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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라이프니츠

  • 라이프니츠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지성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 됨.
  •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데카르트나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실체 개념에 근거하지만, 정신과 물질의 관계나 실체의 수에 관해서는 그들과 달랐다.
    • 데카르트는 세 종류의 실체, 즉 신과 정신과 물질을 인정했고 스피노자는 신만을 실체로 인정했다.
    •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연장(extension)이 물질의 본질인데 반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연장과 사유가 둘 다 신의 속성이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연장은 실체의 속성이 되지 못한다.
  • 라이프니츠는 물질의 실재성을 부인하고 물질을 영혼들의 무한 집합으로 대체했다.
    • 실체들 즉 정신과 육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는다는 학설은 데카르트의 추종자들이 발전시켰는데, 라이프니츠에 이르러 아주 특이한 귀결에 이르렀다.
    •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두 단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맺지 않으며, 인과관계를 맺는 듯이 보이는 경우에도 현상들에 속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 그는 단자들에는 ‘창이 없다’고 말했다.
  • 단자들은 위계를 형성하는데, 우주를 명석하고 판명하게 반영한 정도에 따라 어떤 단자는 다른 단자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다.
    • 모든 단자를 지각하는 경우 어느 정도 혼란이 생기지만, 혼란의 정도는 관련된 단자의 위계에 따라 다르다.
    • 인간의 육체는 단자들로만 구성되는데, 각 단자는 영혼이며 불멸한다.
    • 단자들 가운데 지배적인 단자 하나를 신체의 일부에 속한 영혼이라 부른다.
  • 공간은 감각에 드러나거나 물리학에서 가정되듯이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 그러나 공간의 대응물로서 단자들이 세계를 반영한 관점에 따라 3차원으로 배열된 질서는 실재한다.
    • 각각의 단자는 자신에게 고유한 특정한 관점에 따라 세계를 바라본다.
    • 이런 의미에서 단자는 대체로 공간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 라이프니츠는 자신을 스피노자와 대비하여 자신의 체계 안에서 자유의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 그의 체계에는 이유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충족이유율’이 포함되어 있다.
  •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우주론적 논증은 다소 독특한 형식으로 진술된다.
    • 그는 세계 안의 모든 개별 사물은 ‘우연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실존하지 않는 일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 또 이러한 주장은 개별 사물 각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 비록 우주가 언제나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우주 안의 아무것도 그것이 실존하는 이유를 보여주지 못한다.
    •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따르면 만물에는 충족 이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주 전체에도 충족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이유는 우주 밖에 있음이 틀림 없다. 이 충족 이유가 신이다.
  • 라이프니츠 철학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여러 가능 세계가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 어떤 세계는 논리 법칙과 양립하면 ‘가능하다’ 무한 수의 가능 세계가 존재하는데, 신은 현실 세계를 창조하기 전에 모든 가능 세계에 대해 미리 응시하며 숙고했다.
    • 그런 다음 선한 존재인 신은 가능 세계들 가운데 최선의 세계를 창조하기로 결정하고, 선이 악을 능가해서 최대로 초과한 세계를 최선의 세계라 생각 했다.
  •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철학의 근본이 되는 실체 개념은 주어와 술어라는 논리적 범주에서 도출된다.
  • 라이프니츠는 논리학 분야에서 논리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논리가 형이상학의 기초라고 확신했다.
    • 그는 수리논리를 연구하기도 했는데, 발표했더라면 굉장한 업적으로 평가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는 수리 논리학의 창시자가 되었을 것이고, 수리 논리는 한 세기 반 앞서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 그가 발표를 포기한 까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학설에서 몇 가지 사항이 틀리다는 증거를 계속 찾았기 때문인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존경심이 지나쳐서 오리혀 자신이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그런데도 그는 일생 동안 자신이 보편언어(Characteristica Universalis)라 부른 일종의 보편 수학을 발견하리라는 희망을 간지했는데, 보편 수학이 확립되면 사고를 일종의 계산으로 대체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 그는 “만약 우리가 보편 수학을 갖게 된다면, 기하학이나 해석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형이상학이나 도덕 분야에서도 추리를 하게 될 터이다. 논의가 필요한 문제가 발생해도, 두 계리사 간의 논재잉 필요하지 않듯이 두 철학자 간에도 논쟁은 필요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연필을 손에 들고 석판 앞에 앉은 다음, 서로 이렇게 말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우리 계산해 봅시다” 라고 말했다.
  •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논리학의 두 전제, 곧 모순율과 충족 이유율에 근거한다.
    • 두 법칙 모두 ‘분석’ 명제 개념에 의존하는데, 분석 명제란 주어 개념 속에 술어 개념이 포함된 명제이다.
  • 라이프니츠의 철학 체계는 스피노자의 철학처럼 결정론적인 체계이다.
  • (이하 러셀의 해설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스피노자

  • 스피노자는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 고결한 품성을 갖춘 인물로, 지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할 철학자들은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
  • 스피노자의 정치 이론은 주로 홉스에서 비롯되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기질사으이 차이가 존재한다.
    •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옳은 행동도 그른 행동도 없는 까닭은 행동이란 법률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 그르게 되기 때문.
    • 그는 군주가 그른 행동을 할 리 없다고 구장하고, 교회는 전적으로 국가의 권력 아래 예속 되어야 한다는 홉스의 견해에 찬동함.
    • 또한 반란에 대해 악정을 행한 나쁜 정부에 맞선 것이라 해도 반대하는 입장에 섰음.
    • 그는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 형태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한 점에서 홉스와 의견이 달랐음.
    • 그는 언론의 자유를 특히 중시했음.
  • 여러 면에서 스피노자와 데카르트의 관계는 플로티노스와 플라톤의 관계와 유사함.
  •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체계는 파르메니데스가 개시한 유형에 속함.
    • 오직 하나의 실체, 즉 ‘신 또는 자연’만이 존재하는 까닭은 유한자가 스스로 존립하지 못하기 때문.
  •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일은 절대적이고 논리적인 필연에 따라 정해진다. 정신 영역의 자유의지나 물질계의 우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헤아릴 수 없는 신의 본성을 표현하며, 사건들이 다르게 일어나는 일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스피노자는 이타심에 호소하지 않으며, 어떤 의미에서 자기 이익 추구, 특히 자기를 보존하려는 욕망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지배한다고 주장함.
    • 어떠한 덕도 자기를 보존하려는 노력 보다 앞서지 않는다.
  • 현명한 사람이 자기 이익 추구의 목표로서 무엇을 선택할 지에 대해서는 평범한 이기주의자의 생각과 다른데
    • ‘정신이 추구하는 최고선은 신에 대한 지식이고, 정신이 갖추어야 하는 최고 덕은 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
  • 스피노자는 여느 철학자들과 달리 자신이 내놓은 학설을 믿었을 뿐 아니라, 실천했음.
    • 그는 아주 격분했을 때 조차 윤리학에서 비난하던 흥분과 분노에 휘둘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스피노자는 스토아 철학자들과 달리 모든 감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 외부의 힘이 우리를 장악해서 수동적으로 생긴 ‘정념들’만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음.
  • (이하 러셀의 해설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창시자.
    • 데카르트는 선대 철학자들이 닦아 놓은 기초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완전한 철학 체계를 새롭게 구성하려 노력했음.
    • 새로운 철학 체계의 구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일어난 적이 없던 일로, 과학의 진보로 생겨난 새로운 자기 확신의 표시이다. 그의 철학 저술에는 플라톤 이후 저명한 철학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선한 면이 드러난다.
  • 데카르트가 기하학 분야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은 좌표 기하학을 고안해낸 것.
  • 데카르트는 감각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에 도달함.
  • (중간에 데카르트 인식론에 대한 해설 생략)
  • 데카르트는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발전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완성 했거나 거의 완성했음.

러셀 서양철학사/ 홉스의 리바이어던

  • 홉스는 로크, 버클리, 흄과 같은 경험론자였지만, 그들과 달리 순수 수학뿐 아니라 응용 수학과 관련된 수학적 방법의 가치를 인정한 철학자였음.
  • 홉스는 왕정을 극단적으로 옹호한 <리바이어던>에서 피력한 정치적 견해를 오랫동안 주장했음.
    • <리바이어던>이 출간되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책에 담긴 합리주의적 성향은 망명자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고, 가톨릭 교회에 대한 공격은 프랑스 정부 관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음.
    • 그러자 홉스는 비밀리에 런던으로 피신하여 크롬웰 치하에서 정치 활동은 일절 하지 않으며 지냈다.
  •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철저한 유물론을 선포함.
    • 그의 말에 따르면 생명은 지체의 운동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동인형도 인공 생명을 갖는다고 주장. 
    • 리바이어던이라 부른 국가는 기예에 의한 창조물로 사실상 인공으로 만든 인간이다.
  • 홉스는 전제적인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만인은 자연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
    • 정치체제가 출현하기 전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보존하려는 욕구와 타인에 대해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욕구를 갖는데, 이런 욕구는 자기 보존의 명령에 따른다.
    • 다양한 욕구의 갈등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일어나서 삶은 험악하고 야비해지며 생명은 단축된다.
    • 자연 상태에서는 재산도 없고 정의나 부정의도 없다. 전쟁만 있을 뿐.
  • 홉스는 사람들 각자가 중앙 정부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자연 상태의 악에서 벗어날 방법을 논의함.
    • 이는 사회 계약에 의해 우연히 일어난다.
    • 홉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스스로 제한을 하는 목적은 우리 자신의 자유와 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누리려는 갈망에서 비롯된, 만인 대 만인의 전쟁 상태에서 벗어난 자기 보존이다.
  • 홉스의 계약은 시민과 지배 권력 사이에 맺어지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다수가 선택한 지배 권력에 복종하기로 하면서 맺은 계약이다.
    • 시민들의 선택과 함께 시민의 정치적 힘도 사라진다. 
    • 소수도 다수와 마찬가지로 계약의 구속을 받는데, 계약은 다수가 선택한 정권에 복종하게 되어 있기 때문.
    • 시민들은 정권을 선택함으로써 정부가 편의상 승인한 권리 이외의 모든 권리를 상실한다.
    • 국민은 반란을 일으킬 권리도 없다. 지배자는 계약의 구속을 전혀 받지 않는 반면 피지배자인 국민은 계약의 구속을 받기 때문.
  • 이렇게 통합된 군중이 국가이며, ‘리바이어던’은 인간적인 신이다.
    • 홉스는 군주제를 선호하지만, 홉스의 논증은 다른 집단이 소유한 법적 권리에 제한받지 않는 최고 권력자가 정점에 위치한 모든 정치 체제에 다 동등하게 적용된다.
  • 한 사람에게 부여되든 한 단체에 부여되든 최고 권력을 구눚라 부른다.
    • 홉스의 체계 안에서 군주의 권력에는 제한이 없어서 군주는 모든 의견 표현에 대한 검열권도 갖는다.
    • 군주의 주된 관심은 영원한 평화의 보존이며, 평황에 반하는 견해가 옳다고 하기는 어려우므로, 군주가 진리를 억압할 정도의 검열 권한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추정한다.
    • 재산과 관련된 법률은 모두 군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 상태에서 재산은 없으며, 재산은 정치 체제의 산물이므로 정부가 하고 싶은 대로 처리해도 되기 때문이다.
  • 군주는 전체적인 군주가 되기도 하지만, 심지어 가장 나쁜 전제정치도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
    • 더욱이 많은 점에서 군주의 이익은 피지배자의 이익과 동일하다. 피지배자인 국민이 더 부유해지면 군주도 더 부유해지고, 국민이 법을 잘 지키면 군주도 안전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
    • 홉스가 제안한 체제 안에서 국민의 역할은 최초에 군주를 선출함과 동시에 완전히 끝난다.
  • (이하 홉스의 주장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프랜시스 베이컨

  • 베이컨은 근대 귀납법의 창시자이며 과학적 탐구 절차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 노력한 선구자였다.
  • <학문의 진보>는 베이컨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여러 면에서 근대적인 특징이 드러나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다.
    •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은 베이컨이 처음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이전 세대에 살았던 사람이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건 베이컨은 그 격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정신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 그는 철학은 신학과 분리되어야 하며, 특히 스콜라 철학처럼 철학과 신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뒤섞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그는 계시와 무관한 이성에게는 불합리해 보여도 계시에 근거한 교리를 믿는 신앙의 승리가 가장 위대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철학은 오로지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베이컨은 과학적 성향을 지닌 철학자들이 만들어갈 기나긴 역사를 시작한 첫 인물로 연역법과 대조적인 귀납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단순 열거’에 의한 귀납법보다 더 세련된 귀납법을 발견하려 노력했다.
  • 베이컨은 삼단논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학의 가치도 실험 정신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했다.
    • 그는 귀납법이란 과학이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될 관찰 자료들의 배열 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 했다.
  • 베이컨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우상의 목록표인데, 우상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도록 만든느 원인인 정신의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
    • 그는 네 가지 우상을 제시하였는데,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며, 특히 자연 현상 가운데 실제로 발견되는 질서 이상을 기대하는 습관을 지적한다.
    • ‘동굴의 우상’은 개별 탐구자의 특징인 개인적 편견이고, ‘시장의 우상’은 말의 횡포와 관련된다. ‘극장의 우상’은 수용되는 사유 체계와 관련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언급할 만한 가장 좋은 사례였다.
  • (러셀의 평)
    •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은 가설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한 결점을 안고 있다. 그는 자료들을 순서대로 배열하기만 하면 올바른 가설이 명백하게 세워진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 일반적으로 가설을 세우는 일은 과학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대단한 능력을 요구하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규칙에 따라 가설을 세우게 되는 방법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보통 가설은 사실을 수집하기 위해 필요한 예비 수단인데, 사실 수집은 사실들 간의 연관성을 규정할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설이 없는 복잡하고 잡다한 사실들의 집합은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 과학 연구 분야에서 연역법은 베이컨의 생각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러셀 서양철학사/ 과학의 발흥

  • 근대와 근대 이전의 차이는 17세기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서 비롯된다.
    •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근대에 속한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오히려 그리스의 전성기와 닮은 점이 많다.
    • 정신적 전망에 관한 한, 근대 세계는 17세기에 비로소 시작된다.
  • 과학에 도입된 새로운 개념은 근대 철학에 광범위하면서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 근대 철학의 정초자로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바로 17세기 과학을 창안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
  •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으로 이어지는 과학사 관련한 이야기는 생략)
  • 근대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과학자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두 가지 장점을 지니는데, 하나는 한없이 인내를 요구하는 관찰이고, 다른 하나는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는 능력이다.
    • 둘째 장점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첫째 장점은 고대 후기 천문학자들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나타났다.
  • 지구의 1년 주기 공전에 관한 견해는 단순화 되기는 하였으나, 하루 주기 자전의 경우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보다 덜하기는 해도 코페르니쿠스의 체계 역시 주전원들이 필요했다
    •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체 이론은 케플러의 법칙이 발견된 후에야 비로소 충분하게 단순한 이론으로 발전했다.
    •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천체에 관한 가설을 지지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그 가설을 거부했다.
    • 티코 브라헤는 관측가로서 천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의 관측 결과는 말년에 조수로 일했던 청년 케플러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 케플러는 천재가 아니었지만, 끈질긴 노력 끝에 과학자로 성공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 그는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들을 비추어보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설명이 다소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 케플러의 위대한 공적은 행성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한 점이다. 법칙 중 2가지는 1609년에, 셋째 법칙은 1619년에 발표했다.
    • 제 1법칙에 따르면 행성들은 타원 궤도를 그리며, 태양이 초점 하나를 차지한다.
    • 제 2법칙에 따르면 한 행성과 태양을 연결한 직선은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 제 3법칙에 따르면 한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태양과 행성 사이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 행성들이 타원 궤도로 운동한다는 법칙은 근대인이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서 전통에서 벗어나 해방되려는 기나긴 노력 끝에 비로소 발견되었다.
  • 갈릴레오는 근대 과학을 정초한 과학자들 가운데 뉴턴을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 그는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날에 출생하여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음을 맞았다.
    • 갈릴레오는 역학에서 가속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 갈릴레오는 지상의 움직이는 물체들은 그대로 놓아두면 점점 느려지다가 정지한다고 생각하던 당시 견해에 반대하여 물체를 그대로 놓아두면 일정한 속도로 계속 운동한다고 주장했다. (관성의 법칙)
    • 갈릴레오는 최초로 낙하 물체의 법칙을 입증했다.
    • 갈릴레오는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큰 덩어리와 작은 덩어리의 속도 측정값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 갈릴레오는 자신을 후원한 토스카나 공작의 중대한 관심사였던 탄환 같은 발사체에 관한 연구도 했다.
    • 갈릴레오는 태양 중심 체계를 열렬히 지지했는데, 케플러와의 편지 왕래를 통해 케플러가 발견한 연구 성과를 기꺼이 수용했다.
    • 갈릴레오는 네덜란드인이 망원경을 발명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직접 망원경을 제작하여 재빠르게 중요한 사실을 많이 발견해 냈다.
  • 뉴턴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가 닦아 놓은 길 위로 걸어가서는 그들의 과학적 작업을 완성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 그는 세 가지 운동 법칙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제 1법칙과 제 2법칙은 갈릴레오의 업적으로 돌려야 한다.
    •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행성 이론에 들어 있어야 할 모든 내용, 즉 행성들과 행성들 주위를 도는 위성들의 운동, 혜성의 궤도, 밀물과 썰물의 흐름들을 연역해 냈다.
    • 나중에는 행성들이 타원 궤도에서 약간 이탈한 현상도 뉴턴의 법칙에서 연역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뉴턴의 승리는 너무나 완벽해서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결국 과학의 진보를 저해하는 넘어서기 힘든 장애가 될 위험도 안고 있었다.
    • 영국에서는 뉴턴이 죽은 다음에도 한 세기가 지날 때까지 과학자들이 뉴턴의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가 다룬 과학의 주제들에 관한 중요하고 독창적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했다.
  • (이하 17세기 과학의 다양한 성과 생략)
  • 17세기에는 순수 수학의 진보도 놀라웠는데, 물리학의 작업을 완성하려면 필수불가결한 분야였다.
    • 네이피어는 Log를 공표했고, 데카르트를 비롯한 몇몇 수학자의 노력 끝에 좌표 기하학이 탄생했으며,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각각 미적분학을 창안했다.
  • 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로 당시 교양인의 사고방식은 근본부터 바뀌었다.
    • 셰익스피어 시대의 혜성은 여전히 경이로운 존재였지만,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이후에는 혜성도 행성과 마찬가지로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중렬 법칙이 군림하는 시대가 오면서 마법과 요술이 더는 신뢰 받지 않았다.
  •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으나,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과학의 일부가 되어버릴 정도로 친숙한 ‘목적’ 개념은 과학적 탐구 절차에서 제거되었다. 누군가 여전히 하늘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지도 모르지만, 천문학적인 계산을 할 때 종교적 믿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는데도 사실상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까닭은 과학의 승리가 욓려 인간의 자존심과 긍지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 인간이 마침내 과학의 승리를 쟁취하게 되자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했다.
  • 서구인들은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부유해져, 온 세상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 그들은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했으며,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권력을 주도하는가 하면, 중국에서 존경을 받고 일본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 이 모든 일에 과학의 승리가 더해지고 나면 17세기 사람들이 자신들이 주일마다 악행을 고백해야 하는 죄인이 아니라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놀랍지도 않다.
  • 현대 이론 물리학과 뉴턴의 이론 체계를 구성하는 각 개념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 우선 17세기 물리학을 지배했던 ‘힘’은 필요 없는 개념으로 밝혀졌다.
    • 뉴턴의 물리학 체계 안에서 ‘힘’은 운동량이나 운동 방향을 변화시키는 원인이었으나, 현대 물리학계에서는 점차 힘을 끌어들이지 않고서 물리학의 모든 공식을 기록해도 된다는 점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 관찰 가능한 대상은 가속도와 상대적 배치 사이의 일정한 관계인데, 이 관계가 ‘힘’을 매개로 성립한다고 보아도 우리 지식을 전혀 확장 시켜주지 않는다.
    •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영향으로 뉴턴식의 과학철학에 일어난 변화는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의 포기이다.

러셀 서양철학사/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반항이자 신학적 반항이었음
    •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교황이 천국 열쇠의 권능으로 요구하던 조공을 더는 바치지 않음
    • 종교개혁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남.
  • 반종교개혁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유에 맞선 반항
    • 그래서 교황의 힘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한편, 교황의 권위가 보르자 가문이나 메디지 가문의 안이하고 태평스러운 방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명백해짐.
    • 반종교개혁은 스페인을 중심으로 일어남.
  •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세 인물이 루터, 칼뱅, 로욜라.
    • 세 사람 모두 지적인 면에서 보면 철학 안에서는 중세에 속하는데, 그들 직전에 활동한 이탈리아인들이나 에라스무스와 모어 같은 사람들과는 대조를 이룸.
  • 종교개혁이 개시된 다음 이어진 세기는 철학의 관점에서는 불모의 시대였음.
    • 루터와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으로 되돌아갔는데, 그의 가르침 중에서 영혼과 신의 관계를 다룬 부분만 존속시키고 교회에 관한 부분은 배제했음.
    • 그들의 신학은 교회 권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함.
    • 그들은 미사를 올리면 죽은 자의 영혼이 연옥에서 구원받는다는 교의와 대사 교리를 거부함. 대사가 남발되면서 거두어들인 금품이 교황청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 운명 예정설로 인해 사후 영혼의 운명은 사제의 대사 행우와 아무 관계도 없어짐.
    • 이러한 혁신 사상은 교황권에 맞선 투쟁을 도운 반면, 가톨릭 국가에서 가톨릭 교회가 강하듯이 개신교 교회가 개신교 국가에서 강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하는데는 오히려 방해가 됨.
    • 개신교 신학자들은 적어도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들만큼 고집불통이었지만, 힘이 더 약했기 때문에 해악을 덜 끼침.
  • 종교개혁이 시작될 무렵부터 개신교도들 사이에는 종교 문제에 국가가 미치는 권력을 두고 분열이 일어날 조짐이 있었음.
    • 루터는 군주가 개신교도인 나라에서 군주를 교회의 수장으로 기꺼이 인정함.
    • 이로서 기존의 왕권을 강화하던 경향에 가속도가 붙었음.
    • 그러나 종교개혁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한 개신교도들은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만큼이나 왕에게 복종하는 것도 무척 꺼렸음.
  • 개신교는 처음에 놀라우리만큼 급속한 성공을 거두지만 주로 로욜라의 예수회 창설을 계기로 성공가도에서 걸림돌을 만남.
    • 로욜라는 군인 출신이었기에 수도회도 군대식으로 조직했는데, 수도회 총장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예수회의 일원은 모두 이교도에 맞선 싸움에 참가할 각오를 해야 했음.
    • 예수회 수사들은 수도생활로 잘 단련되었으며, 유능한데다 대의에 투신하는 능숙한 선동가들이기도 했음.
    • 그들의 신학은 개신교도들의 신학과 정반대였는데, 그들은 성 아우구스니투스의 가르침 가운데 개신교도들이 강조한 요소를 거부했음.
    • 그들은 자유의지를 확고하게 믿었으며 운명 예정설에 반대했음.
    • 구원은 신앙 하나만이 아니라 신앙과 종교적 행위가 합쳐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 예수회 수사들은 선교에 대한 열의, 특히 극동 지역에서 수행한 선교를 계기로 신망을 얻었음.
    • 그들은 고해신부로서 평신도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었는데, 이교도에는 예외지만 다른 성직자들보다 더 너그럽고 관대한 편이었음.
    • 그들은 교육에 전력을 기울여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음.
    • 신학상의 문제와 결부되지 않을때면 언제나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배우지 못할 수준 높은 수학을 데카르트에게 가르친 자들도 바로 예수회 수사들이었음.
  •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결과는 처음에는 지성계 전반으로 나쁜 영향을 미쳤으나 종국에는 유익한 편이었음.
    • 30년 전쟁으로 개신교도나 가톨릭교도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음. 그래서 교리의 통일을 바라는 중세적 소망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기본 교리를 생각하는 자유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음.
    • 신학상의 싸움을 혐오하게 되면서, 유능한 사람들은 세속 학문, 특히 수학과 과학에 점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음.
    • 16세기는 루터의 등장 이후 철학적인 면에서는 불모의 시대였으나, 17세기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났으며 그리스 시대 이후 가장 괄목할만한 진보를 이루었음.

러셀 서양철학사/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 유럽 북부 여러 나라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보다 뒤늦게 시작되어 곧 종교개혁과 뒤얽혔다.
  • 에라스무스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낡은 생각에 매달린 스콜라 철학자들을 혐오했다.
  • 현재도 읽히는 에라스무스의 책은 <우신 예찬>
    • (《우신예찬》(愚神禮讚, 그리스어:Moriae encomium, 라틴어:Stultitiae Laus)은 한바탕 웃을 수 있는 풍자의 형식을 빌려 사람들의 풍속을 비판함으로써 악습과 폐단을 교화하고 충고하고자 한 에라스뮈스의 역작이다. 출간된 것은 1511년이며, 출간되자마자 유럽 각지에서 큰 호응을 얻어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작품이다.)
    •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야수에 가장 가까운, 이성을 벗어던진 사람이라고 주장. 최상의 행복은 망상에서 비롯된다.
    • 성직의 남용이나 폐해에 대해 비판.
  • (에라스무스의 생애에 대한 내용 생략)
    • 에라스무스는 수치를 모르는 구제불능에 가까운 인문주의자였다.
  • 토마스 모어 경은 인간적인 면에서 에라스무스 보다 훨씬 더 칭송을 받을만 했으나, 후세에 미친 영향력은 훨씬 미미했다.
    • 그는 인문주의자였지만 깊고 경건한 신앙심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 토마스 모어의 유명한 저작은 <유토피아>
    • (이야기는 모어가 유토피아를 경험해 본 라파엘이라는 사람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됨)
    • (Utopia란 말은 ‘no-man’s land‘. 즉 ‘실재하지 않는 땅’ 또는 ‘어디에도 없다’ 이라는 뜻.)
    • 플라톤의 국가처럼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함. 사유재산을 인정하면 공공의 선을 증진하기 아려우며 공산제 없이는 평등도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
    • 모어는 책 속의 대화에서 공산주의가 인간을 게으름뱅이가 되게 하며 고위 관직에 대한 존경심을 파괴하기 때문에 반대하지만, 라파엘은 유토피아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함
    • 유토피아에 세워진 54개 도시들은 모두 같은 계획에 따라 설계됨.
    • 모든 사람은 남자 여자 모두 하루 6시간 일함. 저녁 식사 후 한 시간은 놀이를 즐김.
    • 노동 시간은 6시간이면 충분한데, 게으름뱅이가 없고 쓸모 없는 노동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
    • 유토피아에서는 여자, 성직자, 부유한 사람, 하인, 거지 등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함. 부자들 때문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없는 사치품 생산에 낭비된다. 유토피아에서는 이런 일을 전부 피한다.
    • 일부 사람을 뽑아 지식인이 되도록 교육하고, 교육 과정을 만족스럽게 이수하면 다른 일은 면제 받는다.
    • 정부 관련 업무를 맡을 사람은 전부 지식인들 중에서 선출한다.
    • 정치는 간접 선거 제도에 따른 대의 민주제이며, 정부의 수장은 종신제로 선출된 군주로, 전제정치를 행할 경우 쫓겨나기도 한다.
    • 가족 생활은 가장 중심으로 결혼한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살면서 아버지가 노쇠할 때까지 지도편달을 받는다. 어느 가족이든 규모가 너무 커지면 과잉 자녀들은 다른 가정으로 보낸다.
    • 도시가 너무 커지면 주민들 일부를 다른 도시로 이주시키고 모든 도시의 규모가 너무 커지면 불모지에 신도시를 건설한다.
    • 식용을 위한 가축 도살은 노예가 하는데, 자유민은 잔인한 행동을 배워서는 안 되기 때문.
    • 식사는 가정에서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 남녀 모두 결혼할 때 순결하지 않으면 호된 벌을 받는다. 결혼을 파기한 자는 노예 신분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는다.
    • 외국과 무역하는 목적은 섬에 나지 않는 철을 확보하는데 있다. 무역은 전쟁과 연관된 목적을 위해 이용된다.
    • 유토피아 주민들은 군사적 명예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전쟁 기술을 익힌다.
    • 그들은 세가지 목적, 침입을 당했을 때 자기 영토를 지키고, 침략자에게서 동맹국의 영토를 구해내고, 억압받는 나라를 전제정치에서 해방시키려 전쟁을 한다.
    • 가능하다면 자기들을 대신해 싸워줄 용병을 고용한다.
    • 유토피아 주민들은 다른 나라가 빚을 지도록 유도한 다음 용병을 공급하여 부채를 서서히 줄여나가게 한다.
    • 윤리 문제에서 그들은 지복이 쾌락 속에서 구현된다고 보는 경향이 너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가 나쁜 결과에 이르지는 않는데, 내세에서 선량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사악한 자는 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기 떄문.
    • 그들은 금욕을 권장하지 않고 금식이나 단식을 바보짓이라 여긴다.
    • 그들에게는 여러 종교가 있는데, 모든 종교에 대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다.
    • 거의 대부분은 신과 영혼 불멸을 믿는다. 이를 믿지 않는 극소수 주민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정치 생활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다른 일에서는 방해를 받거나 곤란을 겪지 않는다.
    • 고통이 심한 불치병을 앓는 환자에게는 자살을 권유하지만, 자살을 거부하면 정성껏 돌봐야 한다.
    • 라파엘 히슬로데이는 자기가 유토피아 주민들에게 가톨릭교의 가르침을 가르쳤는데, 주민들은 그리스도가 사유재산을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수가 개종했다고 말한다.
    • 모어는 공산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하며, 거의 끝부분에서 유토피아 외의 다른 나라에서 ‘나는 부유한 자들이 공공복리라는 미명 아래 자신들의 상품을 조달하려는 모종의 음모를 보았을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 (러셀의 평)
    • 모어의 <유토피아>는 여러 면에서 놀라우리만치 자유주의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공산주의 설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대부분의 종교 운동이 따르는 전통이기 때문.
    • 유토피아에서 사는 삶이 대부분 다른 유토피아에서 사는 것 못지 않게 지루해서 견디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바로 계획에 읳해 조직된 모든 사회가 지닌 결점인데, 상상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마찬가지다.

러셀 서양철학사/ 마키아벨리

  •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의 비참한 최후에 큰 인상을 받음. 
    • 무장한 예언자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정치적으로 패배했다.
  •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것은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희망 때문
    • (일종의 포트폴리오다)
  • 군주론은 공국들이 어떻게 정권을 쟁취하고 유지하며 잃게 되는지를 역사와 당대에 일어난 사건들 속에서 찾아내려는 저술
    • 15세기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례를 제공했다.
    • 정당하게 정권을 잡은 통치자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교황들조차 부정한 수단으로 선출되는 일이 허다했음.
  •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사보나롤라에 대비하여 극찬한 대상은 체사레 보르자.
  •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의 환심을 얻기 위해 쓴 책이므로 <로마사 논고>에서 주장한 견해에 포함된 사상의 일부를 숨김.
  •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가 국가 안에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까닭은 종교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결속과 유대감 형성에 필요하기 때문.
  • <군주론>은 통치자의 행동과 관련된 기존의 도덕을 명백히 거부함. 통치자가 늘 선하게 행동한다면 비명횡사할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맹위를 떨쳐야 한다.
  • 마키아벨리는 어떤 정치적인 논증이든 결코 그리스도교나 성경에 근거하여 풀어가지 않았음.
  • 마키아벨리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정부를 선호하는데, 이는 ‘권리’의 개념에서 비롯되지 않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정부가 전제 정부보다 잔인성, 비도덕성, 변덕의 정도가 덜하다는 현실적인 관찰에서 나온 결론.
  • 정치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선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세 가지는 국가의 독립, 안전, 질서정연한 법체계.
    • 최선의 법체계는 군주, 귀족, 평민들 간에 법적 권리를 실제 처한 현실 속에서 행사하는 권력에 비례하여 배분한 법이다. 그런한 법체계 아래서는 혁명이 성공하기 힘들기에 사회 안정이 유지된다.
  • 정치학에서는 수단도 중요한 문제이다.
    • 만약 목적이 선하다면 마땅히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데, 수단의 선택 문제는 목적이 선한지, 악한지와 무관하게 순전히 과학적인 방식으로 다루어도 된다.
    • 성공은 목적이 무엇이든 목적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력이 필요하다.
    • 권력은 흔히 여론에 좌우되고, 여론은 선전선동에 좌우된다.
  • 혼란한 시기일 수록 무지한 대중 앞에서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춘 외양을 보여주는 태도가 더욱 바람직하다.
  • 마키아벨리는 문명인이 비도덕적인 이기주의자가 된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

러셀 서양철학사/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 근대적 사고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함.
    • 이 시기 이탈리아인들은 몇 명을 제외하면 과학을 존중하는 태도는 없었음.
    • 이런 태도가 결핍되면서 이탈리아인들은 미미한 수준에서만 미신에서 해방되어 점성술이 발전하는 결과를 초래함.
    • 그들은 대부분 중세 철학자들이 지닌 권위를 여전히 흠모하면서 교회의 권위를 고대인들의 권위로 대체했을 뿐.
  • (역사 이야기 생략)
  • 르네상스기는 철학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는 아니지만, 17세기 위대한 철학의 도래에 꼭 필요한 예비 단계였음.
    •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락 철학 체계를 무너뜨림.
    • 또한 플라톤 연구를 부흥시킴.
  •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은 아니었음.
    •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과 인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음.
  • 르네상스 운동은 교육받은 지식인을 중세 문화의 편협성에서 해방 시켰음.
    • 그리스 세계에 대한 지식의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의 업적과 성취에 맞서 다시 경쟁하는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