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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수학자였다가 철학자로 변모한 –말년에는 사회운동가로 또 변신– 버드란트 러셀이 쓴 서양 철학사.

서양 철학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인물들 위주로 사상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러셀의 비판을 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마지막에는 러셀 본인이 주창한 ‘논리 분석철학’을 담고 있음.

개인적으로는 철학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스터디 책으로 선정되어 교양 삼아 읽었는데, 교과서와 같이 책이 사상가들의 이론을 정리했다기 보다는 그들이 논의와 러셀의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이 주장한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철학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으로 철학을 배우는 것은 추천하기 어려움.

마지막에 러셀이 본인이 주창한 ‘논리 분석철학’ 부분에서도 나오지만, –그리고 이미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지만– 철학 자체는 현대의 과학 –물리학, 생물학, 뇌과학 등– 에 자리를 많이 내주고 있기 때문에, 이전 철학자들이 논의한 내용을 사실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철학을 전공하려는 사람 입장에서야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선대의 철학자들이 논의한 내용을 이해할 필요는 있겠지만, 나 같은 비전공자가 그런 내용을 깊이있게 이해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특히나 막판에는 좀 대충 읽었음.

러셀 서양철학사/ 논리 분석철학

  • 피타고라스 시대 이후 철학사에서는 주로 수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유를 전개한 철학자와 경험과학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철학자 사이에 대립이 존재했다.
    •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스피노자, 칸트는 수학에서 영감을 받은 편이고,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로크에서 현대에 이르는 현대 경험주의자들은 반대파에 속한다.
  • 이러한 철학의 기원은 수학자들이 수학적 주제에서 오류와 느슨한 추리를 일소하는 일에 착수하면서 이룩한 업적에 있다.
  • 17세기 활동한 위대한 수학자들은 낙관적 태도로 빠른 결과를 내고 싶어 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해석 기하학과 미적분학의 토대를 불확실한 상태로 남겨두었다.
  • 라이프니츠는 무한소가 실재한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믿음은 그의 형이상학에 적합하기는 했지만 수학의 관점에서 보면 논리적 근거가 없었다.
  • 바이어슈트라스는 19세기 중엽 무한소 없이 미적분학을 확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마침내 미적분학에 확실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 다음에 칸토어는 연속과 무한수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가 정의내리기 전까지 ‘연속’은 모호한 말로서 형이상학의 지리멸렬한 면을 수학에 들여오고 싶어 했던 헤겔 같은 철학자들에게 편리하게 이용되기도 했다.
    • 칸토어는 연속(continuity)이란 말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가 정의한 연속이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에게 필요한 개념이란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베르그송의 경우와 같은 다수의 신비주의는 헛된 체계가 되었다.
    • 칸토어는 또한 무한수(infinite number)와 관련해서 여러 해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혀 온 논리적 수수께끼를 풀었다.
    • (이하 칸토어의 무한 개념에 대한 설명 생략)
    • 칸토어는 ‘무한’ 집합을 전체 집합이 포함하는 만큼 많은 항을 포함한 부분들을 갖는 집합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 그는 무한수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수학 이론을 세울 수 있었고, 이로써 이전에는 신비주의와 혼란에 빠져 있던 정수 영역을 정확한 논리의 영역에 들여 놓았다.
  • 프레게의 연구에서 산수, 그리고 순수 수학은 일반적으로 연역 논리의 연장일 뿐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 이러한 결론은 산수 명제가 ‘종합 판단’이고 시간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는 칸트의 이론을 반증한다.
  • 철학의 작업이 대부분 지금까지 사용된 관례보다 다소 넓은 의미로 사용해야 하기는 하지만, ‘구문론(syntax)’이라 불러도 좋은 체계로 환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 몇몇 철학자, 특히 카르나프는 철학의 모든 문제는 실제로 구문론과 관련된 문제여서 구문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 철학의 문제들은 해결되거나 해결 불가능하다고 입증된다는 이론을 제의했다.
    • (구문론에 대한 러셀의 설명 생략)
  • 사실 수학적 지식은 경험에서 유래한 귀납법을 통해 획득되지 않는다. 
    • 수학은 여전히 경험적인 지식은 아니다. 그런데 수학은 또한 세계에 대한 선험적 지식도 아니다.
    • 사실상 수학은 언어와 관련된 지식일 뿐이다.
  • 물리학은 순수 수학과 마찬가지로 논리 분석철학에 재료를 제공했다. 이 일은 특히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통해 일어났다.
    • 철학자들이 보기에 상대성 이론에서 중요한 부분은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으로 대체한 점이다.
    • 상식에 따르면 물리 세계는 일정한 시기에 걸쳐 지속하고 공간 속에서 이동하는 ‘사물들’로 구성된다. 철학과 물리학은 ‘사물’이란 개념을 ‘물질적 실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켜서 물질적 실체는 제각기 미세하고 모든 시간에 걸쳐 지속하는 입자들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 아인슈타인은 입자를 사건으로 대체했다. 사건은 제각기 다른 각 사건과 ‘간격’이라는 관계를 맺으며, 간격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요소와 공간요소로 분석될 수 있었다. 
    • 다양한 방식 가운데 어느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임의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어느 한 방식도 다른 방식에 비해 이론적 차원에서 더 선호될만하지 않았다.
    • 앞서 말한 사실로부터 입자가 아닌 사건이 바로 물리학이 다루는 ‘재료’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듯하다. 입자로 생각되던 사물은 일련의 사건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 물리학이 물질을 덜 물질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사이에 심리학은 정신을 덜 정신적인 대상으로 만들었다. 
    • 앞에서 관념 연합을 조건반사와 비교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관념 연합을 대체한 조건반사는 분명히 생리학에 훨씬 더 가깝다. 
    • 요컨대 양쪽 끝에서 물리학과 심리학은 서로 접근하면서 윌리엄 제임스가 ‘의식’을 비판한 끝에 도달한 중성적 일원론(neutralmonism)의 학설을 세울 수 있게 했다.
  • 현대 물리학과 생리학은 예부터 이어진 지각의 문제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 만약 지각(perception)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면 지각은 어느 정도 지각된 대상의 결과일 수밖에 없으며, 지각이 지각 대상에 대한 지식의 근원이라면 대상과 다소라도 유사할 수 밖에 없다.
    • 첫째 필요조건은 범위가 크든 작든 세계의 나머지 부분과 독립된 인과 계열들이 성립해야만 충족될 수 있다. 물리학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로 드러난다.
  • 내가(러셀이) 윤곽을 제시했던 현대 분석적 경험주의는 수학을 체화하고 강력한 논리적 방법을 발전시킨 점에서 로크, 버클리, 흄의 경험주의와 다르다.
    • 요컨대 현대 분석적 경험주의에서는 특정한 문제에 대해 철학이 아니라 과학의 특질인 명확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이러한 경험주의 철학은 체계를 구성하는 철학들보다 장점이 많은데, 우주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을 일거에 창안하는 대신에 한 번에 한 문제씩 다룰 수 있다.
    • 이 점에서 현대 분석적 경험주의의 방법은 과학의 방법과 유사하다. 나는 철학적 지식이 가능한 한에서 철학은 분석적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또한 분석적 방법을 통해 예부터 이어진 많은 문제들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하지만 전통적으로 철학에 포함되지만 과학적 방법으로 적절하게 다루기 힘든 중대한 분야가 남는다. 이 분야는 궁극적인 가치의 문제를 포함한다.
  • 철학은 역사를 관통하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혼합된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 한 부분은 세계의 본석에 대한 이론이고 다른 한 부분은 최선의 삶의 방식데 대한 윤리 혹은 장치 학설이다. 두 부분을 충분히 명료하게 분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에 빠진 사고방식이 많이 생겨났다.
  • 지성의 측면에서 보면 철학은 잘못된 도덕적 고찰의 결과로는 비범한 정도까지 진보하지 못했다.
  • 논리적 분석을 철학의 주된 직무로 삼은 철학자들은 위에서 말한 모든 증명을 거부했다.
    • 그들은 솔직하게 인간 지성이 인류에게 의미심장한 가치가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고백하지만, 과학과 지성에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진리를 발견할지도 모르는 고상한 인식 방법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 그들은 이렇게 체념하는 태도 덕분에 이전에는 형이상학의 오리무중에서 모호한 채로 남아 있던 많은 문제에 정확하게 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해하려는 갈망을 제외하면 철학자의 어떤 기질도 개입되지 않는 객관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러셀 서양철학사/ 존 듀이

  • 듀이의 연구가 지닌 주된 가치는 전통적인 ‘진리’ 개념을 비판한데 있으며 자신이 ‘도구주의’라 부른 이론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 대부분의 전문적인 철학자들의 생각에 의하면, 진리는 정적이고 궁극적이며 완벽하고 영원하다.
    • 듀이의 관심은 수학이 아니라 생물학이기 때문에 사유를 진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물론 전통적인 견해도 인간이 점차 더 많이 알게 된다는 점을 인정할 테지만, 성취한 각 부분의 지식은 궁극적인 무엇으로 여겨진다.
    • 그는 인간의 지식이란 유기적인 전체로서 모든 부분을 거쳐 점차 성장하지만 완전한 전체에 이를 때까지는 어떤 부분의 지식도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러셀의 비판 생략)
  • 듀이는 절대적으로 ‘참’이 될 판단들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모순된 판단들을 절대적인 ‘거짓’으로 단정하지도 않는다.
    • 그의 견해에 따르면 ‘탐구’라 불리는 과정은 유기체와 환경 사이에 상호 조정이 이루어지는 한 형식이다.
  • 듀이는 탐구(inquiry)를 진리나 지식이 아니라 논리의 핵심으로 삼는다. 
    • 그는 탐구를 이렇게 정의한다. “탐구는 미정의 상황을 원래 상황의 구성 요소들이 통일된 전체가 되도록 특징과 관계가 결정된 상황으로 변형시키는 통제된 과정이다”
    • 그는 또 “탐구는 객관적 대상의 객관적 변형에 관계한다”고 덧붙인다.
  • (러셀의 비판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윌리엄 제임스

  • 윌리엄 제임스는 ‘근본 경험주의’라는 학설을 창안했고, ‘실용주의’나 ‘도구주의’로 불리는 이론을 주창한 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 제임스의 근본 경험주의 학설은 <의식은 존재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최초로 공표되었다.
    •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은 주체와 객체 관계가 근본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부정하는데 있었다.
    • 그때까지만 해도 철학자들은 ‘인식활동’이라는 일종의 사건이 존재하며, 그 안에서 한 존재, 즉 인식하는자 혹은 주체가 다른 존재, 즉 인식되는 사물 혹은 객체를 의힉산하든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 인식하는 자는 정식 혹은 영혼으로 생각되었고, 인식되는 객체는 물체, 영원한 본질, 타인의 정신이고 자기의식의 경우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기도 한다.
    •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은 철학에 포함된 내용은 거의 대부분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 정신과 물질의 구분, 관조적 이상, 그리고 전통적인 ‘진리’ 개념은 모두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기본적인 것이 아니라면 근본적으로 재고해 보아야 한다.
  • 그는 의식이란 “실재하지 않는 것의 이름이며 제이 ㄹ원리들 가운데 하나가 될 정당한 자격이 없다. 의식에 여전히 집착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메아리, 철학의 대기 중에서 사라져가는 ‘영혼’이 뒤에 남긴 희미한 풍설에 집착하는 셈이다”라고 말한다.
    • 그는 이어서 “물체와 대조를 이루며 물체에 대한 사유가 만들어지는 원래부터 있던 재료 혹은 존재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면서 그는 사유가 인식의 기능을 수행하며 그 기능을 ‘의식’이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 그가 부정하는 견해는 조잡하게 표현하면 의식이란 하나의 ‘사물’이라는 견해로 간주될 수도 있다.
    • 그는 세계의 모든 존재가 구성되는 근본 재료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근본 재료를 ‘순수 경험’이라 부르며, 인식활동은 순수 경험의 두 부분 사이에 맺어지는 특별한 관계라고 말한다.
    •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파생된 관계로서 “내 생각에 경험은 그러한 내적 이중 관계를 갖지 않는다” 주어진 경험의 나뉘지 않는 부분은 한 맥락에서는 인식하는 자이고 다른 맥락에서는 인식되는 무엇이다.
  • (이하 러셀 설명 생략)
  • 제임스의 말을 들어보면 관념은 우리 경험의 다른 부분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한에서 참이 된다. “관념은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삶에 유익하기만 하면 ‘참’이다”
    • 진리는 선(좋음)의 한 종류지 독립적인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진리는 관념에서 생기며, 사건들에 의해 참으로 만들어진다.
  • (이하 러셀 비판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베르그송

  • 베르그송의 비합리주의가 이성에 맞선 반항을 보여준 좋은 사례
  • 베르그송의 철학은 대부분의 예전 철학과 달리 이원론 체계에 속함.
    • 그에게 세계는 공통점이 없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편에는 생명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물질, 아니 지성이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스스로 운동하지 못하는 사물이 있음.
    • 생명은 상승 운동을 하고 물질은 하강 운동을 한다.
    • 생명은 하나의 거대하고 힘찬 충동으로서 태초에 한꺼번에 주어졌으며, 물질의 저항에 부딪혀 물질을 뚫고 나가려 분투하다가 점차 물질을 이용하는 법을 습득하여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 생명은 장애물을 만나 분할되면 길목에 다다른 바랍처럼 생명의 흐름을 양쪽으로 나누어 저항한다.
    • 생명력의 일부는 물질이 강요한 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약화되지만, 언제나 자유로운 활동 능력을 유지하면서 늘 생명의 새로운 출구를 찾아 분투하고 늘 마주선 물질의 장벽들 사이로 더 자유롭게 운동하려 한다.
  • 지성과 본능의 구분은 베르그송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내용인데, 많은 부분이 본능은 착한 놈이고 지성은 나쁜 놈이라는 식이다.
    • 최고 상태에 이른 본능을 직관(intuition)이라 부른다. 그는 “직관은 사심 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대상을 반성하면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본능을 의미한다”라고 말함.
  • 지성이 공간과 관계하듯 본능이나 직관은 시간과 관계한다.
  • 베르그송은 보통 기억에는 극단적으로 달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하며, 두 활동의 구분을 강조한다.
    • “과거는 두 가지 별개의 형태, 첫째는 자동 기계 작용(motor mechanism)의 형태로, 둘째는 독자적인 상기의 형태로 살아 남는다”
  • 베르그송의 겨우와 같은 반지성주의 철학의 나쁜 결과 가운데 하나는 지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혼동이 무성하게 자라한다는 점이다. 
    • 그래서 좋은 사고방식 보다 나쁜 사고방식을 선호하고, 순간에 직면한 어떤 난점이든 해결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어리석은 어떤 실수든 지성의 파산과 직관의 승릴르 드러낸다고 여기도록 이끌린다.
  • (이하 베르그송의 여러 논의들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카를 마르크스

  •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체계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느 누구보다 강력한 운동을 이끌어낸 사람으로 생각 된다.
    • 마르크스는 어떤 면에서 호지스킨처럼 철학적 급진파의 영향으로 성장한 철학자로서 급진파의 합리적 성형과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어받는다.
    • 다른 면에서 보면 그는 유물론을 부활시킨 학자로서 유물론으 ㄹ새롭게 해석해서 인간의 역사와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시킨다.
    • 마르크스는 위대한 체계를 구성한 마지막 철학자이자 헤겔의 후계자로서 헤겔처럼 인간성의 진화를 종합하는 이성의 정칙(fomula)이 있다고 믿었다.
  • 마르크스는 벤담이나 제임스 밀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언제나 과학적으로 연구하겠다는 의향을 분명히 나타낸다.
    • 그의 경제학은 원동력만 변화시킨 영국 고전 경제학의 산물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지주와 임금 노종자 양측과 대립한 자본가 계급의 복리를 목적으로 삼았다. 이와 반대로 마르크스는 임금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 착수했다.
  • 마르크스는 자칭 유물론자였지만 18세기 프랑스의 기계적 유물론을 지지하지 않았다.
    • 헤겔 철학의 영향으로 형성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전통적인 유물론과 달랐으며, 오늘날 도구주의라 불리는 사상에 더 가까웠다.
    • 그는 구식 유물론이 감각을 수동적인 작용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활동을 일차적으로 물체에 귀속 시켰다고 주장했다.
    •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감각이나 지각은 모두 주체와 객체가 상호작용한 결과로서, 지각자의 활동을 제쳐놓은 있는 그대로의 객체는 단지 재료일 뿐이므로 인식 과정에서 변형되기 마련이다.
    • 수동적 관조라는 낡은 의미의 인식은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나는 인식 과정은 물건을 다루는 과정과 같다.
    •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 마르크스는 실천의 관점에서 ‘진리’ 개념을 비판한 첫 철학자이다.
  •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헤겔과 영국 고전 경제학이 뒤섞여 형성된다. 그는 헤겔처럼 세계는 변증법적인 정칙에 따라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발전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헤겔과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
    • 헤겔은 ‘정신(spirit)’ 이라는 신비적 존재가 <논리학>에 제시된 변증법의 여러 단계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도록 이끈다고 믿었다.
    •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법칙의 불가피성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헤겔 변증법의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 그러나 물질은 인간적 요소가 완전히 말살된 원자론자들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고찰해온 독특한 의미를 갖는 물질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서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이든 정치, 종교, 척학, 예술은 속한 시대의 생산 방법과 비중은 조금 낮지만 분배 방법의 산물이다. 
  • (마르크스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
  • 순수하게 철학자로서 고찰하면 마르크스에게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그는 지나치게 실천에 치우치고 당대 문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휘둘리고 말았다. 그의 시야는 지구라는 이 행성에 그것도 지구 안의 인간에게 국한되었다.
    • 대체로 말하면 마르크스 철학 가운데 헤겔에게서 유래한 모든 요소가 참이라고 가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 모두 비과학적인 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 마르크스의 합리주의가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 그는 발전의 추세에 대한 해석이 사실이며 일어날 사건들이 확증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계급 이익이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 또 설득하려하지않고 계급투쟁에 모든 희망을 건다. 따라서 그는 실제로 권력정치에 그리고 지배 종족을 지지하는 학설은 아니지만 지배 계급을 지지한느 학설에 몰두한다.

러셀 서양철학사/ 공리주의자들

  • 영국의 전문 철학자들은 칸트에서 니체에 이르는 시기 내내 독일 철학자들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 벤담과 그의 학파는 철학을 형성한 주된 요점을 로크, 하틀리, 엘베시우스에게서 도출했다. 그들은 철학적인 측면보다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영국 급진주의의 지도자이자,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학설의 등장을 준비한 철학자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 벤담의 철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하는데, 하나는 ‘연합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 행복 원리’이다.
  • 벤담은 선이란 쾌락이거나 행복이고 악은 고통이라고 주장했는데, 쾌락과 행복을 동의어로 사용했다.
    • 만약 어떤 사태가 고통보다 쾌락의 양을 더 많이 포함하거나 쾌락보다 고통의 양을 더 적게 포함하면, 그 사태는 다른 사태보다 더 선하다. 가능한 모든 사태들 가운데 최선은 쾌락을 가장 많이 포함한 사태이다.
    • (이러면 지역 최적점에 빠질 수가 있다.)
  • 벤담은 선이 일반의 행복일 뿐만 아니라 개인은 언제나 각자 믿는 행복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입법자는 공공 이익과 사적 이익의 조화를 산출하기 위해 일한다.
    • 내가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공공 이익에 부합하는데, 유효한 형법이 제정되지 않은 곳에서라면 이러한 행도잉 나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게 딘다. 따라서 형법은 개인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과 공존하게 만든느 방법이고, 그 것이 바로 법의 정당성을 보증해준다.
    • 범죄자를 증오해서가 아니라 범죄를 막기 위해 인간은 처벌을 받게 된다. 가혹한 처벌보다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
  • 벤담에 따르면 민법의 목표는 네 가지로서 생존, 부, 안전, 평등이다.
    • 그가 자유를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사실 그는 자유에는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았다.
  • 벤담이 점차 급진주의로 나아가게 된 근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쾌락과 고통의 계산에서 연역적으로 추론되는 평등의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그가 이해한 이성의 중재에 맡기려는 불굴의 결심이다.
  • 제임스 밀은 벤담처럼 쾌락이 유일한 선이고 고통은 유일한 악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에피쿠로스처럼 온건한 쾌락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며, 지적인 즐거움이 최선의 덕이고 절제는 주된 덕이라고 생각 했다.
  • 제임스 밀은 정치는 이성으로 제어하고 사람들의 의견은 증거의 양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논쟁을 하면서 대립하는 양측이 같은 기량을 나타낸다면, 지지하는 수가 더 많은 측이 옳다고 판단해야 도덕적으로 확실하다는 말이다.
    • 그가 제시한 사고방식은 천성적으로 정서가 부족했기 때문에 창조력이 결여된 반면 근면, 공평함, 합리성 같은 장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 19세기 중반기 내내 벤담주의자들이 영국의 법 제정과 정책에 미친 영향력은 정서적인 면에 전혀 호소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두드러졌다.
  • 벤담은 사회 일반의 행복이 최고선(summum bonum) 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다양한 논증을 내놓았다.
    • 그는 마르크르슬 예견하는 듯 정치적 궤변에 관한 논문에서 감상적이고 금욕적인 도덕규범은 지배 계급의 이익에 기여하며 귀족정치 체제의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 그는 희생의 도덕을 가르치는 자는 오류에 빠진 희생자로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기를 발나다고 말한다. 도덕 질서란 다양한 이익들이 평형을 이룰 때 생겨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 지배자 집단은 지배 계급의 이익과 피지배 계급의 이익이 이미 일치한 듯이 가장하지만, 개혁가들은 두 계급 간의 이익이 아직 일치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일치시키려 노력한다.
    • 벤담은 공리 원리(Principle of utility)만이 도덕과 법 제정의 규준을 제공할 수 있으며, 사회과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공리주의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니체

  • 니체는 자신을 쇼펜하우어의 후계자로 여겼지만, 여러 면에서 특히 학설의 일관성과 정합성의 측면에서 쇼펜하우어보다 뛰어났다.
    • 쇼펜하우어가 수용한 동양적인 체념의 윤리는 의지의 전능을 주장한 형이상학과 조화되지 않는 듯 하다.
    • 그는 존재론이나 인식론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이론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 그러나 우선 윤리학의 측면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역사 비평가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 (니체에 대한 설명 생략)
  • 니체의 윤리는 보통 쓰는 의미인 방종의 윤리가 아니다. 그는 스파르타식 훈련과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는 고통을 짊어질 뿐만 아니라 인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엇보다 의지의 힘을 찬양한다.
  • 니체는 국가 숭배자는 아니며 국가 숭배와는 아무 관련 없다. 그는 열정적인 개인주의자이며 영웅 신봉자이다.
  • (니체의 여성과 그리스도교 비난 생략)
  • 니체의 영향력이 전문 철학자들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 또한 미래를 내다본 니체의 예언이 지금까지는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의 예언보다 더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니체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

러셀 서양철학사/ 쇼펜하우어

  • 쇼펜하우어는 19, 20세기에 유행한 철학의 큰 특징인 의지를 강조하고 철학적으로 부각시켰는데, 그에게 의지는 형이상학의 근본이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악이다. 이러한 대비는 염세주의자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에 속한다.
  • 쇼펜하우어의 철학 체계는 칸트 체계를 각색하고 개작한 것이지만, 피히테와 헤겔이 강조한 면과 매우 다른 <순수이성비판>의 국면을 강조한다.
    • 쇼펜하우어는 사물 자체를 존속시키면서 사물 자체를 의지와 동일시 했다. 그는 나의 몸처럼 지각에 나타난 현상이 실제로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 (이하 설명 생략)
  • 쇼펜하우어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하나는 염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가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학설이다.
    • 그의 염세주의 사상느 모든 악이 설명되어 사라질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도 인간이 철학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여러 놓았다. 이것은 염세주의가 해독제로서 유용하다는 뜻이다.

러셀 서양철학사/ 바이런

  • 당대 바이런으로 대표되는 귀족주의적 반항아는 농민과 무산자 계급의 반란을 주도한 지도자와는 전혀 다른 유형에 속한다.
    • 굶주린 자들에게는 불만을 자극하거나 애써 변명하기 위한 정교한 철학이 필요 없을 뿐더러, 그들에게 철학이란 기껏해야 게으른 부자들의 놀음으로 비칠 뿐이다.
  •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