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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유학 사서 중 하나. 주자는 대학-논어-맹자-중용 순으로 읽는 것을 추천하였으나 나는 가장 마지막에 읽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2권짜리였기 때문.

바로 직전에 읽고 깠던 <대학, 중용>과 달리 훨씬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유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이상한 소리는 아니군 하는 생각과 더불어 왜 맹자가 당대에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이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롭지 못한 군주는 쫓아 내야 한다'거나 '백성이 근본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자가 천하를 얻는다'와 같은 현대에도 통용되는 개념을 2,300년 전 사람이 주장한 것이 참 놀라웠는데, 이러한 이유로 <논어> 보다 훨씬 인상 깊게 읽었다. 특히 다른 유학서들과 달리 '백성을 배부르게 해야 한다', '정전제'와 같은 경제 얘기를 논의하는 것이 놀라웠음. 

유학자 답게 인(인의예지)과 덕을 강조하는데, 전쟁이 빗발치던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합당한 주장이라고 생각 됨. –물론 이때는 예를 강조한 것이 훗날 한반도에서 예송논쟁으로 번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물론 플라톤도 그러했듯이 대다수의 논의와 논리가 다소 옛스럽기 때문에 –까놓고 말해서 군주가 의롭다고 나라와 백성이 의로울리는 없지– 그 부분은 감안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고전 읽기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 유학의 사서를 읽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맹자를 읽는 것을 추천. 한 권 더 본다면 논어까지.

대학, 중용

각각 유학의 사서 중 하나로 <대학>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중용>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그 두 책을 하나로 합했음에도 전체 분량이 150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되는 책이라 말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음.

책을 읽으면서 <논어>를 읽을 때보다도 좀 더 뜬구름 잡는 소리를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유학하는 선비들이 도대체 이런 내용을 읽고 무슨 정치를 할 수 있었을지가 궁금했다.

그 크기가 어떠하든 조직이 굴러가는 것은 의사결정권자의 의사결정과 조직을 구성하는 시스템, 조직 문화 같은 것이 결정적이지 리더의 도덕성은 큰 상관이 없기 때문. 물론 비도덕적인 리더는 조직 시스템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리더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조직이 저절로 알아서 잘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이런 내용을 접할 때마다 '고전' –동서양 모두– 이라는 것을 읽을 필요가 있나 싶은 회의감이 자꾸 든다. 이런 근거 없는 자기 생각 –이렇게도 갖다 붙일 수 있고, 저렇게도 갖다 붙일 수 있는– 으로 쓰여진 책 읽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핵심적인 지식을 다루는 현대의 책들을 읽는게 낫지 않을까 싶음.

논어

유학의 사서 중 하나.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나눈 대화를 엮은 책.

격언식으로 엮인 <채근담>과 달리 특정 상황에 나눈 대화 형식이라 앞뒤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 내용까지 다 이해하려면 별도의 주석이 달린 책을 읽어야겠으나, 유학하는 선비가 아닌 이상 뭐 딱히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음.

채근담 때와 마찬가지로 인상적인 내용도 있고, 참 옛날스러운 –세상을 좀 단순하게 이해하는– 사고 방식이다 싶은 내용도 있고 하다. 비슷한 시기의 서양 철학자들도 그랬지만 올바른 지식과 선을 추구하고 그에 합당한 실천을 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는 훌륭하다 할 수 있을 듯.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할 말이 좀 많지만 일단은 나중을 기약한다.

그나저나 2,500년 전의 공자도 '옛날 사람들은 예를 알았는데 요즘 것들은 예를 몰라' 하는 늬앙스의 얘기를 한다는 것은 좀 웃겼다.

채근담

삶의 많은 경험이 담긴 어록집. 불교, 유교, 도교적인 내용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사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크게 와닿지 않기 때문에 좀 공허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음. 

자신의 삶은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하는 마음 가짐과 실천에 달린 법. 자신보다 먼저 삶을 살아본 사람의 경험이 담긴 이러한 글귀가 그 마음 가짐의 성숙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중기 저작 –사실 책의 앞부분은 초기에 속한다– 중 하나로 올바른 국가와 그 국가를 이끄는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을 논하고 있다. 민주정보다 군주정을 높게 치는 것과 이데아에 대한 동굴 비유, 철인 정치와 같은 유명한 내용이 등장한다.

현대적인 내용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올바른 지도자 –철인– 에 의한 통치에는 수긍하는 편이므로 전체적인 방향성 면에서는 공감이 가기도 하였다. –사실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현대와는 거리가 너무 먼 이야기들이 많다. 일단 당시에는 학문 분야도 그리 많지 않았던터라

개인적으로는 상세한 내용이 현대적이지 않다는 점 보다 책의 논리 전개가 다소 순진하다는 점 때문에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웠다. 아무래도 수학적으로도 무리수까지 밖에 이해하지 못하던 시대 사람들이라 그런지 '무엇이 되면 무엇이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논의가 확증되는데, 그러한 부분이 받아들이기 좀 어려웠음.

현실 세계는 다양한 스펙트럼 내에서 통계적인 확률로 추정 해야 보다 현실에 근접한 논의가 이루어질텐데,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도 그보다 2,000년도 훨씬 더 지난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아인슈타인에 의해 밝혀졌으니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가 그러했던 것이 무리는 아니다 싶다. –세상을 통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양자역학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

다만 이런 내용을 접하고 있자니, 과연 이런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인 고전을 읽는 것이 과연 나에게 유의미한가에 대해서는 혼란이 좀 생겼다. 이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냥 후대 사람들이 요약한 –누구누구의 철학사와 같은– 것으로 읽고, 보다 현대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것이 좀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의 4복음서 –초기 대화편에 속한다– 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하나로 엮은 책. –내용상 '변명' 보다는 '변론'이 더 맞지 않을까 싶지만 여튼 책 제목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사건의 시간 흐름상 앞의 세가지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사형 선고에 대한 변론을 펼치는 것 –소크라테스의 변명– 에서 부터 사형 선고 후 감옥에 갖혀 있는 동안 탈출을 권하는 친구인 크리톤과의 대화 –크리톤–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는 마지막 날 친구와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 –파이돈– 가 이어진다. 마지막 향연은 앞선 이야기들과는 시간 상 동 떨어진 이야기인데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연회를 펼치며 에로스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플라톤이 이 책을 엮을 당시에는 철학적인 내용을 핵심으로 삼았던 것 같지만, 현대의 과학이 밝혀낸 지식을 바탕으로 보면 올바르지 않은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리스 신을 근거한 지식이라든가 이데아와 같은 내용들– 지금 읽으면 마치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현대적인 지식 기준에는 올바르다고 보기 어려운 지식들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름 합리적인 추론 과정을 거쳐 그러한 지식을 이끌어 냈다는 것 –이 부분이 꽤 흥미롭다. 사람이 태어날 때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영혼의 존재를 증명해 내는데 그 과정이 참 절묘함. 물론 현대 과학은 그것을 '본능'이라고 부른다.– 이나 그 사람들이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한 일에 대한 실천을 중요시 한 점 등에서는 배울 점이 많은 듯.

철학과 굴뚝청소부

철학을 이해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겠지만, 철학을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이나 관점 정도로 본다면 철학사는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과 관점의 확장 경로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시각이 중세시대 신을 모든 것의 진리라 여기던 것에서 근대에 이르면 그 신의 자리에 주체(인간)가 자리 잡게 되고, 이후 탈근대화를 맞이하며 인간 또한 여러 관계들 중 하나일 뿐이며, 진리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까지 이르게 된 것인데 –이후엔 뇌과학이나 생물학 등의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철학은 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리라 봅니다.– 이는 마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시대에서 시야가 넓어지자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후에 태양마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흐름과도 유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인류가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 믿었던 때에도 사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었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믿었을 때도 사실 태양은 우주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입니다. 
현상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인류의 지식이 발전하고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본래의 현상에 근접하게 된 것이죠.
지금의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시야 또한 마찬가지라 현재의 지식은 지난 시기의 것을 기반으로 보다 조금 더 넓고 깊게 쌓였을 뿐, 지금 시점이 지식의 완성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에 근접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새로운 틀에 의해 –마치 맑스의 사회주의나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철학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한 것처럼– 지식이나 시야의 확장이 이루어질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야의 확장이 현시대에서는 뇌과학이나 심리학, 생물학과 같은 과학이 이루어낸 성취와 현사회 현상을 과학적 절차와 방법으로 관찰하기, 또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과 같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가능하리라 봅니다. –괜히 여기저기서 융합의 시대라 하는게 아니죠.– 책의 저자 또한 마지막에 이와 같은 내용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철학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 –삶의 방향성이라든가,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나 지식으로 본다든가, 혹은 그 모두라든가 등등– 제가 여러번 글에 썼듯 철학이 없는 삶은 위험합니다. 설령 자신의 철학이 방향을 바꿀수 있을지라도 적어도 성인이라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 믿습니다.
자신의 철학이 어떠하든 자신의 철학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철학이나 인류 철학의 흐름을 이해해 보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하고 또한 이 책은 바로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책이기 때문에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을만한 책이라 생각 됩니다.