 이 지점에서 자연은 가장 잘 적응하는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에 대한 통속적인 해석은 조직이 너무 질서 잡힌 체제에 깊이 박혀 버리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고, 혁신을 추가적으로 자극하려면 카오스의 요소를 좀 더 조직 안에 집어 넣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과학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실제로 이보다 더 미묘한 것이어서 이와는 다른 의미들을 제시한다.
  •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카우프만의 전구 네트워크로 돌아가보자. 카우프만의 연구에서 만약 각 전구가 다른 전구에 평균 두 번 정도의 연결만 갖고 있다면 그 네트워크의 행태는 꽤 질서가 있다. 조그만 변화가 발생한다고 해도 깜박거리는 전구의 패턴에 큰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각 전구를 4개의 다른 전구에 연결하면 그 행태는 크게 달라진다. 네트워크의 어느 한 부분에서 조그만 변화가 있으면 연쇄적 변화로 이어져 전구의 패턴을 예측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조직적 맥락에서 이런 연쇄적인 변화들은 상충하는 제약 조건들로 이어진다. 전구당 2개의 연결에서 4개의 연결로 옮겨가면 네트워크가 엄격하고 변화에 둔감한 상태에서 혼돈스럽고 지나치게 변화에 민감한 상태로 갑작스러운 국면 전환이 일어난다.
  • 여러 가지 이유로 진화 시스템은 변화에 대한 중간 수준의 민감도, 다시 말해 앞에서 말한 두 상태 사이의 범위에 있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만약 진화 시스템이 변화에 너무 둔감해서 변화하지 못하면 환경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스템이 과도하게 변화에 민감하면 조그만 변화라도 커다란 의미를 가지거나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과도한 민감성은 어떤 시스템이 과거에 성공적이었다면 더 이상 큰 변화가 이 조직을 향상시킬 가능성은 작아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오히려 가능한 큰 변화의 대부분은 조직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
  • 카우프만은 불리언 네트워크에 있는 각 저눅가 평균적으로 2개와 4개 사이의 연결을 가질 때 시스템은 그 중간 상태에서 고도로 적응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상태에서 시스템은 구조를 갖춘 큰 섬들로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질서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각 구조들의 경계선 주변에서 무질서가 꿈틀대며 조직으로 스며들고 있는 그런 네트워크다. 시스템의 연결 규칙에 조그만 변화가 있으면 일반적으로 그 결과 면에서도 조그만 변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종종 조그만 변화가 보다 큰 연쇄적인 변화를 불러와 때로는 전체 조직의 성과를 저하시켰고, 때로는 향상시켰다. 이 특별한 네트워크는 고도로 적응성이 높았지만 노드당 2개에서 4개의 연결은 자연과 인간 조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네트워크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듬성듬성한 그런 연결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 때문에 카우프만은 곤란을 겪었다.
  • 그러나 카우프만의 초기 연구 결과를 그 뒤의 계층적 구조와 치우침에 관한 연구들과 결합하면 국면 전환은 6개에서 9개의 노드 범위로 이동한다. 흥미롭게도 불리언 네트워크에 대한 분석에서 나온 이 수치들은 인간 조직에서 효과적인 워킹 그룹 (working group)의 규모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꽤 근접한 것이다. 예컨대 회사 이사회와 경영 위원회는 종종 회장이나 CEO 아래 5-8명을 두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8명의 부심과 1명의 주심을 둔다. 반면 유럽 연합의 집행위원회는 5명의 부위원장과 1명의 위원장을 둔다.
  • 어떤 인류학자는 이런 전형적인 구조와 규모는 수렵, 채집민으로서의 오랜 진화의 유산이라고 추측했다. 진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상충적 관계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데 꽤 효율적인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전형적인 워킹 그룹의 규모는 이것이 규모의 경제라는 점 –혼자서 사냥하는 경우보다 무리를 지을 경우 소비된 칼로리당 보다 많은 음식을 얻을 수 있다– 과 복잡성의 불경제 사이에서 균형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그 수준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만약 30명 정도로 구성된 집단들로 나뉘어 그날 들소를 사냥할지, 영양을 사냥할지를 의논하며 시간을 흘려 보냈다면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오랜 기간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부의 기원/ 행위자들: 심리 게임

  • 모든 경제 이론의 핵심에는 인간 행태 이론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경제는 궁극적으로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행태 이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떻게 경제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가? 우리는 어떤 종류의 정보를 활용하는가? 그리고 의사 결정 중에서 우리가 제대로 하거나 잘못을 범하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모든 과학 이론은 실제 현실 세계를 근사적으로 표현하거나 단순화한 것이다. 인간 행태에 관한 경제 모델을 만드는 우리 목표는 어떤 완벽한 복사본을 만들자는게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경제적 행태에 관한 우리의 모델은 일종의 좋은 지도와 같은 것이다. 지형의 중요한 특징들은 잡아내지만 사족적인 세부 사항들은 무시한다. 그러나 모델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집어 넣어선 안되며 진실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과 모순되어서도 안 된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그런 것은 슈거스케이프에 전혀 없다.
  • 경제학자들은 인간 행태에 관한 자신들의 표준 모델에 대해 호모 에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복잡계 경제학의 접근이 전통 경제학적 접근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스폭이 쇼핑을 하다

  • <스타트랙> 시리즈에서 벌컨 출신 스폭은 완벽한 합리적 존재의 모습을 보여 준다. 스폭은 숫자 파이를 소수점 50자리까지 기억하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복잡한 계산도 척척 해낸다. 페이저가 불을 뿜는 와중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소한 감정의 흔들림도 없다. 스폭은 전통 경제학이 인간 행태를 묘사하는 좋은 보기다.
  • 지금 당신이 근처 식품 가게로 가서 토마토를 본다고 생각하자. 전통 경제학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당신은 토마토와 빵, 우유, 스페인에서의 휴가 등 다른 모든 상품들과 비교해서 작성된, 잘 정리된 선호도를 갖고 있다. 더구나 당신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살지도 모를 모든 상품들에 대해서도 이미 선호도를 갖고 있다.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당신은 간으한 구매마다 확률을 부여해 놓고 있다. 예컨대 2년 후 부엌 선반이 느슨해져서 이를 조일 볼트를 구입하기 위해 1.2달러를 지불할 가능성이 23%가 있다는 식이다. 이 1.2달러의 현재 가치는 약 1달러다. 여기에 23% 확률을 곱하면 기대 가치가 나오는데, 계산 결과는 23센트다. 가능한 미래 수선을 위한 기대 지출이 23센트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런 구매 가능성과 지금 이 순간 토마토 구매, 그리고 일생 동안 가능한 모든 다른 구매 등을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전통 경제 모델에서는 이렇게 정의된 모든 선호도가 매우 논리적으로 정돈돼 있다.
  • 전통 경제학에서는 또한 당신이 토마토 소비를 위한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 예산을 계산하려면 당신은 전 생애에 걸쳐 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치를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그런 지식을 토대로 현재의 예산을 최적화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토마토에 쓰인 돈이 은퇴했을 때 더 잘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이유 때문에 지금 토마토에 대한 소비를 보류할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가정이 있다. 당신의 미래 소득은 완벽하게 위험이 분산된 금융 자산의 포트폴리오에 투자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65세에 은퇴할 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에 대한 보험 통계적 계산도 고려한다. 미래 이자율, 인플레이션, 환율 등에 대한 기대치도 물론 포함된다. 당신은 좋아 보이는 빨간 토마토를 응시하면서 서 있는 동안 이 모든 정보를 머리 속에 집어 넣고는 빈틈이 안 보일 정로도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최적화 계산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살지 안 살지에 대해 완벽하게 최적인 해답을 찾아낸다.
  • 이 같은 스폭과 같은 방식이 ‘완전 합리성 (perfect-rationality)’ 모델로 알려져 있다. 완전 합리성 모델은 바로 전통 경제학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가정의 하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이 등장한 복잡계 경제학이 인간 행태에 대해 갖는 관점의 핵심에는 ‘추론적 합리성 (inducive rationality)’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흠, 토마토로군. 좋고 신선해 보이네. 오늘 밤 샐러드가 당기는데. 가격도 좋고” 그래서 쇼핑 바구니 속으로 토마토가 들어간다.

인식의 부조화

  • 전통 경제학의 다른 많은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완전 합리성 또한 발라와 제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인간 행태를 연구함으로써 이 모델을 떠올린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모든 계산을 한 뒤 행동하는 것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경제학은 완전 합리성을 하나의 가정으로 채택했다. 경제학을 19세기 균형이라는 이론적 틀에 맞추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 완전 합리성은 중력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제약 조건을 알고 있고 또 모든 사람들이 완전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면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제약 조건에 반응할 것이다. 사람의 결정들은 예측 가능할 것이고, 시스템을 균형으로 이끌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인간 행태에 관한 이 핵심적인 가정은 이후 더 발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가정이 실제 인간 행태를 잘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 합리성 가정은 균형이라는 분석 틀에서 수학이 작동하다록 하기 위해 바로 채택 됐다. 발라와 그 이후 경제학잗르은 사후적으로 가정의 현실성 결여를 정당화 하려고 노력했다. 완전 합리성 가정은 사람들이 실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묘사한 것(‘실증적 모델’)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묘사(‘규범적 모델’)로는 괜찮은 것 아니냐는 얘기다. 완전하게 합리적인 경제를 모델로 만들 수는 잇겠지만 그럴 경우 실제 세계가 그런 이상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 완전 합리성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라며 정당화하는 것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다르게 행동하더라도 자신만은 완전하게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반드시 당연한 것은 아니다.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당신이 1998년 닷컴 주식을 공매(short)했다면 2002년 당신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전에 이미 2년간 상당한 돈을 잃었을 것이다. 둘째, 완전 합리성이 좋은 규범적 모델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싶다고 해도 실제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 완전 합리성 가정은 그것이 도입될 때부터 도전받고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어쨌든 이 가정을 계속 사용해 왔다. 완전 합리성으로 인해 모델이 수학적으로 바뀔 수 있는데다 아무도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허버트 사이먼과 카네기멜론 대학의 그의 동료 제임스 마치와 리처드 사이어트는 이 가정에 직접적인 도전을 했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꽤 과격한 시도를 했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 특히 실제로 회사에서 관리자들이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지켜보고 연구했다. 이 실험과 심리학자들의 도움 등을 통해 그들은 현실 세계 사람들의 행동은 경제학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그런 모습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점을 확신했다.
  • 사이먼은 완전 합리성과 경쟁하는 의사 결정 이론을 제시했다. 바로 ‘제한된 합리성 (bounded rationality)’ 이론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경제적으로 이기적이고 영리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영리한 것은 아니다. 사이먼 이론은 완전 정보의 부재, 그리고 크지만 여전히 제한적인 인간 뇌의 처리 용량을 고려했다. 사이먼은 완전 합리성 대신에 인간은 작은 성과에 만족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존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얘기다.
  • 사이먼은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그에 대해서 존경스럽다는 듯이 말하지만 사이먼의 연구는 전통 경제학 이론에 단지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대부분의 표준 경제학 교과서는 사이먼 또는 제한적 합리성에 대해 언급조차 안 하고 있다. 이런 무시의 한 이유는 수년간에 걸친 다양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사이먼의 아이디어를 수학적 모델로 바꾸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 사이먼의 개척자적 연구에 뒤이어 크게 두 집단의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전통 경제학적 모델을 반박하는 경험적, 실험적 증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오늘날 ‘행동 경제학’으로 알려진 분야를 만들어 냈다. 이 연구들 역시 실제 사람들은 전통 경제학 이론에서 설명하는 방식대로 선호도를 만들어 놓고 위험을 판단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행동경제학은 학문의 주류로 들어왔다. 2002년 대니얼 카너먼과 버넌 스미스는 노벨상을 받았다.
  • 행동경제학의 등장으로 경제학은 ‘인식의 부조화’라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즉, 많은 경제학자들인 완전 합리성에 대한 비판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전통 경제학의 가정들을 사용한다. 공식적인 모델로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들, 심리학자들, 그리고 컴퓨터 과학자들이 서로 협력을 확대하면서 대안적인 모델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기적인 돼지!

  • 만일 당신이 지금 비행기로 여행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게임을 제안 받는다. 게임을 제안한 사람은 매우 부유한 여자인데 그 여자가 당신과 당신 옆에 앉은 사업가 –당신은 모르는 사람– 에게 5천 달러를 주고, 당신과 사업가가 그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합의하면 5천 달러를 그냥 주고 그렇지 않으면 게임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한다. 대신 돈을 나눌 권한은 당신의 옆에 앉은 사업가에게만 있고 당신은 사업가의 제안을 수락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때 사업가가 “나는 4,990달러를 가질 테니 당신은 10달러를 가지시오” 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의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 이 게임을 최후 통첩 게임이라고 하는데, 경제적관점에서만 본다면 당신은 그가 10달러가 아닌 1달러를 제시하더라도 수락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이 게임을 여러 형태로 나누어 세계 각국 –일본, 이스라엘, 슬로베니아, 칠레, 짐바브웨, 인도네이사, 미국 등– 에서 대학생들, 사업가들, 부족민들, 양치기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천 번에 걸쳐 실험을 했던 결과는 놀랍게도 모두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사 확실한 금융적 이득을 거둘 수 있는 제안이라고 하더라도 불공평하다고 여겨지는 제안은 거절했다.(대개 30% 미만이면 일반적으로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면 불공평한지에 대해서는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
  • 취리히 대학의 에른스트 페르와 시몬 게히터는 주의 깊게 설계된 일련의 실험을 통하여 참가자들 간에 미래에 어떤 상호 작용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한 경우라도, 그래서 나중의 이익과 현재의 손실을 교환할 기회가 없다고 할 경우에도 똑같이 제안을 거절하는 결과가 나왔다.
  • 공평성과 상호주의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우리를 불공평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벌하려는 욕구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고 뭔가를 해주려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을 하게 한다. 예컨대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들이 청구서와 함께 사탕 하나를 놓았을 때의 팁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18%나 더 높았다.(물론 사탕 두 개는 그보다 훨씬 많은 팁을 가져다 주었다.)
  • 전통 모델은 사람들은 단지 경제적 의사 결정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묵시적으로 갖어한다. 협상, 공평성, 강압 등과 같은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또한 전통 모델에서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무슨 이익을 보고 무슨 손해를 보는지에만 관심이 있지 다른 사람들의 결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가정한다. 최후통첩 게임의 실험 결과는 이런 가정들에 대한 직접적인 반증이다.
  • 최근의 행태론적 연구 동향 조사에서 MIT와 산타페 연구소의 허버트 긴티스와 그 동료들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인간을 이기적이고 유물론적인 존재로 표현했지만, 스미스가 그의 또 다른 책 <도덕감정론>에서는 인간에 대해 이기심과 아량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 표현하는 등 인간 본성에 대한 미묘한 관점의 차이를 드러냈다는 사실 이야기한다. 최후통첩 게임과 다른 여러 실험의 증거들은 스미스의 두 번째 관점이 옳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인간은 계산된 합리성을 무시할 만큼 공평성과 상호주의에 대한 아주 뿌리 깊은 규칙을 갖고 있다. 긴티스와 그 동료들은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아량을 보이는 한 이쪽에서도 아량을 보이는 ‘조건부 협렵자’라는 점을 알아냈다. 또 인간은 불공평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한 방 먹이려는 ‘이타적인 징벌자’라는 점도 발견했다.
  • 우리가 조건부 협력자이고 이타적인 징벌자라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원시 조상들은 협력적 행동과 생존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소규모 무리로 살면서 약 200만 년간이나 존재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여전히 상호주의가 중요한 사회적 상호 작용의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모두 서로를 도우면 더 좋아질 수 있지만 되돌려주는 것 없이 자기 이익만 취하는 사람들에 의한 악용 가능성도 물론 있다. 아주 조그만 정도의 무임승차는 용납할 수 있지만 만약 그것이 만연한다면 서로 등을 긁어 주는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더 나빠진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협력을 보상하고 무임승차자는 벌하는 뿌리 깊은 행태를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과오는 인지상사다

  • 현실 세계 사람들이 전통 모델에서 이탈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사람은 실수를 한다는 점이다. 전통 모델에서는 스폭과 같은 행위자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완전하고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실수를 하더라도 정답 근처에 임의적으로 분포된 노이즈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하면 전통 모델에서는 사람들이 공통의 실수나 편견을 공유하는 일은 없다. 한편 행동경제학이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한마디로 ‘과오는 인지상사’로 생각한다. 컬럼비아 대학의 존 엘스터는 심지어 “전혀 편견 없는 인식적 평가를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임상적으로 의기소침한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한다.
  • 연구자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적인 실수나 편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구조화 액자 편견: 어떤 이슈를 정확히 어떤 틀로 표현하느냐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생각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 대표성: 사람들은 매우 작고 치우친 표본에서 큰 결론을 도출하려는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
    • 가용성 편견: 사람들은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실로 필요한 자료들을 발견하기 보다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 위험 판단의 어려움: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률로 추론하고 위험을 평가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 미신에 사로찹힌 추론: 우리는 단지 순서나 발생 등에서 가장 가까운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종종 임의적으로 발생한 일을 인과 관계로 혼동하기도 한다.
    • 정신적 회계: 전통경제학에서는 돈을 모두 같이 취급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을 서로 다른 칸막이에 넣어 두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아직 갚지 않은 신용 카드 지불금이 있는데도 매달 은퇴 후의 계획용으로 돈을 저축하는데, 이는 은퇴 계좌의 투자 수익률이 신용 카드 이자율 보다 낮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계산이 안 된다

  • 전통 경제학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리성으로부터 이탈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는 소수의 혹은 단 한 명의 초합리적인 플레이어만 있으면 이 모든 사람들의 실수를 이용해 시장을 완전한 합리적 균형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모든 투자자들이 바보라도 스폭과 같은 몇 사람의 거래자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이용한 매매를 통해 큰 돈을 벌고, 가격을 완전 합리성에 의해 예측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얘기다.
  • 1985년 알라인 루이스라는 수학자는 계산 이론에서 나오는 복잡한 기법을 활용, 그 어느 누구도 가장 총명한 차액매매 거래자라고 할 지라도 실제로는 완전 합리성으로 표현되는 그런 계산을 해낼 수 없음을 증명했다. 완전 합리성은 경제 이론에서는 가능한 얘기일 수 있지만 계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가능한게 아니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계산이론에는 ‘튜링 기계 (Turing Machine)’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일종의 상상 속의 만능 컴퓨터이다. 어떤 문제가 튜링 기계에서 계산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런 계산이 가능한 물리적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튜링 기계에서 계산이 불가능하다면 컴퓨터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설사 우주에 맞먹는 용량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를 결코 풀 수 없다. 루이스가 증명해낸 건 바로 전통 경제학자들이 정의하는 완전 합리성이 튜링 기계에서도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서의 술집

  • 계산할 수 없다는 점 외에도 많은 경제적 문제들은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실제적으로도 결코 완전히 합리적인 솔루션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초기 산타페 연구소 모임에 참여했고 한때 산타페 연구소의 경제 프로그램을 책임졌던 브라이언 아서는 다음과 같은 보기를 통해 이 문제를 설명했다. 산타페의 한 대중적인 술집 ‘엘파롤’은 목요일 밤이면 아일랜드의 생음악을 들려준다. 그러나 대형 술집이 아니라서 60명이 넘지 않을 때만 당신은 편안하고 즐거운 저녁을 즐길 수 있다. 만약 60명이 넘는 인원이 밀려들면 술집은 꽉 차서 혼잡해지고 그만큼 불편해진다. 당신은 목요일 밤 60명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술집을 방문하고, 만일 6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면 집에 머물기로 한다. 여기서 당신은 이곳에 올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방법은 갖고 있지 않다. 또한 그날 얼마나 붐빌지 엘 파롤에 전화를 걸어 물어 볼 수도 없다. 오로지 각자가 자신의 기대에 따라 이곳에 올지 안 올지를 결정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곳에 갈 것인가 집에 머물 것인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합리적인 솔루션은 없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여기에는 하나의 무한한 ‘순환성(circularity)’이 존재한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할지에 대한 기대에 의존하고, 나는 당신이 어떻게 할지에 대한 기대에 의존하는 식의 끝없는 반복이 있다. 분석적인 대답 대신 엘 파롤 문제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참가자들이 자신들이 과거 이곳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떤 패턴이 있는지 살펴보고는 ‘지는 두 번의 목요일에 붐비지 않았으니 오늘 가겠다.’ 식으로 판단한다.
  • 아서는 그와 같은 경험 법칙에 따라 컴퓨터 상에서 가상 실험을 해보고는 이 문제는 결코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은 꽤 붐비고 또 어느 날은 반이나 비었다. 그러나 그런 변동은 결국 60명 수준의 평균치를 보여 주고 있다.

  • 전통 경제학자는 이를 보고 이 술집의 최대 수용 용량인 60명이라는 완전히 합리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므로 균형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60명 균형 주변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을 노이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틀린 주장이다. 60명이라는 평균 참석률은 하나의 균형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한 변동을 그냥 노이즈의 일종으로 생각해 무시할 수 없다. 초기 출발 조건을 제외하면 이 시스템에는 어떠한 임의적인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시스템은 결정론적인 것이고 노이즈도 없다. 오히려 이 문제는 균형을 갖고 있지 않은 다시 말해 어떠한 ‘고정점 인력체 또는 끌개’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다.
  • 다양한 경험 법칙을 활용하는 참가자들 모두의 역동성이 60을 중심으로 동태적인 끌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참석 수준의 높은 변동성은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내생적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참석 수준은 언제나 심하게 오락가락하며 변동할 것이며, 어떤 균형점으로의 수렴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아서는 이런 문제처럼 동태적이고 일종의 자기 참조적 또는 자기 준거적이며 정의하기가 모호한 그런 경제적 의사 결정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가격 인하를 고려하는 기업 A는 자신이 처한 상황 뿐만 아니라 기업 B와 C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걱정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 B와 C는 기업 A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인식을 전략 수립에 감안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 표준 채택, 새로운 제품의 시장 도입, 그리고 주식 가치 평가에는 모두 일종의 자기 참조적 기대가 내재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런 의사 결정을 별다른 묘책 없이도 그럭저럭 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패턴이라든지 법칙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경험에서 법칙을 도출하고 상호작용하고 어떻게 보면 우물쭈물 하는 이런 행위자들의 세계는 결코 균형에 이를 수 없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변동성의 많은 부분이 외생적이거나 임의적인 충격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의사 결정 규칙의 이런 역동성 때문에 초래되는 것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게 바로 아서의 술집 문제이다.

귀납적 합리성

  • 완전 합리성이라는 용어는 부담되는 표현인데, 왜냐하면 이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불완전하거나 비합리적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 행태를 바라보는 대안적인 방법이 있는데 이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바로 근대 인지과학 이론들이다.
  • 인지과학은 인간 심리의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분야에 붙인 이름으로 이 영역은 신경과학, 심리학, 인공지능, 언어학, 진화 이론, 인류학, 철학 등의 분야를 이용한다. 인지과학은 21세기초 과학 중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 중 하나다. 근대 인지과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을 바라본다.
  • 첫째, 마음은 MIT의 스티븐 핀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보 처리 기관’ 다른 말로 하면 ‘계산을 하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인지과학자들은 ‘컴퓨터’라는 용어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계산을 하기는 하는데 인간이 만든 컴퓨터와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한다. ‘정보 처리 기관’이라는 용어는 인간 마음을 담고 있는 뇌가 당신의 생물학적인 장비의 한 부분이지만 정보의 처리하는 전문화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용어는 또한 우리의 뇌가 특이하게 복잡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술적이거나 궁극적으로 알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우리의 뇌는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물질적 대상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인지과학이 마음을 바라보는 두 번째 관점은 진화다. ‘호모 사피엔스’의 정보처리 기관은 자연 선택의 힘들에 의해 형성되었고 우리 종의 역사와 환경의 산물이다. 우리의 마음은 깨끗한 백지에서 출발한 엔지니어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영장류로서 보낸 수천만 년, 그리고 아프리카 사바나의 환경에서 주로 살면서 원시 인류로서 보낸 그 다음 200만 년의 진화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 인지과학 연구는 인간의 마음은 정보 처리와 학습이라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완전 합리성’이라는 가정으로 표현된 그림과는 매우 달느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인간은 긴 방정식을 계산하는데는 총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놀라운 이야기꾼이자 동시에 이런 이야기에 대한 경청자이기도 하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학습과학 연구소 소장이자 예일대 인공지능연구소의 전 소장 로저 쉥크는 이해, 기억, 그리고 소통을 위한 우리의 정신적 과정에서 이야기가 중심적 역할을 함을 보여주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
  •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주된 방법이 귀납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귀납법은 본질적으로 패턴 인식에 의한 추론이다. 이는 증거 우위의 원칙에 따른 결론을 활용한다. 예컨대 집사가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그의 지문이 칼에 남아있고 현장을 떠나다가 잡혔으며 그럴 만한 동기가 있었다고 하면 그가 실제로 일을 저질렀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집사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했다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그 누구도 집사가 그렇게 하는 것을 못 봤다. 그러나 증거의 패턴이라는 게 있어서 우리는 귀납적으로 집사가 그렇게 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우리의 귀납적 사고 기계에 들어가 그 속에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은 우리가 학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예컨대 셰익스피어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사랑과 가족 관계에 대한 유용한 모든 종류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 인간은 특히 두 가지 측면의 귀납적 패턴 인식에 뛰어나다. 첫째, 새로운 경험을 은유와 유추 만들기를 통해 옛날 패턴에 연결시킨다. 인터넷이 1990년대 초 처음으로 비즈니스 영역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인터넷이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 소프트웨어, 그리고 전화 등과 유사한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유추를 통해 이를 정의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둘째, 우리는 좋은 패턴 인식자일 뿐 아니라 매우 훌륭한 패턴 완성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은 잃어버린 정보의 갭을 채워 넣는데는 전문가적이다. 패턴을 완성하고 매우 불완전한 정보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는 그런 능력 덕분에 빠르게 움직이면서 동시에 모호한 그런 환경에서도 우리는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 패턴 인식과 이야기 하기는 인간의 인식에 핵심적인 요소들로서 이것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임의적인 자료에서도 패턴을 발견하고 이약기를 만들어낸다. 스포츠 해설가와 팬들은 그저 그런 선수가 갑자기 호조를 보이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상세한 이야기들을 이끌어 내는 것을 즐긴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이게 무슨 패턴인지를 설명하려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디프 블루가 신발 끈을 맬 수 없는 이유

  • 귀납의 반대말은 연역이다. 연역은 일단의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놀리적으로 나오는 추론 과정이다. 인간은 귀납만큼 연역을 사용하지만 귀납만큼 연역을 능숙하게 사용하지는 못한다. 흥미롭게도 컴퓨터는 그 반대다. 우리 중 누구나 순간적으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다.(하나의 귀납 작업) 그러나 대부분 연역적 계산, 예컨대 (239.46 x 0.48 + 6.03) / 120.9708 을 계산하려면 힘들다. 그러나 간단한 포켓 계산기는 후자와 같은 것을 빨리 또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정답은 1).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컴퓨터라 하더라도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프로그래밍상의 과제다.
  • 우리는 강한 귀납적 능력에 덧붙여 때때로 연역의 활용을 통해 이를 보완한다. 대개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난처한 입장에 빠졌을 때, 패턴에 대한 우리의 DB가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을 때, 또는 우리의 귀납적 본능이 제공한 답에 대해 확신이 안 설 때 그렇게 한다. 그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기 위해 논리를 적용한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도움을 얻고자 몇 가지 도구들 –연필, 종이, 대수학, 아바치, 계산기, 컴퓨터, 과학적 방법 등– 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이를 통해 수치 처리 등 문제를 해결하면 그 경험은 하나의 패턴으로서 우리의 인식에 쌓이게 되므로 그 다음부터는 이 과정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패턴에 기초한 판단의 성공 또는 실패를 끊임없이 평가하면서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해나간다.
  • 귀납과 연역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체스 게임이다. 최고의 체스 선수들은 우선 귀납을 활용해 체스판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서 연역을 사용해 구체적인 위치들을 분석한다. 명인급의 체스 선수들은 힐끗 보기만 해도 대략 5만 가지에 달하는 서로 다른 장기 포지션들을 구별해 낸다고 한다. 이런 믿을 수 없는 귀납적 패턴의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그들은 수많은 상황에 거의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예컨대 “이것은 1971년 세계 챔피언전에서 보비 피셔의 공격과 좀 비슷하군” 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체스는 엄청난 경우의 수를 가진 게임이기 때문에 미리 인식하고 있던 패턴과 들어맞지 않는 상황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이때 명인들은 이를 갈면서 특정 포지션을 염두에 두고 말을 옮기거나 그 반대의 이동으로 나누어지는 가능한 모든 선택을 포함하는 의사 결정 나무를 통해 연역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간다. 최고 체스 선수들은 대부분 연역적 의사 결정 나무에서 단계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다.
  • IBM이 만든 체스 두는 컴퓨터 디프 블루는 초당 2억 번에 달하는 모든 가능한 수들을 평가하고 의사 결정 나무의 6단계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디프 블루의 사례는 왜 우리가 연역보다 귀납을 선호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연역은 단지 장기의 수처럼 매우 잘 정의된 문제에서만 효과가 있다. 무슨 의미냐면 연역이 작동하려면 그 문제가 어떤 정보를 잃어버리거나 모호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연역은 추론을 하는데 매우 강력한 방법이지만 본질적으로 차갑고 냉담하다. 귀납은 연역보다 잘못될 경향이 있지만 보다 유연하고 또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정보 상황에서는 더 적합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귀납 쪽으로 치위게 되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디프 블루는 게리 카스파로프 수준으로 체스를 둘 수 있지만 게리 카스파로프의 귀납적 기계는 그가 장기를 둘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아침에 그가 신발 끈을 매게 하고 식당에서 주문을 할 수도 있게 한다. 디프 블루가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다.
  • 근대 인지과학이 인간 행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 합리성에 기초한 전통적 경제학 관점과는 거의 정반대다. 인지과학적 관점은 실험경제학자들이 제기한 변칙적인 결과들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구조화 편견, 가용성 편견, 닻 내리기 효과 등은 빠른 패턴 인식자로서 또 미흡한 패턴의 완성자로서 인간의 모습과 어울린다. 때때로 귀납에 너무 성급한 나머지 실수를 하고 논리적 연관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빠르고, 유연하고, 대충은 옳은 그런 존재로 발전했다. 이는 느리고, 냉담하고, 그러나 완벽하게 논리적인 그런 존재와 대비된다.
  •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는 난처한 처지가 됐다. 완전 합리성의 핵심적인 이득은 그것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당신은 그것을 일련의 방정식 형태로 표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모델을 세울 수 있다. 경제학이 과학이 되려면 그와 같은 정확성이나 엄밀성을 필요로 한다. 패턴 인식, 귀납, 학습 그리고 유추하기처럼 완전 합리성과 거리가 먼 개념들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행위자의 마음

  • 아직 표준적이고 광범위하게 합의된 귀납적 추론 모델은 없지만 다양한 연구자들은 적어도 정확히 표현된 수학적 귀납 모델을 정립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패턴 인식과 학습을 특징으로 하는 모델들은 오늘날 컴퓨터 과학 연구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이 모델들은 공항에서 테러리스트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에서부터 신용카드를 이용한 사기 패턴을 인식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많이 응용되고 있다.
  • 미시간 대학의 컴퓨터 과학자 존 홀란드, UCLA의 심리학자 키스 홀리오크, 미시간 대학의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 프린스턴 대학 인지과학연구소의 폴 타거드 등은 귀납에 관한 일반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이는 새로운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표본이다. 홀란드와 그 동료들이 만든 모델의 기본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의 연구에서 따온 것이다. 하나는 1959년부터 1996년까지 IBM의 주식 가격에 로그를 취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랜덤워크 데이터이다 –이 랜덤워크는 그 안에 하나의 성장 추세를 갖고 있다.– 이 그래프는 매우 비슷해 보여서 구분을 해 놓지 않으면 어느 것이 IBM 주식이고 어느 것이 랜덤워크인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랜덤워크는 100년에 걸쳐 금융이론의 핵심이 되어 왔다.
    • 행위자: 다른 행위자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가 있다.
    • 목표: 행위자는 달성하려고 하는 한 가지 목표 또는 여러 목표들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상황과 자신이 바라는 상황 과의 격차를 인식할 수 있다. 행위자의 일은 목표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다.
    • 경험의 법칙: 행위자는 현 상태와 필요한 행동을 연결시키는 경험의 법칙들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조건-행동’ 규칙으로 불린다. 이는 ‘IF, THEN’ 규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정 시점에서 행위자가 갖는 경험 법칙들의 집한은 그 행위자의 ‘사고 모델’로 불린다.
    • 피드백과 학습: 행위자의 사고 모델은 어떤 규칙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됐고, 어떤 규칙이 목표로부터 더 멀어지게 했는지를 추적한다.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규칙들은 비성공적인 규칙들보다 종종 더 자주 활용되었다. 환경으로부터의 피드백은 행위자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귀납은 행위자가 자신의 목표 달성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문제 해결 도구다. 환경으로부터의 피드백으로 형성된 규칙들의 집합은 외부 세계에 대한 행위자의 내부 모델이다. 행위자는 이 내부 모델을 사용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게 최선일지를 예측한다.
  • 이렇게 귀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하며, 유추를 통해 추론하는 방식은 꽤 복잡해 보이지만 이런 문제 해결 구조는 복잡성 정도에 따라 그 수준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생물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심지어 박테리아조차 귀납적 문제 해결 방식을 사용한다.

개구리 학습

  • 연못 위의 개구리 커밋(Kermit)을 상상해 보자. 그의 삶의 목표는 위험을 피해서 파리를 먹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커밋의 사고 모델을 보면 그는 감각을 통해 자신이 처한 환경 조건들, 에컨대 ‘움직인다’ ‘줄무늬가 있다’ ‘크다’ ‘가까이 있다’ ‘윙윙거린다’ 등을 체크하는 다양한 탐지기를 갖고 있다. 커밋은 또 이에 대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 예컨대 ‘도망간다’ ‘추적한다’ ‘혀를 내민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등의 처방하는 작동체들의 집합도 갖고 있다. 커밋의 사고 모델이 하는 일은 자신의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는 방식으로 탐지기와 작동체를 함께 묶어 ‘IF, THEN’ 규칙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만약(IF) ‘작고’ ‘날아다니고’ ‘시야 한 가운데 있다’면, 그러면(THEN) ‘혀를 내민다’>는 식이다.
  • 커밋은 어떻게 그런 규칙을 얻게 될까? 그리고 커밋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학습하는 것일까? 커밋에는 DNA 형태로 강하게 고정된 기본적인 규칙의 집합이 있다. 올챙이 때부터 먹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착수하고 위험은 피한다. 그러나 일단 세상 밖으로 나가면 커밋의 규칙은 빠르게 확장되기 시작한다. 예컨대 커밋이 <만약(IF) ‘작고’ ‘날아다니고’ ‘시야 한 가운데 있다’면, 그러면(THEN) ‘혀를 내민다’> 는 규칙을 갖고 태어났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꿀벌이나 말벌 등 유쾌하지 않은 친구들을 만난 후에는 그 규칙을 수정할 수 있다. 즉, <만약(IF) ‘작고’ ‘날아다니고’ ‘푸르고’ ‘시야 한 가운데 있다’면, 그러면(THEN) ‘혀를 내민다’>는 식으로 고친다. 이는 보다 정확히 파리를 잡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꿀벌이나 말벌에 대한 나쁜 경험으로 인해 그는 새로운 규칙을 추가할 수 있다. 즉, <만약(IF) ‘작고’ ‘날아다니고’ ‘줄무늬가 있다’면, 그러면(THEN)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이다.
  • 커밋의 규칙 집합이 이렇게 환경으로부터의 피드백을 통해 수정되고 확장 되면서 그는 불가피하게 갈등을 야기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느 날 커밋이 조그맣고 날아다니는 푸른 것을 보고 있는데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지나간다고 하자. 커밋의 탐지기는 두 가지 규칙을 내려 보낼 것이다. <만약(IF) ‘작고’ ‘날아다니고’ ‘푸르고’ ‘시야 한 가운데 있다’면, 그러면(THEN) ‘혀를 내민다’>와 <만약(IF) ‘그림자’ 머리 위’면, 그러면(THEN) ‘도망친다’>이다. 이 두 가지 규칙이 지금 경쟁을 하고 있다. 이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밋의 사고 모델은 신용 할당 과정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즉, 해당 규칙을 적용했을 때 과거 커밋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기초해 점수를 부여 받는다는 얘기다. 성공적인 규칙은 높은 점수를 얻는 반면, 성공적이지 못하거나 오히려 손해를 초래하는 규칙은 낮은 점수를 받는다. <만약(IF) ‘그림자’ 머리 위’면, 그러면(THEN) ‘도망친다’>는 규칙이 커밋이 약탈적인 새들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결과 커밋의 사고 모델의 점수 시스템에서 이 규칙은 100점을 부여 받았다고 하자. 그리고 파리를 잡는 규칙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규칙만큼은 중요하지 않아 80점을 부여 받았다고 하자. 두 가지 규칙이 동시에 적용되는 상황이면 커밋의 사고 모델은 보다 높은 점수의 규칙을 선택할 것이고 따라서 그는 도망갈 것이다. 커밋의 사고 모델은 그의 목표 관점에서 도망하는 규칙이 얼마나 잘 먹혀 들었는지를 따져 그 점수를 다시 갱신할 것이다.
  • 이런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학습으로 이어진다. 커밋이 가령 <만약(IF)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떠났다’면, 그러면(THEN) ‘왼쪽으로 향한다’ ‘혀를 내민다’>는 규칙을 갖고 있다고 하자. 우연한 경우 커밋이 머리를 왼쪽 대신 오른쪽으로 돌렸는데 파리를 잡았다면 <만약(IF)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떠났다’면, 그러면(THEN) ‘오른쪽으로 향한다’ ‘혀를 내민다’>는 규칙도 추가할 것이다. 두 가지 규칙은 직접적으로 상축 관계다. 이 두 가지 규칙 모두 과거에 파리를 잡는 결과를 낳았고 그래서 10점이라는 점수를 똑같이 부여 받았다고 하면 이제 이 두 가지 규칙은 개구리 세계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점수가 동일하다면 커밋은 두 가지 규칙을 다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왼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규칙이 더 나은 결과를 내고 그 결과 이 규칙의 점수가 올라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어떤 규칙의 점수가 10점에서 11점으로 올라가자마자 커밋이 이와 경쟁하는 다른 규칙은 전혀 시도하지 않을 정도로 시스템이 경직화 되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만약 커밋이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규칙을 시도하여 파리를 잡았다면, 이 규칙의 점수가 11점으로 올라감으로써 커밋은 앞으로 왼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규칙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면 궁극적으로 굶어 죽게 될 가능성도 있다. 높은 점수는 이 규칙이 적용될 가능성을 증가시키지만 그렇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점수가 비슷한 규칙들에 대해서는 실험을 원한다. 그리고 때때로 이미 눈 밖에 난 규칙도 세계가 정말 변해 버렸는지 그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해보고 싶을지 모른다. 둘째, 때때로 행동과 보상이 시간적으로 따로 논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비용은 단기간에 들고 이익은 장기적으로 나오는 그런 일에 대해서 시스템은 어떻게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학습할까?
  • 홀란드와 동료들의 답, 즉 “우리에게는 시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경제학자들의 마음이 훈훈해질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가정은 이렇다. 당신의 사고 모델에 있는 규칙들은 각자의 신용 점수를 이용, 당신의 선택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신용 점수가 높으면 물론 이 규칙이 선택될 확률이 더 높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5점 차이 밖에 안 나는 두 규칙 중 어느 것이 선택될지는 50:50일 수도 있고, 만약 10점 차이가 난다면 60:40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은 대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단일 규칙들 간에 이루어진다. 예컨대 커밋은 파리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고 이에 접근해 들어가서 파리들이 돌아올 때까지 한동안 앉아 있다가 혀를 가지고 단숨에 해치워 버린다는 전략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연쇄적인 규칙들이 작용한다는 것은 보상을 얻는 규칙 <만약(IF) ‘파리’면, 그러면(THEN) ‘혀를 내민다’>과 먼저 그런 조건을 갖추는 규칙 <만약(IF) ‘파리를 끌어 모으는 냄새나는 음식물’면, 그러면(THEN) ‘접근한다’>이 분리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 규칙 시장에서 연쇄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규칙들은 서로에게 공급자이고 고객이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혀를 내민다’ 규칙은 ‘앉아서 기다린다’ 규칙으로부터 구매를 하고, 이 규칙은 또 ‘냄새나는 음식물에 접근한다’는 규칙으로부터 구매를 한다. 따라서 ‘혀를 내민다’는 규칙이 보상을 받으면 이는 그 공급자 역할을 한 규칙들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이들 공급자들은 또 자신들에게 공급자 역할을 한 규칙들에게 대가를 지불한다. 이윤을 창출하는 규칙들(즉, 이들은 모두 보상을 얻어 낸 체인의 능력에 기여했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강도가 점점 세져 더욱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규칙들이 체인 상에서 뒤로 멀리 가면 갈수록 대가로 지불받는 몫은 다시 말해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down,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뜻으로 적하효과로 불린다.) 효과는 중간에 위치한 다른 많은 규칙들 때문에 점점 줄어든다. 그 결과 보다 몫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원인과 결과 사이의 거리에 한계가 설정된다. 이런 구조는 우리가 어느 정도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길고 복잡한 인과적 연쇄 사슬을 따라 추론을 해나가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실험적 증거와 일치하는 것이다.

개구리 시?

  • 시스템의 성과를 크게 높이기 위해 가정을 한 가지 더 만든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스템의 규칙들은 자기 조직화를 통해 ‘계층적 구조’가 된다고 가정한다. 커밋의 세계는 규칙성이 있기 때문에 커밋의 사고 모델에 나타나는 규칙의 패턴에도 규칙성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작다’ ‘날아다닌다’ ‘푸르다’ 등을 다루는 규칙들은 동시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규칙들이 함께 나타나면 이들은 연관성이 있는 것이므로 유리는 이 규칙들이 하나의 범주로 조직화 된다고 할 수 있다. 커밋이 ‘작다’ ‘푸르다’에 해당하는 것을 만날 때 떠오르는 여러 규칙들은 ‘파리’라는 범주에 들어올 수 있고, 마찬가지로 ‘크다’ ‘날아다닌다’ ‘날개를 퍼덕거린다’ 규칙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새’라는 범주로 모일 수 있다. 커밋의 사고 모델은 파리와 새와 관련한 수많은 경험들과 반응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 계층적 구조는 귀납적 시스템에 두 가지 중요한 이점을 준다. 우선 시스템이 새로운 현상에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사고 모델도 언제나 실제 세계보다는 더 단순할 것이다. 따라서 커밋은 항상 자신이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황을 만날 수 있고 그 경우 어떤 대응을 필요로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커밋의 사고 모델은 ‘기본적으로 미리 내정된 계층 구조’로 정리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커밋이 어떤 패턴을 만나면 그의 사고 모델은 그 패턴에 맞는 특정한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 조사할 것이다. 그래서 만약 없다면 그는 다시 미리 내정된 대응에 의지할 것이다. 예컨대 커밋이 <만약(IF) ‘목적물 이동’ ‘다른 정보 없음’이면, 그러면(THEN) ‘도망간다’>라는 미리 내정된 대응책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는 커밋으로 하여금 어려운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설계된 매우 일반적이고 보수적인 규칙이다. 그러나 커밋은 보다 구체적인 대응책, 예컨대 <만약(IF) ‘목적물 이동’ ‘작다’ ‘가깝다’이면, 그러면(THEN) ‘접근한다’ ‘천천히’>와 같은 경우를 포함하여 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몇 가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커밋은 새로운 현상에 직면할 때는 조심하다가 다시 시도해서 정답을 찾는 그런 규칙들에 의지하는 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상황마다 그에 적합한 목록들을 개발할 것이다.
  • 규칙 계층 구조가 갖는 두 번째 이점은 유추에 의한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개구리는 문학적 의미에서의 은유를 생각해 낼 수 없지만 귀납적인 시스템을 가진 개구리 또는 다른 어떤 행위자들도 무엇이 다른 어떤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유추를 통해 추론을 할 수 있다. 하나의 계층으로 배열된 규칙들의 집합은 이런 형태의 추론에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가령, 새에 대한 커밋의 경험 중 대부분이 바다 갈매기였고 그 결과 ‘크다’ ‘날아다닌다’ ‘날개를 퍼덕거린다’ 등을 탐지하면 발동되는 규칙들이 ‘새’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다고 하자. 어느 날 커밋은 ‘크다’ ‘날아다닌다’ 그러나 ‘날개를 퍼덕거린다’에는 해당되지 않는 어떤 것을 보았다. 이런 일에 직면하면 ‘새’라는 탐지기들의 일부만 작동하게 된다. 커밋에게 이 새로운 물체는 ‘새 같은 것 또는 새 비슷한 것’으로 새에 관한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정확히 맞지 않는다. 커밋의 사고 모델은 무엇이 이 새로운 물체와 일치하는지 다른 범주들을 탐색하고는 이것이 파리나 강아지보다는 새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커밋은 이미 정해 놓은 규칙의 계층 구조를 활용해 가장 일반적인 새에 대한 대응책, 즉 ‘도망간다’ 쪽으로 향한다.
  • 유추에 의한 이론 추론은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는 모호한 세계에서 커밋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어떤 것이 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식별이 안 되는 새로운 물체를 만났을 때 곧바로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범주로 가는 것보다 정확한 대응책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커밋이 본 날개를 퍼덕거리지 않는 것이 개구리를 찾아 날아오르는 매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또 비행기이거나 아무 해가 없는 다른 물체일 수도 있지만 새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것은 여전히 합리적이고 보수적인 반응책의 하나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이다. 커밋의 반응이 비록 완전하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적절한 무슨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향상될 것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나 비행기가 커밋의 세계에 중요하다면 ‘새 비슷하다’는 그의 정의도 발전할 것이고, 결국 이들 물체에 대한 보다 적절한 대응 조치를 그의 미리 내정된 규칙 계층 구조에 입력시켜 놓을 것이다.

금융 정보를 추적하는 스톡 봇

  • 1987년 산타페 연구소의 경제학 미팅 직후 홀란드는 브라이언 아서와 협동 연구를 시작했다. 아서는 학술적이었지만 대학원생일 때 맥킨지 파견 근무를 비롯해 기업 세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는 이런 체험을 통해 실제 세계의 의사 결정 과정은 경제학 모델에서 말하는 참하고, 무미건조하며, 완벽한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실제 세계를 보다 잘 반영하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홀란드와 아서 팀은 홀란드의 아이디어를 주식 시장 행태를 모델링하는데 응용해 보기로 했다. 이들이 블레이크 르바론, 리처드 팔머, 산타페 연구소 인공적 주식 시장의 폴테일러 등과 함께 정립한 모델은 그 후 복잡계 경제학 문헌에서는 하나의 고전으로 통하게 되었다.
  • 일반적 귀납 모델을 따른다면 산타페 모델에서 행위자들은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로서 본질적으로 작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이다. 이들은 환경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를 처리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 환경으로부터 그 결정에 대한 피드백을 얻는다. 슈거스케이프의 행위자처럼, 주식 시장 모델의 행위자들에게도 진화의 힘이 적용된다. 즉,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슈거스케이프 행위자들이 살아남고 번식을 하는 것처럼, 산타페 주식 시장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주식 거래 행위자들은 보상을 받고 성공적이지 못한 행위자는 파산 선고를 받고 퇴출된다. 그러나 아서, 홀란드와 그 동료들은 자신들의 모델에 또 하나의 진화를 추가 했다. 주식 시장 모델에서 진화는 행위자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그들의 머리 속에서도 작동한다.
  • 당신이 복권에 당첨돼 적당한 금액을 땄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주식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투자 전략에 대한 일반적인 자문을 부탁한다. 그러면 중개인은 당신에게 몇 가지 경험 법칙들을 알려준다. 예컨대 사서 보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좋은 전략이다. 항상 당신의 포트폴리오가 다변화 되어 있는지(위험 분산적인지)를 확인하라. 수익 대비 가격이 그 분야 다른 주식들보다 훨씬 높은 주식들은 조심하라 등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좀 더 자문을 구해 보기로 한다. 몇 명의 중개인에게 더 전화를 해보고 당신의 삼촌이나 친구들에게도 당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본다. 곧바로 당신은 많은 투자 자문을 받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그 중에 불가피하게 서로 모순되는 것들도 있다.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이 모든 후보 전략들을 자세히 살펴본 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 이 시나리오에는 두 가지의 경쟁이 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시장 그 자체에서 투자 전략들 간의 일반적인 경쟁이다. 누가 더 잘할지, 성장 투자가들인가 아니면 가치 투자가들인가? 또는 황소냐 곰이냐? 이런 경쟁을 말한다. 두 번째는 다신의 머릿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투자 전략들 간의 경쟁이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중개인인가? 삼촌인가? 친구인가? 아서와 홀란드는 이 두 가지 모두 진화론적인 학습 과정을 따른다고 추측했다.
  • 이 아이디어를 탐색하기 위해 아서, 홀란드와 그 동료들은 컴퓨터 상에서 가상으로 거래되는 주식 환경을 만들었다. 임의로 배당금을 지급하는 단일 주식을 대상으로 했다. 그리고 주식을 사고팔 100명의 거래 행위자들도 두었다. 주식의 가격은 시장에서 행위자들의 매매에 의해 결정된다. 각 행위자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행위자들은 언제 사고팔지 결정해야만 했다. 행위자들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세 가지 정보를 참고 했다. 주식의 과거 가격 패턴, 배당금 지급 기록, 안정적인 이자율이다. 다음으로 아서, 홀란드와 그 동료들은 행위자들이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이들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 개구리 모델에서처럼 연구자들은 시장에서의 패턴과 행위자의 주식 가치에 대한 기대를 이어주는 ‘조건-행동 규칙’을 활용했다. 예컨대 <만약(IF) ‘지난 기간에 비해 가격이 5% 오른다’면, 그러면(THEN) ‘다음 기간 가격은 현재 기간 가격 +5%로 예측하라’>는 것과 같은 규칙이다. 이런 규칙을 따르는 행위자는 예측 가격과 현재 가격을 비교함으로써 주식을 살 것인지 팔 것인지를 간단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예측 가격이 더 높으면 주식을 사고, 더 낮으면 팔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규칙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예컨대 <만약(IF) ‘지난 세 기간에 걸쳐 가격이 올랐다’면, 그리고(AND) ‘가격이 배당금을 안정적인 기본 이자율로 나눈 것의 16배보다 크지 않다’면, 그러면(THEN) ‘다음 기간 가격과 배당금 합은 현재 기간 가격과 배당금 합의 106%로 예측하라’>는 규칙도 있을 수 있다. 행위자들이 사용하는 경험 법칙들은 기본적인 조건(예컨대 이익대비 가격 비율이 일정 범위에 있는 주식을 사라)이나 시장의 추세(계속 가격이 상승하는 주식을 사라) 또는 이 두 가지의 혼합에 근거할 수 있다. 이 모델에는 하나의 규칙이 얼마나 복잡해도 되는지에 대한 어떤 제한은 없다.
  • 복권 당첨자가 상충하는 투자 자문들을 모두 살펴 본다고 했던 것과 일치하도록 아서와 홀란드는 각 행위자에게 단지 하나의 경험 규칙이 아니라 100개의 규칙들을 부여했다. 그러니까 행위자는 주식 시장에서 무엇이 과연 성공에 이를지 머릿속에 있는 100개의 규칙들을 서로 경쟁하는 가설들로 해석할 수 있다. 달리 설명하면 각 규칙은 하나의 잠재적인 투자 전략이고, 행위자가 할 일은 가능한 모든 잠재적인 전략들을 다 살펴본 뒤 어떤 것이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 이렇게 말하면 행위지달이 어떻게 100개나 되는 투자 전략을 다 살펴 볼 수 있는지 궁금해질 수 있다. 답은 매우 간단한데, 개구리 커밋처럼 행위자들은 과거의 경험을 사용한다. 아서와 홀란드는 행위자의 머릿속에서도 진화의 과정이 작동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각각의 조건-행동 규칙은 1과 0을 사용한 일련의 번호들로 코드화되었다. 이런 일련의 번호는 다양한 투자 전략을 표현하는 컴퓨터 DNA로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011000100101은 <만약(IF) ‘배당금이 지난 다섯 번의 기간에 걸쳐 평균 10% 떨어졌다’면, 그러면(THEN) ‘가격이 다음 기간에는 2%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라’>를 표현하는 것이고 100011010101은 <만약(IF) ‘배당금이 안정적인 기본 이자율의 3배보다 적다’면, 그러면(THEN) ‘가격이 다음 기간에는 5% 오를 것으로 예측하라’>를 표현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각 행위자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머릿속에 수많은 투자 전략 DNA를 갖고 있다. 각 전략 DNA마다 적합도(또는 적응도) 점수도 부여받는다. 따라서 어떤 전략이 행위자에게 돈을 벌어다 주었다면 그 적합도 점수는 증가하고 반대로 돈을 잃게 했다면 점수는 내려간다.
  • 게임의 매 회 각 행위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행위자는 과거 주식 가격, 배당금, 그리고 안정적인 기본 이자율 정보를 받았다. 그런 다음 이 정보를 자신들의 잠재적인 투자 전략과 시장의 패턴에 관한 자신들의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일치 여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몇 가지 규칙들이 일치하면 행위자는 각 규칙들의 적합도 점수를 보고는 가장 높은 점수를 가진 규칙을 선택한다. 따라서 과거에 잘 들어맞았던 규칙들은 더 자주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 규칙이 일단 활용된 뒤에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핀다. 다시 말해 돈을 벌게 했는지, 아니면 잃게 했는지를 살펴본다는 얘기다. 행위자가 돈을 벌었다면 그 결과로 인하여 이 규칙은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다. 반대로 돈을 잃으면 이 규칙은 약해진다.
  • 지금까지 우리는 고정된 수의 규칙들 안에서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제 각 행위자마다 임의로 구축된 100개의 규칙들을 가지고 출발한다고 하자. 이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행위자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가진 규칙들 중 어느 것이 돈을 벌고 그렇지 않은지를 학습할 것이다.그러나 실제 주식 시장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 전략을 고안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위자들로 항금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 내게 할 것인가?
  • 아서와 홀란드와 그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모델 안에 집어 넣었다. 때때로 중간중간에 각 행위자들이 보유한 100개 규칙들의 집합이 하나의 진화 과정을 겪도록 한 것이다. 즉, 성적이 밑바닥인 20개의 규칙들은 제거되고 새로운 규칙들이 탄생해 이들 자리를 차지한다. 보다 성공적인, 남아 있는 80개 규칙들 중 일부의 경우는 컴퓨터 DNA의 개별 요소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예컨대 일련의 숫자 중 임의의 1이 0으로 바뀌거나 그 반대가 일어날 수 있다. 또 남아 있는 일부 규칙들은 재결합 되기도 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컴퓨터 섹스다. 하나의 DNA 열이 임의의 지점에서 싹둑 잘려 두 개가 되고 이것이 또 다른 열과 결합되었다가 다시 두 개로 잘리면서 새로운 다른 무엇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돌연변이와 재결합 과정의 결과로 행위자가 가진 100개의 규칙 풀에서 새로운 전략이 만들어진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전략들 중 많은 것은 말이 안 되거나 심지어는 해롭기까지 할 수 있지만 그중 일부는 정말 성공적인 혁신일 수 있다.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른 많은 전략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인 그런 전략이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 귀납적인 주식 시장 모델이 준비되자 아서와 홀란드와 그 동료들은 스위치를 눌러 일련의 실험을 시작했다. 행위자마다 100개의 규칙을 가진 완전한 모델을 돌리기 앞서 모든 행위자가 똑같은 한 가지 규칙, 즉 완전 합리성을 가졌고 학습률은 0인 단순한 시스템을 먼저 돌려 보았다. 돌려 본 결과는 전통 경제학이 예측했던 것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델은 빠른 속도로 이론적 균형 가격에 가까운 한 가격으로 안정되어 갔다. 균형 가격은 주식의 기본적 가치와 일치한다. 거래량이나 변동성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번 것보다 특별히 더 높은 이익을 얻지 못했다. 이 실험은 모든 사람이 전통 경제학의 합리성에 따라 행동한다면 상황은 대체로 전통 이론이 예측한 대로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 아서와 홀란드는 다른 모델을 돌려 보았다. 두 사람은 각 행위자의 머릿속에 있는 100개에 달하는 경쟁적 규칙들을 작동시켰다. 임의로 분포한 전략들로 초기 값을 주었고, 학습률은 0 이상으로 높였다. 이는 모델의 행태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거래량은 훨씬 높아졌고, 변동성은 커졌다. 그리고 주식 가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버블과 폭락 등 훨씬 더 복잡한 동태성을 갖게 되었다. 시장 또한 강력한 폭풍과도 같은 기간들과 상대적으로 정적인 기간들이 산재하는 그런 패턴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행위자들의 상대적인 성과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엄청나게 우수한 워런 버핏 같은 행위자가 나왔는가 하면 추락해 파산한 행위자도 나왔다. 실질적인 금융 시장은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균형보다 지금 이런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
  • 무엇이 보다 동태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시장으로 변화시킨 것일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완전 합리성 규칙들을 가지고 별다른 학습도 없이 여기에 매달리면 가격은 대략 균형 상황을 보이며 시장은 마치 떼를 지어 쭉 굴러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질성과 학습을 도입하자마자 상황은 훨씬 더 다양해졌고 더 복잡해졌다. 가령 어떤 이유로 주식 가격이 일시적으로 좀 올랐다고 하면 일부 행위자는 이 주가의 상승을 살펴보고 주식을 산다. 가격이 오르면서 점점 더 많은 행위자들이 뛰어들고 그 결과 가격은 더욱더 높이 올라간다.그러나 다른 일부 행위자들은 이 주식의 기본 가치에 주모하면서 주식이 지나치게 고평가 되었다고 생각해 어떤 시점부터 팔기 시작한다. 충분히 많은 행위자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나오면 주식 가격은 다시 하락할 것이고, 하락하는 주식을 매도하라는 규칙을 가진 행위자의 진입을 동시에 자극한다. 성장 투자가들이 모두 출구를 향해 달아나기 시작하면 주식 가격은 폭락으로 향할 것이다. 이러다 보면 주가의 이런 등락 패턴을 특별히 살피는 새로운 규칙들이 발전할 수 있다. 이 모든 가격 움직임은 여러 규칙들이 동태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촉발된다. 그 근저에 있는 주식의 경제적 가치 변화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복잡한 패턴은 단순히 임의적인 잡음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는 행위자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각 행위자들 간의 여러 가지 믿음들이 복잡한 양상으로 경쟁하고 있고 그 결과 시장의 변동성과 복잡한 패턴이 촉발된다.

부의 기원/ 동태성: 불균형의 즐거움

  • 경제학이 물리학과의 만남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지적인 고립 상황으로 빠져 들어가던 20세기 초 물리학에서는 커다란 방향 변화가 일어났다. 그 다음 100년 간에 걸쳐 발라와 그 동료들이 빌려 온 바로 그 물리학 이론들은 파기되고 그 자리에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비선형 시스템의 열 역학, 카오스 이론, 복잡계 이론 등이 들어선다.
  • 과학자들은 우주가 시계처럼 결정적인 것도 아니고 도박처럼 임의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사실 완전히 결정적이거나, 진정으로 임의적인 시스템은 꽤 드물다. 우주에 있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그 중간쯤 어디엔가 위치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결정론과 임의성이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혼합되어 있다. 20세기 과학은 어지럽게 늘려진 것과 확정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태성과 피드백

  • 경제가 하나의 동태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은 경제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의미이다. 가격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임금은 변한다. 기업들은 시장에 진출하고 퇴출된다. 이런 동태성은 전통 경제학에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외부적인 원천 예컨대 기술 변화, 정치적 사건들, 소비자 취향의 변화와 같은 것들로부터 생긴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우리가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이런 동태성이 어떻게 경제 그 자체의 구조에서 비롯되는지, 다시 말해 내생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과학자들이 어떤 시스템이 동태적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현재 순간 그 시스템의 상태는 바로 전 시스템 상태와의 어떤 변화의 함수라는 얘기다. 동태적인 모델의 가장 간단한 예는 은행 계좌다. 계좌의 상태, 즉 잔고(balance)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내일 당신의 잔고는 오늘 당신의 잔고 상태와 더불어 그 사이 이루어진 예금, 인출 또는 이자 지급과 같은 변화에 의존한다. 여기서 특정 시점에서 계좌 잔고를 나타내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공식 하나를 만들 수 있다. Bt+1 = Bt + (예금-인출+이자). 여기서 t는 오늘의 잔고이고 t+1은 내일의 잔고이다. 그러므로 저축 계좌는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리고 어떤 특정 기간 이 방정식의 결과는 그 다음 기간의 방정식 계산에 투입 변수가 되는 식으로 계속 반복된다. 동태적 과정에서의 변화는 은행 계좌에서처럼 특정 시점에 변화가 일어나는 이산적 형태일 수도 있고 행성이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 동태적 시스템을 표현하는 가장 편리한 하나의 방법은 스톡 (stock, 축적)과 플로 (flow, 흐름) 개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스톡은 은행 계좌의 잔고나 욕조의 물처럼 무엇인가의 축적을 가리킨다. 그리고 시간에 따른 스톡의 변화율은 플로다. 예컨대 은행 계좌로 흘러들어가거나 여기서 빠져나오는 돈이라든지 욕조에 흘러 들어가거나 여기서 빠져나오는 물 등의 변화율이다.
  • 경제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여러 가지 다른 스톡들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화폐 공급량이라든지 취업자 수 등이 그것이다. 이들 스톡들은 그에 상응하는 플로들 즉 시간에 따른 변화율들을 각각 갖고 있다. 예컨대 중앙은행은 화폐 공급을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기업은 신규 사원을 고용할 수도 있고 해고할 수도 있다. 플로는 언제나 특정 시간 단위당으로 움직인다. 한편 스톡과 플로는 반드시 화폐나 사람처럼 언제나 유형적인 것만은 아니다. 덜 유형적이지만 중요한 스톡들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소비자 신뢰 같은 것은 시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런 스톡으로 생각할 수 있다.
  • 경제를 스톡과 그와 관련된 플로의 집합체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스톡과 플로들이 복잡한 방법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금방 분명해 진다. 예컨대 고용 스톡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 정책 결정자들은 대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결정할지 모른다. 금리 인하로 대출이 촉진되면 투자를 위한 돈의 공급이 확대되는 것이고, 그러면 기업들은 이 돈을 새로운 생산 설비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신규 고용을 유발해 고용의 스톡을 다시 올라가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돌아가 미래의 금리 정책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동태적 시스템에서 스톡과 플로 간의 이 연쇄적인 관계가 바로 피드백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이다.
  • 피드백이 일어나는 경우는 시스템의 한 부분에서의 산출물이 다른 부분에서는 투입물이 되는 경우다. 예컨대 A는 B에 영향을 주고 B는 C에 영향을 주고, C는 다시 A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양의 피드백 (positive feedback, 양의 되먹임)은 이런 피드백이 자기 강화적 (self-reinforcing)일 때 발생한다. 양의 피드백의 고전적 예는 마이크를 확성기에 너무 가까이 가져갔을 때 귀청이 찢어질 듯 소음이 나는 경우다. 아래 쪽으로 확대되는 연쇄적 변도잉나 악순환 또한 양의 피드백의 한 혀앹다. 예컨대 소비자 신뢰의 하락은 지출 감소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생산 감소를 초래해 실업을 유발한다. 그 실업으로 인해 소비자 신뢰가 다시 추락하면 지출은 더 감소돼 바로 침체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는 존 케인스가 1936년 자신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규명했던 것으로 유명한 하나의 ‘동태적 흐름의 고리(dynamic loop)’였다. 양의 피드백을 가진 시스템은 기하급수적 성장이나 붕괴 또는 점점 진폭이 증가하는 진동을 보인다.
  • 음의 피드백 (negative feedback, 음의 되먹임)은 꺽이거나 감소하는 사이클로 자기강화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양의 피드백이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반면 음의 피드백은 변화를 줄이고, 이를 통제하며, 깨끗이 정렬시킨다. 자동 온도 조절 장치가 고전적인 예이다. 음의 피드백을 갖는 시스템은 어떤 정해진 지점, 즉 하나의 균형으로 되돌아가도록 압력을 받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폭이 점점 줄어들면서 사라져 가는 그런 진동의 모습을 보여 준다.
  • 동태적인 시스템의 세 번째 요소는 시간 지체다. 샤워기를 틀었을 때 물의 온도가 맞지 않아 더운물과 찬물을 왔다갔다 하는 문제는 당신이 수도꼭지에서 수준과 실제 그 수준 온도의 물이 나오기까지의 피드백 간에 시간 지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이 이를 파악하게 되면 바람직한 온도에 이를 때까지 진동은 점점 작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간 지체가 너무 길어지면 물의 온도를 통제하기 더 어려워지고 당신이 겪어야 할 진동도 더 커지거나 많아질 것이다.
  • 양과 음의 피드백 고리를 통해 상호 작용하는 스톡과 플로가 여러 개 존재할 경우 동태적인 시스템이 얼마나 재빠르게 복잡해 질 수 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아. 양의 피드백이 시스템을 움직여 그 흐름을 가속화 시키지만 동시에 음의 피드백은 이를 줄이거나 통제하는 방향으로 힘을 가한다. 여기에 시간 지체가 끼어들면 밀어 붙이는 힘과 이를 줄이려는 힘이 균형을 벗어나고 동조성을 잃게 되면서 시스템은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방법으로 진동한다.

코끼리를 제외한 동물들에 대한 연구

  • 경제는 비선형 시스템(nonlinear system)이다. 이 용어는 종종 혼동의 원인이 되고 있는데 심지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조차 그렇다. 비선형은 말 그대로 똑바로 뻗은 선이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때로 곡선을 만들어 내는 모드 함수는 다 비선형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정태적 시스템(static system)에서는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동태적인 시스템이라면 주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선형적인 동태적 시스템도 시간에 따라 점을 찍어 보면 곡선 모양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은행 계좌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자가 들어오면서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계산하기 위한 선형 방정식을 하나 만들어 보자. 이자율은 10%라 하고 이자 외에 어떤 입금이나 인출이 없다고 가정하면 이 은행 계좌의 방정식은 Bt+1 = Bt(1+0.1)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계좌가 현재 100이라고 하면 다음 기간에는 110이 된다는 얘기다. 이 방정식은 덧셈과 곱셈 밖에 없으니 이 관계식은 선형이다. 그러나 계좌 총액을 시간에 따라 표시해 보면 근사한 지수곡선이 나온다.

  • 이 그림을 가리켜 ‘콥웹 도형 (cobweb diagram, 거미줄 도형)’ 이라고 한다. 이 도형을 해석하는 방법은 이렇다. x축은 현재 시점의 계좌를 말하고 y축은 그 다음 시점에 계좌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를 표시한다. 이것을 보면 변화율이 증가하는지 감소하는지 일정한지를 알 수 있다. 예컨대 위 그림의 경우는 변화율이 일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근사한 직선 형태이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선형이다. 선형인 동태적 시스템들은 시간에 따라 수많은 행태를 나타낸다. 여기에는 정지 상태, 직선 성장 또는 직선 감소, 그리고 기하급수적 성장 또는 쇠퇴 등이 포함된다. 그 어떤 경우에도 변화율은 선형이다.
  • 만약 우리가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nonlinear dynamic system)을 살펴보게 되면 얘기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다시 은행 계좌로 돌아가서 계좌가 다음과 같이 계산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방정식으로 표시하면 Bt+1 = rBt – rBt2. 여기서 r은 상수다. 이 방정식을 읽기 쉬운 형태로 다시 쓰면 Bt+1 = rBt(1-Bt). 즉 2차 방정식이다. 예컨대 당신의 현 계좌가 100이고 r이 0.1이면 다음 기간에 당신의 계좌는 -990일 것이다. 이 비선형 방정식이 좋은 저축 계좌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특성들을 갖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이 r를 자동차의 가속 페달처럼 활용할 수 있다. 즉 변화율을 증가시키거나 줄일 수 있다. 만약 이 방정식의 속도를 오려 보면 서로 매우 다른 행태의 그래프들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초기 계좌를 0.1에 놓고 r=1.5로 하면 계좌는 0.3333으로 증가한 뒤 그 다음부터는 평평한 안정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이에 대한 콥웹 모형을 보면 계좌가 0.3333에 이를 때까지는 보기 좋은 곡선을 따라 증가하다가 그 다음에는 멈춰 버린다. 이것은 우리의 오랜 친구, 즉 균형에 도달한 것으로 시스템 용어로는 ‘고정점 인력체 또는 끌개 (fixed-point attractor)’로 불린다. 그 이유는 콥웹 도형에서 보면 시스템이 단일 고정점(이 경우는 0.3333)으로 끌려들어가기 때문이다.

  • 만약 r=3.3으로 하면 매우 다른 결과를 얻는다. 시스템은 마치 앞뒤를 왔다갔다 하는 하나의 추처럼 정기적인 진동을 보이게 된다.

  • 이번에는 r을 조금 위로 움직여 3.52에 놓으면 단순한 진동이 아니라 보다 큰 진동 안에서 또 진동하는 더 복잡한 형태로 변한다. 마치 심장 박동과 같은 형태다(유사 주기적 제한 사이클). 어떤 비선형 시스템은 매우 복잡한 형태를 나타낼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이 경과되고 나서야 결국 스스로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 마지막으로 r=4로 하면 카오스 형태를 얻게 된다.

  • 카오스 시스템은 세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첫째, 외견상으로는 임의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확정적인 것이다. 둘째, 주기적 시스템과 달리 이 공식을 아무리 계속 돌리더라도 결코 반복되는 법이 없다. 물론 매우 길고 복잡한 진동을 갖는 시스템들 중에서 정말 카오스 시스템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내는 것이 때로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셋째, 이 시스템은 제한적이다. 즉, 시스템의 궤적이 왔다갔다 하지만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범위가 있다. 은행 계좌의 경우 이 시스템이 보이는 값의 범위는 0과 1사이다. 그러나 콥웹 도형을 보면 시스템이 가운데 구멍이 뚫린 채 하나의 삼각형 형태를 보여 준다. 왼쪽에 있는 은행 계좌의 시간에 따른 변화와 오른쪽에 있는 변화율을 보여 주는 콥웹 도형을 연결시키기가 좀 어렵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그런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다.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이 언제나 직관적인 것은 아니다. 그 결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런 시스템에서 의사 결정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이렇게 변수 하나를 미세 조정할 경우 매우 다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른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다. 비선형성은 초기 조건상에서는 조그만 차이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크게 확대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당신이 만약 거의 무한한 정밀성을 가지고 이 시스템의 초기 조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결과를 알 수가 없다.
  • 한편 비선형 동태적인 시스템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 중 하나는 경로 의존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역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t+1기의 은행 계좌는 t기의 은행 계좌에 의존한다. 마찬가지로 골퍼가 어떤 홀에서 네 번째 샷을 하는 위치는 그가 세 번째 샷을 했을 때의 위치의 함수다. 그리고 이 세 번째는 두 번째의 함수다. 이렇게 일련의 이어진 사건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면 매우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두 번째 샷이 매우 다르다면 궁극적으로 네 번째 샷에 그만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미다.
  •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과 경로 의존성 때문에 비선형 시스템을 가지고 작업하기는 너무도 어렵다. 많은 경우 예측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발라가 물리학 교과서에서 이것저것 차용할 당시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이미 카오스를 발견하고 많은 종류의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들이 그 당시 가능한 수학적 도구들을 가지고는 풀 수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 방정식을 분석적으로 풀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이 어떤 형태를 보여 줄지 미리 알 수 있는 지름길이 없었다. 이런 시스템이 어떤 형태를 보여 줄지 알아보는 유일한 길은 실제로 굴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컴퓨터 상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다. 그러나 손으로 일일이 그것을 해야 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루한 일이다. 푸앵카레의 발견 이후 과학자들이 비선형 시스템을 아예 무시하거나 선형 방정식을 이용해 비선형 시스템을 근사적으로 표현한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결과 비선형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70년 동안 시들해지고 말았다. 그 후 연구가 재개된 것은 새로운 수학적 도구들과 컴퓨터가 결합되는 1960~1970년대였다. 지금은 비선형 시스템이 물리학자들에게는 빵과 버터와 같은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주제다.
  • 이는 하나의 중요한 발전이었다. 왜냐하면 비선형 시스템은 자연에서 너무도 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행기 날개 상에서의 난기류에서부터 기후, 레이저, 그리고 뇌에서의 시냅스들의 분출에 이르기까지 비선형은 수많은 현상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비선형 시스템은 흔한 현상이고 반면 진실로 선형인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수학자 이안 스튜어트 (Ian Stewart)는 비선형 시스템과 같은 분야에 대한 연구가 물리학자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코끼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동물, 즉 비후피동물 연구(nonpachydermology)가 동물학자들에게 의미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경제, 복잡하지만 카오스는 아니다

  • 경제학자들은 튀르고가 18세기 수확 체감의 법칙을 고안한 이후 비선형 관계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우리 역시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는 기술 변화의 속도에서부터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에 비해 다섯 번째쯤 되면 눈길이 덜 가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일상 경제 생활에서도 비선형성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통계적인 연구들을 보면 산업 생산에서부터 고용 수치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데이터에서도 비선형성에 대한 증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경제학에서 비선형성의 존재에 대해 인식한지는 오래됐지만 이런 비선형성을 동태적인 방법으로 내재화하는 과정에서는(모델에 포함시키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에 대해 최근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통 경제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정태적 모델에서 비선형 관계를 활용하거나 동태적 모델에서 선형 관계를 활용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든 방정식이 풀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복잡계 경제학의 접근 방식은 이와 다르다.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경제를 비선형적이고 동시에 동태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 인식의 한 결과로서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최근 개발된 수학적 기법들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 1980년대 “경제는 무질서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주식 시장이 무질서한지 아닌지가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후속적인 연구들이 있어 왔는데 현재 이루어진 합의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로 나타나고 있다. 카오스는 복잡하지만 혼돈스럽지 않은 다른 행태, 또 임의성을 갖는 행태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어떤 확정적인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어떤 시스템이 카오스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려고 해도 상당한 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가 많은 금융 시장조차 확정적인 결과를 낼 만큼 데이터가 충분하지는 않다.
  • 경제를 무질서하다고 규정하면 많은 연구자들은 너무도 단순하고 좁은 분류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무질서한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적은 변수, 적은 자유도를 갖는 경향이 있다. 경제는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경제는 때로 어떤 차원에서 무질서한 행태를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성장, 쇠퇴, 주기적 제한 사이클, 유사 주기적 제한 사이클, 그리고 그 외에 여러 가지 다른 행태들도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 경제의 완전한 동태적 복잡성은 과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N체 문제’라는 관점에서 경제를 생각해 보면 훨씬 확실해 진다. 앙리 푸앵카레가 카오스를 처음 연구하게 된 것은 태양 시스템이 안정적인지 여부 또는 행성이 언젠가 태양 속으로 충돌해 들어가거나 우주 속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인지 여부에 관해 말해 주는 사람에게 스웨덴의 왕 오스카 2세가 1887년 내놓은 2,500개에 달하는 영관이라는 상이 그 동기가 됐다. 이것은 사실 특히 풀기 어려운 문제다. 태양 시스템은 행성들이 태양을 둘러싸고 계속 돌아가는 동태적인 시스템이고 작용하는 중력의 힘이 비선형일 뿐만 아니라 10개의 행성과 태양들 사이의 가능한 모든 상호 작용들도 모두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다. 푸앵카레는 그 당시 알려진 8개의 행성과 태양에 대해서는 고사하고 심지어 n=3인 3체 문제조차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오스카 왕의 문제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풀리게 된다.
  • 그러나 n체 문제는 여전히 매우 다루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경제는 규모가 매우 큰 n체 문제다. 경제에 참여하는 개별 사람들은 각자의 고유한 스톡(저축, 부채, 기술 등)과 플로(소득, 지출, 학습 등)를 갖고 있다. 현실 경제의 동태성은 수십억 명의 비선형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이 시스템의 복잡성을 생각해 보면 푸앵카레의 태양 시스템 분류는 차라리 쉽게 보일 정도다. 다시 말해 현실 경제의 시스템은 n=3인 3체 문제 정도가 아니라 64억 명이 참여하는 n=64억 인 문제다.
  • 기상 예보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히 예측력을 향상 시켰다. 위성과 레이더를 통해 수집하는 매우 질 좋은 데이터들, 컴퓨터 모델을 이용한 보다 복잡한 분석들 덕분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경제 예측 역시 보다 좋은 데이터와 모델이 뒷받침 된다면 그 예측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에 대한 고도로 정확한 장기 예측은 불가능 하듯이 경제에 대한 고도로 정확한 장기 예측 역시 불가능하다. 경제에서 장기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이것이 경제학의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되는 건 아니다. 과학은 예측이 아니라 설명에 관한 학문이다. 경제의 동태적인 특성을 이해한다면 수많은 경제 현상들에 대한 검증 가능한 설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때때로 흔들린다

  •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교수인 존 스터먼은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을 활용해 경제와 경영 현상을 새로이 설명하는데 인생의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 연구자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질문은 이 수많은 상품들이 복잡한 흥망성쇠라는 사이클을 겪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사이클이라는 순호나을 보여 주는 산업은 전 범위에 걸쳐 있다. 스터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행기에서부터 아연에 이르기까지”이다.

  • 이 다양한 산업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가격과 산업 생산의 순환적 변화가 그 밑바닥에 있는 수요 변화나 경제 전반적인 변화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라는 사실이다. 별다른 원인 없이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다.
  • 사이클은 또 꽤 정규적인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크게 임의적이지도 않은 흥미로운 특성을 갖고 있다. 사이클을 들여다보면 데이터들이 분명히 임의적인 변동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뭔가 분명한 주기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사이클이 정확히 정규적인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완벽하게 주기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이클들이 복잡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상품 무역업자에서부터 산업계의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사이클을 예측하려고 했지만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스터먼은 그렇게 정규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임의적이지도 않은 이런 행태가 어떻게 해서 나오는지 조사하기 위해 모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음의 피드백 고리는 공급과 수요에서 가격이 하는 역할이다. 즉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올라가서 공급이 늘게 만들고 이는 다시 공급과 수요가 일치할 때까지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자들은 대개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한다. 다시 말해 시간 지체 같은 것은 무시한다는 얘기다.
  • 공급과 수요가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균형을 이루지만 현실 세계는 재고, 초과 생산 능력, 그리고 불균형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는 여러 가지 다른 스톡들로 가득 차 있다. 스터먼은 여러 가지 완충 역할을 하는 스톡들의 조정 속도 차이가 상품 사이클의 변화 근저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스터먼(2000)은 자신의 가정을 한 번 검정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간단한 상품 시장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서 사이클의 통계적 특성들을 재생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전통적 모델들과 달리 그의 모델은 하나의 시스템 역학 시뮬레이션이다. 재고와 생산 능력과 관련한 스톡들, 양과 음의 피드백 고리들, 시간 지체, 그리고 비선형 관계식 등 앞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특징을 모두 가졌다.
  • 이제 스터먼의 모델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아보자. 이를 위해 경제학 입문 교과서에 나오는 이런저런 제품을 만드는 일반적인 제조업에서 당신이 일한다고 상상해 보자.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에 대비해서는 세 가지 중요한 버퍼(buffer, 완충) 스톡들이 있다.
  • 첫째, 당신은 이 제품의 재고를 갖고 있다. 이 재고는 당신의 고객으로부터의 불확실한 수요와 공장으로부터의 생산 사이에서 하나의 완충 역할을 한다. 만약 고객의 주문이 생산한 것보다 적으면 재고는 증가할 것이고, 반대로 주문이 생산모다 많으면 재고는 떨어진다. 수주와 배송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 지체가 있을 수 있지만 재고는 거의 바로 조정이 이루어진다.
  • 둘째,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한 생산 능력의 스톡이 있다. 재고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면 당신은 공장에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장은 100%보다 낮은 수준인 대개 80% 정도로 가동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그래서 당신이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하면 공장장은 생산 라인을 좀 더 빨리 돌리고 추가적인 근로자 교대를 이용하여 여유 라인을 가동시키거나 판매가 느린 제품 생산 라인을 판매가 빠른 제품 생산 라인쪽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생산을 늘리는 데 걸리는 시간 지체는 몇 시간에서 수개월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경우에는 조정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재고 조정보다는 조정이 더 천천히 이루어진다.
  • 셋째, 마지막 스톡은 장기적인 생산 능력의 총량이다. 일단 모든 생산 라인이 최대한의 속도로 가동되고 그 활용률이 100%라면 산출물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추가적으로 생산 라인을 설치하거나 공장을 더 짓는 것이다. 장기적 생산 능력을 새로 늘리는 일은 기존 생산 능력의 활용률을 높이는 일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새로 공장을 짓고 사람들을 더 고용하는 드으이 일을 다 하려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 스터먼의 모델은 이 세 가지 피드백 고리들이 각기 서로 다른 속도로 조정이 이루어지는 그런 구조다. 이제 이 구조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여 주는지 알아보자. 여기서 당신은 상품 생산 라인의 책임자로서 주당 제품 보고서를 받아 본다고 하자. 이번 주 보고서를 읽다가 생산하는 제품의 수요가 증가한 대신 재고는 조금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재고는 항상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는 수요의 임의적인 변동 때문이다. 이때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첫 번째 질문은 생산 증가를 공장에 요구할 것인지 말지이다. 사실 자칫 너무 많은 재고를 초래할 수도 있는 생산 증가를 주문하기 전에 지금의 수요 증가가 계속될지, 아니면 일시적 변동인지 알아보기 위해 잠시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 다음 질문은 가격을 올려야 하는가이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도 당신은 이 수요 증가가 정말 실질적인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가격을 올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따른다. 그리고 가격 인상은 자칫 고객들을 이탈시킬 위험도 수반한다. 그래서 당신은 좀 더 기다려 보기로 결정한다.
  • 그런데 그 다음 재고 보고서에서 수요 증가가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한 당신은 이것이 확실한 추세라고 믿는다. 재고는 위험할 정도로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그 겨로가 당신은 일부 고객에 대해서는 이월주문(back order)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당신은 곧바로 행동을 취해 생산 증가 요구서를 낸다. 기업 본사의 의사 결정에는 관료주의 요소가 있어 생산은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증가한다. 그러는 사이에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재고는 바닥이 나버린다. 이로 인해 이월 주문이 더욱 늘어나기 시작한다. 수요는 확실하고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이 이어지면 당신은 지금이 가격을 인상할 때라고 결정한다.
  • 가격 인상이 즉각적으로 수요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공급 부족 때문에 재고가 바닥나게 되더라도 수요자들이 곧바로 대체재나 대안적인 제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고 할 것이다. 치솟는 수요, 보다 높아진 가격이라면 손익 계산서가 매우 좋아질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CEO는 당신을 영웅으로 생각한다. 당신이 이제 해결해야 할 유일한 문제는 제품을 충분히 만드는 일이다. 공장이 거의 100%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당신은 보다 많은 생산 능력을 가진 경쟁 기업들에게 주문을 빼앗기거나 시장 점유율에서 밀린다. 그러면 당신은 또 다른 공장을 만들기 위하여 설비 투자 제안서를 경영위원회에 제출한다. 지금까지 당신의 화려한 성과를 토대로 경영위원회는 이를 승인한다. 당신은 새 부지에서 기공식을 갖고 공장을 짓기 시작한다.
  • 그러나 새로운 공장의 완공 예정일을 6개월 앞두었을 때 쯤 당신은 걱정스러운 추세를 감지하기 싲가한다. 수요가 다시 둔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가격 인상과 몇 개월 전의 공급 부족 또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신의 고객이 당신 제품에 대한 몇 가지 대체재를 발견하는 동시에 상품을 적게 사용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당신이 수요를 충족시키려 공장을 열심히 가동하는 동안 당신의 경쟁 기업 또한 그렇게 했다. 때문에 이제는 재고가 많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요 둔화, 경쟁 기업들의 공급량 증대로 타격을 받아 당신이 곧 가격을 내리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판매 팀으로부터 들려온다. 당신은 결국 판매 팀의 아우성에 손을 들면서 가격 인하에 동의한다.
  •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공장의 오픈 기념일이 다가왔다. CEO가 리본 커팅을 한 직후 당신은 소름 끼치는 보고서를 받아 본다. 수요는 계속 둔화되고 있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가격이 자유 낙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점이다. 해당 산업 종사자들 모두 재고 더미에 앉아 대폭적인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가격 하락과 점점 나빠지는 손익 계산서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새 공장도 가동한다. 이미 모든 것이 설치된 상황에서 다시 말해 대부분이 매몰 비용(sunk cost)이 된 상황에서 이 시설들을 달리 활용할 수도 없다. 가격이 저가라고 해도 최소한 노동 비용과 재료비는 건질 수 있다.
  • 이렇게 몇 달이 지난 후 당신은 한 산업 전시회에서 당신이 속한 산업의 쇠퇴를 슬퍼하는 다른 경영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다. 그들은 성수기에 당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했다. 그들 역시 온라인으로 작동되는 아직도 반짝거리는 새로운 공장들을 갖고 있었다. 당신은 경쟁 기업들이 새로이 설비를 증설할지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산업계의 비밀 때문에 얼마나 많이 할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설사 그들이 증설에 나서더라도 수요 증가가 이를 흡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또 사람들이 미쳐서 마구 증설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 그 다음 해에 이르자 산업은 과잉 설비로 시달리면서 가격은 폭락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 사이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시간은 지나면서 손실이 불어나자 산업계에서는 일부 생산 라인을 폐쇄하고 교대 근무를 줄이며, 생산 능력을 축소하는 일이 생겨난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면서 어떤 기업들은 아예 공장 문을 닫고 대규모 해고를 단행한다. 과잉 설비가 모두 해소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그러나 이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몇 차례의 인원 감축 과정에서 이미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 몇 년 후 한 신출내기 관리자가 당신 자리로 온다. 그녀는 앞서 말한 마지막 사이클 동안 대학생이었고 이에 대해 기억하는 게 없다. 어느 날 그녀는 사무실에서 최근의 제품 생산 보고서를 받아 본다.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는 수요 증가 추세에 흥분한다. 그러면서 사이클은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 이런 얘기가 바로 스터먼 모델의 핵심이다. 모델을 돌리자 현실 세계와 통게적으로 유사한 그런 상품 사이클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모델에 따르면 피드백 고리 상의 여러 가지 다른 시간 단위와 인간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겹치면서 앞서 말한 그런 사이클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스터먼과 그의 동료 마크 파이치는 또 사람들로 하여금 공장장 역할을 맡아 이런 사이클을 최소화해 보도록하는 실험도 해봤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복잡한 피드백과 다양한 시간 지체가 일어나는 시스템들을 처리하는 시간이 사람들마다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천천히 반응하는 샤워 꼭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 스터먼 모델과 실험들이 의미하는 점 중 하나는 사이클을 완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시스템 자체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신규 설비를 추가하는데 시간 지체를 줄이고 큰 공장보다 소형 설비 형태인 미니밀(mini-mill)들을 짓는, 다시 말해 생산 능력을 다소 유연하게 하며, 고객 주문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고 해당 산업의 생산 능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 이며 증설 중인 것은 또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보력도 향상시키는 것이다.
  • 스터먼 연구가 던진 가장 흥미로운 시사점 중 하나는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통찰력을 개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뚜렷하게 보여 준 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어리석다는게 아니라 우리 두뇌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게끔 구조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관리자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어떤 경우에는 상황을 더 악화 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